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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68화 (169/258)

168화 But Woe to that Man (3)

일드얀이 몸소 별불꽃 장원을 찾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쉭겐이 피 흘리며 돌아간 것이 이틀 전의 일이었으므로 관련이 있을 터였다. 나트람은 응접실로 내려가 은빛매의 가주를 맞이했다.

대화는 서로에게 익숙한 소식들로 시작되었다. 나우파나 폐허에 지원대가 따로 보내지기야 했으나 큰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 2교구 분석실의 계산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그 결과에 사활이 있으리라는 것. 나트람이 추적대의 선봉에 서게 되리라는 것.

그러고는 갑작스레 헤이딘의 일이 화두에 올랐다. 일드얀은 그의 인간 애완동물을 입에 담았고, 헤이딘이 죽은 것과 카스바에 벨레다가 나타난 것 사이에 시기상으로 큰 간격이 없음을 지적했다. 벨레다는 카스바 요정 향우회의 일원이지만 다른 요정들과는 사실상 교류가 없었다는 것까지.

그밖에도 의심할 여지는 많았다. 벨레다의 거처에는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주인이 문을 열면 화려한 거실이 나타나지만 허락받지 않은 이에게는 폐가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그건 와그다스 마법의 증거일 것이며 노예 기술자로서의 역량은 야스와다의 주문에 공이 있을 터였다.

이야기를 마친 일드얀은 나트람에게 생각을 정리할 만큼 긴 시간을 허락했다. 그는 오랜 침묵 끝에 퉁명스러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알고 있었군요."

"다른 이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네만, 예상한 이가 더 있을지도 모르지. 자네가 그 애완동물에게 옷을 지어 입힌 때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나진 않았으니 대부분은 기억을 하고 있을 걸세. 애완동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소문이 돌았고 말이야."

"과오에 책임을 지란 말입니까? 테네브로즈와 헤이딘이 내 밑에 있었기 때문에?"

"아닐세."

그녀의 입가에 특유의 미소가 일었다. 한손에는 채찍을, 다른 손에는 살점이 붙은 뼈를 쥔 채 전능감에 취하는 조련사를 연상시키는 표정이었다. 그런 태도는 언제나 상대를 압도하고 매혹시켰지만 나트람만큼은 예외였다. 살점에 기뻐하기엔 미각이 부족했고 채찍을 두려워하기에는 겁이 없었다… 일드얀은 이 맹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카스바의 노예 기술자는 나무 반지를 손에서 떼지 않는다더군. 그 반지의 정체는 자네도 짐작할 줄로 아네―나는 자네를 쫓아 보내려는 게 아니라 포상을 내리려는 거야. 야스와다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고, 별불꽃의 가주가 아니라면 다른 누구도 얻어낼 수 없는 선물이지."

말을 멈춘 일드얀은 굳은 듯한 얼굴 아래에서 미미한 격노가 들썩이는 모습을 즐겼다. 이런 반응은 그녀에게 곧잘 여흥이 되어 주었다. 이윽고 나트람의 입이 열리며 송곳니가 단검과 같은 빛을 발했다.

"원치 않는다면 어쩔 겁니까?"

"다른 이에게 원수장(元帥杖)을 맡기도록 하지."

긴 논의는 필요하지 않았다. 나트람은 역할을 받아들였고 일드얀은 떠났다.

서재로 돌아온 나트람은 얻었다가 놓친 것들을 반추했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상실감이 아니었다. 자신이 몰락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자각이, 만약 자식을 잃은 것에 아쉬움이 있다면 그건 사이라크보다도 메기도의 죽음으로부터 왔으리라는 추측이, 헤이딘을 향한 집념이, 그 손과 발을 잘라내던 순간의 감각이 한데 뭉쳐 해명할 수 없는 형상을 빚고는 다시 고통이 되었다.

일드얀이 순전한 호의로 기회를 주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헤이딘을 본가로 데려오는 것이 별불꽃의 명운과는 일절 관련이 없다는 것 또한 알았다. 다만 남은 이들의 후일이나 저의 따위는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 되었을 뿐이다. 막내아들은 물론이고 그 스스로의 영광조차도.

묵상은 길었다. 어느 순간 나트람은 어둠의 복판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그건 단순한 비유도, 백일몽도 아닌… 낯설면서도 익숙한 무엇이었다.

*  *  *

수정 구슬의 힘을 거듭 빌리면서, 나트람의 영혼은 더없이 저승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늑대의 셋째 눈으로부터 시작된 충격이 세계를 뒤흔들었을 때 그의 넋은 땅의 시간과 함께 멈추는 대신 그 경계를 뛰어넘었다.

*  *  *

암흑 속에 내던져진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수정 구슬을 썼을 때 그는 저승의 틈에서 길을 잃어버렸고, 한동안 어둠 속을 거닐었다. 다음 발걸음이 어디에 닿을까 묻지 않으면서. 그때는 소리와 빛이 없었으므로 목적지 또한 없었고 모든 것이 그저 정연했다.

길이 없음에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음은, 혹은 그 자리에만 멈출 수 있음은 축복일 것이다. 육신을 되찾고서도 나트람은 줄곧 그날을 생각했다. 가끔은 세상이 저 멀리로 뻗어가도록 내버려두고는 영영 저승의 틈에 머무르면 어떨까 묻기도 했다.

생각을 멈추려면 수정 구슬을 금고에 넣고는 잊으려 애써야만 했다. 그에게는 아직 거쳐야 할 이정표가 한참이나 많았고 딤 나겔과의 서약 또한 있었다. 당시에는 그랬다, 이제는 많은 게 달라졌다, 그러니 수정 구슬이 없이도 여기에 다시 이끌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동생을 보지 못하니 아쉽구나, 하고 나트람은 중얼거렸다.

