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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99화 (100/258)

99화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개인에게 있으며 (5)

로야페타의 상업 가문은 세 분파로 나뉜다. 광업과 농업을 비롯한 원물에 주력하는 <하드라인>, 마공학 위주 제조업과 건설업에 종사하는 <크랭크웍스>, 물류업과 금융업을 주관하는 <램페이지>가 그것이다.

각 분파는 다시 하위 계열사들로 나뉘며, 이들은 서로에게 적대적이다. 독과점은 타락을 불러오며 시장은 전쟁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 상업 가문의 유구한 강령이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가 최선을 다해 싸워야만 한다. 맞상대가 자신의 피붙이일지라도.

아주 어릴 때부터 상업 가문의 자제들은 경영 수업을 받는다. 그들이 배우는 것은 교리 경전이 아닌 철저한 자기계발과 경쟁의 신화다. 돈은 막강한 힘이며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만이 그것을 제어할 자격이 있다.

바로 이러한 정신이 견고한 상업 제국을 지탱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떤 경영자들은 더 뛰어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린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내리기도 한다.

야스와다의 요정들과 손잡는 것이다.

*  *  *

란드와르는 물로켓 발사 대회에 따라 나온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며 대평야에 서 있었다. 세상은 넓게 트여 있고, 하늘은 쾌청하고, 기대감 어린 웃음과 환호가 울려퍼진다.

물론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으며 여기에서 해맑게 놀고 있는 건 백 살쯤 먹은 요정이었다. 용 비늘 부적의 성능을 시험하려면 괴수 출몰 지역으로 가야 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잘 만들어졌는지 테네브로즈는 신나서 주문을 쏘아대고 있었다.

"마음에 드냐?"

"야스와다에도 이런 유물이 몇 개 있었지요. 제사장쯤은 되어야 가질 수 있는 물건인데, 그것보다도 더 뛰어난 것 같습니다. 제국 시절의 골동품들은 상태가 영 나쁘거든요."

여기에 온 목적은 두 가지였다. 부적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예비용 제물을 가져가기. 로야페타 시나리오에서는 <정신 지배>나 <정신의 감옥> 과 같은 주문들이 큰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말루카에서 그랬던 것처럼 머리 아플 일이 없으리라는 게 란드와르의 계산이었다. 거기에서는 울쿠스의 판단과 결정이 중요했지만, 흰둥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로야페타는 이야기가 달랐다.

누가 요정과 내통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가문의 다른 구성원 역시 놈을 의심하는 중이다. 사과하러 간 다음, 거기까지 이야기를 뻗는 게 어려울 뿐이지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정신의 감옥을 걸고 실토를 받아내면 곧바로 일이 끝날 터였다. 물증이 필요하다면 그것도 쉽게 얻어낼 수 있다. 그 대가는 와그다스의 각인 도면. 이 보상은 로야페타 시나리오의 존재 가치인 동시에 로야페타를 경로에서 빼 놓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했다.

도면으로 만들 수 있는 장신구의 성능은 확실했지만 시기가 문제였다. 와그다스 학자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건 보통 게임의 후반부. 그때가 되면 시간을 투자해서 장비를 제작할 여유가 없다. 최종장을 향해 진격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란드와르에게는 벨레다와 헤이딘이 있었다. 펠로시도 기초는 배웠으니만큼 제작에 도움이 될 터였다. 두세 개는 만들어두고 싶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받으러 간다는 도면 말입니다, 어디에 쓰는 물건입니까?"

"목걸이야. 재정렬 각인된 거."

재정렬은 와그다스 마법 중에서도 최상급의 생존기였다. 살아만 있다면, 대상을 저장된 상태로 되돌려 놓았던 것이다. 다리가 날아갔든, 몸의 절반이 짓이겨졌든 간에. 하지만 한 번에 한 명의 상태만 저장할 수 있는데다가 준비 시간도 길다는 게 단점이었다.

반면 목걸이는 주기적으로, 착용자의 상태를 기억했다. 재정렬을 발동시키는 방법은 체인을 끊는 것. 예비용 목숨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었다.

"일회용이긴 한데, 일단 있으면 좋지."

"제 몫은 아니군요."

"그렇지. 아무래도 근거리 쪽에 생존기를 챙겨 주는 게 좋으니까……."

란드와르는 말끝을 흐리고서는 다른 쪽으로 주제를 옮겼다.

