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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01화 (102/258)

101화 약속이자 사회 그 자체 (2)

요정들에게도 며칠 사이에 정보가 더해졌다. 말루카에 직접 잠입하지는 못했지만, 인간 도시의 풍문만으로도 충분한 얼개를 짜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첫째, 데라듄 상단의 중간관리자인 테빈은 세카두에서 물약을 운송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운송 과정에서 용을 만난 탓에 수레와 부하를 잃고 말았다.

둘째, 서트펜이라는 이름의 떠돌이 전사가 테빈을 보호해 데라듄 상단에 인계했다. 카스바의 노예 기술자, 벨레다가 전사에게 관심을 보였다.

셋째, 벨레다는 전사와 그 시종을 노예로 만들어 지하 투기장 경기에 내보냈다. 서트펜의 마지막 대전 상대는 <광인> 이라는 이름의 여자 노예. 광인의 소유권을 넘겨받은 벨레다는 자신의 노예들과 함께 사라졌다.

넷째, 실종된 첫째 왕녀가 말루카로 돌아와 심장을 취했다. 조력자로는 아즈리온 교단의 인간 사제가 동행했다.

그리고 서트펜과 광인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

볼로디아가 광인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서트펜이 울프 장원의 임무를 맡았던, 교단 소속의 하급 사제와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까지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일렀다…….

*  *  *

"배신자 놈이 전사의 시종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왔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자는 체구가 작은 편이었으니, 위장한다면 소년의 모습을 취하겠지요. 테빈 역시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고 합니다. 증언으로 판단하건대 정신 지배가 걸려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 경우를 따져 보면, 아즈리온 교단의 사제가 요정과 동행한다는 이야기가 돼. 그러면서도 놈이 야스와다의 주문을 쓰도록 용인하고 있다는 것이지."

"실리주의의 발로일지도 모르지요."

"인간들의 신이 우리네 마법을 기꺼워하던가? 그 실리주의가 믿음을 저버릴 정도야?"

"그러니 가능성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이나 명쾌한 답은 없지 않습니까."

"잘 닦인 길은 함정으로 이어지곤 하지."

나트람은 짧게 촌평하고서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눈발이 휘몰아치면서 바람의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사이라크와 메기도는 떠났다. 나트람은 그들을 보낸 뒤 쉭겐을 불러 몇 가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쉭겐은 은빛매의 수석 별점술사였고, 두 가문이 손잡은 후로 나트람과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 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둘째 아드님을 선뜻 내보내다니 놀랍습니다. 그 성정이라면 오늘 당장 마력 폭풍이 몰아치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되겠지."

나트람은 여전히 창밖을 보면서, 심드렁한 투로 대꾸했다. 골칫덩어리가 시야에 없으니 도리어 마음이 편했다.

"인간 중에도 별자리가 비틀린 이들이 있을 걸세."

사람의 운명을 판별하는 데에 있어서, 보좌성의 움직임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별이 자리를 옮긴다면야 말할 나위도 없다. 운명이 뒤틀린 자들은 어디에선가 만나게 될 터였다.

"사이라크에게 말해 두었네. 며칠은 데리고 다니다가 적당한 곳에 내버려 두고 오라고."

"그래서, 둘째 아드님을 미끼로 쓰겠다는 말입니까? 마력 폭풍에 괜찮은 전리품이 휘말리기를 빌면서?"

"그보다 더 좋은 쓸모가 어디 있겠나? 엄청난 소란이 있을 게야. 누구든 나타나겠지."

"3교구에 방문하셨던 게 그 때문이었군요. 제물이 필요한 주문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자네 주인에게는 미리 허락을 받아 두었어. 영혼이 꽤나 들어가는 일이니까."

아들딸을 떠나보내기 직전에, 나트람은 메기도와 함께 3교구에 방문해 희생 의식을 치렀다. <의식 공유>를 위해서였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간에, 상대가 보고 듣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의식 공유>는 그 효과에 비해서는 자주 쓰이지 않았다. <정신 지배>만큼이나 많은 제물을 요구하는데다가 제약 역시 컸던 것이다. 들여다보는 쪽과 감각을 나누는 쪽의 주문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둘 모두가 야스와다의 마법사여야만 했다.

다행히도 별불꽃은 아홉 명문가 중 한 자리를 차지한 가문이었다. 열두 명의 요정 영혼 역시 어렵잖게 구했다. 평민 사형수는 어느 시기에나 넘쳐났기 때문이다…….

