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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16화 (117/258)

116화 good were it for that man if he had never been born (2)

무슨 생각을 하면서 바깥으로 나왔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오두막 문이 눈앞에서 닫혔다. 메기도는 무른 땅에 박힌 허수아비마냥 휘청거리며 본가로 향했다.

해가 하늘 중간을 지나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머리 위를 덮은 나뭇잎들이 햇살을 체 치듯 했다. 폐허의 벽돌 조각처럼 흙바닥에 널브러진 빛의 흔적. 어쩌면 헤이딘의 방에서 보았던 그 빛이.

황금빛 마력이 어느 학파의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헤이딘이 산지기의 오두막에서 따로 사는 이유도, 낮에도 암막을 치고 문을 안에서 닫아거는 이유도 모두 이해가 갔다.

이 사실이 드러난다면 고발장이 날아들 것이다. 명문가의 일원이니만큼 평민이나 노예들처럼 3교구에서 제물로 바쳐지지는 않겠지만 곤혹을 겪을 게 뻔했다. 아버지 역시 무사하지 못하리라.

숲길을 지나 방으로 돌아온 메기도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노을이 밀려들어오더니 공기가 희박해졌다. 헐떡이다가 물을 찾아 머리에 부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찬 물이 스미다가도 이마의 열이 축축한 기운을 모두 앗아갔다.

고민은 길었지만 생각의 갈래는 어김없이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메기도는 헤이딘이 반역자일지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대전쟁의 상흔을 절감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동족을 사랑한 적도 없었다… 소년에게 변함없는 온기를 안겨 준 이는 오로지 삼촌뿐이었다.

날이 밝자마자 메기도는 오두막으로 향했다. 헤이딘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지만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내일이 있고 모레가 있었다. 그리운 얼굴이 기나긴 거절 너머에서 나타났을 때, 메기도는 거울 앞에서 수없이 연습했던 말들을 입에 담았다.

"누구한테도 떠들지 않을게요. 삼촌께서 기꺼이 가르쳐 주신다면, 우리네 주문보다는 와그다스의 것을 배울 수도 있을 거예요. 삼촌의 연구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냐?"

"어떤 마법인지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삼촌과 함께 있고 싶어요."

헤이딘의, 청람색 눈이 순간적으로 텅 비었다. 가끔은 어떤 표정도 없는 얼굴이야말로 가장 뚜렷한 표정이 된다. 해가 차오르는지 가라앉는지 알지 못할 만큼 깊숙한 숲의 복판. 그럼에도 모든 것을 넘어 반짝이는 빛 조각들. 마치 수면에서 부서지는 햇살처럼. 숨 쉬듯 짧은 찬란함 끝에 세상이 다시 어둑해진다.

"돌아가서 네 아버지에게 마법을 배워. 평범한 아이들처럼 신관이 될 꿈이나 꾸란 말이다.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말거라."

오두막이 헤이딘을 집어삼켰다.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메기도는 어둠 속에 내버려졌다.

*  *  *

메기도는 세상이 무너졌다고 믿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몇날 며칠을 그저 누워만 있었다. 그러나 한 명의 믿음으로 무너질 세계라면 지금껏 존속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모든 이의 시간은 그대로 흘러갔다.

그날로부터 보름 뒤에는 연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나트람이 3교구 부제사장직에 오른 것을 축하하는 만찬이었다. 헤이딘은 당연하다는 듯 오지 않았고 나트람은 조금 언짢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중앙 홀 구석에 처박힌 둘째 아들, 메기도를 이끌고는 2층의 테라스로 걸음을 옮겼다.

"말을 전하라고 했을 텐데."

"가 봤자 서로 얼굴만 붉힐 뿐이라 그러시던걸요."

"그리고?"

"그게 다예요. 그 말을 듣고서부터는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한 번은 보았지만 메기도는 마지막 만남을 숨겼다. 입 밖에 낼 일은 아니었다.