"그나저나 걔네들이랑 엮인 거 있냐."

"엮이다니, 뭐를 말입니까?"

"로야페타에, 지금 잡으러 가는 애가 요정들이랑 주기적으로 연락을 한단 말이야. 그게 십 년쯤 됐어. 그런 일을 가문 하나가 독단적으로 처리하지는 않을 텐데, 부제사장으로서 아는 게 없냐는 소리야."

대륙 끄트머리로 밀려났다고 해서 얌전히 있을 요정들이 아니었다. 종족 특성으로 환술까지 있는 판이다. 인간 사회에 잠입할 시도는 꾸준히 하고 있었다. 정보사의 주 업무부터가 그걸 색출하는 것이기도 하고.

물론 시뮬레이터의 다른 부분이 그런 것처럼, 로야페타 시나리오에서 그 배후에 있는 게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의심되는 장소들을 조사하고 마력 흔적과 요정족 서한을 발견해서 추궁하는 게 시나리오의 전체 내용이었으니까.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로야페타에서 요정을 맞닥뜨릴 일은 없다. 그래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건 너무 안일한 태도였다. 테네브로즈가 놈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대강은 알긴 압니다. 관계가 꽤나 깊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2교구의 몫이지요. 별을 보고, 계략을 꾸미고, 다른 종족 사이에 섞여드는 것 말입니다. 3교구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사람을 죽이고 영혼을 불태우는 것뿐입니다."

"타마기스 잠입할 때에는 2교구 애들이랑 같이 갔다면서."

"거친 싸움이 예상되는 임무에서는 3교구가 항상 따라갑니다. 대부분의 추적자가 3교구에 속해 있으니까요."

란드와르는 지금 들은 내용을 대강 정리했다. 2교구는 첩보와 잠입을 맡고 3교구는 전투와 인신공양을 전담한다. 테네브로즈는 3교구 추적자였기 때문에 첩보 임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어쨌든, 2교구에서 로야페타에 요정을 보내는 것까지는 사실이라는 거지?"

"요정이 아닙니다. 보통은 인간이 갑니다. 벨레다의 하인들이 그런 것처럼, 순종적으로 만든 인간들이지요. 인간 도시의 자유를 보더라도 배신할 염려가 전혀 없도록요."

"그러면 요정들은 뭘 하고."

"대가로 우르게슈 시민증을 받았지요. 로야페타 시민증을 만들어 준다면 당국에 걸릴 테니, 우회를 하는 겁니다. 그쪽이야 가짜 신분 만들기가 아주 쉬우니까요……."

테네브로즈의 설명대로라면, 로야페타 시나리오에서 요정을 만날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놈들은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게 아니라 시민증을 얻어낼 목적으로만 교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상업 가문들 주위를 맴돌면서, 커넥션이 들킬 일을 만들진 않겠지.

하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첫 번째 별이 뜬 다음부터는, 온갖 요정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던 것이다. 게임의 전개는 상당 부분이 정해져 있었지만 그것만큼은 완전한 무작위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또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테네브로즈가 지금까지 무사했던 이유가 뭐지?

화신이야 별점술에 걸리지 않는다지만, 놈은 어쨌거나 요정이었다. 녀석의 마력 적성을 아는 사람 역시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추적대에게는 처음부터, 확실한 표적이 있었던 셈이다.

이윽고 란드와르는 자신이 야스와다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생쥐들도 파악하지 못한 부분을 일개 게이머가 알 리가 없었다.

*  *  *

인간 도시들에 뿌려진 공문은 반나절 늦게, 변경 지역의 성들에까지 도착했다. 그때 이스빈드는 참주, 사토리스와 함께 대처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말루카의 소식이 대화의 분위기를 크게 바꿔 놓았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걱정이 쓸모없게 됐어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사토리스는 껄껄 웃었고 이스빈드는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정체를 들킨 후로, 이스빈드는 말을 더듬거리는 습관을 완전히 고쳤다. 적어도 사토리스의 앞에서만큼은. 요정과 인간의 말이 어느 부분에서 같고 다른지를 떠올리느라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토리스 역시 그를 연장자로 대하기 시작했다. 이스빈드는 그런 태도를 부끄럽게 여겼지만 사토리스의 뜻은 한결같았다. 목숨도 구해준데다가 나이까지 자신보다 수십 해는 더 많으니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별이 저렇게 커졌으니만큼 당분간은 괴수들이 흉포해질 거예요. 칼린카들을 풀어두긴 하겠지만, 사람들도 밖에는 나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조심할 겁니다… 그나저나, 그때 성에 왔던 전사가 이 일과 연관이 있을까요? 어르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사토리스는 다른 쪽으로 논제를 옮겼다. 다섯 달 전, 란드와르와 테네브로즈가 나타난 후로 그 둘의 정체는 수수께끼로만 남아 있었다. 성흔을 받은 사제와 인간 소년이, 난데없이 변경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번뜩이는 보라색 별. 정체불명의 사제와 시종. 그리고 이번에 떠오른 암적색 별까지. 사토리스는 그 셋이 어딘가에서 얽혀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씀드려도 될까요?"

