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36화 (137/258)

136화 Jetztzeit (3)

일찍이 늑대가 꿈에 들 때 아홉 머리의 눈은 별이 되었고 두 심장은 해와 달로 변했다. 해는 미련이 남아 떠도는 혼을 불태웠으며 달은 땅과 저승을 오가며 망자를 실어 날랐다.

저승에 떨어진 수정 심장은 산산이 부서졌고, 그 소리에 늑대의 아홉 머리 중 둘이 꿈에서 깨어났다. 이윽고 찢기고 더럽혀진 혼들이 파편을 들고 늑대에게로 왔다.

"아 드지즈에게 선물하신 별이 여기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몫이 아니니 당신께 돌려드립니다."

심장 조각을 받아든 늑대는 모여든 넋을 살폈고, 그들이 다섯 신과 함께 떠난 요정임을 알아차렸다. 달을 타고 땅으로 돌아가는 법을 알려주었으나 누구도 응하지 않았다.

"우리는 땅의 일에 지쳐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신께 간청드리건대, 우리가 삶에서 얻은 고통을 잊게 해 주십시오. 이곳에서 넋을 쉬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늑대는 망가진 혼을 씻어 작은 덩어리로 나누었다. 그러자 그것은 요정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늑대는 이에 흥미를 느끼고 혼에 자신의 숨결을 섞어 나누었다. 그러자 그것은 다시 요정과도, 인간과도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인간과 늑대인간이 만들어졌다. 두 종족은 늑대의 시종으로서 저승으로 내려오는 넋을 닦아 올려 보내는 일을 맡았다.

*  *  *

벤트레스 일행은 요정 전사의 인도를 따라 움직였다.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번번이 수정 거수가 있었고 거수의 잔해를 헤치면 전사의 분신을 찾을 수 있었다. 똑같이 생긴 두 형체가 손을 맞잡더니 한 덩어리로 합쳐지는 모습을 본 순간, 벤트레스는 자신의 통찰이 정확했음을 확신했다.

전사의 검술은 추한 외모마저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바꿔놓을 만큼 뛰어났다. 뿐만 아니라 분신을 맞아들일 때마다 목소리 역시 뚜렷해지고 있었다. 별들의 운행이 나타낸 것이, 인간들이 노리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들은 묘한 기대감 속에서 다음 거수를 찾아 나섰다.

"친우여… 모두 어디로 갔지?"

그 질문을 처음으로 듣게 된 것은 일곱 마리의 거수를 쓰러트린 뒤였다. 벤트레스가 말을 받았다.

"떠오르는 게 있으십니까?"

"떠오른다고? 무엇이?"

"친우를 찾고 계셨지 않습니까."

"그래, 친우… 분명히… 세 아카틀… 솔로틀… 그리고 나는……."

전사는 혼란스러운 듯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고개를 푹 꺾어 바닥을 보았다. 질문을 이어 보아도 평소처럼 돌아오는 말이 없었다. 이윽고 벤트레스는 즐거운 듯 웃으며 다른 세 요정에게로 몸을 돌렸다.

"세 아카틀은 황제의 이름입니다. 타마기스에 갇힌 시체 제왕 말입니다. 옛 말로는 우리의 왕자라는 뜻이지요. 제국이 세워지기도 전, 윰 시밀이 아 드지즈의 심장을 뜯어 저승에 던졌을 때에, 황제는 윰 시밀의 아들로서 그 심장을 가져오는 임무를 맡았다고 합니다."

벤트레스는 오래된 신화를 읊기 시작했다. 모티스를 비롯한 다른 요정들에게는 낯선 내용이었다. 제국 시절의 기록은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그중에서도 황제의 이야기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전쟁이 끝나고부터 타마기스에 대한 것은 금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모티스가 아는 것은 셋뿐이었다. 황제가 아주 오래도록 제국을 통치했다는 것. 대전쟁 초기에, 힘을 탐내 아버지의 심장을 빼앗았다는 것. 그러자 역병의 저주가 타마기스 영토를 휩쓸었다는 것.

"황제는 저승에서, 심장과 함께 제국의 일꾼이 될 두 종족을 데려왔습니다. 1교구 서고의 기록물에는 황제가 홀로 그 일을 해낸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만……."

"누군가가 더 있었다는 이야기군요."

"다른 몇몇 전설에는 황제의 쌍둥이 동생과 친구가 등장합니다. 동생의 이름은 솔로틀이고 친구의 이름은 나나우아친이지요. 솔로틀은 영혼과 자연을 다루는 마법에 모두 능했고 나나우아친은 뛰어난 검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둘에 대한 언급이 완전히 사라져요.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황제는 분명히 저승에 다녀왔고, 엄청난 것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황제가 치른 대가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물음이 시사하는 바는 명백했다. 황제는 저승에서의 전리품을 위해 둘을 내버렸고, 기록에서도 완전히 지워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나우아친의 흔적은 수정 심장에 남아 아득한 세월을 버텨내고 있었다.

"나는 이 요정이, 나나우아친이 수정 심장 그 자체이자 폐허의 핵심일 거라고 믿습니다. 자신의 분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짚어내는데다가 광기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지요. 나나우아친을 만나기 전까지는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울렸지 않습니까."

