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72화 (173/258)

172화 도시와 교환 (1)

제국에는 두 종류의 사회부적응자가 있었다. 첫째는 마음에 온정이 없이 잔악한 범죄자로서 야스와다에 보내져 제물이 되는 운명을 맞았다(피는 연금술 물약과 마력 결정의 재료가 되었다). 반면 둘째는 특별한 부류의 광인으로서 와그다스에 보내졌다.

그러한 광증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발현되었다. 절차와 원리, 그리고 아주 미미한 차이에 집착하는 아이들, 놀이보다는 책을 더 좋아하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떠드는 아이들, 사소한 의견차에도 끝장을 보고자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성품은 편집증이나 관계망상과 같은 정신이상의 일종으로 간주되었다.

이 병의 가장 일상적인 특징은 타인에게 무례한 방식으로 말한 뒤 "내 말에 논리적인 결함이 있느냐?" 는 항변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문장을 구사하는 방법에 따라 상대의 태도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낯설어했다.

이들은 항상 사고를 쳤지만 사형에 처해질 만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없었고, 어떻게 보면 얌전하다고 평할 수도 있는데다가, 죽이기엔 아까울 만큼 똑똑했다. 와그다스는 바로 이런 부적응자들을 위한 수용소였다.

이 대학도시의 계급은 셋이었다: 스승, 연구자, 학생. 막 와그다스로 보내진 이들은 학생이 되어 십 년간 수련했다. 그 다음부터는 연구자로 승급해 (스승의 연구를 도우면서) 자신만의 연구를 시작해야만 했고, 독자적인 분야를 개척해 기억의 궁전에 논문을 추가한다면 스승 직함을 달 수 있었다.

스승은 여러 명의 연구자를 거느렸으며 연구자는 다시 학생을 가르쳤다. 혹은 방임했다. 그들은 정보를 분석하고 내면화하기 위한 방법론을 전수한 후 학생을 기억의 궁전에 내던졌고, 스스로 지식을 흡수하게끔 했다.

슈문의 존재가 이 무책임한 교수법을 지탱했다. 지식의 신은 젊은 학생을 위한 서가를 따로 마련했으며 그들이 잘못된 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한편 그는 논문 표절, 이름 끼워 넣기 등의 연구윤리 위반 사항을 엄격하게 다스렸다.

불화는 종종 있었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수습되었다. 슈문은 지성 갖춘 사회부적응자의 주인이자 하인이었고 와그다스는 그들의 낙원이었다. 다음은 어느 학생의 간증이다: "처음 왔을 때에는 부모님이 절 버렸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깨달았죠. 제 진짜 가족은 여기 있었던 거였어요. 처음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난 겁니다. 이곳보다 좋은 장소를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와그다스는 식량을 포함한 대부분의 필수재를 인간에게 의탁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온종일 책을 들여다보거나 실험기기를 만지작거리거나 다른 연구자와 싸우면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인간을 괴롭힐 짬이 없었다. 다른 도시에서 파견된 감독관이 학자와 노예를 함께 관리했다.)

그러나 이 생태계는 대전쟁과 함께 무너졌다. 와그다스 학자들은 인간들의 편에 서서 승리를 얻어내기야 했지만 그 결실을 본 이는 아주 적었다.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굶어 죽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존자 역시도 새로운 세상을 원치 않았다.

그나마 사교적인 축은 인간을 돕기 위해 남았고(이들은 후에 로야페타의 상업가문이 된다) 괴팍하거나 수줍은 사람들은 황무지로 떠났다. 그리고 한 번도 겪지 못한 고난이 닥쳐왔다.

가만히 책만 뒤적거리고 있어도 노예가 식사를 마련해 주던 시절은 끝났다. 회계 장부를 작성하고 행정 업무를 처리할 감독관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기억의 궁전이 망가지면서 아이를 쉽게 가르칠 방법 역시 사라졌다. 슈문과의 소통마저 끊겼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변했다―하지만 학자들은 살아남았다.

버팀목이 된 것은 숭고한 대의나 사명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바에는 황무지에서 죽으리라는 일념이었다. 수많은 지식이 소실된 지금조차도 그 정신만큼은 여전하다. 당장 로야페타에 가면 오래전에 헤어진 동족과 재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무지에 은둔한 채,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  *  *

기억의 궁전은 정신공간의 형태로 존재했고, 그곳에서의 형태는 자아상을 따랐다. 자신의 믿음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건 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헤이딘은 대개 소년 시절의 겉모습을 취했다. 청년기의 기억은 깡그리 사라진데다가 노년기의 모습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흉했기 때문이다. 한쪽 발과 손이 날아갔고 눈도 없는 꼴로 돌아다니길 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소년 시절의 기억도 희미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어린 몸에 만족했다. 청람색 머리는 길게 길러서 뒤로 묶었고 야스와다 전통 복식을 하고 있다. 목깃이 약간 올라와 있고 밑단이 무릎까지 닿는 상의에, 주름이 잘 지는 천으로 만든 바지를 함께 입은 것이다.

그게 문제였다. 황무지 학자들은 헤이딘을 보자마자 그가 명문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말을 걸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지금 만난 요정은 아직 도망치지 않았지만 대화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쪽 사람들한테 용건이 있습니다."

"저리 가!"

주황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소녀는 퉁명스레 내뱉고는 뚜벅뚜벅 걸어갔다. 헤이딘은 서둘러 달려가 붙잡았다. 그런 식의 실랑이가 몇 차례 반복되다가 여섯 번째에서야 처음으로 긴 대답이 나왔다.

"별은 우리도 몰라. 우리 탓 하지 말고 가서 인간들이랑 싸워."

