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34화 (135/258)

134화 Jetztzeit (1)

윰 시밀은 아 드지즈의 심장을 뜯어 저승에 내던졌다.

그 소란에 늑대의 아홉 머리 중 둘이 꿈에서 깨어났고, 세계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들은 땅에서 벌어진 일을 부끄러워하여 늑대를 피했다. 세계를 가꾸기로 약속했으나 다툼만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윰 시밀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먼저 태어난 이는 세 아카틀이라 불렸으며 나중 태어난 이는 솔로틀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세 아카틀은 모든 이의 앞에 섰으나 솔로틀은 그 반대로 불행의 상징이 되었다.

윰 시밀은 세 아카틀에게 저승으로 내려가 수정 심장을 되찾으라 명했다. 젊은 반신은 그 말에 겁먹고 자신의 거처에 틀어박혔다. 며칠이 지나 솔로틀이 그를 찾았다.

"형님,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밤하늘은 별을 떨어트리며 땅은 하늘로 치솟는데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세계가 무너진다면 형님께서 이끌 무리가, 그들이 빚어내는 기쁨과 행복이 모두 흑암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는 세 아카틀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이 배운 마법을 선보였다. 반신은 동생의 설득에 힘을 얻어 밖으로 나왔고, 말했다.

"그렇다면 동생아, 같이 저승의 틈을 열자꾸나. 우리는 본디 한 몸이었으니 힘든 일도 함께함이 옳을 것이다."

"저는 형님과 달리 두 발이 뒤틀린 불구일 뿐입니다."

"너는 마법에 능하니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허나 이 발로 어찌 형님의 걸음을 따를지요?"

"나나우아친을 데려오거라. 그이가 네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나나우아친은 쌍둥이의 친우이자 뛰어난 검사였으나 얽은 살갗과 추한 외모 때문에 질시 받았다. 그는 세 아카틀의 권유를 받아들였고, 저승으로 향하는 길에 발을 들였다.

*  *  *

어둠달의 벤트레스는 아자라스의 조카이자 스티그미르의 아들이다(즉, 테네브로즈와는 사촌간이 된다). 물결치는 은발은 어깨까지 길러 느슨하게 묶었고, 항상 긴 소매의 옷을 걸치고 다닌다. 장신구를 몹시도 좋아하는데 보석으로 장식된 고리 귀걸이는 그의 애장품 중 하나다.

그는 1교구의 서고 관리자로서 온종일 지하서고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낸다. 그곳을 채운 것은 제국 시절부터의 기록물인데 오래된 신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요정에게 벤트레스는 역사학자를 자처하는 괴짜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나우파나 폐허에서 네 차례 살아 돌아온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으며, 가끔은 실로 예리한 통찰을 보이기도 한다.

벤트레스의 초점 없는 눈은 많은 것을 본다.

어둠달의 요정들은 그를 차기 가주로 점치고 있으며 은빛매의 판단 역시 동일하다. 벤트레스는 그런 언급이 들려올 때마다 자리를 피하지만, 정치적인 사안은 대개 당사자의 의향과 무관하게 굴러가기 마련이다.

*  *  *

멀리서 보았을 때 숲은 어둠으로 가득한 수렁 같았다. 그러나 뒤엉킨 가지를 헤치고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 모든 것이 돌변했다.

사방은 매끄럽고 번들거리는 수정막으로 뒤덮여 있었다. 껍질의 두께는 그게 폐허에 갇힌 기간을 대언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신록이 차가운 빛을 발했으며 천 년 전에 세워진 건물들은 세상과 두 뼘만큼의 거리를 두고는 반짝였다. 마치 난쟁이로 변해서 설탕 공예로 장식된 만찬 탁자를 걷는 듯했다.

이 기기묘묘한 전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람들이었다. 투명하고 단단한 외피 아래에는 생전의 혈색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바로 어제 이곳에 발을 들인 모험가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복식은 제국 시절의 것에서부터 인간의 것까지로 다양했다. 갖가지 시대가 한데 멈춘 모습은 연구 주제를 정하지 못한 역사학자의 책장을 연상시켰다.

이윽고 벤트레스가 입을 열었다.

