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O Absalom (3)
그 대답을 듣자 시간이 한순간에 멎었습니다. 저는 아, 아, 아 소리만 겨우 내뱉다가 눈물을 흘렸고 그 애까지 깜짝 놀라서 울기 시작했지요. 꼬마의 부모는 당황스러워하다가 제대로 된 사정을 듣고서는 그 애를 꾸짖었어요. 그런 일이 있었던 줄은 알지도 못했고, 아이도 흥미가 떨어진데다가 기르기도 까다로우니 식탁에 올렸다더군요.
그 애도 다시 사과했습니다. 인간 때문에 싸웠으니까, 그걸 집에 두면 계속 싸울 게 분명하니까 치우기로 했을 뿐이라고요. 이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다고요. 그러니까 그건 결국 조금 비싼 칼린카를, 여섯 번째 칼린카를 죽인 것과 똑같은 일이었던 겁니다. 저는 멍한 기분 속에서 사과를 받아들였고, 밤이 되도록 함께 놀다가, 본가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마자 또다시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좋아, 우리는 화해를 했고 여전히 친구다. 그 애의 부모님은 친절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죽었는데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지? 내가 우는 건 또 무슨 의미지? 인간은 이미 죽었는데?
여기에서 잠깐, 우리가 동족을 먹는 일에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실제로 어떤 범죄자는 만찬의 요리가 되기도 합니다. 다만 요정의 주검은 한 끼 식사로 허비하기에는 너무 값지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죽은 이를 위해 무덤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추모하는 이들의 마음을 존중하기 때문에 보통은 그러지 않을 뿐입니다.
만약 식탁에 오른 게 이름 모를 요정이었더라면, 차라리 다른 인간이었더라면 저는 그 날을 악몽으로 기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리어 두고두고 곱씹을 즐거움이 되었겠지요.
하지만 결국 제가 먹은 건 그 아이였습니다!
목소리가, 인간 아이의 목소리가 항상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가축의 살코기에서도, 과실에서도, 잎사귀에서도 그 울림이 들렸습니다. 결국 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었지요. 식사 자리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었지만 혼자 있게 되면 곧바로 먹은 것을 게워냈습니다.
물론 이런 항변을 떠올리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인간들은 야생 칼린카를 사냥해 잡아먹으며, 그 괴수들은 모두 인간만큼 영리하다고요. 그러니 우리가 인간을 먹는 것도 잘못은 아니라고요. 칼린카는 본능적으로 마법을 쓰고, 주인의 말을 이해하는데다가, 충성심과 지혜 역시 뛰어납니다. 인간과 칼린카의 차이는 뜻을 명확한 언어로 전달할 능력의 유무뿐입니다―그것은 요정과 칼린카의 유일한 차이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어떤 논리도 인간 아이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고기를, 특히 구운 고기를 입에 대면 오래된 외침이 들립니다―"왜 나를 먹었지? 왜 나야? 왜―나였던 거야?"
왜 그 아이여야만 했을까요? 요정이 식인에 거리낌이 없는 종족이기 때문에? 자식을 요정에게 팔아넘길 만큼 매정한 인간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그 애를 몹시도 좋아했고, 그게 친구의 질투심을 건드렸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강현이 물었다.
"인간을 죽인 애와는 계속 친구였다는 거지?"
"제가 이렇게 된 후로는 사이가 소원해졌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실수를 따지고 책임을 묻는다 해서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 애도 계속 저를 아꼈으니까요. 저를 해할 의도로 벌인 일도 아니니까요."
"좋아,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일단 그 설명을 들어야만 남은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강현은 볼로디아와의 대화를 마친 후로 자신이 설계도면을 똑바로 살피지 않고 기계를 해체하기 시작한 수리공이 아니었는지를 의심하고 있었다. 구멍에 드라이버를 넣어 돌리는 것만으로 겉판은 뜯어낼 수 있겠지만 그 부속을 제대로 살피지는 못할 것이다.
"그 애는 인간을 죽였어. 너는 그 인간을 사랑한데다가 그 기억 때문에 환청까지 듣게 되었지. 그러면 너는 그 요정 꼬마를 예전과 같은 태도로 대하진 못할 거야."
테네브로즈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인간의 관점일 뿐입니다―요정의 사랑과 미움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워하길 더디 하는 족속이며 원한을 품더라도 내려놓을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그리 합니다. 나트람의 피를 원하는 것이 헤이딘인지 벨레다인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울쿠스가, 평생토록 저를 증오하면서 살아온 청년이, 오래전의 꿈을 되새기자마자 적대하기를 멈추고 대화에 응하던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하지만 마요르가를 죽인 건 사실상 울쿠스였지. 인간도 여럿 죽였을 거야."
