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61화 (162/258)

161화 O Absalom (4)

형님은 저를 연못으로 끌고 가 내던졌습니다. 다행히도 하인 중 하나가, 제가 사라진 걸 깨닫고는 뒤를 쫓고 있었지요. 곧바로 건져내긴 했지만 워낙 몸이 약해진 탓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몸살에 시달리는 동안 인간 아이에 대한 것은 조금이나마 잊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고기는 잘 먹지 못했지만 식욕이 돌아왔고, 몇 달이 지나서는 예전과 같은 일상을 되찾았습니다. 그제야 겨우 어르신들이 형님을 만나게 해 주시더군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형님을 보러 갔습니다. 아마 왜 그랬는지, 무엇이 그토록 형님을 괴롭혔는지를 묻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형님은 줄곧 모질게 굴었고, 시간이 흘러서는 먼저 저를 찾아다니면서 훼방을 놓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동생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어린아이가 독한 약을 실수로 먹지 않게끔 쓴 맛을 더하는 것처럼, 그런 괴롭힘을 행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명징한 정신과 함께 이유마저도 사라지고 관성만이 남았던 것이겠지요.

벤트레스에 대해서는 두 갈래의 감정이 공존합니다. 이제는 가 닿을 길 없는 향수와 다종의 분노입니다. 그 감각에는 분명 여러 결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쾌활하고 사려깊던 사람을 몰아내고 그 몸을 차지한 불한당을 향한 경멸이고, 둘째는 그 불한당이 제게 저지른 일에 대한 분개함이며, 셋째는 개전(開展)의 방법이 없이 다만 형님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무력감입니다.

언젠가, 제가 본가를 떠나 별불꽃의 숲에 머무르던 시기에, 우연찮은 기회로 형님과 독대할 일이 있었습니다. 벌써 오래전의 일입니다. 지금처럼 들뜬 채로 헛소리를 늘어놓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누군가가 엿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숨죽여 속삭이더군요―"아우님, 제발 나를 죽여!"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첫 마디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더욱 적확한 설명일 것입니다.

제가 침묵하는 동안 다시, 섬망(?妄)이 그 불쌍한 요정을 덮쳤습니다. 벤트레스는 크게 웃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형님이 형님으로서 죽을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  *

"아니, 술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러 나왔더니 이렇게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군요. 잠깐 끼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할 말도 있을 것 같거든요."

벤트레스의 목소리가 갑작스럽게도 말허리를 끊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거리를 약간 둔 채 그들 곁을 걷고 있었다. 강현은 테네브로즈의 의견을 물은 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벤트레스가 동생에게 말을 거는 것까지 허락해 주었다.

*  *  *

아우님을 왜 연못에 던졌더라? 잘 모르겠어요. 꼴 보기가 싫었나보죠.

어쨌거나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노친네들이 나를 별채에 가두지 뭡니까. 밤중에 도망쳐서 딤 나겔의 거처로 갔습니다. 어렵지는 않았어요, 하인들은 대부분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거든요. 유모가 바깥에서 창문을 열어줬고 할아범이 수레를 이끌고 왔지요.

그렇게 정인을 만났는데 얼굴이 보이질 않더군요.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어요.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정작 내가 볼 수 있는 그분의 모습은 환영뿐이었던 겁니다.

그분이 저를 안아 주시더군요. 품이 참 따뜻했는데. 울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누나, 어떻게든 누나를 보려고 돌아왔는데 나는 가망이 없는 것 같아요. 부디 다른 반려를 맞아요. 나중에, 아주 먼 나중에라도, 내가 멀쩡해지면 그때 아이의 대부를 맡겨 줘요."

그런 다음에는 정표로 무언가를 남겨 달라고 부탁했던 것 같아요. 뭘 받았더라? 이것도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이거 원, 그때 기억은 죄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역사책의 구절들은 모두 외우다시피 했는데 내가 일기를 제대로 안 쓴 잘못이죠.

어쨌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그분 자식을 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더군요. 더 추해지기 전에 죽으려 했죠. 그런데 팔뚝에 칼을 꽂아넣고 보니 제정신이 돌아오면서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겁니다. 누구는 폐허에 다녀온 것 하나로 삶이 아예 망했는데 우리 영감쟁이는 잘만 지내고 있었으니까요.

난 일단 살기로 했어요. 최대한 멀쩡해진 척을 해서 별채에서 풀려난 다음 영감쟁이 속을 뒤집어 놓을 짓만 골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가지가지 하고 지냈죠. 약을 하고 술독에 빠져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남을 괴롭히고 다닐 수는 없었고요.

