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Catastrophisme eclaire
생존자가 야스와다로 돌아오기 전부터 아자라스는 가문의 몰락을 예감하고 있었다. 모티스가 죽음을 맞이하고 벤트레스가 테네브로즈의 앞에 나타난 날, 그는 여자 하인을 이끌고 피송곳니 장원을 밟았다. 딤 나겔이 직접 나와 그를 맞이했다.
"피송곳니의 딤 나겔이 어둠달의 주인을 뵙습니다."
"자네는 한 가문의 주인이야. 이제는 나만큼이나 머리가 희지. 그렇게까지 자신을 낮출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연장자에게 예를 갖출 뿐입니다."
외관만으로 딤 나겔과 아자라스 중에서 누가 더 오래 살았는지를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실상 둘은 반 세대만큼의 차이가 났다. 요정들은 성년식을 치를 때까지 자랐고, 그 후로는 오랜 시간동안 똑같은 외관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빠르게 늙어서 서너 해 안에 백발의 노인으로 변하고 말았다.
딤 나겔은 동년배보다 훨씬 일찍 노년기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딸 부부의 죽음이나 손자의 실종에 그 원인이 있다고 수군거리곤 했다.
그는 혈족을 교계에 일절 내보내지 않은 채 가문간의 중재자로서 숨죽여 살아왔다. 눈에 보이는 권력을 포기한 대신 모두의 보호를 얻어낸 것이다. 딤 나겔은 이 상태가 최선임을 알았지만 가끔은 오래된 후회에 괴로워하곤 했다. 별불꽃의 수장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딸 부부를 일찍 집으로 불러들였더라면? 울쿠스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따라서 두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기꺼이 솔로틀에게 무릎 꿇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제 딤 나겔은 아자라스의 조력자이자 동지가 되어 있었다.
"오랜 삶을 살았기는 피차일반이지. 자네도 나만큼은 죽음을 상상해 보았을 테니."
"거짓을 고하지는 않겠습니다."
"다행히도 나는 조만간 저승으로 떠날 걸세. 자네가 원한다면 손자에게 말을 대신 전해 주도록 하지. 늙고 지친 혼이라도 전령 역할은 충분히 하지 않겠나."
딤 나겔의 눈썹이 미미하게 치켜 올라갔다. 표정에 나타난 변화는 그뿐이었지만 뒤편에서는 치밀한 계산이 전개되고 있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문제는 아닐세. 하지만 더 심각할지도 몰라. 원정대원 중 하나가 도망쳤고, 벤트레스는 테네브로즈에게 합류했다네. 지금으로서는 자세히 따져 묻기 어려운 면이 있네만… 우리의 일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야."
딤 나겔은 아자라스가 대동한 하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런 주제를 스스럼없이 꺼내는 걸 보면 하인 역시 평범한 존재가 아닐 테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가능성을 짚어 가는 가운데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이시 타브께서 완전히 깨어날 때가 머지않았네. 짧으면 여섯 달이야. 균열이 완전히 열리고 그분이 땅으로 나오면 내 불충 역시 드러날 걸세. 그 전에 삶을 정리해야 해. 지금이 바로 기회라고 생각하네. 일드얀 역시 이걸 기회라고 여길 테니."
"제가 감히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물론일세."
딤 나겔에게는 권력이나 영향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물론 각 가문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말머리가 끝나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터였다. 중립을 저버린 중재자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만약 그가 입에 담는 것이 적수의 약점일지라도.
그러나 정치적 복마전에서, 부외자의 위치는 성역으로 기능했다. 뿐만 아니라 딤 나겔은 바단의 귀족이었으며 교계에도 나선 적이 없으므로 이시 타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피송곳니 장원은 엘드리그를 위한 피난처가 될 것이었다.
"엘드리그를 식객으로 거두어 주고,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전하게나. 청지기께서 야스와다의 소식을 알 수 있도록. 이시 타브의 눈은 내 아이를 쫓지 못한다네."