"밉기 때문에 죽인 것이 아닙니다. 죽여야 했기 때문에, 죽은 이들이 소중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죽이더라도 탓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울쿠스가 펜닐이나 군부 대원의 피를 보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청년은 도리어 참았습니다. 스카르파를 부추긴다면 언제든 그럴 수 있는데도, 순혈들에게는 매일 모욕을 듣는데도, 참은 것입니다. 흰둥이들을 위해서요."
강현은 말루카에서의 기억을 되짚었다. 일찍이 들었지만 차마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 직전의 대화에서도 깨닫지 못한 것들이 이제야 정연한 흐름을 갖췄다.
"그래, 알겠다. 너희는 죄책감이 아니라 공포가 있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말이야. 울쿠스뿐만이 아니라 너희 모두에게. 그건 분명히, 평소에는 도덕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할 거야. 하지만 완전히 낯선 상대에게는 소용이 없겠지. 친구의 애완견을 죽이진 않지만 들새는 얼마든지 사냥할 수 있는 것처럼. 내 생각이 맞아?"
"맞습니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주제가 화두에 올랐다.
"어린 시절의 치기가 아니라면 우리는 스스로 미움을 택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누군가를 해하는 것은 최후의 방편에 불과하지요. 만약 그 목숨마저 거두고서도 원한을 남겨두는 요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랑의 다른 형태일 것입니다."
강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반론했다.
"나트람은? 말루카에 있을 때, 내가 요정의 사고방식을 물어봤을 때, 넌 분명히 그 작자도 평범한 요정이라고 했어. 충분치 못한 온정 속에서 자란데다가 성격이 포악할 뿐이라고."
"물론 나트람과 같은 요정은 아주 적습니다만, 저는 평범이라는 단어를, 요정의 범주를 논하기 위해 썼습니다. 충분치 못한 온정 속에서 자란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 말하기 위해서요. 인간 중에서 도덕이 희박한 이가 있는 것처럼, 요정 중에도 사랑이 부족한 이가 있는 법입니다."
"그래, 나트람에 대한 것은 설명이 됐다. 그렇다면 딤 나겔은 나트람을 왜 내버려뒀지? 원한을 쉽게 잊는다는 것이 모든 걸 용서한다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닐 텐데?"
"글쎄요, 제가 아는 사실은 사르코와 그 반려가 황무지에서 죽은 직후에, 즉 울쿠스가 제게 원한을 품게 된 사건이 일어난 후에, 나트람이 직접 딤 나겔을 찾아갔다는 것뿐입니다. 무언가 이야기가 오갔을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테네브로즈의 말이 다시 시작되었다.)
친구는 인간 아이를 죽였고 저를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후에도 저는 친구와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인간들에게 이런 관계가 의아하게 보이리라는 것은 압니다. 누군가는 이게 바로 요정의 본성이 악한 증거라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판단은 각자의 자유입니다. 거기에 대해선 논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선악 따위의, 단선적인 논의를 시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도 귀책이 없다는 식의 유보론을 펼칠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상상해 보십시오: 이 땅의 형상은 우연의 총합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축적의 결과물이란 명문가의 서랍 안에 잠들어 있는 고발장과 같아서, 부지불식간에 격발하면서 한 사람의 평생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묘하지 않습니까?
* * *
엘드리그와 파니스크는 동생을 달래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테네브로즈는 거의 한 달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끝내는 병상 신세를 지게 되었다. 가문 원로들은 두어 달만 더 지나면 멀쩡해지리라 생각했지만 소년은 두 해가 넘도록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나들이라고는 가끔 날이 좋을 때 정원에 나와 햇볕을 받는 게 고작이었다.
거기에 더해 파니스크까지 각혈을 시작했다. 치료사는 마력 부종의 초기 증상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억제제로 명을 부지할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삶이 죽음보다 고통스러울 때가 올 거라고도.
비관 섞인 우울이 어둠달 장원을 덮쳤다. 벤트레스가 폐허로 떠나고서는 아자라스의 아들과 딸이 차례대로 몸져누운 것이다. 원로들은 스티그미르가 새 아이를 보길 원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아자라스의 반려는 오래전에 테네브로즈를 낳다가 죽었다. 엘드리그 역시 혼례를 올릴 생각이 없었다.
방계 아이 중 몇을 골라 양자로 들이자거나 아자라스가 새 반려를 찾아야 한다는 식의 논의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테네브로즈를 향한 염려가 체념으로, 외면으로 변해갈 무렵 교구 차원문에 죽어가는 요정이 나타났다. 누군가가 내던진 듯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어둠달의 벤트레스임이 밝혀졌다.