길은 막다른 곳에 접어들었고 마지막 이정표는 후퇴를 가리켰지만 미련은 있었다. 일드얀과 쉭겐의 죽음보다도 자신의 몫이 먼저 왔다는 것. 헤이딘을 되찾지 못하리라는 것. 그리고 딤 나겔에 대한 기억. 그는 이따금 안쓰럽다는 표정을 보였다. 연민과 경멸과 애도를 조금씩 섞은 채로. 딸이 죽은 후에도.

나트람은 그 속내를 묻지 않았다. 묻고 싶지 않았다. 그는 유능한 추적자였고, 별불꽃의 가주로서 의회에 올랐으며, 반려 사이에서는 자식 셋을 두었다. 첫째는 추적자로 자랐고 셋째도 마법에 능했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다른 이들처럼 영광을 따랐고 그것을 누렸는데.

언젠가 성년식을 치르기도 전에 딤 나겔은 기르던 칼린카의 목을 꺾은 적이 있었다. 그는 무덤을 손수 파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놈은 태어날 때부터 수염이 없었어 그래서 같은 배에서 난 것들과 자주 싸웠지 칼린카는 서로 수염으로 이야기하거든 뭐 수염이 없었을지라도 따로 방법이 있었는지도 몰라 그건 난 잘 모르겠어 알기엔 너무 늦은 거야 응 그래서 나는 이 녀석이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해 어떤 칼린카는 고통을 위해서만 태어난 것 같아 괴롭힘을 당하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하지 그렇게 태어난 건 녀석의 잘못이 아니라지만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거야 숨결 대신 독을 내쉬도록 만들어진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봐 그 사람이 호흡하는 걸 죄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을 탓할 수 있을까 그 사람한테 숨을 참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디에선가 소리가 흘러들었다.

[되돌려 놓아라!]

사방을 에운 것은 위아래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어둠이었지만 그 울림이 시작된 방향만큼은 알 듯했다. 나트람은 저 앞이 저승으로 가는 길목일까 생각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멀리에서부터 보랏빛 아지랑이가 일어 왔다.

조금 더 가까이 가자 하늘 전체가 그 빛깔로 가득한 게 보였다. 잎사귀 없는 거목이 세상의 중심인 듯 한가운데에 오롯이 서 있었다. 나뭇가지가 토담에 생긴 균열처럼 상공을 파고들었다. 나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만약 내가 사람들의 주인이라면 내가 칼린카의 목을 꺾듯 그 사람의 목도 홀가분하게 꺾을 수 있다면 반드시 그래 줄 거야 그게 그 사람 자신에게도 다른 모두에게도 나은 일일 거야 먼 옛날 황제의 왕홀이 곧게 섰던 시절에 황금색은 지혜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묻는 딤 나겔은 눈부신 햇살 속에서 금빛으로 번쩍였다. 나트람이 대답하지 않는 사이에 산들바람이 두 소년의 머리를 헝클어놓고는 사라졌다. 어떤 바람은 잘못된 순간을 세상 저편으로 치우기 위해 나타나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동생을 찾아 황무지에 발을 들인 날에도 돌풍이 몰아닥치면서 하늘이 함께 뒤흔들렸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나트람은 머리 위를 메운 보랏빛이 아지랑이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무수한 밧줄이 나뭇가지에 내걸렸고 올가미 각각에는 다시 사람의 형체가 목을 매달고 있었다. 요정이나 늑대인간이나 인간의 넋. 희미한 보라색으로 번뜩이는 망자의 대군.

이따금 새로운 혼이 발밑의 어둠으로부터 솟아 나와 가지에 몸을 맡겼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그는 문득 어둠달의 원로를 발견했다. 어둠달을 멸문할 때 제물로 바쳐진 이였다. 그 얼굴을 시작으로 더 많은 기억이 곁에 나타났다. 3교구가 지금껏 야스와다의 주인에게 보낸 영혼이 어둠 속에서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나트람은 각각의 얼굴을 모두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나무 밑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런 후에도 어둠달 혈족 몇몇은 보이지 않았다. 일드얀이 직접 봉헌한 그 몇이…….

그는 바람이 걷기 버거울 만큼 사나워질 때까지 계속 그들을 찾았다. 강풍에 흙먼지가 섞여 불었고 메마른 냄새가 기억 속에서 걸어오듯 했다. 기억 속에서. 동생을 찾아 황무지에 발을 들인 날에도 바람이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그런 기억이 났다. 그때 나무에 매달린 넋이 다시, 한 목소리로 외쳤다.

[되돌려 놓아라!]

고함이 나트람을 먼 곳으로 밀쳐냈다… 그는 깨어났다.

서재는 일드얀을 보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고 자신은 안락의자에 몸을 뉘인 채였다. 길고 불편한 꿈으로부터 막 깨어난 것처럼. 눈을 감자 백일몽이 눈꺼풀 아래에 찍혀 나왔다. 저승의 틈과 이시 타브의 땅. 제물로 바쳐진 영혼은 어둠으로부터 나와 거목에 매달린다. 그리고 넋들의 외침…….

되돌려 놓으라고? 무엇을? 어긋난 삶을? 혹은 일드얀이 빼돌린 넋을?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났던가? 그렇게 기억과 환상과 현실이 뒤엉키고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게 될 무렵에야 그는 천천히, 창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우파나의 별이, 투명한 원환이 한 주기를 거의 돈 시계처럼 청람색 하늘 한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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