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카스바의 요정들 (4)
서른 해 전, 카스바 요정 향우회에는 도박장을 전전하다가 폐지 수집가 신세로 전락한 남자가 있었다. 이름은 두루미. 연금술사였다. 가지고 있던 재료는 모두 팔아먹었고 일감을 받기에는 신뢰도가 바닥을 쳤다. 신분을 세탁하려 시도해 보았지만 향우회가 도와주지 않았다(개인적으로 돈을 떼어먹힌 회원의 수는 서른이 넘었다).
결국 두루미는 서부 쓰레기장을 전전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공방에서 나온 폐기물 통을 찾아서, 분리와 증류 과정을 거친 다음, 마력 오염물을 그럴듯한 제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타일라프람에서는 십만 탈로나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고급 기술이었지만 그에게는 쉬웠다. 요정의 피는 그야말로 기적을 일으키는 재료였다.
이윽고 두루미는 새로운 삶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폐기물을 찾고, 팔뚝을 째서 피를 뽑고, 물약을 만들어 넘기고, 끼니를 때운 다음, 남은 돈은 도박장에 퍼붓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경쟁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누군가가 쓰레기장을 털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쓰레기장의 특성상 그와 같은 폐지 수집가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이 경쟁자는 특별했다. 귀신같이 쓸모 있는 것만 골라 사라졌던 것이다. 두루미는 이게 요정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리고서는 폐기물 통 근처에 이틀간 매복했다. 그리고 마타치치가 나타났다.
두루미는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이 학자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요정 향우회에 마타치치를 데려가는 대신 실컷 겁을 주었고("여기에서 요정인 걸 들키면 잡혀가서 피가 빨리다가 죽는 거 아쇼?"), 일종의 보호 계약을 맺었다.
그는 마타치치가 만들어낸 각인 물품을 인간들에게 팔아넘겼고, 공임으로 부품이나 먹을거리를 조금씩 던져 주었다. 이 불합리하고 착취적인 관계는 실로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클렘퍼러가 옥상에서 날뛰기 전까지.
"그러니까, 우리도 그 요정이 누군지는 잘 몰라. 두루미가 지금까지 말을 하나도 안 했거든. 들키면 자기 돈줄이 사라지니까. 갑자기 돈을 펑펑 써 대기 시작하더니 그런 걸 숨기고 있었던 거야.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겨우 이야기를 꺼낸 거지."
이변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물수리였다고 했다. 미치광이 노인을 돌보던 남자였다. 계단에 마법이 걸린 걸 눈치 채자마자 어깨에 구멍이 났다는 게 종달새의 설명이었다. 난간 너머로 뛰어내려서 도망치기야 했지만 한 달은 꼬박 붕대를 감고 지내야 할 거라고도.
"이상한 발명품을 만들고 있었다더군. 당기기만 해도 마법 비슷한 게 날아가는 거. 그걸 썼나 봐. 두루미가 그 소식을 듣더니 얼굴이 창백해져서 달려가더군. 똑같이 어깨에 구멍이 나서 돌아왔고."
"그 요정이 직접 그런 겁니까?"
"꼬마가 그랬다던데. 조카가 하나 있다고 했어."
총을 들고 설치는 모양이었다. 행운인지 불운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격 실력까지 뛰어난 모양이고. 가정교육 하나 제대로 받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헤이딘이 마타치치의 조카 이야기를 해 주기야 했지만, 버릇이 없다는 설명도 들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차마 상상하지 못했다. 대체 뭘 하면 지나가는 사람을 저격하는 조카딸을 길러낸단 말인가? 애초에 나르시소에서는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왜 그러는지는 모르는 겁니까?"
"우리야 모르지."
"샛길로 들어가서 붙잡을 생각은 안 해 봤어요?"
"길이 마땅치가 않아. 그 골목으로 가려면 다른 건물 계단을 경유해야 하는데, 계단에 마법이 걸려 있는 거야. 거기 지형이 특히 복잡하거든. 증축도 여러 번 됐고 고저차도 심해."
"그러면 인간들도 꽤 다쳤을 것 같은데."
"화신이셔서 그런가 인간 걱정을 하시는군―그건 괜찮아. 돌아가면서 감시를 하는 중이거든. 누가 오려 하면 쫓아내고 있단 말이야."
하기야 요정 꼬마가 옥상에서 사람을 쏘고 있는 걸 인간들한테 들키면 향우회도 입장이 난처할 터였다. 인간들이 나르시소와 야스와다와 카스바 요정 향우회를 구분해줄 리가 없으니까.
아무튼, 동기가 어쨌건 간에, 란드와르는 이 타락한 도시의 자경단원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느꼈다. 그네들이 시간을 끌어 주었으니 이제는 공권력이 나설 때였다.
"나르시소 요정을 만나야 한다고 했죠. 지금 난동을 부리는 애가 그 사람 조카입니다."
"아, 그래? 그러면 이게 혹시 그쪽 분들 때문인가?"
"나도 몰라요. 자세한 건 벨레다한테 물어봐야 할 겁니다."
그는 서둘러, 나머지가 모인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벨레다는 여전히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대화를 거부하진 않았다. 란드와르는 일단 헤이딘에게 상황을 알아볼 것을 부탁했다.
"마타치치 말예요, 궁전에서도 안 보인다는데요. 그 사람 조카가 왜 그러는지는 스승님도 모른대요. 회의에서 발이 잡힐 거라고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그게 끝이라네요."
