190화 와그다스의 후예 (7)
마타치치가 란드와르를 만나러 온 건 학자들을 해산시키고서도 몇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한쪽 손에는 나무 반지를 꼈고, 다른 손으로는 요정 꼬마를 마대자루 끌듯이 옮기고 있었다. 클렘퍼러였다.
"안녕하세요, 다른 학자들이 말하기로는 편하게―예, 편하게 대하는 편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격식이나 예법 같은 건 따지지 않고요. 제가 들은 게 맞나요? 아니라면 말씀해 주세요, 신벌을 받아 죽을까봐 걱정이거든요."
"하나도 걱정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만 해요."
란드와르는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었다. 세계의 운명이나, 늑대나, 슈문의 상태 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미 수십 번은 한 이야기를 간략히 되풀이한 뒤에야 본론이 나왔다. 마타치치는 클렘을 끌어와 앞세웠다. 또랑또랑한 애 목소리가 허리께에서 울렸다.
"잘못했어."
그렇게 말한 클렘은 치켜뜬 눈으로 란드와르를 올려다보았다. 태도가 여전한 걸 보자니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마타치치는 재빨리 조카의 등짝을 후려치고는 수습용 웃음을 만면에 뗬다. 이모 쪽은 조카에 비하면 꽤나 상식인인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애가 워낙 버릇이 없어서요. 클렘, 제대로 사과해야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선 예의 있게 말하라고 했잖니. 아니, 그냥 사람이라면 또 몰라……."
"사람이야. 저 사람이 나 들고 왔어."
"얘는 참―정말 죄송해요, 애가 맹한데 고집까지 세서 자주 이러네요."
마타치치는 진심으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도 란드와르는 테네브로즈와, 벨레다와, 펠로시와 함께한 시간 덕택에 육아의 고충을 어렴풋이 이해한 상태였다. 그들이 모두 어엿한 성인이라는 사실은 건너뛰더라도, 아무튼. 그는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됐습니다, 지금 당장 사과를 받을 일도 아니고… 교육이나 잘 시키는 게 좋겠군요. 이대로 크면 연쇄살인마가 돼서 행인 머리를 맞추고 다닐 겁니다. 장담하죠."
"안 그래. 난 막대기 쓰는 거 안 좋아해. 이번엔 어쩔 수 없이 한 거야."
클렘이 반박했다. 거짓말을 할 성격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진위여부가 의아한 주장이었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닐지라도 다른 건물 옥상에서 머리만 기막히게 노리는 건 평범한 어린애 솜씨라고 보긴 어려웠다.
"평소에 연습은 하고 다녔을 거 아니냐. 아니야?"
"손도 안 대. 몇 년 만에 처음 잡은 거야."
"흠."
짧게 헛기침한 란드와르는 확언을 부탁하듯 마타치치를 바라보았다. 녹색 눈이 둥그렇고 큰 안경알 너머에서 반짝였다. 이 상황 자체에서 오는 당혹감과… 영재원에 드나드는 부모 특유의 자부심이 뒤섞여 있었다.
"사실이에요. 몇 년간은 워낙 싫어해서 만지지도 않으려 했죠. 하지만 워낙 솜씨가 좋아서―"
"나도 이제 마법 배우고 있거든! 그거 잘 해서 어디에 쓴다고 그래!"
클렘은 퉁명스레 외쳤다. 비운의 천재를 본 느낌이었다. 20세기 초에 태어났더라면 전설의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을 텐데 이런 곳에 떨어져서 바보 소리나 듣는 삶을 살고 있었다(물론 그 별명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죄송해요, 애가 요새 반항기거든요. 요새도 아니죠, 몇 년 됐어요. 막대기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소리인데, 그걸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어요. 이제는 아무도 안 쓰는 단어가 돼 버렸지만요."
"총 말이죠."
"아, 아시는군요! 하긴 제국을 무너뜨리신 분이니까 당연히 아시겠죠. 그때도 많이 만들어지진 않았지만요. 참, 무예의 신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우리네 선조는 이게 인간의 손에 들어갈까 두려워했대요. 총만 있으면 저런 아이조차도 평범한 마법사만큼은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마타치치는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들이 그런 것처럼 신난 표정으로 총기의 역사와 쓰임에 대해 긴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것만 있으면 황무지의 괴수들도 수월하게 잡을 수 있다고, 그러면 지금처럼 인간 도시들을 드나들면서 잡뼈나 겨우 훔쳐올 필요가 없으리라고 했다. 야스와다 요정들을 만났을 때 도망치는 대신 맞서 싸울 수 있으리라고도. 심각하다면 심각하고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유였다.