"소식이 전해지길 기다릴 필요는 없어. 눈을 감으면 녀석이 보고 듣는 걸 그대로 느낄 수 있다네. 이 정도면 완벽한 미끼가 아니겠나."

쉭겐은 생각에 잠겼다. 둘째 아들을 장기말로만 취급하는 태도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나트람은 더한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평생을 통해 그 사실을 증명해 왔다… 그러나 메기도를 통제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인간들에게 붙잡혔을 때, 아드님께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염려는 없습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내 아들은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죽을 생각을 했어. 자살 시도는 한 번이 아니었지. 지금이라면 더더욱 쉬울 테고. 그런데도 여지껏 살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나트람은 나른하게, 만족스러운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침묵은 길었지만 대답은 짧았다.

"글쎄요."

"내가 살아 있으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라네. 그 애는 나를 섬겨. 신처럼 우러러보지.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그 신이, 자신을 사지로 내몰더라도 말입니까?"

"녀석은 이번에도 울었어. 내 시종은 팔이 부러졌고. 서재에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었지. 자신은 이제 죽을 게 뻔하니, 제발 한 번이라도 따뜻한 말을 해 달라더군. 가만히 보다가 가까이 오라고 했어……."

그 말과 함께 주름진 손이 허공을 더듬었다. 칼린카를 어루만지는 듯한 손길이었다.

"쓰다듬어 주었지. 이렇게. 덕분에 우스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네… 감격에 겨워 흘리는 눈물에는, 마력 폭풍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거야."

쉭겐은 숙고하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사소한 이야기가 잠시 오간 뒤에, 그는 자신의 가문으로 돌아갔다. 쉭겐은 별자리가 뒤틀린 이들 중 하나였지만 2교구 분석실을 지휘하기 위해 야스와다에 남게 되었다.

막연한 정적이 서재를 가득 채웠다. 나트람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손 박제에 눈길을 주었다. 동시에, 한 순간도 잊지 않았던 기억들이 밀려왔다.

애완동물이 헤이딘을 찔러 죽였을 때, 주검에는 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도망친 흔적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 아이가 요정들의 눈을 피하는 건 불가능한데도.

의심은 깊었지만 증거는 없었다. 제국의 유물 중에는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것이 몇 있었지만, 눈먼 불구와 인간 아이가 어떻게 그런 물건을 만들어 낸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 운명이 진실을 비추고 있었다. 카스바의 노예 기술자는 체구가 작은 소녀라고 들었다. 반지를 몹시 아끼는데다가, 요정의 마법을 쓴다고 의심받는 소녀.

어째서 그게 가능했는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트람에게는 자신의 동생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헤이딘은 살아 있었다. 반지 속에.

하지만 의심을 털어놓기에는 아직 일렀다. 와그다스의 마법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별불꽃의 가주였으며 헤이딘은 그의 소유였다. 따라서 목숨을 취하는 것 역시 그의 몫이어야만 했다…….

"동생아, 거기에 있느냐?"

나트람은 짧은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  *  *

란드와르는 사설탐정 직함을 선뜻 받아들였고, 보상까지 협의했다. 와그다스 각인 도면을 요구한 것이다. 난처한 기색을 보이던 아미라는 해석할 방법이 있다는 말에 태도를 바꿨다. 그러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로야페타 서부 거래소의 부사장이 요정과 내통하고 있다는 건 안다. 증거가 어디에 있는지도, 그 공범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 결말은 이미 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아미라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보여주는 게 관건일 뿐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부사장을 끌고 와서 정신의 감옥을 거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모습이 영 좋지 않다. 마법을, 그것도 요정 마법을 써서 받아낸 자백이라면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아미라의 의견이 중요했다.

"요정의 흔적을 알아내는 것까지는, 쉽습니다. 방법이 관건이죠."

"방법이라. 자세히 말씀하시죠."

"구태여 돌아다닐 필요가 없이, 당장 이 자리에 부사장을 불러내기만 하면… 자백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방식도 괜찮으신가 해서요."

"마법을 쓰는 건가요? 약물? 아니면 신의 힘으로?"

"일단은 마법입니다."

그녀의 눈썹이 거리를 좁혔다.

"나는 이 사안을 가문 총회로 가져갈 겁니다. 총회에서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자백제를 투여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 약물이나 마법을 써서 얻어 낸 자백은 효력이 없어요. 그게 자백 물약이었는지, 노예화 물약이었는지는 재판관들이 분간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걸 총회로 가져가려면, 물증이 필요합니다. 증인이나."