"폐허는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난 곳입니다. 잠들 필요도 없고 무언가를 먹지 않아도 괜찮지요. 따라서 누차 이야기했다시피, 가장 중요한 것은 굴복하지 않는 정신에 있습니다. 속삭임을 받아들인 다음부터는 몹시 빠른 속도로 수정화가 진행되고, 결국엔 이와 같은 박제로 변하고 말아요. 폐허 그 자체가 되는 겁니다."

열다섯 명의 요정 중에서 실제로 폐허를 탐색한 경험이 있는 자는 넷에 불과했다. 나우파나 폐허는 모험가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 높았지만, 광기에 휘말리지 않고 빠져나온 이도 몇몇이 있었던 것이다. 어둠달의 벤트레스가 그 넷 중 하나였다.

"즉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나우파나 폐허는 거대한 역사입니다. 하나는 전체가 되고, 그럼으로써 영원히 기억되지요."

"너무 낭만적인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나?"

또 다른 경험자인 라덱이 으르렁댔다. 폐허에 발을 들인 후로 둘은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었다.

"나는 초심자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을 뿐이에요. 게다가 이곳의 연구가치가 높다는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흥미로운 부분이 아주 많아요.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우리의 목표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제기랄, 자네 같은 사람이 여기에 따라오다니 통탄스럽군. 1교구 서고에나 틀어박혀 있었더라면 서로 좋았을 텐데."

"라덱, 나는 여기에 네 번이나 왔어요. 모두 살아 돌아왔습니다. 3교구의 추적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지요."

라덱은 짧은 신음을 흘리더니 입을 다물었다. 벤트레스는 이름난 괴짜였지만 그를 함부로 대하는 신관은 없었다. 그는 어둠달의 일원이었고 가문의 이름에 걸맞는 실력의 마법사였다.

침묵이 열다섯 명의 요정 사이에 엷은 막을 만들었다. 그러자 들풀이 발밑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점차 선명해졌다. 유리로 감싼 실타래를 밟는 듯했다. 윙윙거리는 속삭임이 그 위에 얹혔다.

모티스는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좋다, 폐허는 위험하고, 끔찍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의 주특기는 염동술을 활용한 검투(劍鬪)였고, 제물을 바치거나 누군가를 고문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영혼이 없는 마력 돌연변이를 상대할 때에는 검술이 빛을 발하곤 했다. 그게 바로 그녀가 폐허로 보내진 이유였다.

그리고 또 다른 목적도 있었다. 일드얀은 폐허 원정을 기회로 삼아 벤트레스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물론 벤트레스는 몇 번의 탐색에서 살아 돌아왔으니만큼 ‘운 좋게 죽을’ 가능성은 낮았다. 누군가가 목숨을 끊어야만 했다.

그녀는 이 상황이 다분히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별의 운행이 뒤틀리고 인간이 나우파나의 신위를 탐내는 시기에, 요정들은 여전히 각자의 꿈을 좇고 있는 것이다. 일드얀은 권세를 놓지 못했고 벤트레스는 나우파나 폐허를 연구 대상으로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정지!"

기억을 더듬어가던 모티스는 갑작스러운 외침에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형체가 나뭇가지를 부수며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정 거수였다. 그녀는 허리춤의 칼집에 손을 얹고는 돌연변이를 주시했다. 투명한 덩어리가 인간도 짐승도 아닌 형태로 뭉쳐 있었고, 체고는 요정 키의 두 배에 달했다.

놈은 자그마한 침입자들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거리던 수정 덩어리가 우박처럼 떨어졌다. 부상자는 없었지만 분위기가 급변했다. 이 돌연변이가 침입자들에게 적대적이라는 것만큼은 명백했다.

"염동술사는 나아가서 움직임을 봉쇄하고, 나머지는 후열에서 주문을 준비해라!"

라덱의 지시가 신호탄이 되었다. 칼을 뽑아든 모티스는 앞으로 쏘아지듯이 날아갔다. 세 명의 염동술사가 그 뒤를 따랐다. 나우파나의 마법에는 능하지만 검술에는 재능이 없는 이들이었다.