"저 또한 신의 눈길이 두렵진 않습니다… 하지만 환술을 쓰더라도, 새로운 손님이 오래도록 머무른다면 의심할 이가 많습니다. 특히 가문 성원 중에는 제 입장에 불복하는 이가 몇 있습니다. 정치적 중립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찾고 싶어 안달이지요."
"어려운 일은 아니라네."
아자라스는 하인에게 손짓했다. 바로 다음 순간, 요정의 몸이 안개처럼 허물어지면서 완전히 다른 생물로 변했다. 곧게 선 귀와 짧은 은빛 털이 날렵한 인상을 주는 사냥개였다.
"따님이셨군요. 이건… 금지된 주문입니까?"
"마법은 세계의 한 자락을 제멋대로 고치는 일일 뿐입니다. 이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지요."
그 말과 함께 사냥개는 은발을 길게 길러 땋은 여자가 되었고, 다시 머리카락을 목덜미에서 친 여자로 변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른 세계에서 들려오듯 멀고 아득한 느낌이 있었다.
"환술이 마력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난 일이듯 우리의 몸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온전한 일부고, 꿈이 허락하는 형상이라면 무엇이든 취할 수 있습니다. 저는 숲에 머무를 것입니다. 가끔씩 오셔서 소식을 전해 주십시오."
* * *
신전은 전통적인 나우파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었다. 상아색 교각 기둥이 도열하며 진입 통로를 이루었고 본당 벽면에 세공된 문양은 빛의 폭포 속에서 그림자를 덧쓴 채 선명한 양각화로 변했다.
입구 근처에는 기도를 올리는 자세로 굳어진 요정 몇몇이 남아 있었다. 박제가 된 사람은 수없이 보았지만 그 형상에는 유독 종교적인 거룩함이 깃들어 있었다. 란드와르는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않으면서 구원을 기다리던 마음을 헤아려 보다가 그만두었다.
침묵 속에서 걸음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이윽고 곧게 뻗은, 좁은 복도가 나타났다. 수정 심장이 모셔진 지성소(至聖所)로 향하는 길이었다.
"환영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습니다! 여기였어요. 바로 여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로안은 조심스레 벽에 손을 얹었다. 살갗이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색유리가 내뿜는 빛은 곳곳에서 굴절되며 스테인드글라스의 영역을 공간 전체로 확장시키고 있었다. 란드와르는 빛을 기워 만들어낸 조각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바로 앞이다. 알지."
소년은 란드와르의 말에 셀리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정답을 적어내기 전에, 계산 과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학생처럼 보였다. 기나긴 설득이 어떻게 끝났던가? 로안은 결국 일을 미룰 수는 없다는 데에 동의했다. 기억 조각이 망령처럼 폐허를 돌아다니도록 두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마음을 정한 것은 다행이었으나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질문은 남았다. 애당초 란드와르 역시도 로안에게 신위를 넘겨주는 게 옳은 일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마흐트가, 셀리멘이 아 드지즈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소년의 품성이나 책임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이대로라면 로안은 꼼짝없이, 차원 생쥐들과 운명 공동체가 되고 말았다. 볼로디아가 계약서를 쓰는 건 막았다지만 셀리멘은 경우가 달랐던 것이다. 그녀의 영혼은 계약서에 얽매여 있었고, 신위는 영혼에게서 영혼으로 이어졌다…….
셀리멘에게서 신위를 넘겨받는다면 그 영혼에 매인 계약까지도 자동으로 승계가 된다고 했다. 만신전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삐걱거리는 집단에 몸을 담는 것보다는 평범한 인간으로 천수를 누리는 게 나으리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이스트리아를 구한다는 대의 아래 로안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신위에 오르는 게 마냥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을 해야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려줘야 했다. 울쿠스를 붙들고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처럼. 지금 이건 천계 놈들이 300페이지짜리 계약서를 들이밀고 마지막 장에만 서명을 시키던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
덕분에 이제는 차원 생쥐들의 심정마저 이해가 갔다. 이 짓거리를 뭐라고 설명했더라? 하던 게임을 그대로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 끝이었다. 강현은 차원 생쥐에 대해서도, 아즈리온에 대해서도, 시뮬레이터의 허술함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없었다. 들었더라면 이름을 써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감춰야 했을 것이다.
