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O Absalom (7)
직접 이야기하라니, 아우님은 예나 지금이나 공경이라는 걸 모르는군 그래. 애당초 내가 아는 게 얼마나 있다고. 나는 그때 별채에만 갇혀 있었어. 별채에만―그래, 거기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실컷 떠들 수 있겠군요. 그 이야기나 대신 하겠습니다.
자, 보자… 질 낮은 놈들과 어울려 다녔다고 말씀을 드렸었죠. 그랬다가 영감쟁이에게 들켜서 실컷 얻어맞다가 잠에 들었다고요.
눈을 떠 보니 별채 천장이 보이더군요.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고요. 마력 구속구에 사슬을 달아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물건인데, 앞마당의 절반도 나가지 못할 길이였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하인이 들르는 걸 빼면 오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래도 다리가 안 잘린 게 천만다행이죠, 난 반지 만드는 법을 모르니까. 애꿎은 하인을 괴롭힐 일도 아니고 난동을 부리기에도 힘이 빠져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로 고요를 만끽했죠.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는 고요가 있어요. 그걸 보고 만질 수 있죠. 그건 한여름의 헛간 같은 겁니다. 분명히 창으로는 눈부신 햇살이 들이닥치는데 이상하리만치 컴컴하고 습기로 가득한 거요.
짧게 줄이자면 내가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는 겁니다.
다시 환각이 심해지더군요. 예전에는 자해라도 하면서 정신을 다잡았지만 이젠 제정신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세상이 번쩍거리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자 환영도 포기했는지 돌아오라는 소리를 멈추더군요. 대신 다른 내용이 들려오기 시작했죠.
듣다 보니 이걸 혼자만 아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 아닌가 싶더군요.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나는 갇혀 있고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별 수 없이 하인을 붙잡고 떠들기 시작했더니 어느 날은 그 애가 한숨을 내쉬면서 이러더군요.
"어르신,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늑대 머리는 한 개인데다가 어깨 위에 개 해골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없어요. 사람들이 목을 매다는 보라색 나무도 없고요, 그리고 저번에 말씀해 주신 나우파나식 양념은 만들어 보니 완전히 엉터리였어요. 주방장님한테 어디에서 이런 걸 들어 왔냐고 잔뜩 욕을 먹었다구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저도 바쁜 사람이거든요."
잘 생각해보면 그건 내 잘못이 맞았어요. 나중에 알아보니 쓴잎나무가 나우파나에서 온 것 말고도 야스와다가 원산인 품종이 하나 더 있더군요. 나우파나 것을 써야 하는데 그냥 쓴잎나무 잎사귀라고만 재료를 불러 줘서 양념을 망친 겁니다. 덕분에 다른 것까지 헛소리가 된 건 애석한 일이지만, 세상사라는 게 그런 거죠. 모두의 말을 공평하게 듣고 기억해줄 수는 없으니까. 그걸 이해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고요.
하인한테 지혜를 보여주는 일은 단념했습니다. 대신 종이를 가져오라고 시킨 다음 환영의 내용을 모두 옮겨 적었죠. 아무렇게나 뒤섞이는 낱말에서부터 무너지는 도시의 정경, 거대한 보라색 나무와 혼백을 거두는 여자, 영혼공학에 대한 긴 서설, 제국이 세워지기도 전의 이야기들…….
그 짓을 얼마나 했는지는 몰라요. 아마 스무 해는 넘었을 겁니다. 아우님이 성년식을 치르기도 전에 갇혔는데 나와 보니 3교구 추적자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동안 정신병 채록가 노릇만 한 사람이 멀쩡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때는 저도 조금 맛이 가 있었죠.
풀려난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아자라스 삼촌께서 저를 붙잡고 이제 본가로 돌아와도 된다, 네 아버지는 이제 죽었다 하고 중얼거리는데… 나는 종이더미 한가운데에 서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던 겁니다.
"나를 신관으로 복직시켜 줘요! 1교구로 보내 줘요! 난 세상의 지혜를 봤어요! 과거와 미래가 모두 내게 있어요!"
그런 놈을 풀어 주다니 아자라스 삼촌도 참 대단한 양반이죠. 내가 그분이었더라면 미친 조카를 다시 가둔 다음 잊고 지냈을 겁니다.