"탓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당신네들이 찾고 있는 게 뭔지 알아요. 슈문을 현계로 데려올 방법도 압니다. 그 이야기를 하자는 것뿐이에요."

"넌 야스와다 사람이잖아!"

"고향이 야스와다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시 타브를 섬겼더라면 여기 있지도 않겠죠. 오래전에 지식의 주인에게 숭배 서약을 바쳤습니다. 영토도 받았고―"

"원래 모습도 안 보여주면서 뭘 믿으라는 거야?"

"예?"

"안 믿어. 거짓말 할 거면 너네 사람들한테나 가서 떠들어."

소녀는 헤이딘을 힘주어 밀쳐냈다. 책장 모서리에 부딪힌 등골이 찌릿한 아픔을 전했다. 정신 공간에서, 머릿속에만 있는 충격 때문에 육체적인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얄궂은 감상에 취하기도 전에 서가가 흔들리며 헤이딘을 향해 종이더미를 쏟아냈다.

그는 몸이 완전히 파묻히기 전에 서둘러 일어났고, 가까스로 대참사에서 벗어났다. 멀찍이 떨어진 소녀는 즐겁다는 듯 킥킥 웃고 있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헤이딘은 뚜벅뚜벅 걸어가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원래 모습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묻자. 나이가 얼마냐?"

"뭐?"

"내가 몇 해를 살았는지는 몰라. 아마 한 세기하고도 수십 년이 될 게야. 어쨌든 너 같은 꼬마보다는 연장자란 말이다. 까마득한 선배한테 그런 식으로 구는 게 말이나 되느냐?"

"대체 뭐라는 거야?"

소녀는 진심으로 당혹스럽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헤이딘은 정신을 집중하고서는 별채에 갇혔던 시절을 되새겼다. 한쪽 손과 발이 허전해지더니 눈구멍에 바람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괴물이다!"

아연실색한 외침이 귓가를 쳤다. 태도를 보건대 자신처럼 나이를 낮춘 늙은이일 가능성은 없을 듯했다. 기껏해야 스물에서 서른 사이겠지. 어쩌면 더 어릴 수도 있고.

"지혜를 찾다가 별채에 갇혔고 몸을 잃었다. 네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지. 그때 살아 있던 요정들은 나를 기억할 게다. 여기에서 기다릴 테니 가서 원로들을 불러와라. 중요한 일이다. 너희가 찾고 있는 게 뭔지 안다! 슈문을 구출할 방법을 알아! 아즈리온이 나와 함께 있다!"

*  *  *

소녀는 눈을 떴다. 기억의 궁전만큼이나 어질러진 방이 보였다. 옷과 책이 마구잡이로 뒤엉켜 있고, 방의 오른편은 미궁 설계를 실험하다가 실패한 탓에 공간이 쪼개졌다. 거기에 물건을 밀어 넣으면 그게 한 뼘 너머에서 튀어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그곳에 있는 책은 완전히 못 보게 됐다. 언젠간 고칠 기회가 오겠지.

"치, 말을 걸 거면 어른들한테나 그러지. 난 아는 것도 없는데."

그녀는 소리 내어 투덜거리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챙겨 입었다. 야스와다 요정을 믿진 않았지만 아즈리온의 화신과 관계가 있다니 어른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걸 들어줄 것 같진 않지만.

소녀의 이름은 클렘퍼러. 혹은 클렘. 열아홉 살이었고 혼자만의 문을 가지게 된 지는 여섯 달도 되지 않았다. 보통은 성년식을 치른 뒤에야 독립하지만 클렘은 그 반대였다. 이모와 계속 살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엄마는 마력 부종으로 죽었고 아빠는 야스와다에 치료제를 훔치러 갔다가 붙잡혀서 죽었다. 클렘이 세 살이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이모인 마타치치가 그녀를 거뒀다. 거기까진 그럭저럭 괜찮다. 엄마 아빠랑 같이 산 시간보다도 이모랑 산 시간이 더 많아졌으니까. 둘은 이제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이 됐으니까.

클렘을 괴롭히는 건 마타치치가 소문난 괴짜라는 사실이었다. 이모는 여러모로 이상했다. 모두와 척을 진 데다가 조카마저도 혀를 내두르면서 도망칠 만큼. 다른 요정들처럼 바깥세상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데다가 카스바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곳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러나 걱정스러울 때가 많았다.

게다가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있지도 않았다. 마타치치는 대신… 발명을 했다. 이상한 부품들을 이어 붙이고 각인을 새기면서, 두 배로 이상한 물건을 만들어대는 것이다. 지능 상승기나 영혼 안정기 같은 것 말이다(시제품은 많았지만 마타치치 외에는 써 본 사람이 없었다). 그뿐이면 어디 좋을까. 상상도 하기 싫은 것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말을 들어줄 사람은 마타치치가 유일했다. 대부분은 이야기를 나눠 보라고 하면 아연실색하면서 도망갈 게 뻔했다. 물론 이모만큼이나 괴짜인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그 둘은 더 싫었다…….

그냥 모른 척 하고 침대에나 누워 있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또 미안했다. 원래 꼴을 보니 왜 그 모습으로 돌아다녔는지 이해가 갔던 것이다. 사연까지도 가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클렘은 그냥 믿기로 했다. 너무 의심만 하면 머리도 아프고 귀찮으니까.

결국엔 이모를 만나봐야 할 모양이었다. 클렘은 심호흡하고서는 문을 열었다. 문의 모서리는 계단의 난간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한 걸음을 내디뎌 바깥으로 나가자 지하 동굴의 정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똑같이 생긴 쪽문들과, 간이 계단과, 황금빛 각인이 벽면 위에 기하학적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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