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83화 (184/258)

183화 카스바의 요정들 (5)

제국에도 총기는 있었다.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요정들은 거추장스러운데다가 정확히 조준해야만 효과가 있는 막대기를 불편하게 여겼지만 그 파괴력만큼은 인정했다. 그들은 인간에게 총기가 넘어가는 상황을 지극히 경계했고, 실사용 또한 금지했다.

규제는 차원 생쥐들이 승리를 거둔 후에도 지속되었다. 그들은 총기 개발과 생산을 엄격히 관리했다. 아니, 사실상 억제했다. 총기 개발에 관심을 보이는 연구자들을 찾아내 다른 국책과제를 던져 주거나 세카두 외곽 수도원에 가두는 것은 정보사의 수많은 업무 중 하나였다.

열두 살조차도 건장한 성인을 죽일 수 있는 막대기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었다. 작은 마을들이 자경 능력을 갖출 경우 교단 현금 흐름이 악화될 위험 역시 컸다(아즈리온 교단과 마흐트 교단의 주 수입은 괴수 퇴치와 경호로부터 왔다. 소규모 지자체의 방호에 대해서는 도시 연합이 지역균형발전 및 복지 차원에서 그 비용을 지불했다).

그렇다면 마법사들을 살려둔 이유는 뭐냐고? 그들은 대부분 파울리스나 마흐트를 섬기는 교인이었고, 헌금을 쏠쏠하게 냈으며, 말을 잘 들었다.

결국 요점은 이것이다. 인간 도시 연합은 아주 느슨한 합중국의 형태로 기능한다는 것. 그 합중국의 최상단에는 차원 생쥐들이 위치해 있다는 것. 그리고 국가란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하는 정치 결사체라는 것. 누구의 말이었더라?

란드와르는 이름 모를 사회학자의 통찰에 감탄했다. 생쥐들의 용단에도.

"허……."

투구 너머로 나타난 세상은 황금빛이었다. 물론 카스바 서부 쓰레기장 진입로가 황금에 뒤덮여 있을 리는 없다. 헤이딘이 펼친 수호 영역일 뿐이다.

마탄이 보호 주문을 부수며 날아드는 걸 보자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까 전까지는 그래도 어깨나 다리가 표적이 되었는데 이제는 아예 죽여 버리겠다는 듯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갑주를 불러내야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능묘에서 싸울 때에나 꺼내 입었는데.

다시 마탄이 관자놀이쯤을 강타했다. 수호 영역이 마탄에 실린 힘을 경감시키기야 했지만 충격을 모두 없애진 못했다. 란드와르는 고개가 뺨이라도 맞은 것처럼 훅 돌아가는 걸 느끼고는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마치 농구공 골대라도 된 기분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농구공을 던지는 상대가 초등학생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자세를 바로잡고서는 폐가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주황색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요정 꼬마가 난간에 팔꿈치를 얹은 채 란드와르의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집에서 말과 원숭이를 키우고 있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듯했다. 참, 그 원숭이의 이름은 닐슨 씨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모르죠. 사실 지구에서도 요즘 애들은―>

내 나이가 서른넷인데 뭘 기대하시는 겁니까?

참, 이제 서른다섯이지. 그걸 감안하더라도 <삐삐 롱스타킹> 드라마는 이강현이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인간이 처음으로 달에 사람을 보냈을 때 촬영됐다. 1969년의 일이다. 오래되긴 했군. 그는 공감대도 얻지 못할 푸념을 주워 삼켰다.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공간 마법이 해제되기 전까지 자신의 머리가 무사하길 빌 수밖에 없었다. 그 마법의 명세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계단을 밟으면 몸이 네 번째 계단으로 올라서고, 그 다음 계단을 밟으면 두 번째 계단으로 내려선다. 두 계단을 한 번에 오르면 출발한 곳에서 한 발짝 뒤로 이동한다. 기타 등등.

이게 4500원짜리 멘사 퍼즐 모음집의 한 쪽이었더라면 느긋하게 규칙을 풀어볼 수도 있겠지만 저격수가 머리를 노리는 상황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건 자살 시도에 불과했다. 벨레다를 믿어볼 수밖에. 란드와르는 쳇바퀴 돌리듯 계단을 걸어 오르고 걸어 내려갔다… 이윽고 높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어요!"