뭐, 아무튼, 그 후로는 모두 아는 이야기입니다. 복직한 다음 1교구로 적을 옮겨서 지하서고에만 박혀 있었지요. 폐허에 갈 기회가 생기면 우겨서라도 따라갔고요. 그러는 동안 삼촌은 줄곧 절 피해 다녔습니다. 아마 맛이 간 조카를 상대하고 싶지가 않았던 거겠죠.
삼촌이 영감쟁이를 죽였단 건 대강 파악을 했는데, 그것뿐이에요. 더는 모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벤트레스는 호응을 요구하듯 테네브로즈를 바라보았다. 그는 석연찮은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저도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그때 저는 나트람의 밑에 있었고, 어둠달 본가에는 전혀 갈 수 없었지요. 다만 아버지에게 들은 말이 있으니 그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
* * *
일단 나트람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그때 나트람은 3교구 제사장 자리를 놓고 스티그미르와 다투고 있었어요. 문제는 의회의 결정이었지요. 여섯 자리 중 네 자리가 반대편으로 기울자 나트람은 저를 들볶기 시작했습니다. 스티그미르와 같은 가문이 아니었느냐, 무언가 흠잡을 게 없느냐 하고 물어 대는 것입니다.
그걸 기회로 삼자는 게 청지기님의 판단이었습니다. 어둠달에서도 가주가 바뀔 때가 왔고, 나트람이 제사장 직분에 오른다면 제 쓸모도 커질 것이므로… 제 아버지에게는 가주 자리를, 나트람에게는 제사장 자리를 주자는 계획이었지요. 스티그미르만 사라진다면 그게 가능했습니다.
누님들께서 명령을 전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대로 하셨지요.
그로부터 반년쯤이 지나, 피송곳니 장원에서 얼굴을 뵐 기회가 생겼습니다. 딤 나겔은 각 가문의 이야기를 들을 뿐만 아니라 껄끄러운 만남을 위한 장소를 마련해주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곁에 지배된 혼이 없는 걸 확인한 뒤에야 겨우 운을 떼셨습니다.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이 옳다는 것은 사리에 맞는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야. 법도를 논하자는 것도 아니지. 우리가 만든 규칙으로 신들을 옭아맬 수는 없으니까. 그저 내가 따라서는 안 될 것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 뿐이야. 나도 이젠 완전히 공범이 됐어.
엘드리그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사흘을 꼬박 밤을 지샜다. 나흘째가 되니 누굴 죽이기도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오래된 빚을 청산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일으켜세우지 뭐냐. 축사에 들러 칼린카를 하나 잡게 시킨 다음 밤중에 형님을 만나러 갔다.
너도 알다시피 그분과 나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어. 중요한 논점은 피해 가면서, 누구도 불편하지 않을 이야기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평화를 지킬 수 있었지. 그러니까 그건 갈라지고 불탄 흔적을 액자로 가리면 벽이 다시 멀쩡해질 거라고 믿는 것과 같은 일이었던 거야.
하지만 결국 벽을 고치려면 액자를 떼어 놓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말이 한동안 빙빙 돌던 끝에 내가 먼저 본론을 꺼냈어. 네 사촌형님에 대한 것이었지. 언성이 커지더니 결국 이런 말이 나왔다.
"형님이 그 애를 망가뜨렸습니다."
형님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고, 고통과 원망이 뒤섞인 어조로 내뱉었어.
"안다! 나도 알아! 그런데 어쩌잔 말이냐?"
그 원망이 누굴 향한 것이었는지, 그러니까 형님이 아들이나 아내를 원망했는지 아니면 동생이자 간통범인 누군가를 원망했는지는 지금으로서 내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고서는 스스로에게 정신의 감옥을 걸었다.
"나는 형님을 죽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으니 여기에서 사실을 모두 말하려 해요. 궁금한 것은 뭐든 물어보고, 원한다면 내 목숨을 거두십시오. 그러기 위해 온 것이니까요."
그리고 나는 어둠 속에서 형님의 목소리를 기다렸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첫 번째 질문이 들려왔지.
"벤트레스는 네 씨가 맞지?"
"아닙니다."