로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볼로디아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녀석에게 털어놓기란 불가능했다. 그는 사이비 다단계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심리를 절감했고, 이제는 지겨워진 생각들로 자기세뇌를 시도했다.
자신은 전쟁을 막기 위해 이 짓을 하고 있었다. 인간과 늑대인간의 목숨을 위해. 더 나아가서 야스와다의 요정들까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대륙 남쪽에 갇혀 지내야겠지만 전쟁이 일어나서 반절이 죽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그 생명의 총합에 비하면 소년 하나를 날치기로 신위에 올려놓는 것쯤은…….
강현은 수정 심장의 버프 효과를 상기했다. 마법사 동료에게 수정 심장을 먹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떠올렸고 이시 타브 레이드의 택틱을 곱씹었다. 이게 모두 게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퀘스트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만으로 문제가 증발한다면. 하지만 그를 감싼 건 폴리곤과 비트 데이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과 그들이 빚어내는 맥락이었다. 스트레스가 뇌를 바짝바짝 태웠다.
이제 와서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그건 윤리를 핑계로 더 큰 죄를 지으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발길을 돌려서 다른 적임자를 찾기엔 너무 늦었다. 로안은 수정 심장을 얻을 것이고 아즈리온의 동료가 되어서 이시 타브를 죽일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을 살릴 것이다… 란드와르는 마음속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지성소에 발을 들였다.
폐허의 다른 부분과 달리, 신전 끄트머리의 작은 방은 원형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다. 마구잡이로 자라난 수정이 천장과 벽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마치 반으로 가른 정동석(晶洞石) 속에 들어온 듯했다. 바닥의 정중앙은 석순처럼 돌출되어 있었고 백금으로 만들어진 언약궤가 그 안에 갇힌 게 보였다.
"상자도 본 적이 있습니다. 저 안에 있는 게……."
로안은 기억 조각의 움직임에 흠칫 놀라 말을 멈췄다. 셀리멘이 천천히 걸어가 융기에 손을 얹자 수정이 녹아내리면서 언약궤가 둥실 떠올랐다. 자그마한 달 조각이 눈부신 태양을 향해 움직여가는 모습 같았다. 그녀는 수정 심장을 두 손으로 받치듯 쥐었고, 몸을 돌려 로안을 바라보았다.
"오빠, 이제야 돌아왔구나."
잠깐만. 이건 게임에서 나오던 대사가 아니었다. 뭔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시뮬레이터의 한계인 건가? 본능적인 불안감이 낙관론을 뚫고 올라왔지만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이 상황에서 심증만으로 걸음을 돌릴 수는 없다.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어. 수정으로 가득한 세상을 끝없이 돌아다니면서, 잠들지도 쉬지도 못한 채 그저 걷기만 했어. 그러면서 항상 오빠를 생각했어. 전쟁이 끝난다면, 인간들이 도시를 짓게 된다면, 요정과 싸울 필요가 없어지면 나보다는 오빠가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했지. 대신 모든 사람이 내게 감사한 마음을 품게 만들겠다고 했어."
셀리멘의 입가에는 뜻 모를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녀와 똑같은, 로안의 물빛 눈에 순간적으로 방 전체의 정경이 담겼다가 사라졌다. 이제 그 시선은 기나긴 시간을 뛰어넘어 노르덴홀즈 장원과 폐허 사이의 어딘가를 비추고 있었다.
"저는… 저는 알세스트님이 아니라 그분의 후손입니다. 그분은 정말로 큰 마을을 만들었어요. 거기에는 커다란 기념관이 있고, 정중앙에는 항상 셀리멘님의 환영이 빛나죠. 두 분은 영웅으로 역사에 남았고, 아홉 교단의 사제들이 넋을 기립니다. 모두가 시조님의 희생을 기억해요……."
로안은 셀리멘의 표정을 살폈다. 여전히 웃고 있었다.
"오빠는 겁이 많았지. 둘 중 하나가 그 일을 맡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결국엔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 오빠가 아니면 나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중에서 내가 조금 더 용감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는 게. 내가 도망친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거라는 게."