염동술은 잘못했다가는 시전자의 몸을 산산이 부수어 놓을 수도 있었지만 잘만 활용한다면 큰 도움이 됐다. 그녀는 가볍게 도약한 후 발밑에서 연쇄적으로 무색 마력을 터뜨렸다. 정확히 조율된 폭발은 요정 검사의 몸을 단번에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그녀는 각각의 동작에 큰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 검무를 펼쳐 나갔다. 검 자체는 속도와 기동성을 위해 폭이 좁고 긴 형태를 취했고, 파괴력은 검신 전체에 덧발린 무색 마력으로부터 왔다.

몸체에서 떨어져 나온 수정 덩어리는 그대로 땅에 나뒹구는 대신 허공을 맴돌며 요정들을 방해했다. 마치 파편 각각이 의지를 지니고 공격해오는 듯했다. 이윽고 빛무리가 염동술사 하나의 목을 갈랐다. 선혈이 치솟았다.

사방을 뒤덮은 수정 덩어리는 핏빛을 되풀이하면서 일대를 똑같은 색으로 물들였다. 마치 맑은 물에 떨어트린 염료 한 방울이 여러 갈래로 풀려나가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고, 다시 투명하고 찬란한 반짝임이 온 세상을 점거했다. 코끝에 맴도는 혈향만이 전사자의 존재를 대언했다.

"복귀하라!"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라덱의 외침이 들려왔다. 모티스는 즉시 방향을 돌려 뒤로 물러났고, 다른 염동술사들도 비슷한 동작을 취했다. 마지막 이까지 몸을 빼는 동시에 거대한 혈마력 덩어리가 수정 거수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그녀는 전투의 열기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면서, 다른 요정들이 쓰러진 돌연변이를 향해 다가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전사자의 주검은 빠르게 녹아내려서 핏빛 융기로 변해 있었다.

"흥미롭군요. 이 직전에 조사를 왔을 때에는 움직이는 게 전혀 없었어요. 라덱, 당신도 알겠지만, 그 전에도 마찬가지였죠. 이곳은 천 년간 박제 보관소로만 남아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돌연변이들이 전시품을 헤집어놓고 다니게 된 겁니다. 어째서일까요? 인간의 계략이 폐허까지 영향을 미친 걸까요, 아니면 심장 자체의 문제일까요?"

"자네는 좀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것 같군.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굳이 그렇게 떠들면서 주의를 산만하게 할 필요가 없지 않나."

"당연한 사실을 환기하는 건 영감을 촉발시키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일단 이 돌연변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봐야겠군요. 오염 흔적이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이런 걸 계속 마주칠지도 몰라요."

"이런 게 더 많이 나온다면, 글쎄, 열다섯으로 충분한지 모르겠군. 열다섯이라. 조만간 열넷이 될 것 같기도 해. 내가 자네를 살려둘 만큼 인내심이 강한 것 같지 않아서 걱정이란 말이야. 어쨌건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해. 열넷이든 열다섯이든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야."

"라덱, 나도 명문가 출신이에요. 너무 얕잡아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나저나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죠. 일행이 많을수록 수정에 잡아먹히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게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그건 인간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벤트레스는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라덱의 뒤를 따랐고, 잔해 한복판에서 예상치 못한 전리품을 발견했다. 낯선 복식을 갖춘 요정이 파편 사이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허리춤에는 검을 차고 있었고 얼굴은 심하게 얽었다. 모두의 얼굴에 당혹이 일었다. 이건 누구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고?

"나는… 친우를 찾고 있다. 잃어버렸어."

남자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그런 것이었다.

이윽고 그가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가 아님이 밝혀졌다. 모든 질문에 똑같은 답만을 읊었던 것이다. 친우를 찾고 있다는 것. 다른 둘이 그를 방해한다는 것. 그 둘이란 요정 소년과 인간 여자라는 것. 그러니 도와 달라는 것.

"미치광이인 것 같아. 이런 걸 몇 번 본 적이 있어. 곧 수정에 뒤덮일 테지. 내버려두고 가자고."

"당신은 벌써부터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요. 속삭임에 휘말리더라도 이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거수의 잔해에서 나온 요정이라면… 충분히 연구 가치가 있어요."

