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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66화 (167/258)

166화 But Woe to that Man (1)

"나트람, 별불꽃의 젊은 가주여, 마지막으로 자네에게 뜻을 전할 수 있어 기쁘네. 처음 직분을 받았을 때 자네의 머리카락은 검었고 눈에는 빛이 있었지. 그런데 이제 어떻게 되었는가? 말해 보게. 이곳에서 자네는 무엇을 얻었지? 만족스러운가?"

아자라스는 그 질문과 함께 품에 손을 밀어 넣었다. 이곳저곳에서 보호장이 펼쳐지거나 주문식을 읊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그들이 본 것은 노인의 몸이 한순간 이글거리는 녹색 불꽃에 사로잡혔다가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뿐이었다.

주검에 영혼이 남아 있지 않음을 확인한 순간 의혹은 확신이 되었다. 아자라스가 지금껏 섬긴 것은 이시 타브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아자라스의 딸 역시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의회는 어둠달 전체가 연루되어 있으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혈족과 하인을 상대로 심문이 진행되었다. 대부분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만 테네브로즈가 추방당할 당시 가문 회의에 참여했던 이도 여럿이 살아 있었다. 정신의 감옥이 그들에게서 오래된 비밀을 이끌어냈다.

의회는 관련자를 세 종류로 나누었다. 부정을 눈감아준 이들과, 무고하지만 쓸모가 없는 이들과, 무고하면서도 유용한 이들이 그것이었다. 대부분의 원로와 하인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분류에 속했고, 그 모두가 균열을 위한 제물로 바쳐지게 되었다. 남은 이들은 각각의 명문가로 흩어져 새로운 이름을 받들었다.

그렇게 어둠달의 이름이 야스와다에서 사라졌다.

*  *  *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눈동자는 깊은 물 아래 잠긴 자갈돌처럼 어둡게 반들거렸다. 그는 여느 아이와 달리 얌전했고, 투정을 부리는 일도 없었다. 말수가 워낙 적은 탓에 부모는 그가 더디게 자란다고 생각했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때면 소년은 항상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가끔은 얻어맞거나 장난감을 빼앗긴 채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저번에 때린 그 애니? 그 애가 팽이도 빼앗은 거야?"

"빼앗긴 게 아녜요. 달라기에 줬을 뿐이에요."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싫다고 하렴. 싸워도 좋아. 심하게 다치는 것만 아니면 혼내지 않을 테니까."

"왜요?"

"네 물건이잖니."

부모는 소년을 아끼면서도 껄끄럽게 여겼다. 그는 화내는 일이 없었지만 웃지도 않았고, 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묵묵히, 보고서를 채우는 듯한 태도로 다른 아이를 따라할 뿐이었다.

"자, 지금까지 배운 걸 다시 정리해 줄게. 세상은 다양한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어. 더위에 얼음이 녹고, 불에 탄 것은 숯이 되는 걸 생각해 보렴. 마법은 그런 규칙에서 허점을 찾아내는 속임수란다. 한여름에도 얼음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말이야. 여기까진 이해하겠지?"

"네."

"마법에는 적성도 중요하지만 마음에 휘둘리지 않는 것도 중요해. 욕심에 눈이 멀면 규칙을 마음대로 해석하게 되거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정답에서 멀어지고 만단다."

"네."

"내일부터는 제대로 된 주문을 배우게 될 거야. 처음에는 마음이 앞서나가다 보니 실패도 많이 하겠지만, 너무 걱정하진 말렴. 내 말을 이해할 즈음이면 너도 어엿한 마법사가 되어 있을 테니까."

마법을 익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적성이나 소질 따위가 아니었다. 도리어 소년은 그 점에서만큼은 두각을 보였다. 모든 종류의 마력 갈래를 수월하게 다뤘고 처음 배운 주문조차도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우쭐대거나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소년의 태도는 불가사의하도록 우호적이었고, 한편으로는 무감각했다. 부모는 그와 눈이 마주친 다음이면 무언가 잘못된 게 아이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상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성실하고, 친절하고, 욕심 없이 잘못된 무언가가.

소년에게는 동생과 사촌형제도 있었다. 사촌은 소년의 가문에서 한 해의 절반을 보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밝은 금발과 쾌활한 성격을 물려받았다. 아이들은 그를 어미새처럼 따랐다. 사람들은 그가 조용한 사촌 둘을, 그리고 나이가 엇비슷한 시종을 이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곤 했다.