그때 이미 벤트레스는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당시의 조사단원 중에서 무사히 야스와다로 귀환한 이는 둘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폐허에서 실종되었던 것이다. 신관들은 그를 치료한 다음 자세한 사정을 물었지만 벤트레스는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못했다.
* * *
"형님께서 돌아오셨지요?"
"아녜요, 대체 누가 그러던가요? 폐허에서 길을 잃으면 그대로 죽는 걸 아시잖아요."
테네브로즈는 하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갈색으로 죽은 잔디 한가운데로 반들거리는 돌길이 나 있었다.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으면서 그 위에 설탕 껍질 같은 막을 덧입혔다.
"며칠 전에, 새벽에 잠이 깼어요. 창문 너머에 형님이 서 계시는 걸 봤어요. 저 돌길 위에요. 창문을 열고 형님을 불렀는데, 저를 잠깐 보다가 그대로 돌아서서 어딘가로 가셨어요."
"잠기운에 헛것을 봤겠죠. 게다가 몸도 아직 약하시잖아요. 자, 이 그릇을 다 비워요. 건강해지면 허깨비도 보이지 않게 될 거예요."
그녀는 고집센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테네브로즈는 내키지 않는 태도로 수저를 들고는 죽을 삼켰다. 하인은 도련님이 오랜만에 순순히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는 만족스러운 양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하셨어요. 이렇게만 드시면 곧 건강해지실 텐데."
"건강해지면 형님을 보게 해 줄 건가요?"
"세상에, 도련님, 그건 그냥 잊어버리세요. 꿈이었다니까요."
"그래도……."
방에만 머물러 있어도 집안의 분위기가 어떻게 흐르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엘드리그와 파니스크는 무언가를 숨긴 것처럼 굴었고 스티그미르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졌다. 하인들은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벤트레스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에야 설명할 수 없는 긴장이 이유를 찾았다. 폐허에서 실종되었던 형님이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네 해만에.
폐허에 다녀왔다가 미쳐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테네브로즈에게도 익숙했다. 보통은 헛소리를 거듭하다가 나우파나로 되돌아가서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까지도.
그는 조심스레 자문해 보았다. 형님도 그렇게 된 걸까? 그래서 모두들 안색이 나쁜 거고? 어쨌거나 어른들은 자신이 사촌형님과 재회하는 걸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인에게 따져 보았자 소용이 없을 터였다.
"알았으니 가 봐요."
테네브로즈는 대신 밤마다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벤트레스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품은 채, 함께 놀고 이야기하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돌이켜보면 반질거리는 조약돌이나 예쁜 꽃을 보거든 두 누님께 드렸지 형님에게 선물한 적은 없음에도 허망하도록 어렴풋한 추억은 부정형의 가능성으로 변해 평화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가 본가에 있을 때에는 인간 아이도 파니스크의 병도 없었으며 세상이 평화로웠다. 그저 평화로웠다.
열흘쯤이 지나 다시 벤트레스가 돌길을 지나갔다. 이번에는 사촌동생의 방에 눈길을 주지도 않고 그저 걷고만 있었다. 테네브로즈는 어둠이 뒷모습을 삼키기 전에 의자를 창문 앞으로 옮긴 뒤 창턱을 딛고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발바닥이 순식간에 감각을 잃고는 매서운 바람이 얼굴까지도 앗아갔다.
몸속이 텅 비는 듯하더니 여름의 한 조각이 뇌리를 달려 지나갔다. 별불꽃 장원의 호수가, 뭉글거리는 더위가 바로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했고 입안에서는 쓴잎나무 열매 맛이 났다. 그 모든 기억은 궤짝에 든 채 간택받길 기다리는 장난감처럼 이 순간만을 고대해 온 것 같았다.
그렇게 두 계절이 서로 겹치면서 세상이 조금 낯설어졌다. 발끝이 얼어붙었는지 타오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혹은 하인의 말대로 이건 모두 꿈이고 자신은 사실 침대에 누워 형을 뒤따르는 상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테네브로즈는 그래 꿈이어도 좋다, 꿈이어도 좋으니 목소리라도 들어 보자 중얼거리면서 그대로 뒤를 쫓았다.
돌길은 작은 숲으로 접어들었다. 벤트레스의 은빛 머리카락이 빼곡한 나무들 사이에 숨었다. 창백한 달빛이 눈처럼 쏟아지며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희미한 테를 더하고 있었다. 테네브로즈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어둠 속에서만 반짝이는 것들을 보았다. 벤트레스가 길을 벗어나 어느 나무 아래 멈춰 서는 것을 보았다.