("그러면 저한테는 왜 그러셨습니까?"

"이거 서운한데, 아우님이 어디 남인가?")

고민 끝에 기막힌 묘수를 발견했습니다. 남한테 해롭지도 않고 나는 기분이 좋은데다가 영감쟁이는 기겁할 일이었죠.

("그 이야기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저랑 똑같은 얼굴로 그러고 다녔다고 상상하면 기분이 나쁘단 말입니다."

"아니, 학살자랑 똑같이 생긴 내 심정도 생각해 봐야지. 3교구에서 얼마를 죽였는지 기억은 해?"

"합니다. 이백오십육 명하고도 다섯이죠."

)

자, 아무튼, 밤마다 침대에서 뒹굴고 다녔습니다. 상대는 한 명이 아니었고요.

어지간한 한량도 그런 짓은 안 해요. 인간은 아무하고나 살을 부비고 다니지만 요정은 반려끼리도 손만 잡고 자는 일이 많거든요. 그러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혼약은 물 건너갔고 취향까지 독특한 놈들이나 그러고 다닌단 겁니다.

말하자면 내가 바로 그런 놈이었어요. 재능이 있었죠. 소문이 곧바로 돌더니 바로 앞에서 피를 흘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양반이 쥐를 붙이더군요. 아우님 말대로 가문 이름 때문에 그랬겠지만, 뭐, 영감쟁이 속을 썩여 놓았으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이것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날도 실컷 놀고 새벽에 들어왔더니 영감쟁이가 뜬눈으로 날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때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두 읊어 드리죠. 호통이 날아들기 전에 선수를 쳤습니다.

"어쩐지 쥐가 옷에 딸려 나오더라니. 일부러 안 죽였어요, 색다른 구경 좀 시켜드리고 싶어서. 어머니랑도 줄곧 소원하셨고, 늦게 본 아들놈까지 이 꼬락서니고, 네, 제가 워낙에 효도할 기회가 없었잖아요. 만족하셨어요?"

마지막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태어난 것부터가 불효였으니까요. 그래도 폐허에 갈 때까지는 갱생의 기회가 있었던 것 같아요. 가서 잠자코 죽었더라면 영감쟁이나 나나 괜히 날뛸 일이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안 갔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사실 조사단원이 됐다고 해서 꼭 이런 꼴이 나는 건 아닙니다. 완전히 멀쩡한 놈도 있고, 어떤 녀석은 몰래 빠져나와서 고향으로 돌아오기도 해요. 겁쟁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겠고 출셋길도 막히지만 미쳐서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이해해 주는 분위기도 있죠.

그러니까, 내가 왜 도망을 안 쳤더라? 아마 3교구의 신관님께 청혼할 수 있을 만큼 떳떳한 사람이고 싶었을 겁니다. 혹은 오기 같은 게 완전히 사라져서, 이럴 바에는 폐허에서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죽으면 괴로울 일은 없을 테니까.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결국엔 이런 불효자가 됐으니까요. 태어난 것부터가 불효였고, 기어코 고향으로 돌아온 것까지도 불효였죠. 그 다음부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영감쟁이가 화가 많이 났어요. 감히 노예도 안 할 천박한 짓이라더군요. 대답을 해 줬습니다.

"그래요, 하기야 쉭겐은 제 큰할머니 생각밖에는 따라 읊지 못하는 놈이니까 노예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겠네요. 분명히 허락을 받았을 거예요. 일드얀 할머니, 난교는 해도 되죠? 하고. 오늘은 그 자식 동생도 있었는데―잠깐, 다섯 어절이 넘어가는 이름은 도통 기억이 안 나서. 아버지 이름이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성함이 어떻게 되셨죠? 토텐부르그셨던가?"

거기까지 말했더니 술잔이 날아오더군요. 일단 피했어요. 벽에 부딪혀 깨졌으니 하인들이 또 유리조각을 치우느라 고생이겠구나, 융단에 가루가 남을 텐데 싶었죠. 그런데 다시 보니까 영감쟁이 손에 목장에서나 보던 막대기가 들려 있는 겁니다. 가축을 돌볼 때 쓰는 거 말입니다.

죽기 전까지 맞았습니다. 주문을 써서 반격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마음이 들지 않더군요. 그래, 때려 죽여라, 처음부터 이랬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웅크려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너그러운 아자라스 삼촌께서 달려오시더군요. 하인이 깨웠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나를 구하러 오신 겁니다. 영감쟁이 팔을 붙들고 애걸하시지 뭡니까. 내가 꼭 자기 자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다 죽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대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젊은이들은 누구든 실수를 해요. 피붙이를 노예보다도 못하게, 마치 가축처럼 다루는 것은……."