똑같은 물음이 몇 차례 반복되었어. 내가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지, 아니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분간하고 싶었을 거야. 나는 거듭 부정하면서 한 문장을 덧붙였지.
"아닙니다.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어요."
다시 긴 침묵을 사이에 두고는 두 번째 질문이 날아들었다.
"언제부터 내 처와 정을 통했느냐?"
"막내아들이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뒤에야 그랬습니다. 주문 수업 때문에 논의할 일이 있어 댁에 들렀는데―형님은 안 계시고 형수님이 나를 맞아 주시더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형님의 표정을 상상해 보았어. 얼굴을 뒤덮은 게 분노일지, 실망일지, 아연함일지가 궁금했지. 이어진 반응을 돌이켜 보자면 아마도 셋이 모두 섞여 있었을 거야. 왜, 어째서, 그제서야, 하는 단어들이 띄엄띄엄 들려오지 뭐냐. 나는 대답했다.
"형님이 그토록 의심을 하시기에 언젠가부터는 보지도 않고 지냈지요. 연회 자리에서는 일부러 피해 다녔고요. 그러다가 몇 년만에 겨우 얼굴을 마주하니 내가 아끼던 이는 안 보이고 말라 죽은 화분만 거기에 서 있었어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기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우스운 일은 맞다. 벤트레스가 내 씨였더라면 내가 죄를 온전히 부담할 수 있을 테고, 반대로 형수님과 그러지 않았더라면 모든 책임이 형님에게로 갈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나는 둘 다 실패했고, 그래서 이건 우리의 잘못이 된 거야.
물론 변명을 덧붙이려면야 할 수 있겠지. 돌이켜보자면 나는 그 의심을 일종의 허락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 지금껏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형님이 내 부정을 믿는다는 사실이었지 믿음의 진위가 아니었으니까, 그게 거짓이든 진실이든 바뀔 건 없다고 보았던 거야… 그래, 이건 그만두도록 하자. 무슨 말을 더하더라도 내가 이 사안에서 무고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리고 형님은 내가 이러는 이유를 물었어.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저승의 일들을 모두 읊었지. 너와 네 누이가 정원사 직분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나 청지기께서 당신의 죽음을 원한다는 것,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저승의 일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 따위를 계속 이야기했다.
하지만 형님이 그런 말에 설득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야. 사실 나는 그분이 나를 죽인 뒤에 고발장을 써서 너희 둘을 어딘가에 가두길 빌었던 것 같아. 그러면 내가 무엇으로도 갈음할 수 없는 죄를 짓기 전에 멈출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래, 간통은 평범한 요정 둘이 어디서든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이지만 이건 완전히 궤가 다르단 말이야.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옳은 일이라면, 무엇에 대해 옳은 일이지? 인간들에 대해서? 야스와다에 대해서?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
내가 이 질문을 한 건 처음이 아니야. 네 누이들에게서 들은 대답은 옳고 그름을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것뿐이었고, 그래서 나는 형님이 단죄를 택하길 바랐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까지 뱉어낸 후에도 어둠은 여전히 고요했지. 나는 한참을 더 기다리다가 주문을 끝마쳤다.
처음 얼굴을 마주한 건 한밤중이었는데 이제는 닫힌 장막 사이로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어. 형님은 대화를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자세로 맞은편에 앉아 있었지. 눈을 감은 얼굴은 놀랍게도 평온했는데 다시 살피면 고통으로 일그러진 것처럼 보일 만큼 묘했어. 나는 무심코 어깨에 손을 얹었다가 온기가 달아난 걸 깨달았다.
나는 내가 침묵과 어둠에 갇힌 동안, 이 늙은 요정이, 동생이자 간통범이자 배교자인 누군가를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머릿속에 그려 보았어. 어떤 마음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그리고 거기에서 내 지분은 얼마가 될까? 그리고 벤트레스는?
형님은 아마도 모든 문제가 자신에게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했을 거야. 그 의심이 없었더라면 아들이 망가질 일도 없었을 테고 간통조차 없었을 테니 말이야. 그래, 추론을 더 뻗어 보자. 벤트레스가 멀쩡히 자랐더라면, 하다못해 폐허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네가 그렇게나 삶을 증오할 이유도 없었겠지. 그렇다면…….
"그만두자. 나는 떳떳한 사람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