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02화 (103/258)

102화 케이크의 배합 비율 (1)

모든 주문에는 두 과정이 수반된다. 마력 갈래를 원하는 형태로 빚고 움직이게끔 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원소학도, 야스와다의 정신계 마법도, 바단의 혈마법도 예외는 없다.

달리 말하면, 마력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은 마법의 기초이다. 나우파나 학파의 핵심은 그 능력을 극한까지 갈고 닦는 데에 있다. 마력을 또 다른 손처럼 다루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따라서 혈마법이 생명력과 괴수를 다루고 야스와다의 신관들이 영혼을 불태우는 동안, 나우파나의 마법사들은 물리적인 현실에 천착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단검을 내던지고 바위를 으스러뜨리면서.

나우파나 학파의 한계는, 조작할 수 있는 범위가 지극히 좁다는 것이다. 염동술은 몹시 세밀한데다 강력하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효력이 줄어든다. 코앞에 있다면 성벽도 부술 수 있는 반면 열 걸음 거리에서는 찻잔을 들어 옮기는 힘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상대가 바로 앞에 있을 때에는 칼이 더욱 빠르다.

*  *  *

수레를 타고 타일라프람에서 남쪽으로 하루 거리를 더 가면 나우파나 폐허가 나타난다. 빼곡하게 우거진 나무들과 수정이 뒤얽혀 거대한 보석 덩어리처럼 번쩍이는 곳이다.

수정막에 감싸인 나뭇잎은 무지갯빛의 반사판이 되고 지층은 잘 닦인 대리석보다도 눈부시게 빛난다. 사방으로 퍼지는 햇살 속에서 사람은 쉽게 감각을 잃는다. 어른거리는 빛무리 속을 헤매다 그 일부가 되고 마는 것이다.

폐허는 수많은 희생자를 집어삼켰다. 어디에서나 수정에 갇힌 학자와 예술가와 모험가들을 볼 수 있다. 자신만큼은 불운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 믿은 사람들의 흔적이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이들도 있지만 결말은 대부분 좋지 않다. 폐허가 자신을 부른다고 중얼거리다가, 끝내는 숲으로 되돌아가 약속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나우파나 폐허는 거대한 박제 전시장이자 대륙의 보석으로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이러한 이상 현상의 주범은 옛 도시 한복판의 수정 심장이다. 아 드지즈가 죽으면서 남긴 심장이, 제대로 된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날뛰고 있는 것이다.

그곳의 전시품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나우파나의 옛 시민과, 만용을 부린 인간과, 심장을 탐낸 야스와다의 요정으로. 피투성이 심장은 능묘에 갇혀 있지만 수정 심장은 땅에 놓여 있으니까.

숲을 통과해, 도시 정중앙의 수정 요새까지 들어가는 게 관건일 뿐이다.

말루카에 잠입하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이 나온 지금조차도, 야스와다 의회는 주기적으로 조사단을 보내고 있었다. 심장을 채운 광기가 시간 속에서 무뎌지리라는 기대와 함께.

그러나 요정 개개인의 뜻은 야스와다의 뜻과는 달랐다. 나우파나의 신을 되찾아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조사단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의회는 지원자를 선발하는 대신 가주들에게 통보를 내렸다. 누구든 간에 가문의 일원 중 하나를 보내라고. 다섯 해 전, 별불꽃의 차례가 왔을 때 나트람은 그 요구에 메기도를 내던졌다. 마법 실력이야 뛰어나지만 없어도 아쉽지 않을 애물단지를.

하지만 메기도는 살아남았다. 다른 넷을 모두 숲에 남겨두고, 홀로 야스와다에 돌아온 것이다. 처음부터 도망쳤으리라는 비웃음을 듣기도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심은 자취를 감췄다. 바로 그 시기부터 발작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메기도의 마력 폭풍에는 유별난 점이 많았다. 나우파나의 염동술보다 거칠었고 마력 구속구를 끼운 상태에서도 폭풍이 일어났다. 게다가 그 자신은 그 현상을 거의 제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면밀한 조사를 거친 끝에, 의회는 심장이 메기도를 총애하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력 폭풍은 무색 마력 갈래가 베푸는 가호라고.

하지만 메기도가 나우파나 폐허로 돌아가 신위를 얻는 일은 없었다. 의회에서는 모두 반대표를 던졌거니와 나트람까지도 수긍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망가진 요정에게 끝없는 힘이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좋은 쪽은 아닐 게 분명했다.

이 사실은 완벽한 비밀로 부쳐졌으며 나트람의 태도 역시 그대로였다. 오히려 더욱 가혹해진 면도 있었다.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자긍심을 부숴 놓아야 했다.

메기도는 별채에 붙박인 채, 식물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악의 없이 사람을 잡아먹는, 크고 위험한 식인 식물 말이다.

붉은 별이 뜨기 전까지는 그랬다.

*  *  *

폐허의 눈부신 혼돈 속에서 메기도의 귀는 더욱 예민해졌고, 들어서는 안 되는 것마저 듣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지만 환청은 집요하게도 그를 괴롭혔다. 머릿속에서 솟아나는 것은 대부분 여자의 목소리. 가끔은 남자의 것도 섞여 있다.

[폐허로 돌아와. 나를 찾아줘. 내가 누군지 알려줘…….]

[친우여… 모두 어디로 갔지?]

속삭임이 들려오는 동시에 모든 소리가 빛망울처럼 부옇게 번지기 시작했다. 숲에서의 기억들이 치솟는 동시에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력 폭풍의 전조였다. 그는 손목에 걸린 구속구를 부여잡았고, 정신을 다잡으려 애썼다.