그런데 영감쟁이 귀에 그런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마법까지 써서, 삼촌을 벽에 밀쳐내고서는 이렇게 외치는 겁니다.

"대체 누가 이게 내 아들이라더냐?"

뭐, 아무튼, 이제 이건 삼촌과 영감쟁이의 싸움이 됐습니다. 나는 졸리고 아파서 잠에 들었고요. 술에도 좀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약을 했던가? 아무튼 기절할 이유는 충분했다는 거죠. 이틀쯤 뒤에 깨어났더니 대충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우님, 여기서부터는 아우님이 말해!

*  *  *

그 일을 계기로 벤트레스는 오래도록 감금당합니다.

큰삼촌께서는 유일한 아들이 방탕하게 놀아나는 꼴을 견디지 못했고, 구속구를 채워서 별채에 두었습니다. 가주와 가문 원로들 또한 그 결정을 눈감아주었지요. 아버지께서 말리긴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그렇게 벤트레스가 모두의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여러 일이 일어났습니다만, 지금으로서 중요한 사실은 가문 어르신들의 기대가 제게로 모였다는 것뿐입니다. 큰누님은 이름난 한량이셨고, 작은누님은 마력 부종으로 앓아 누우셨으므로… 가주 직분은 할머니에게서 스티그미르에게로, 그리고 제게로 내려올 예정이었습니다.

저는 신관 서임을 받고 3교구의 추적자가 되었습니다. 겉보기로는 모든 게 순탄했습니다―겉보기로는요. 당시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는 거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세상과 불화하고 있다는 막연한 감각이, 그리고 화해할 방도가 영영 없으리라는 무력감이 저를 뒤덮고 있었지요.

물론 교구 일을 처리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친우와도 즐거이 어울렸고 만찬에도 잘 드나들었지요. 하지만 홀로 남을 때에는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솜을 잃어버린 헝겊인형처럼 말입니다… 그러는 동안 형님의 목소리만이 점점 커져서 텅 빈 껍데기를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겨울밤의 그 외침이―"너는 나처럼 미칠 거야! 너는 나처럼 살아가다가 나처럼 죽을 거야! 그럴 바에는 지금 죽는 게 낫겠지!"

시간이 흐르며, 저는 그 말에 진심으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  *  *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택하려거든 죽을 이유조차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옛 기억 때문에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전에 끝난 일들을 어찌할 수는 없으니까요. 지금의 삶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동료들은 제게 잘 해 주며 하인들 또한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세상이 딱히 즐겁지 않으며 앞으로도 기대할 것이 없으리라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작은누님께서는 아픈 몸으로도 삶에서 기쁨을 찾으려 애쓰는데도요. 제가 고작 이런 이유로 죽음을 택하게 된다면―그러면 많은 사람이 슬퍼할 것입니다. 작은누님을 실망시킬 것입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로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동생아, 네 마음은 너무 복잡하구나."

"그렇지요, 마음은 원래 복잡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의 정신이 곰팡이가 슨 목재와 같은 것이라서, 우울과 허무의 근원이 명백하고, 그것을 찾아 도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빌어 보기도 합니다."

*  *  *

시간이 흘렀습니다. 큰누님은 저와 함께 우울의 수렁에 발을 들이셨고 작은누님의 숨은 점차로 가늘어지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시기를 논한다면 제가 훈련 기간을 모두 마치고서도 네댓 해가 흐른 뒤일 것입니다.

그때 도시에는 묘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어느 숲을 지나다 보면, 요정도 인간도 아닌 존재가 다가와서 이렇게 묻는다는 것입니다.

"너는 삶이 즐거우냐?"

즐겁다고 말하면 잘 된 일이라며 보내 주고, 아니라고 하면 이유를 묻습니다. 대답을 들은 다음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러면 계속 살고 싶으냐?"

그렇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보내 줍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마저도 아니라고 답한 사람은 흔적도 없이, 누구의 기억에도,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은 채 사라지게 된다고 합니다. 다만 그 자리에 가면 선명한 녹색 불빛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바로 희생자의 넋이라고요.

신관들은 마지막 말만큼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법은 어디에도 없거니와 기억에도 남지 않고 사라진 사람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증인은 갈수록 늘어났으며 평민들의 불안감 역시 커졌습니다. 어떻게든 여론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지요. 결국 3교구는 젊은 추적자 하나를 조사관으로 파견하게 됩니다…….

제가 바로 그 추적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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