"줄곧 오두막에 가지 않았느냐. 근 며칠은 네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지만……."

"가긴 했지만 문을 열어 주지 않으시더군요. 본가로 돌아가 아버님께 마법을 배우라고 하셨어요. 다시는 오두막에 오지 말라고. 제가 무언가 실수를 했던 모양이에요."

순간 마법으로 인한 격통이 가슴팍을 치고는 달아났다. 메기도에게는 익숙한 감각이었다.

"쓸모없는 놈."

질타가 뒤를 이었지만 그는 주눅 들지 않고 아버지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이런 취급은 언제나 겪던 것이었다. 삼촌과의 일로, 자신에게 괜한 화풀이를 할 뿐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나트람은 오두막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이나 하고 있을까?

어쩌면 눈감아주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지. 삼촌을 황무지에서 찾아온 건 아버지라고 했으니까. 그곳에는 슈문의 유적이 있다. 황금빛 마력이 넘실대는 지성소가. 금지된 마법과 잊힌 지혜를 담은 서고가.

헤이딘은 황무지에서 실종되었다. 전대 가주가, 메기도의 할머니가 그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나트람은 황무지로 향했다. 그리고 제 어머니의 명령대로 동생과 함께 돌아왔다… 그러니 그때 이미 모든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본가에서는 줄곧 외톨이였고 이제는 헤이딘에게까지 축객령을 들었다. 오래도록 가슴팍에만 묵혀둔 말이 혀끝까지 치밀었다. 그걸 소리로 바꿔 놓는 데에 필요한 것은 들숨 한 모금. 그리고 입이 달싹이면서…….

"아버님과 삼촌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몰라요. 하지만 그건 두 분끼리의 문제고, 저와는 아무 관련이 없죠. 저는 그냥 삼촌과 비슷한 겉모습으로 태어났을 뿐이에요. 삼촌은 할머니를 닮으셨다고 하니까 저도 할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거겠죠. 그게 제 잘못인가요? 삼촌을 보고 싶으셨더라면, 아버님께서는 제게 화풀이를 하기보다는 오두막에 가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시는 게 어떤가요?"

그러나 예상했던 호통이나 격노는 없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좁힐 뿐이었다. 이윽고 나트람의 표정에 묘한 미소가 일었다. 미소? 평소의 웃음과는 무언가가 달랐다.

침묵이, 문장들 뒤편에 도사린 불안이 메기도를 바짝 뒤따라왔다. 거리를 벌려 놓으려면 무슨 말이든 쏟아내야 했다. 반항심도 섞였을 것이다. 숨이 가빠지나 싶더니 헤이딘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서 윙윙거렸다. 나트람을 마법 스승으로 삼으라는 그 소리가. 본가에서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알 텐데도…….

"그래요, 아버님께서 직접 가보시죠! 오두막에 가서 당신 동생이 뭘 하고 있는지 봐요! 그리고 스스로 결착을 지어요! 삼촌이 반역자인 것도, 당신과 줄곧 사이가 안 좋았던 것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그 외침이 머릿속을 벗어나자마자 후회가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  *  *

그때 은빛매의 쉭겐 역시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나트람에게 인사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왔을 뿐이지만 뜻밖의 수확을 얻은 것이다. 연회가 끝난 뒤 그는 은빛매의 주인, 일드얀에게 이 일을 전했다.

*  *  *

당시 의회에서는 어둠달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다. 은빛매가 첫째 가문의 지위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장기말이 필요했다… 쉭겐의 보고를 들은 일드얀은 나트람을 불러들였다.

"…영원한 패배자도, 영원한 승리자도 없어. 은빛매는 한때 아홉 번째 가문이었지만 이제는 의회에서도 첫 번째라네. 자네의 가문 역시 그렇게 될 수 있지."

나트람은 눈썹을 치켜뜨고는 자신 앞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 요정은 야스와다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았고 백 해가 넘는 시간에 걸쳐 가주 자리를 지켰다.