"예, 시조님께서는 정말로 많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정말로요. 셀리멘님이 아니었더라면 나우파나에서는 수많은 인간이 죽어 나갔을 테고, 대전쟁은 요정의 승리로 끝났을지도 몰라요. 우리는 모두 셀리멘님 덕분에 살아 있는 겁니다."
"나는 죽었어."
그리고 침묵이 있었다. 매 순간 튀어 다니던 빛무리마저 정적의 무게에 짓눌려 그 자리에 고정된 듯했다… 셀리멘은 로안에게로 성큼 다가갔다. 몸은 빠르게 무너지며 일그러진 섬광으로 변하고 있었다. 빛의 끝자락이 소년의 발을 집어삼켰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
로안은 세 차례 눈을 깜박였고 심장의 모든 박동을 느꼈다. 심장이 열일곱 번 뛸 시간이 영원 같았다. 셀리멘은 한 발짝을 더 내딛었다. 그녀의 형체는 비스듬히 비치는 햇살처럼 로안의 위에 겹쳤으며, 이내 스며들어 하나가 되었다.
소년의 몸이 진흙 인형처럼 허물어지는 동시에 빛이 수만 가지 빛깔로 파열했다. 지붕은 녹아 내렸고 벽이 산산이 흩어졌다. 수정 조각이 상공을 휩쓸며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광휘를 내뿜기 시작했다.
마력 폭풍이었다.
"오, 이렇게 아름다울 데가. 마치 연회 무대를 보는 것 같군요."
황금빛 원이 재빨리 발밑에 나타났다. 헤이딘이 수호 영역을 깐 모양이었다. 벤트레스가 그걸 보고는 개소리를 내뱉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는데도 저럴 수 있다니 과연 일관성 있게 미친 새끼였다. 같이 다니면서 느끼긴 했지만 이제는 존경심마저 자라났다.
씨발, 이런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닌데. 그러면 무슨 생각을 해야 하지?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 같소."
볼로디아는 허리를 숙여 로안을 안듯이 들어올렸다. 그런 와중에도 폭풍은 세를 더하고 있었다. 작디작은 수정 가루가 그녀의 팔뚝을 할퀴고 지나가며 잘고 깊은 상처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테네브로즈가 뒤편을 힐끔 바라보고는 반론했다.
"폐허 전체가 이 꼴인 것 같은데요. 도망치려면 아예 폐허 밖으로 나가야 할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 멀뚱히 서 있을 수는 없잖소."
의견을 구하려는 듯 볼로디아의 시선이 란드와르에게로 향했다. 순간적으로 이 상황에 더없이 적합한 단어 하나가 뇌리를 강타했다. 일시 정지. 그렇다. 슈팅 게임에서 탄막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더라도 일시 정지만 누르면 일단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마력 폭풍을 막아낼 방법은 차차 따져 보도록 하자.
"야, 구슬 꺼내. 꺼내서 멈춰."
"성물을 쓰란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뭐겠냐고."
"나으리,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제게 욕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것만 약속해 주십시오."
란드와르는 생각했다. 머리 나사가 덜걱거리다가 드디어 빠졌나?
"아니, 씨발아. 개소리 하지 말고. 개소리 하지 말고 일단 멈추라니까. 말 잘 들었다고 욕을 할 이유가 뭔데. 이러니까 내가 널 갈구는 거잖아."
"약속하신 겁니다."
테네브로즈의 얼굴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망설임 없는 태도로 란드와르의 검을 빼앗은 뒤… 아니, 잠깐만. 란드와르는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려냈다. 수정 구슬을 발동시키려면 목숨 두 개가 필요했고…….
"여기에 세 번째 눈과 반으로 나뉜 조각이 있으니, 꿈꾸는 분이시여, 부디 눈을 뜨십시오!"
모든 일이 한순간에 일어났다. 테네브로즈가 자신의 가슴팍에 칼을 찔러 넣는 동시에 절규가 뇌리를 가득 채웠다.
<안 돼! 멈춰야 합니다!>
하지만 제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빠르게 무너지며 흑암 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