로야페타에서의 며칠은 끔찍했다. 인간들의 목소리는 송곳처럼 귀를 찔렀고 곳곳에서 빛이 번쩍였다. 사이라크 역시 그를 귀찮은 짐덩어리로 취급했다. 온갖 곳을 돌아다니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여기가 별채였더라면 진작 울다가 탈진해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건 야스와다의, 종족 전체의 명운을 건 과업이었다. 감정에 휘말려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나트람이 자신을 믿어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 사리분간이 안 되는 철부지에게는 칼조차 쥐어 줘서는 안 되는 법인데, 너는 그 철부지도 못 될 놈이지. 어떻게 생각하느냐?

― 너 같은 겁쟁이가 내 동생이라니 한심하구나. 죽는 것조차 두려워서 살아 있는 주제에, 내게 맞설 용기는 있는 모양이지!

메기도는 머리에 박힌 질타를 되새겼다. 마력 폭풍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둘뿐이었던 것이다. 나트람과 사이라크가 그의 처지를 일깨워 주기만 한다면…….

"누님?"

겨우 고개를 쳐들었지만 보이는 것은 인간뿐이었다. 분명히 사이라크를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놓친 걸까? 어디로 간다고 했었지?

치명적인 위기 앞에서, 메기도는 이성적인 판단력을 발휘했다. 로야페타에 온 첫날, 사이라크가 어느 커다란 건물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들의 정체를 아는 인간과 함께.

비록 며칠 전의 만남은 분위기가 좋지 못했지만,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  *  *

인간의 한계는 순진성에서 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순진성. 사건의 구성요소는 케이크의 재료와 같아서, 조리법을 그대로 따르면 케이크가 완성되며, 다른 무엇이 나올 여지가 없다고 믿는 그 순진성.

이것이 바로 인문학적 상상력이었다. 인문학은 인생에 도움이 된다. 어디에 도움이 되냐면, 삶에 궁극적인 해답은 없으며 자신은 끝없이 좆 빠지게 구를 예정임을 인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바로 지금처럼.

"마력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캄파놀로 종금에서요. 건물이 상당 부분 파손됐고, 캄파놀로 미라지를 포함한 임직원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캄파놀로에서? 거기에서 그런 사고가 터질 일이 있습니까? 공장과 혼동한 건 아니겠지요……."

"규모와 마력 흔적으로 판단하건대, 의도적인 공격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일대에 교통 통제가 들어간 상황입니다. 방금 전에 들어온 전보 내용입니다."

아미라의 시선이 란드와르에게로 향했다. 의견을 구하는 투였다. 일단 눈을 감고서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임기응변이긴 하지만 티아와 대화할 시간은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잔머리와는 별개로 머리를 차갑게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씨발, 가지가지 한다. 이제는 또 회사 건물이 터져? 또 무슨 이윱니까?

<저희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요정과 연관이 있는 일로 보이는군요. 현장에 무색 마력이 남아 있어요.>

누가 터뜨렸는지는 모른다는 거죠?

<울쿠스를 감시할 때에도 설명 드렸지만, 요정 신의 영향을 받는 마력 갈래는 추적이 어렵습니다. 노이즈가 많지요.>

요정이 왜 갑자기 회사 건물을 터뜨렸을까? 감춰야 할 증거가 있어서? 사이가 틀어져서?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방식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훨씬 조용하게 처리할 방법이 많다.

의도는 나중에 추측하기로 하자. 어차피 요정을 직접 붙잡는 게 아니라면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모를 일이니까. 게다가 무색 마력은 나우파나 학파의 것. 염동술과 물리적인 파괴를 주관하지만, 온전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근접 거리 안에 있어야 하는 게 단점이다.

따라서 가능성은 둘이다. 마공학 폭탄을 설치했거나, 범인이 근처에 있거나.

전자라면, 현장에 가 봤자 소득이 없다.

후자라면, 장소는 도시 한복판이다. 빠져나가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직접 사건 현장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 봤자 도움이 될 것도 없는데다가 현장 감시는 천사들에게 맡길 수 있으니까.

<일단 운명부에서 한 명이 현재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고, 나머지는 며칠간의 일들을 되짚어가는 중입니다. 해당 건물 방문자 중에서 저희 명부에 소속되지 않은 자를 찾고 있습니다.>

란드와르는 눈을 떴다. 티아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들은 상태였다. 이제는 로야페타 시나리오 자체로 시선을 옮겨 보자. 요정과 내통하는 배반자는 둘. 그중에서 캄파놀로 미라지는 부상을 입은 상태.

그렇다면 도주 위험이 있는 사람은 단 하나.

"요정이 엮인 일이라는군요. 일단 범인을 찾는 건 치안대에게 맡기고, 그 사이에 이곳의 부사장과 면담을 해 보죠. 에스웍스 쉬브 말입니다. 무언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는 아미라를 향해 손등을 보인 후 성흔을 밝혔다.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는 중이지만, 남들에게는 천계에서 신탁을 받은 사제처럼 보일 것이다. 확실히 설득에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요, 쉬브는 아직 거래소 내부에 있을 겁니다. 의심받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알아요. 소식을 들었더라도 섣불리 캄파놀로 건물로 가진 않았을 테고……."

아미라는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처럼 중얼거리더니 직원을 쳐다보았다.

"부사장을 데려와요. 본론은 꺼내지 말고, 만약 도망치려 하면 붙잡아서 끌고 오면 됩니다. 경비를 둘쯤은 대동하는 게 좋겠군요. 최대한 빨리 합시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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