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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38화 (139/258)

138화 상처 속에서 상처로서 보라, 상처를 (2)

시가전의 특징은 방어 측이 무조건 유리하다는 데에 있다. 건물 안에 무엇이 있는지, 길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확인하려면 일단 들어가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 디메리트만 극복할 수 있다면 역으로 허를 찌르는 것이 가능했다.

란드와르는 티아의 보조를 받아 들키지 않을 동선으로만 이동하고 있었다. 놈들의 본거지는 한때 회당이었던 대형 건물. 여섯 중 셋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지만 얕잡아볼 수는 없다. 폐허의 광기에 침식되는 과정에서, 마법적 능력은 일시적으로 크게 증폭된다.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인 셈이다.

<회당 안쪽에는 일곱 개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습니다. 주문 증폭에 쓰이는 것이 둘, 정신을 다스리는 것이 셋, 나우파나의 정밀함을 위한 것이 하나, 피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 하나군요.>

*  *  *

저승으로 향한 세 아카틀과 두 동료는 귀가 둥근 사람들을 마주쳤다. 그들 중 하나가 나와 세 아카틀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리는 이승의 사람들입니다. 아버지가 이곳에 수정 심장을 내던졌으므로 잃은 것을 되찾고자 합니다."

그 대답에 저승 사람들이 술렁였다. 그들은 한동안 논의하더니 다시 물었다.

"이승이란 어떤 곳입니까? 우리는 혼을 씻는 일만 해 왔지 그곳에 간 적이 없으므로 항상 궁금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세 아카틀은 그들에게 수정 심장이 있음을 알았다. 그는 호의를 얻고자 사람들을 이끌어 저승의 틈으로 향했고,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넘겨다보게끔 했다. 저승 사람의 우두머리는 이에 크게 만족해 이승 사람들을 늑대에게로 데려갔다.

"이들은 이승의 손님으로서, 수정 심장을 찾아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당신께서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다면 우리에게도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늑대는 세상을 혼란스럽게 한 까닭을 물었다. 세 아카틀은 아버지를 대신해 죄를 빌었고, 늑대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에 저승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그리고 감히 부탁드리건대, 우리가 이 사람들과 함께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 땅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늑대가 이에 크게 염려했고, 그들의 혼이 저승에 머무르는 까닭을 밝혔다. 그러나 과거의 일을 소상히 들은 후에도 저승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늑대는 그들의 부탁을 받아들였으나 세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로는 수정 심장은 깨졌다 다시 붙은 것이므로 취급을 조심하라는 것이며, 둘째로는 저승 사람을 너그러운 사랑으로 돌보라는 것이며, 셋째로는 저승의 일을 도맡도록 청지기 하나를 남기라는 것이었다.

*  *  *

황금빛 마력 지대가 볼로디아의 주위에 생겨났다. 보이진 않았지만 근처에 헤이딘이 있는 게 분명했다. 빠르게 쇄도하던 마력 줄기는 수호 영역을 만나자마자 힘을 잃고 사라졌다. 동시에 그녀의 발을 묶고 있던 주문이 효력을 다했다.

볼로디아는 즉시 돌아서서 반대편의 요정에게로 달려들었다. 이 요정은 염동술에도 어느 정도 소질이 있었다. 놈은 늑대의 앞발을 막아낸 뒤 가슴팍에 강한 충격을 일으켰다. 매서운 힘의 파동이 온몸을 휩쓸었다.

요정은 공격을 가하고서는 곧바로 튕기듯 물러났고, 다음 주문을 준비했다. 마력 갈래는 발을 묶었던 것과 똑같은 형태로 얽히고 있었다. 볼로디아는 전속력으로 달려 요정의 어깨를 덥석 깨물었다.

이를 악물고 몇 차례 흔든 다음 내던지자 놈의 목숨이 끊어졌다. 동시에 신탁이 벼락처럼 뇌리를 쳤다.