은폐장의 지속시간이 거의 끝나갈 시점이었다. 허공에서 뻗어 나온 보랏빛 마력 줄기가 요정에게로 쇄도해 갔다. 소녀는 당황한 듯 몸을 빼면서 방아쇠를 당겼다―둘 다 소용은 없었다. 마력 갈래는 소녀의 팔을 난간에 옭아맸고 마탄은 반대편 건물 유리창을 꿰뚫었다. 경쾌한 와장창 소리와 함께 머리 위에서 욕설이 울려 펴졌다.

"젠장, 이건 대체 뭐야?"

누구인지는 몰라도 카스바 거렁뱅이 하나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깨진 창 너머로 걸레를 쥔 손이 튀어나오더니 실금이 자글거리는 유리판을 내던졌다.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던 유리는 보이지 않는 힘을 만나 방향이 꺾이더니 바닥과 수평이 되었고…….

"꺅!"

투명한 덩어리와 부딪히며 이내 명을 다했다. 산산이 부서지며 유리조각으로 화한 것이다. 세로로 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이런 곳에서, 화난 거지가 내던진 창문을 맞고 반으로 갈라져 죽는 건 아무래도 끔찍한데다가 멋도 없는 일이니까. 차라리 요정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편이 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란드와르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는 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마타치치의 조카와 이야기를 해 봐야 했다.

*  *  *

세상에는 너무 불온하기 때문에 오히려 평화로워지는 장소가 있다. 이런 광경을 상상해 보라: 당신은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애를 들쳐 업은 채 샛길을 따라 걷고 있다. 아이의 얼굴은 모포로 가려져 있고, 발버둥까지 치고 있기 때문에 자발적인 동행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1층의 창문이 열리면서 사람 좋아 보이는 노인이 고개를 내민다.

"애가 참 씩씩하구만. 시장에 팔 거요?"

"신경 꺼요."

"나도 애가 하나 필요해서 그러지. 생각 있으면 찾아와요."

"꽤나 비싼데 돈은 있수?"

종달새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과연 개잡놈들의 도시였다. 이 도시에 필요한 것은 도덕이나 사랑이 아니었다. 철거가 필요했다. 대대적인 철거와 재개발만이 타락한 슬럼가를 구제할 수 있다. 그는 수레 뒷좌석에 올라타자마자 의인화된 국가권력에게 민원을 제기했다.

이 동네 어떻게 해볼 생각 없어요?

<중대 과제로 선정되어 있습니다만, 현재 행정력으로는 도시 연합에 소속된 곳을 모두 관리하기도 벅찬 면이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신입 못 뽑아요? 미오리타 말고 다른 견습은 없나?

<글쎄요, 똑같은 생쥐 신세라 쳐도 이런 곳에 취직하고 싶어 할 존재는 많지 않거든요. 그중에서도 인간과 유사한 형태거나 사고방식을 가진 존재는 더더욱 적고요. 15미터에 달하는 거대 갑충에게 인간 도시 경영을 맡길 수는 없는 법이죠.>

청년들이 구직난에 시달릴 때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는 법이다. 단념한 란드와르는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벨레다가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뒷좌석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유리 조각을 씻어낸답시고 급히 물세례를 받은 탓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돌아가면 둘 다 치유 물약부터 한 병 마시고 시작해야 할 듯했다. 아직도 관자놀이가 얼얼하게 아팠다.

*  *  *

란드와르 일행은 별 탈 없이 종달새의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된 동네가 엉엉 우는 애를 들쳐 메고 차에서 내리는데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대신 로안과 볼로디아가 어깨 너머로 삐죽 튀어나온 다리 두 개를 보고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주었다. 범죄자라도 대하는 듯한 시선과 도의적인 존중이 절반씩 섞여 있었다. 범죄자 소굴에서 정상인들에게 경멸 섞인 눈초리를 받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빴다.

"그런 거 아닙니다. 뭘 생각하든 간에 그런 거 아니다. 내가 범죄는 안 저지르는 거 알지."

다급히 해명한 란드와르는 꼬마를 내려놓은 뒤 둘둘 말아놓은 모포를 벗겼다. 열두어 살쯤 될까 싶은 어린애가 나타났다. 손은 구속구에 묶여 있는데다가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소녀는 주위를 둘러싼 인간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민방위 사이렌 소리가 났다.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니오?"

볼로디아의 반응은 이해했다. 이런 꼬마가 사람 머리를 기막히게 노리는 저격수일 거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자신도 믿지 못할 진실을 남에게 설득하려니 골치가 아팠다… 다행히도 또 다른 피해자가 있었다.