"그것도 어렵진 않습니다. 일만 잘 풀린다면 하루 이틀 안에도 끝날 겁니다."

태연한 어조로 대꾸하는 동시에 로야페타 시나리오의 전개가 뇌리를 스쳤다. 여기에 연루된 주범은 둘. 에스웍스 쉬브와 캄파놀로 미라지.

서부 거래소의 부사장, 쉬브는 고액 투자자들의 마력 적성을 수집하고 있다. 재물운을 분석할 용도다. 그걸 주기적으로 요정들에게 보내서, 그들의 운명을 점치게끔 하는 것이다.

한 명의 별자리에는 변수가 너무 많지만 표본이 백 명이 넘어간다면 그건 유효한 지표가 된다. 예를 들어 보자. 매수 포지션의 투자자들에게서는 좋은 운이 나타나고, 매도 포지션의 투자자들에게서는 나쁜 운이 나타난다면… 어느 방향이 수익을 볼지는 확정인 셈이다.

미라지는 캄파놀로 종금 산하 금융투자회사의 임원으로서 해당 정보를 투자에 활용하고 있다. 그가 십 년째, 선물시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비결이다.

그러니까, 이 배반자들에게는 거창한 신념이나 의지가 없다. 어떤 사상이 있다면 기껏해야 배금주의가 될 것이다. 그들이 요정의 힘을 빌리는 이유는 단 하나. 별점술이 인간 사회에서는 사실상 실전된 재주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자신감이군요. 정보사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는 들었지만 이런 장담을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의심과 기대가 절반씩 섞인 음색이었다. 패를 보여주어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섰다.

"누굴 의심하는지는 압니다. 이 건물 안에 있겠지요. 다른 하나는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중일 테고. 마력 적성 검사소도 하나가 연루되어 있을 겁니다."

"이건… 놀랍군요. 어디까지 알아보고 온 겁니까?"

아미라의 눈꺼풀이 놀란 듯 치켜 올라갔다. 란드와르는 과도하게 솔직한 문장이 목구멍을 넘어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이것만으로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죠, 미래까지도 장담할 수 있으니까요. 다음에 뜰 별은 나우파나의 별이 될 겁니다. 제가 띄울 예정이거든요…….

"이 사안에 필요한 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상업 가문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도면들이 무슨 용도인지도 알죠. 서로에게 좋은 거래가 될 겁니다."

"예상보다 일이 너무 수월하게 풀리는군요. 지난 다섯 달 동안에는 눈을 제대로 붙이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그간의 걱정이 모두 먼지로 변해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아미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서는 테네브로즈와 벨레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 꼬마 손님들은 어쩔 생각인가요? 따로 방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봐요, 꼬마가 그 거금을 선물 거래에 투자하진 않죠. 난 성인이에요. 카스바에서는 여왕이라 불렸고 본업은 각인사죠. 타일라프람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각인사라고요."

벨레다의 반론에 아미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흠, 그래요. 알겠습니다. 이 꼬마에게는 확실히 숙소를 주는 편이 나을 것 같군요. 그러면 다른 꼬마분은……?"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나으리께서는 저를 데리고 다니길 원하실 겁니다."

테네브로즈는 흠잡을 데 없이 우아한 어조로 답했다.

그러자 벨레다를 제외한 모두가 만족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벨레다까지도 만족했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온 직원이 그녀를 데리고 로야페타 관광에 나섰던 것이다(일단 눈여겨본 숄을 산 다음 마력 결정 가공소를 구경할 예정이었다).

"좋아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숙소는 저 꼬마가 묵는 곳 바로 옆 호실을 쓰시게 될 겁니다. 언제부터 일에 착수할 건가요? 내일? 최대한 빨랐으면 좋겠습니다만, 만약 세카두에서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도 가능합니다. 최대한 빨리, 원하시는 결과물을 가져와 드리죠."

"이렇게 고마울 데가."

아미라의 얼굴에 안도가 나타났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사소한 부분들, 즉 연락을 취할 방법이나 보상을 수령할 시일 등등을 논하는 사이에 달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또 다른 직원이 승강기를 타고 올라오더니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마력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캄파놀로 종금 건물에서요. 건물은 상당 부분 파손됐고, 캄파놀로 미라지를 포함한 임직원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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