<서둘러 로안과 합류하십시오. 긴급 상황입니다.>

*  *  *

로안은 마른 침을 삼켰다. 당장 나아가 놈의 목에 칼을 꽂아 넣어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발은 수렁에 빠진 것처럼 무겁고 둔했다. 뒤를 돌아볼 때 이미 주문에 걸려 있었던 게 분명했다.

헤이딘은 언제 돌아오지?

그 질문이 번뜩였다가 즉시 사라졌다. 곁에 없는 사람에게 기도를 올리기에는 아직 일렀다. 얼음 송곳이 형체를 갖추는 것을 보자 요정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일었다.

"아, 잔재주를 부릴 줄 아는군!"

송곳이 쏘아지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힘이 목을 움켜쥐었다. 실패인가? 호흡이 희박해지면서 줄곧 외면했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시야가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어두워지더니…….

흐릿한 빛망울이 사방으로 퍼졌다.

바로 다음 순간, 로안은 완전히 다른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주 오래된 명화에서 본 적이 있었다. 나우파나의 신전이었다. 상아빛 복도에는 요정 신관들이 여럿 쓰러져 있었고, 화려한 색유리는 피를 한 꺼풀 덧바르며 붉은 광채를 내뿜었다.

멍하니 서 있는 로안에게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잡음에 모두 파묻히고 말았다. 얼굴조차 안개에 뒤덮인 듯 분간할 수 없었다.

문득 로안은 그 외에도 다른 인간이 몇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무언가를 논의하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따라 걸음을 옮겼고, 복도 끝의 작은 방으로 향했다. 굳게 닫힌 문을 부수어 열자마자 공기가 서늘해졌다. 은빛 휘장 너머에서 거대한 힘이 박동했다.

시야를 가리던 안개가 한순간에 걷히면서 모든 게 뚜렷해졌다. 천 년 전의 사람들이 여기에 있었다. 아즈리온의 첫 번째 화신과, 그의 동료들과, 언약궤 속 수정 심장에 손을 얹는 셀리멘이… 하지만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알세스트!

로안은 자신의 역할을 깨달았다. 여기에는 원래 알세스트가 서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폐허가 이 광경을 보여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셀리멘을 밀쳐내고 스스로의 몫을 다하라고? 하지만 환영 속에서의 일이 과거를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고민이 길어지기도 전에 언약궤를 중심으로 수정 덩어리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녹인 설탕물이 과일더미를 감싸듯 아치와 기둥과 창문이 매끄러운 막에 뒤덮였다. 비명과 절규가 두터운 벽 너머에서 윙윙거렸다.

하지만 인간들만큼은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도망가지도 놀라지도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 오빠, 만족해?

그 목소리가 로안을 천 년 후의 시간으로 밀어냈다. 소년은 숨을 헐떡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요정은 온몸이 꺾인 채 죽어 있었지만 각혈을 제외하면 눈에 보이는 외상은 없었다. 아이가 진흙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버린 모습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때는? 그리고 지금은? 로안은 한동안 굳어 있었다. 되돌아온 헤이딘이 놀란 목소리를 머릿속에 불어 넣을 때까지.

<잠깐만, 얘야, 그 팔은…….>

그는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마구잡이로 돋아난 수정 덩어리가 팔꿈치에서부터 시작해 손끝까지를 삼키고 있었다.

*  *  *

이스트리아에는 14개의 주성과 4개의 보좌성이 있으며, 각각은 상응하는 마력 갈래를 거느린다. 현실을 빚어내는 것은 결국 별의 운행인 셈이다. 다만 마법사의 역할은 거대한 흐름에서 실오라기 몇 올을 뽑아내, 거대한 태피스트리의 한 귀퉁이를 고치는 데에 있다.