일드얀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유독 긴 수명뿐만이 아니었다. 의회에서의 위치는 그녀의 정치적 감각을 대언했다. 야스와다를 다스리는 것은 <선택받은 자들의 의회>라 불리는 통치기구였고, 여기에 속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여섯 가문뿐이었다… 그리고 일드얀이 이끄는 은빛매는 지난 수십 년간 의회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나도 자네처럼 젊은 나이에 이 자리에 올랐다네. 어떤 상황인지를 알지. 우리가 손을 잡는다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도."

가주 자리는 보통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가주의 형제나 자매가 아니라 그 후세대 중 하나가 직분을 물려받는 것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나트람은 유독 젊은 편이었다. 백 살을 겨우 넘긴 나이에 가문을 다스리게 된 이는 많지 않았다.

능력은 충분했다. 마법 실력에 한정하자면 분명히 그랬다. 소년 시절에는 성년식을 치른 요정들과의 결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뒀고 지금은 3교구의 부제사장이었다. 싸우고 죽이고 고문하는 데에 그보다 능한 요정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트람의 심성에 유독 뒤틀린 면이 있다고, 그게 언젠가 젊은 가주의 발목을 잡으리라고 말하곤 했다. 정치적인 암투에는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렇군요……."

나트람은 무심한 태도로 중얼거렸다. 그에게는 일드얀의 제안보다도 도시의 역학이 더욱 놀랍게 느껴졌다. 언제나 그랬다.

한둘이 아니라 수십마저도 손쉽게 죽여 없앨 수 있는 요정들이 각 명문가의 이름 아래 우글거리는데, 야스와다는 어떻게 이토록 평화로울 수 있단 말인가? 정치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마법사가 다른 마법사 앞에 무릎 꿇고 빌게끔 만드는 것일까?

"그렇군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그는 쉭겐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런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기에는 죽일 이가 너무 많았다. 헤이딘과 메기도는 말할 것도 없고, 이 교활한 늙은이부터가 그랬다.

일드얀의 제안은, 손을 잡자는 것. 별불꽃이 선택받은 자들의 의회에 들어오도록 힘써 주겠다는 것. 그 전에 헤이딘의 일을 먼저 처리하자는 것.

은빛매가 앞장서서 헤이딘을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수사를 맡는 추적자 역시 은빛매와는 무관한 인물일 거라고. 그것만으로도 나트람에게는 첫 번째 임무가 주어진 셈이었다. 고발로부터 가문을 지켜내는 것이다.

"일단은 내 능력을 보겠다는 말씀인 줄로 알겠습니다."

"자네의 가치를 알고 싶을 뿐이야. 마력 갈래를 다루는 실력은 익히 알고 있네만, 그런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지. 진실을 감추고 적을 회유하는 능력은 때때로 수천 획의 각인보다도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네."

"그 점은 언제나 유감으로 여기고 있지요."

더욱 유감인 부분은 자신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간에, 고발장은 날아들 것이다. 게다가 이 상황을 모면한 후로도…….

"조언을 하나 해 주자면, 누군가를 가둘 때에는 인대를 끊어내는 게 좋다네. 손이 멀쩡하면 어떻게든 풀어낼 방법을 찾거든. 구속구는 의외로 쉽게 풀리지."

일드얀은 헤이딘을 살려 두기를 원했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모두가 이 일을 잊은 후에도, 계속. 배신자의 존재는 번견을 붙들어두는 목줄이 될 것이었다.

나트람은 대답에 앞서 숨을 깊이 들이쉬었고, 최후의 최후를 내다보았다. 언젠가는 자신도 눈을 감을 것이다. 그때 묘지는 어디에 놓이게 될까? 파멸일까, 영광일까?

"…명심하지요."

그러나 주어진 길은 하나뿐이므로 종착지를 알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서 자신이 무엇을 발견할지도, 아직은 묻지 않아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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