<아, 그래요. 그 문제도 합의를 봐야 해요. 끝날 때 하시겠어요, 지금 하시겠어요?>
열띤 논설이 종반에 접어들 무렵 티아가 속삭였다. 그 문제, 란 당연히 총기 허가에 대한 것이었다. 도시 연합의 역사는 총기 규제의 역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정확히는 마법을 사용한 살상 도구 전반이 그 대상이었다.
공간 주문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살상 무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공장과 기계 장치가 있는 세상에서 이런 게 없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방법이나 형태는 다양했다. 찢으면 저장된 주문이 방출되는 종이. 물리적인 방아쇠를 뽑으면 마력 수용액이 한데 섞이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폭탄. 기타 등등.
정보사 업무 중에는 파괴적인 발명에 관심이 많은 학자들을 설득하거나 감금하는 것도 있었다. 그들은 치안 유지와 재정흑자를 위해 그 일을 했다. 교단에는 공기업적인 성격이 있었고, 괴수 토벌 업무는 유의미한 매출처였기 때문이다. 코레일이 흑자 노선 수익으로 적자 노선을 유지하듯 교단도 그런 식으로 돌아갔다. 이거 참 그럴듯하고 어처구니없는 이유로군.
물론 어떤 도구는 한정적으로 허용되었지만 제약이 따랐다. 일단 소지를 위해서는 허가가 필요했고, 치안대원을 비롯한 특정 직군에 종사해야 했으며, 생산부터 판매까지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결정적으로 모든 전투용 도구는 일회용이거나 소모품이어야만 했다. 길어도 한 달 안에는 무용지물로 변하게끔.
그 논리대로라면 마타치치의 총기는 허가될 수가 없었다. 곡사 탄도학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위력은 청년 요정 수준이었다. 평범한 인간 마법사보다 월등하다는 소리였다. 전투 마법사들의 실직을 유발할 위험이 컸다. 게다가 마력 결정이나 요정의 피만 있으면 계속 마탄을 충전할 수 있는 관계로… 반영구적이었다.
어쨌든 이걸 다 듣고서야 말을 꺼내라니 취미가 참 고약하십니다.
<제 일이 모니터링만 있는 건 아니라서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란드와르는 잠시 머릿속으로 욕을 하면서, 마타치치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생각해 보았다. 실컷 설명하게 둔 다음에야 진실을 밝히는 놈? 아니면 실컷 전투원으로 굴려먹은 다음 금지령을 날리는 놈? 후자보다는 전자가 나아 보였다. 배신감의 크기는 기대감과 공로의 합산에 정비례하는 법이었다.
"그나저나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만, 저기 저 두 놈들은 말루카 한림원에 교수 자리를 받느니 뭐니 하는 판국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되어 죄송스러운데……."
그는 쿠벨릭과 첼리비다케의 존재를 암시한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미궁에서의 일에 총기가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명백하며 마타치치의 역할도 거기에 있으리라는 것. 하지만 인간 도시에서 그런 전투용 도구는 엄금이라는 것. 마타치치는 고민하듯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다가 석연찮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화신님께 반기를 들려는 건 아닌데요, 혹시 뭐 하나 여쭤도 될까요?"
"예, 마음껏 물어 봐요. 어차피 이런 일로 천벌을 내릴 거였으면 설득이 아니라 통보를 했을 겁니다."
"논문을 쓰듯 말씀드리자면, 총이란 물화된 마법이라고 할 수 있죠. 혹은 전투 마법사를 확장된 총기로 정의할 수도 있을 테고요. 제 말은… 사람들이 총을 들고 다니면서 남을 위협하는 게 걱정이라면 마법사들은 왜 살려두는 건가요?"