따라서 수호 주문과 공격 주문은 그 본질이 같다. 같은 작용점에서, 누구의 힘이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지를 겨룰 뿐이다. 보호장의 원리는 상대의 마력 흐름을 자신의 흐름으로 상쇄시키는 것. 이러한 사실을 잘만 이용한다면 상대가 그려 놓은 마법진을 무효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란드와르와 테네브로즈는 회당 지붕에 올라와 있었다.

"꺼내."

"나으리, 이게 좋은 생각인지 긴가민가한데요."

"왜 갑자기 시비야. 지금까지는 가만히 있었으면서."

란드와르는 목소리를 낮춰 으르렁거렸다. 요정 놈이 손에 쥐고 있는 건 붉은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었다. 소량씩 덜어낼 수 있도록 특수 마개가 달려 있지만…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회당 안으로 던질 예정이었던 것이다.

"로야페타에 건물을 두 채는 올릴 돈을 폐허에 부어 버리겠다 이 말씀이시지요. 한 병도 아니고 두 병을요."

"이거 갖다 팔면 노르덴홀즈 애들이 모를 거 같아?"

액체의 정체는 노르덴홀즈 금고에 있던 영약이었다. 그것도 반세기가 넘도록 묵은 것들. 물약의 효능은 숙성 년도에 비례해 늘어나므로 그만큼 강력한 힘이 농축된 셈이었다.

"한 방이면 마법진 다 부식되는 거 알잖아."

"아끼는 게 좋지 않겠느냔 말입니다."

"두 병 던져도 하나는 남는다. 대충 살자."

돔의 정중앙에는 원형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끼워져 있었다. 아마도 햇살을 투과시키면서 회당 전체에 신비스러운 빛을 퍼뜨리는 용도였으리라. 란드와르는 천 년 전의 건축가를 위해 애도했고, 권능을 발동시킨 다음, 스테인드글라스에 칼을 찔러 넣었다.

유리가 산산이 부서지는 동시에 테네브로즈가 나섰다. 놈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물 구체에 영약을 부었고, 구멍 속으로 던져 넣었다. 허공에서 구체가 폭발하면서 연분홍빛 액체가 분수처럼 넓게 퍼졌다. 녀석은 마법진이 변색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란드와르에게로 홱 고개를 돌렸다.

"나으리, 그런데 이러면 저놈들도 영약 효과를 받게 되는 게 아닙니까. 이렇게 오래 숙성된 물건이면 팔이 반쯤 잘려도 다시 붙을 텐데요."

"아예 즉사한 놈은 재생이 안 되잖아."

란드와르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뛰어내렸다. 셀리멘의 마법이 착지할 때의 충격을 줄여 줄 터였다. 순식간에 발이 땅에 닿으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요정들도 천장을 주시하고 있던 차였다. 일단 즉발 혼란에는 면역을 띄웠고, 요정 한 놈이 가까이 접근하면서…….

의식하지도 못하던 사이에 몸이 움직였다. 칼날은 놈의 콧잔등을 부수고 머리를 관통했다. 영약이 사방에 뿌려져 있더라도 이런 부상을 입고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 눈가의 문양을 보아서는 나우파나 놈이었다. 팔을 약간 내리고서는 놈의 배를 걷어차 칼을 빼냈다. 핏방울이 튀었다. 거의 동시에 테네브로즈가 떨어졌다.

동요하는 기색은 없었다. 염동술사를 제외한 요정들은 산개한 상태로 각자의 위치에서 주문에 집중했다. 란드와르는 검신으로 날아드는 혈기 구체를 막아내고서는 라덱에게로 돌진했다. 인상착의는 알고 있었다. 놈이 명문가 출신이라는 것도, 하지만 아직은 살려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칼날이 놈의 어깨를 찢는 동시에 보랏빛 마력 줄기가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격통과 전투의 열기 속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칼자루로 라덱의 관자놀이를 거칠게 후려갈긴 란드와르는 다음 사냥감을 향해 몸을 돌렸다. 또 다른 주문이 허리를 피로 물들였지만 아픔은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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