소년의 사촌형제는 칼린카를 여럿 길렀다. 개중에서도 등줄기에 얼룩반점이 있는 놈은 그가 막 태어났을 때부터 요람 곁을 지켜 왔다. 그는 녀석을 애완동물이 아니라 늙은 유모라도 되는 것처럼 아꼈고, 그게 늙어 죽었을 때에는 보름이 넘도록 집 밖에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그 소식을 듣고는 부모에게 칼린카 한 마리를 부탁했다.

"왜 갑자기 칼린카를 기르겠다는 거니? 지금까지는 아무 관심도 없었으면서."

"관심이 생겼어요."

대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부모는 소년의 눈빛에서 낯선 불길을 보았다… 사촌형제의 칼린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안감을 키웠다. 그들은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대화를 끝마쳤다. 소년은 하인을 불러 사촌형제가 머무르는 곳으로 향했다.

사촌은 거실의 안락의자에 앉아 죽은 놈을 닮은 칼린카를 쓰다듬고 있었다. 녀석의 자식이었다.

"와 줘서 고마워… 요새는 영 기운이 없어서 밖에도 못 나가고 지냈거든."

"칼린카가 죽어서 그런 거지?"

"단순히 물건이 없어진 거랑은 다르더라. 친구를 못 만나게 된 거야. 영원히."

몸을 수그린 소년은 사촌의 무릎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칼린카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새로 나타난 소년을 향해 뛰어오르듯 몸을 던졌다. 그는 털북숭이를 안아든 채로 말했다.

"예전에는 장난감을 모두 나눠줬어. 그게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았거든. 이제는 안 그래. 대신 다른 생각을 하지. 어머니가 사라지고 아버지가 사라지면 어떨까 하고. 동생이 죽고 네가 죽고 러스터가 죽으면 어떨까 하고."

"아마 칼린카를 잃는 것보다 열 배는 끔찍한 일일 거야. 한 해는 집에만 틀어박히게 될지도 모르지."

"나는 잘 모르겠어."

"이런 거야. 만지고 싶고 끌어안고 싶은데 여기엔 없으니까, 기억을 계속 파고들게 돼. 거기에 위로를 받다가도 다시 슬퍼지지. 이건 모두 머릿속에 남은 흔적일 뿐이고, 그때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걸 새삼 알게 되거든……."

"너는 칼린카를 끌어안는 걸 왜 좋아하지?"

소년은 대뜸 물었다.

"넌 항상 이상한 질문을 하는구나. 물론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에 손을 파묻고 있으면 걱정거리가 모두 달아나는 기분이 들지. 하지만 끌어안기에 좋아서 칼린카를 기르는 건 아니야. 그냥 좋으니까, 좋으니까 함께 지내는 거야. 칼린카가 좋으니까."

"왜?"

"좋은 데에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아. 좋으니까 이유가 생기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좋아할 수 있어?"

"말했잖아, 좋은 건 그냥 좋은 거야. 생각하면 아무 이유 없이 즐거운 거."

"그게 없어지는 생각을 해도 즐거워?"

사촌형제는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긴 침묵 끝에 한숨이 입가를 넘어왔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

"가르쳐 줘. 난 알아야겠어. 알아야 해."

절박하게 외친 소년은 잿빛 목이 한 손 안에 들어오도록 칼린카를 고쳐 안았다. 손아귀에 힘을 주자 목뼈가 부러지며 뚝 소리를 냈다. 칼린카를 죽인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영혼이 필요한 마법을 연습할 때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제물을 마련했다.

그러나 지금의 죽음은 이전과는 달랐다. 사촌의 얼굴에서 핏기가 돌연 달아났다. 그 표정이 눈에 담긴 순간 낯설고 선득한 기쁨이 소년의 심장을 적셨다. 공포가 뒤잇듯 밀려오며 희열을 씻어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나는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들을 좋아해. 다른 요정들처럼. 모두가 그런 것처럼.

"말해 봐, 어떤 기분이 들어? 즐거워?"

그는 울부짖었다.

*  *  *

아자라스의 배후를 알아내고 어둠달을 멸문시켰다고 해서 문제가 봉합되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특히 나트람에게는.