"얘 때문에 죽을 뻔 했는걸요. 일단 씻고 올게요. 유리 조각이 아직도 옷에 잔뜩 남아서. 참, 물약은 있죠?"

"항상 있던 곳에."

요정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벨레다는 란드와르에게 반지를 넘긴 다음 욕실로 떠났다. 이제 거실에는 다섯이 있었다. 란드와르, 종달새, 로안, 볼로디아, 요정 꼬마. 그리고 헤이딘까지 합하면 여섯. 란드와르는 입속으로 앓는 소리를 낸 다음 질문을 시작했다.

"나르시소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냐."

"말 안 해."

클렘퍼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대화를 몇 차례 더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혼란이든 공포든 정신의 감옥이든 간에, 야스와다 마법이 시급했다. 왜 테네브로즈한테 술을 먹였지?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아직은 방법이 있었다.

"어르신, 주문을 써 보죠. 정신의 감옥 말입니다."

<정신의 감옥 말이오? 이렇게 어린 아이한테?>

아니, 나이가 중요합니까? 특급 저격수 겸 잠재적 연쇄살인마인데요… 란드와르가 좌절감에 휩싸여 있는 동안 볼로디아는 종달새에게 작게 귓속말했다. 종달새는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종이봉투와 함께 돌아왔다. 어른 손바닥 크기의, 견과류 조각이 알알이 박힌 과자가 들어 있었다.

볼로디아는 과자를 꺼내 절반으로 부수고서는 한 조각을 클렘퍼러에게 건넸다. 꼬마는 경계를 낮추지 않은 채로 수상한 호의를 노려보았다. 작은 손이 커다란 손을 탁 때리는 걸 보면서, 란드와르는 헛웃음을 삼켰다. 대장군님의 조카처럼 착한 애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그런 수작이 효과가 있을 리가…….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볼로디아는 살짝 미소 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과자 조각을 천천히 입에 넣는 것으로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클렘은 늑대인간을 빤히 바라보다가 탁자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들고는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클렘이 과자를 다 먹어치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꼬마는 아쉬운 듯 부스러기를 빤히 바라보다가 대뜸 고개를 들어 볼로디아와 시선을 맞췄다.

"더 있어?"

"물론이지. 양껏 먹게나."

볼로디아는 길거리 고양이에게 소세지라도 주듯 클렘에게 과자를 먹였다. 질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종이봉투가 절반쯤 빈 다음부터였다.

"학자들이 네 이모를 붙잡아 두고 토론을 하고 있단 말이지."

"응. 아직도 하고 있을 거야. 한 번 시작하면 다 지칠 때까지 안 끝나. 중간에 피곤하면 앉은 채로 자는데 일어나면 계속 하고 있어. 그리고 보통은 안 자. 중간에 잤다가 그 사이에 토론이 끝나면 지는 거거든."

"그래서, 우리가 대뜸 들어가면 다들 싫어할까?"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 안 좋아해. 인간들이랑도 안 친하고 야스와다 요정들이랑도 안 친해.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도 되냐고 회의를 하는 중이야. 난 들어와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마타치치한테 가서 말했는데, 근데 회의 결과가 나기 전엔 아무것도 하면 안 돼. 그래서 결과가 나기 전까지 아무도 못 오게 막았어. 마타치치가 들어오는 법을 알려줬다고 해서. 어른들이 들어와도 된다고 하면 들여보내 줄 거야."

란드와르는 헛웃음이 실실 흐르는 걸 느꼈다. 들어오는 게 싫어서, 도 아니고 회의 결과가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려 했단 말인가? 무너질 상식은 진작 무너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는 법이었다.

"집주인 되시는 분의 친구를 다치게 했다고 들었는데. 이분도 다칠 뻔했고 말이야."

"누군진 몰라. 그냥 근처에 오려고 하면 다 막았어. 보통은 계단이 이상해서 돌아갔는데 안 가는 사람이 있어서 쐈어. 보통 어깨만 쏘면 가던데 저 인간은 막대기가 안 들어서 머리를 쏜 거야."

테네브로즈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요정들은 어릴 때가 제일 위험하다고. 그 말이 옳았다. 별 악의도 없이 이러는 걸 보면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가 따로 없었다.

어쨌건 간에 그 자연재해는 이제 중립적인 존재가 됐다. 과자 반 봉지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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