"당연한 사실을 다시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네야말로 머리가 처참하게 망가진 것 같군. 우리가 여기 온 게 그 시답잖은 역사 연구 때문인가, 아니면 야스와다의 명운 때문인가?"

"라덱, 우리는 별자리를 따라 여기에 왔습니다. 그리고 천 년간 없었던 돌연변이가 갑자기 나타났어요. 그 잔해에서는 제국 시절의 요정이 튀어나왔고요. 이 셋이 연관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겠지요."

다시 둘의 의견이 갈렸다. 벤트레스는 요정을 도울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라덱은 무시하고 중심부로 나아가기를 원했다. 격론은 길게 이어지다가 파국에 가까운 형태로 끝났다.

"혈족을 감싸려는 건 아니겠지!"

"테네브로즈 말입니까? 그 애가 내 사촌동생인 건 사실이죠. 여기에서 재회하게 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이 요정은 친애하는 아우님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그저 직관을 발휘하고 있을 뿐입니다."

"좋아, 네 번이나 살아 돌아간 게 무슨 증명서쯤 되는 줄 아나본데, 착각하지 말라고. 폐허의 광기가 자네의 광기를 이기지 못했을 뿐이라는 데에 걸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난 자네를 내칠 수밖에 없어―이 원정대의 대장은 나야!"

"그리고 나는 부대장이지요. 자, 여러분 중에 나를 따를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요. 내 통찰은 상당히 성능이 좋으니 말입니다……."

나머지 대원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두 파벌로 갈라졌다. 벤트레스의 지지자는 셋에 불과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여전히 우아한 어조로 떠들어댔다.

"영리한 이가 셋밖에 없군요. 나머지에게는 충고를 하나 하겠습니다. 목소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면 칼로 손목을 그어요. 다리가 망가지면 걷기 어려우니까요. 피와 고통은 명징한 정신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입 다물게. 자네 헛소리는 이제 지긋지긋해."

"라덱, 나는 항상 옳은 말을 해요. 우매한 사람들이 내 현명함을 차마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요. 내가 네 번이나 살아 돌아온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야스와다에 돌아온 후로도, 속삭임에 이끌리지 않은 이유는요?"

그는 소매를 걷어 상흔이 낭자한 팔뚝을 보여주었다. 흉터 위에 흉터가 거듭 새겨진 탓에 팔꿈치 아래부터의 살갗은 거친 모직물처럼 보였다. 그 상흔 중에는 아문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연분홍색인 것도 있었다.

분위기가 싸늘해지더니 두 명의 요정이 서로 자리를 바꿨다. 라덱에게 있던 한 명은 벤트레스에게로 갔고 벤트레스의 곁에 있던 한 명은 라덱에게로 온 것이다.

이윽고 열 명의 요정이 폐허의 눈부신 광휘 속으로 사라져갔다. 벤트레스는 그 모습을 즐거운 듯 바라보다가 자신을 따르기로 결정한 셋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못미더운 사람이라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남아 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자, 그러니, 라덱을 위해 안녕을 빌도록 합시다. 저쪽에서는 아마 우리를 저주하고 있겠지만."

그 셋에는 모티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대로 라덱을 택한다면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벤트레스가 객사하길 비는 것뿐이었다. 그가 네 번씩이나 폐허에 다녀왔음을 감안한다면 가능성이 낮은 미래였다. 검사를 따라가자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니까, 죽이기 위해서라도 함께해야만 했다.

거기까지 계산을 마친 모티스는 이어지는 문장을 듣고는 흠칫 놀랐다.

"환영검이 나를 따르니 든든하군요. 당신의 이름은 어디에나 드높으니까요. 나는 1교구 소속이라 접할 일이 많지 않았는데,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벤트레스가 악수를 청하듯 팔을 내밀고 있었다. 모티스는 허공에 멈춘 손을 보고는 자문했다. 이 작자는 자신이 여기에 남은 이유를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그러나 번민에 휩싸이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건 일드얀의 지령을 처리한 후에 곱씹어도 될 문제였다. 자신은 벤트레스를 죽이고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토텐부르그와 남은 삶을 함께하리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는 깡마른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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