음, 전투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교단 소속 사제기 때문이죠. 훈련원 과정을 마친 사제가 전투 직렬에 선발되면 우선 제단에서 맹약을 올린다더군요. 마법을 허튼 데에 쓰면 힘이 봉인된다, 뭐, 그렇게요. 물론 핵심은 그 전투 마법사들의 수입이 교단에 귀속된다는 데에 있습니다만…….
란드와르는 핵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은 신이었고 성스러운 태도를 유지할 의무가 있었다. 해명을 들은 마타치치는 한동안, 충격을 받은 듯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는 표정에 은은한 자신감이 맴돌고 있었다.
자신감?
"처음에 말씀하시길, 반영구적인 부분이 문제가 된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인간 세상은 잘 모르지만 공장의 기계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동력 전환 장치가 마력 결정에 담긴 힘을 주문에 공급해 주는 거죠. 그게 휘발되지 않게요."
"방직 기계나 탈곡기로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으니까요. 아니, 엄밀히 말하면 죽일 수는 있죠. 그런데 탈곡기에 사람을 던져서 죽일 인간이라면 식칼로도 그럴 겁니다."
"아―아뇨! 그게 아니라 동력 전환 장치 자체에 대한 이야기예요. 저는 주로 위력 연구를 했지만, 전환 장치의 효율에 대해서도 신경을 꽤나 썼거든요. 요즘은 마력 포집을 시도하고 있어요. 총기는 아니더라도, 이 기술은 쓸 데가 있지 않을까 해서……."
마도학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었고, 타일라프람 학계 동향도 몰랐지만, 이게 보통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포집 기술이 대중적이었더라면 마력 지맥의 중요성도 낮아졌을 테니까.
"실제로 구현을 했습니까?"
"음, 가능성만을 보고 있는 중이에요. 일단 궁전에도 제대로 된 논문이 없거든요. 저희 요정들은 마력 결정 대신 피를 쓸 수 있으니까 동력 효율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던 거죠. 효율―관건은 효율이에요. 포집 장치를 작동시키는 데에 드는 것보다 그게 회수하는 마력이 더 많아야 하죠."
란드와르는 자신이 스타트업 대표를 눈앞에 둔 VC(*Venture Capital) 심사역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사장들은 대체로 말을 잘 했고 자신도 말을 잘 하는 편이었다. 일이 된통 꼬인 상황에서도 심사역과 미팅할 일이 생기면 일단 좋은 소리만 늘어놓고 봤다… 예전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정신이 한순간에 명료해졌다. 이런 말에 벌써부터 솔깃해져서는 안 됐다.
"실현가능성이 있는지가 궁금한데요."
"일반적인 상황에서, 포집 장치 자체로는 분기점을 넘는 효율이 절대 나오지 않아요. 대부분은 그렇죠. 하지만 바로 옆에서, 마력을 막대히 소모하는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대기 중 농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지니까요."
"공장 같은 곳 말이죠."
"네, 공장요. 보통은 그것 때문에 정화 장치를 추가한다고 들었어요. 이미 다 들켰대서 드리는 말씀인데 첼리비다케랑 쿠벨릭이 거기에서 팔아먹으려던 도면도 그 쪽이고요……."
오염 처리의 중요성은 란드와르도 알고 있었다. 변성된 마력은 기기를 망가뜨리거나 이상 현상을 일으켰고 연금술 공방에서 나온 폐기물을 땅에 버리면 수액 괴물이 생겨났다. 연금술사의 숲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는 잠자코 마타치치의 결론을 기다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법했다.
"제 제안은 이거예요―그 자리에 대신 포집 장치를 달 수 있으리라는 거죠. 아, 네! 첼리비다케는 당연히 이길 수 있죠. 애초에 그 녀석은 쿠벨릭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마타치치는 란드와르가 아니라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정 학자의 손에 끼워진 나무 반지가 그제야 시야에 들어왔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헤이딘에게 지령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두 번째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
그는 유령의 판단력에 내심 감탄했다. 어르신, 마타치치랑 연합을 맺어서 말루카 한림원 총장직을 굳힐 예정이시군요? 어쨌거나 잘 된 일이었다. 란드와르로서도 첼리비다케에게 총장직을 안겨줄 마음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진지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군요. 볼로디아와 로안에게 소개해 봅시다.>
티아도 동의를 표했다. 승부는 이미 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