이스빈드는 머뭇거리다가 운을 뗐다.

"허, 요정이란 것까지 밝힌 판에 감출 게 뭐가 있습니까. 숨긴 게 또 있다니 놀랍지만……."

"전사가 시종 소년을 하나 데리고 있었지요?"

"갈색 머리 꼬마요.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칼린카와 함께 도망을 나올 때 도와준 사람이 한 분 있다고 말했지요. 시종 소년이 그분이십니다. 정체를 감추고 싶어 하시기에 잠자코 있었어요."

사토리스는 이스빈드에게 들은 이야기를 복기했다.

"그때는 명문가 요정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셨을 텐데요. 그런 이가 성흔을 받은 사제와 함께 다닌다고요? 허, 이해하기 어렵군요. 그렇다면 그분은, 그때부터 아즈리온 교단과 연이 있었던 겁니까? 보라색 별도 교단 일 때문에 뜬 것이고요?"

"아뇨…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추측일 뿐입니다."

별점술사의 도제로서 배움을 받을 때, 이스빈드는 스승을 따라 어둠달의 본가에 들른 적이 있었다. 며칠간 머무르는 동안, 그는 테네브로즈에게서 기묘한 부탁을 받았다. 미래를 점쳐 달라는 것이었다.

"앞날이 궁금하다면 가문의 별점술사를 만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여쭈었어요. 저는 평민 수습생일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가문 사람들과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기에, 틀릴 수도 있다고 말씀을 드리면서, 최대한 실력을 발휘해 보았습니다."

테네브로즈의 별자리는 지금은 영광이 있으나 머지않아 빛을 잃으리라는 점괘를 내어놓고 있었다. 그러한 국격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었으나 어떤 것도 좋은 쪽은 아니었다. 그는 고민하다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테네브로즈는 나쁜 결과에 화를 터뜨리지 않았다. 뜻 모를 웃음을 흘리다가 자리를 떴을 뿐이었다. 그리고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가문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누님이 죽은 탓에 정신이 나가서, 성격이 완전히 변해 버렸다는 소문과 함께.

"그러더니 저를 만나러 오시더군요. 자신의 미래를 다시 한 번 보아 달라고 했어요. 이번에는 마력 적성이 아니라 피로 점을 쳐 달라고 하시더군요."

"피라고요."

"예, 피에는 영혼이 조금이나마 섞여 있으니까요. 마력 적성을 읊는 것만큼 확실한 형태를 만들진 못하지만 비슷한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명반에 핏방울이 떨어지자마자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습니다. 별들이 해석할 수 없는 형태로 정렬하고 있었으니까요."

이스빈드는 그가 별자리의 흐름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건 신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위대한 무언가가 그분을 택한 겁니다. 필멸자는 감히 알지 못하고, 알아서도 안 되는 무언가가요. 저는 그래서 침묵을 지켰고, 이 사실은 야스와다의 요정들에게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토리스는 깊이 생각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그 요정은 아즈리온의 사제를 따랐잖습니까."

"참주님께서 차원문을 작동시키느라 마법사와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그분의 별자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혹시, 그 사제도……."

"핏방울이 떨어졌을 때, 명반에 나타난 별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이스빈드가 본 것은 자미성이었다. 죽음이자 태고의 힘이고, 모든 별자리의 중심이며, 움직이지 않는 별.

"자세한 것은 저로서도 알지 못합니다. 무언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을 겨우 짐작할 뿐이에요. 하지만 오늘의 결과를 보면… 그게 우리에게 나쁜 쪽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서는 고민 섞인 정적이 있었다. 이스빈드는 망설이다가 한 문장을 덧붙였다.

"…최소한, 지금 당장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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