"그러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제가 어떻게 알아요. 스승님이 모르면 저도 몰라요."
벨레다는 퉁명스레 대꾸하고는 거실로 걸어 나갔다. 자동차 바닥에 발이 닿느냐는 질문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였단 말인가? 어쨌든 꼬마의 마음과는 별개로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계단에 걸린 공간 마법을 깨트린 다음 클렘퍼러를 끌고 와서 취조하는 것이다.
볼로디아와 로안은 나설 필요가 없었다. 테네브로즈만 있으면 충분했다. 야스와다 추적자들은 공간 주문을 깨트리는 법을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었다. 작용점을 파악해 주문을 파훼하는 건 마법 무효화의 기본적인 원리였고, 미궁에도 똑같은 법칙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사제야, 일 하러 가자."
"예에……."
녀석은 소파 팔걸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 문어처럼 늘어진 상태였다. 아직도 술이 덜 깼는지 대답은 조금 느리게 왔다. 어조로 판단하건대 알겠습니다, 가 아니라 그게 무슨 소리냐, 는 의미인 듯했다. 란드와르는 침착한 태도로 대답했다.
"와그다스 미궁을 하나 깨야 돼. 너 추적자였잖아."
계획은 이랬다: 노르덴홀즈 금고에서 가져온 물건 중에는 은폐장 생성기도 있었다. 일정 시간 동안 시전자를 투명화 상태로 만들어주는 각인 물품이었다.
주의를 기울이면 허공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투명화는 여러모로 쓸 데가 많은 효과다. 테네브로즈는 은폐장이 지속되는 동안 미궁을 해제하고, 자신은 계단을 오르며 시선을 끌면 된다. 저격수가 은폐장 영역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계획은 완벽했다. 그러나 요정 놈은 제안이 석연찮은지 팔걸이에 얼굴을 묻은 채 미동이 없었다. 어깨를 툭툭 건드렸더니 그제야 고개가 살짝 돌았다.
"내일 합시다."
"지금 카스바 사람들의 통행권이 침해당하고 있잖아."
"제 권리는 아닌데요."
"인류애를 발휘해 봐라."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건 모릅니다."
"지금 안 가면 세상이 내일 망할 수도 있어."
"어쨌든 오늘은 침대에 누워 있을 건데요."
"세상이 내일 망하는데 침대에 누워 있어도 돼?"
"나으리 때문에 망하는 겁니다. 저한테 술을 먹여서요."
"오래 안 걸려. 이거만 처리하면 쉬게 해 줄게."
테네브로즈는 란드와르를 째려보았다.
"나으리도 가끔 보면 나트람이랑 똑같습니다."
"그 정도야? 진짜? 내가 걔랑 동급이야?"
란드와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로안은 대답하기 껄끄럽다는 듯 눈을 피했고 볼로디아는 잘은 모르겠지만 란드와르의 잘못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죄가 큰 것 같기도 했고 억울한 일인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대장군님, 전 그냥 한 잔 따라줬을 뿐입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마시라고도 안 했단 말입니다…….
하지만 변명해 보았자 바뀔 건 없었다. 란드와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서는 거실로 향했다. 벨레다를 데려가야 할 모양이었다. 어차피 와그다스 마법은 그 둘이 전문이니까, 여차하면 헤이딘이 수호 영역을 쓸 수도 있을 테니까… 요정 놈은 여기에 눕혀 놔도 괜찮겠다는 계산이 섰다.
* * *
이 와중 클렘퍼러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누군가가 왔기 때문에 쐈고, 지금은 아무도 안 와서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회의가 끝날 때까지 침입자를 모두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토론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마타치치야 수면약을 먹었겠지만 약효가 다할 때까지도 결론은 나지 않으리라는 게 클렘의 예상이었다.
참 바보같은 일이다. 다들 자신을 바보라면서 놀리지만 진짜 바보는 그 어른들인 것이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떠들고만 있으면 회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침입자들이 닥쳐 올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모가 들어오는 법을 함부로 알려 주었으니 자신이 해결할 수밖에.
지금까지 쏜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곳까지 올 리가 없으니까 그 이상한 요정이랑 관련이 있으리라는 게 클렘의 생각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계단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게 그 증거였다.
물론 아예 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건 아니었다. 문을 열어주자고 합의가 나오면 그렇게 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머리가 아니라 어깨를 쏜 것이다. 부서진 어깨는 치유 물약과 붕대로 고칠 수 있지만 머리가 깨지면 그냥 죽어 버린다. 손님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죽이면 이모한테 혼이 난다. 이모는 그 사람들을 벌써부터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까.
클렘은 막대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어른들한테 칭찬받는 순간을 상상했다. 바보 클렘, 을 외치던 목소리들이 모두 잘 했다, 로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다들 어려운 책에만 관심이 많으니까 이런 거로 칭찬받을 리는 없겠지만, 그리고 자신이 별로 똑똑하지 않다는 건 클렘퍼러 스스로도 잘 아는 사실이었지만…….
"엇."
누군가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남자였다. 여자아이가 일행인 것처럼 그 뒤를 따라오다가 그만 사라졌다. 환영이었을까, 아니면 잘못 본 걸까? 이제 계단에 남은 건 남자뿐이었다. 클렘퍼러는 백일몽을 떨쳐내고서는 막대기를 손에 쥐었다. 방아쇠가 몸의 일부인 것처럼 손에 자연스레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