벤트레스는 거기까지 말하고서는 다른 셋을 훑어보았다. 회심의 연설을 마친 뒤 반응을 기다리는 웅변가처럼 보였다. 이윽고 그들 중 하나가 걱정과 안도를 절반씩 섞어 물었다.

"그러면 라덱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열 명은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천벌을 받습니다."

그는 즐거운 듯 어깨를 떨며 웃다가 근처의 나뭇가지로 팔을 뻗었다. 톱니처럼 깔쭉깔쭉한 잎사귀를 떼어내 으적거리자 핏물이 턱을 따라 흘러내렸다. 모티스는 은발의 남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만 고개를 숙였다.

이 미친 역사학자를 죽이는 것이 토텐부르그에게 좋은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쉭겐이 그의 목숨을 인질로 잡고 있을지라도. 마력 부종 억제제가 걸린 일일지라도… 만약 그래야 하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암살 지령을 동족의 명운 뒤편으로 밀어 놓았다.

*  *  *

벤트레스와 결별한 후, 라덱과 그를 따르는 요정들은 순조롭게 도시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었다. 물론 겉보기로만 그랬을 뿐이지 모든 게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실은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었다는 게 적확한 설명일 것이다.

그들은 거수를 한 차례 더 마주쳤고, 잔해에서 청람색 머리의 요정 소년을 발견했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어딘가를 가리키기만 했다. 이윽고 요정들 중 하나가 메기도의 어릴적 모습을 떠올려냈다.

모두가 그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나우파나 폐허에 다녀온 후로 마력 폭풍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얼마 전에, 로야페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

이미 일행 중 몇몇은 폐허의 속삭임에 이끌리고 있었다. 이 판국에 메기도의 유령을 따라가서 득이 될 일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라덱 일행은 유령을 그 자리에 버려두고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 한 명이 수정으로 변했다. 그제야 누군가가 벤트레스의 충고를 떠올려냈다. 요정 탐사대원들은 제물용 단검으로 팔뚝을 그었고, 고통을 등불 삼아 눈부신 암흑을 헤쳐 나갔다. 그 등불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었다.

*  *  *

란드와르 일행은 나우파나 도심으로 진입했다. 모랫빛 벽을 장식한 문양과 정확히 재단된 도로 구획은 이 모든 것이 천 년 전의 흔적임을 잊게 만들 만큼 정교하고 매혹적이었다. 도로변을 따라 늘어선 흰 기둥 위로는 아치가 이어지면서 지붕을 떠받쳤고, 포물곡면을 이루는 돔은 수정 동굴에 떨어진 진주알처럼 보였다.

셀리멘의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란드와르는 문득 수상쩍은 낌새를 감지했다. 불안은 골목 사이를 지나는 요정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현실이 되었다. 그는 다른 일행을 이끌고는 건물 뒤편에 몸을 숨겼다.

<현재로서는 아홉으로 파악됩니다. 라덱이라 불리는 요정이 지도역을 맡고 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티아가 보고했다. 천계에서의 추적은 옛 신의 영향력이 강한 곳에서는 효과가 떨어졌지만 이렇게 지근거리에 있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감시가 가능했다. 아홉. 정원보다 네 명이 더 많았다. 요정들은 어떤 기억 조각을 만났을까? 메기도일까, 아니면 고대의 전사일까?

<둘 다 아닙니다. 기억 조각과 무관하게,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 같군요.>

그 요정들, 정신은 멀쩡합니까?

<셋쯤은 이미 반쯤 넋을 잃은 상태입니다. 다른 요정들을 멍하니 따라다니고만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전투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니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어쨌거나 선택지는 둘이다. 요정들을 피해서 외곽으로 돌아가거나, 맞부딪혀 보거나. 란드와르는 볼로디아의 의견을 구했다.

"상대는 아홉이라는군요. 그 중 셋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고요. 기억 조각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내버려두면 모두 수정으로 변하겠지만… 그 전에 붙잡는다면 야스와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들 중에 직분이 높은 이가 있소?"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지도자의 이름이 라덱이라는 것밖에는 몰라요."

테네브로즈가 곧바로 말을 얹었다.

"라덱이라면 제 바로 밑에 있던 놈인데요. 상황만 괜찮았더라면 부제사장직에 오르고도 남았을 겁니다. 알고 있는 것도 그만큼 많을 테고요."

"그렇다면 한 번 맞붙어 보는 것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이 드오. 최소한 우리는 저쪽의 동태를 모두 살필 수 있잖소. 그건 엄청난 이점이지……."

란드와르도 동의했다. 그 판단을 뒷받침하려는 것처럼 티아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저쪽에서도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말로 설명하는 건 비효율적이니, 정확한 위치를 전송해 드리죠. 양해 바랍니다.>

곧바로 뇌리에 지식이 옮겨왔다. 망치를 천계로 돌려보내고 한손검을 쥐었다. 요정처럼 작고 빠르고 부드러운 것들을 상대할 때에는 한손검이 더욱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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