테네브로즈는 인간 교단의 하수인도, 황무지 도망자들의 동지도 아니었다. 그는 녹색 별을, 잊힌 신을 따르면서도 아즈리온의 화신과 함께하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저의가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서 그 내막을 알아낼 방법은 없었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3교구의 전직 부제사장이야말로 이 사태의 핵심이라는 점이었다.

그 사실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테네브로즈를 부제사장 자리까지 올려놓은 것은 결국 나트람이었던 것이다. 정체를 알지 못했다는 말로 책임을 면피하기는 불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어둠달이 자멸했으므로 사냥개로서의 쓸모도 다한 셈이었다.

"분석실이 다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녹색 별을, 즉 거문을 주된 계산점으로 삼았으니 이전에 비해서는 훨씬 수월하게 결과를 낼 수 있겠지요. 목적지가 정해진다면 별불꽃의 주인께 추적자들을 이끄는 일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자네 주인께서 드디어 나를 치워 버리려는군. 조금 더 정중한 방법을 생각할 수는 없었나?"

나트람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한 가문의 주인에게, 제사장 직분을 내려놓고 의회의 일원이 된 이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적수의 목숨을 앗아가는 능력을 높이 살 뿐입니다. 현직에 계실 때에는 누구도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으로 이름을 떨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이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군. 자네로서도 그걸 직접 확인할 마음은 없지 않겠나……."

핏빛 고리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쉭겐의 목둘레를 감쌌다. 나트람의 손가락이 천천히 구부러지면서 마력 줄기도 함께 오그라들었다. 쉭겐은 그게 살갗을 파고들기 직전에 일어섰다.

"본의 아니게 실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드린 말씀엔 변함이 없으니 그렇게만 알아주십시오."

"만약 그런 일을 맡긴다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네. 내가 교구 업무에 불성실했던 적은 없으니. 그 전에 자네 목이 멀쩡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야."

나트람은 물렁한 과일을 터뜨리듯 주먹을 질끈 움켜쥐었다. 그러자 고리는 정확히 살갗의 표면만을 갈라낸 뒤 사라졌다. 붉은 가로줄이 절단선처럼 목에 남더니 거기에서부터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목덜미를 닦아낸 쉭겐은 피가 흥건해진 소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런 일은 익숙하다는 투였다.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주인께 소식을 전하기 전에 옷부터 갈아입는 게 좋겠군. 흰 옷이 더러워지면 특히 모습이 나쁘지."

"항상 염려해 주시는 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지요."

쉭겐은 정중한 인사를 남기고는 떠났다. 나트람은 서재에 홀로 남은 채 별불꽃의 앞날을 생각했다. 자식 둘은 죽었고 막내인 네르갈은 아직 어렸다. 방계 아이들 중에서도 이렇다 할 재목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은빛매의 비호를 잃었으므로 수십 해간 쌓아온 것들은 곧 허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나트람은 자신의 삶에도 빛나는 순간이 있으리라고 믿어 왔다. 딤 나겔의 표정을 보았을 때 느낀 번뜩임보다도, 헤이딘을 향한 미움보다도 강렬한 게 있으리라고. 자신의 성품이 다른 요정의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고.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염원이었을 것이다… 그는 염원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것이 바로 결과물이었다. 그는 허공을 향해 짧게 으르렁댔고, 수없이 외워 온 문장을 다시 한 차례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자신은 가치 있는 것들을 위해 살았다. 요정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것을 위해. 가문의 영광과, 혈족의 안위와, 제사장 직분과, 가주의 자리 따위를 위해. 그래야만 했다.

― 나트람, 별불꽃의 젊은 가주여, 마지막으로 자네에게 뜻을 전할 수 있어 기쁘네. 처음 직분을 받았을 때 자네의 머리카락은 검었고 눈에는 빛이 있었지. 그런데 이제 어떻게 되었는가? 말해 보게. 이곳에서 자네는 무엇을 얻었지? 만족스러운가?

나트람은 오래도록 박제를 바라보았다. 아자라스의 유언에서부터 시작된 질문이 물그림자처럼 밀려왔다. 헤이딘을 왜 그토록 싫어했던가? 딤 나겔의 칼린카를 죽인 이유는 무엇이었지? 자신이 평생토록, 진실로 원했던 것은,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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