섬세한 손가락이 가지를 쥐고 깔쭉깔쭉한 잎을 떼었다. 테네브로즈는 돌길에 그대로 서서 벤트레스가 천천히 잎을 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는 동안 달빛은 눈썹을 타고 흘러 감긴 눈을 적셨고 세상은 추위도 더위도 없이 다만 정연한 것이 되었다.
테네브로즈는 숲을 향해 한 발짝을 내딛었다. 겨우내 떨어진 잔가지가 발바닥에 박히듯 하더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벤트레스가 눈을 번쩍 뜨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가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테네브로즈는 가까이 갔다. 기억 속에서만 맴돌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먼 시간을 딛고 다가왔지만 말투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너 말이야, 하나도 자라질 않았구나. 내가 막 떠날 때도 그 키였는데. 시간이 꽤 지나지 않았니?"
초점 없는 보랏빛 눈이 투명한 그늘 속에 잠겼다. 물가의 동굴을 보는 듯했다. 개구장이 아이들은 호수가에서 그런 구멍을 발견하면 기어코 들어가서 그걸 은신처로 삼곤 했는데 가끔은 비가 퍼붓는 시기에 숨었다가 그대로 죽는 일도 있었다.
"이게 말이야, 폐허 바깥으로 나온다고 해서 환각이 멈추는 게 아니더라. 저번에도 지금이랑 똑같은 장면을 본 적이 있어. 나는 이 돌길을 걸어서 나무 밑에 서고, 네가 그 뒤를 따라오는 거야."
벤트레스는 두 손을 뻗었다. 쓴잎나무 잎사귀 냄새가 훅 가까워졌다. 아리고 떫고 청명한 향기였다. 손이 테네브로즈의 목을 양옆으로 움켜쥐더니 마른 몸에서 나왔다기에는 믿기지 않는 힘으로 소년을 들어올렸다. 먼 옛날 식음을 끊고 명상하던 수도승이 광신적 환희에 사로잡혀 벌거벗은 채 거리로 나왔는데 그를 제압하는 데에 늑대인간 셋이 필요했다고 한다.
"키가 좀 컸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너랑 이야기했을 거야. 네가 진짜 아우님이라고 믿을 수도 있었겠지. 너를 따라서 나우파나로 돌아가고, 그리고……."
손이 목을 올가미처럼 졸라맸다. 혈류도 숨도 손가락을 사이에 두고는 맞닿지 못한 채 양쪽에서 흩어졌다. 목이 그렇게 머리와 몸을 구분짓는 선이 되면 목구멍 가장 깊은 곳에 침이 고인다. 교수형을 당하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듯 꼴깍거리는 소리를 내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안개를 닮은 기침이 두어 차례 터져 나오더니 그 다음부터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쌓였다. 무언가 말하려 해도 단어가 나오지 않았는데 목이 할퀴는 듯도 했고 간지러운 듯도 했다. 그러고서는 목구멍 깊은 곳이 풀벌레가 우는 것처럼 떨리며 아아아 했다. 그 소리가 났다. 순간 벤트레스의 눈에 심지가 되돌아오며 손에 힘이 풀렸다.
몸이 흙바닥으로 쏟아지더니 기침이 계속 났다. 테네브로즈는 모인 숨을 모두 토해낸 다음에야 뺨이 축축이 젖었음을 알았다. 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정강이를 때리면 무릎이 올라가듯이 눈물이 흘렀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서는 겨우 윗몸을 들어 벤트레스를 보았다. 목소리에 계속 아아아 하는 울림이 섞여 나왔다.
"형님, 저는 아팠어요… 저도 이상한 소리를 들어요. 애완동물이―인간이―제 친구가 계속 이렇게 물어요. 왜 자기를 먹었냐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게 되었어요. 키가 크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게 다예요."
휘청거리며 물러난 벤트레스는 도박판이 사기임을 확신하고 패를 내던졌다가 어떤 거짓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처럼 동생을 내려다보았고, 웃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지더니 칼로 잘라내듯 뚝 멎었다. 울부짖음이, 사람의 말이라기보다는 천둥이나 산사태 같은 것이 그 뒤를 이었다.
"너는 나처럼 미칠 거야! 너는 나처럼 살아가다가 나처럼 죽을 거야! 그럴 바에는 지금 죽는 게 낫겠지!"
벤트레스는 조금 더 웃다가 테네브로즈의 목고대를 붙잡고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달빛이 여전히 환했고 어둠은 잎사귀와 잔가지들 틈새에 맑게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