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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98화 (99/258)

98화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개인에게 있으며 (4)

수십 해 전, 나트람은 헤이딘의 손발을 자른 뒤 별채에 가뒀다. 그는 기르던 애완동물에게 죽었지만 잘라낸 손발은 박제가 되어 나트람의 서재에 남게 되었다.

사이라크는 아버지의 악취미를 볼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삼촌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나트람은 그녀가 반기를 들 때마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박제를 응시했던 것이다. 지금 당장, 두 번째 희생자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처럼.

하지만 사이라크의 분노에는 은근한 기대 역시 섞여 있었다. 윰 시밀의 저주를 받은 게 아니라면, 영원히 삶을 움켜쥘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늪지대의 부패자들조차도 몸이 완전히 무너진다면 영혼을 잃고 만다.

그러니 나트람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가주 자리는 맏딸에게 주어지겠지.

사이라크가 테네브로즈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못미더운 구석이 있긴 하지만, 놈은 유능한 사냥개이자 그녀가 물려받을 재산이었으니까.

게다가 테네브로즈는 하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사이라크를 아가씨라 부르곤 했다. 어둠달은 의회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인데도. 거기에서 오는 괴리는 그녀에게 큰 희열을 안겨주곤 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죽였다고 생각한 순간, 놈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나트람이 놈과의 연을 끊기로 결정했을 때? 놈이 가문을 떠나 별불꽃의 일원이 되었을 때? 그걸 도대체 누가 알겠는가?

"빌어먹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사이라크는 조급한 태도로 융단 위를 오가다가 유리 공예품을 집어 벽에 던졌다. 천체의 형태를 모사한 유리구슬과 기둥들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빛나는 파편으로 변했다.

"누님,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치지 말아요. 세상이 온통 울립니다."

메기도가 어깨를 떨며, 섬세하고 우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는 사나운 인상의 누님과는 달리 유약한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뺨이 홀쭉했고 잿빛 눈동자는 뭍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혼란스럽게 흔들리곤 했다. 짧게 자른 청람색 머리카락은 가늘고 푸석푸석했다.

"시끄러워! 네 성격이 걸림돌이 되면, 그 배신자 놈보다도 네 목이 먼저 달아날 줄 알아라!"

마력 적성만큼은 손꼽히는 수준이었지만 메기도는 추적대에 들어가지도, 이름난 학자가 되지도 못했다. 성년식을 치르고서도 수십 해가 흐를 동안 본가에 틀어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교계의 명사로 이름을 날린 것도 아니었다.

고질적인 신경 쇠약이 항상 메기도를 괴롭혔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흐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서는 곧바로 3층의 테라스에서 뛰어내린 적도 있었다(이 사건의 여파로 그는 다리를 절게 되었고, 대신 나우파나의 염동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저버리기에는 유능했고 신뢰를 주기에는 불안정했다. 그래서 나트람은 자신의 둘째 아들을 쓸모 있는 불량품으로 간주했고, 위험부담이 큰 일이 생길 때마다 그를 버리는 패로 던졌다.

놀랍게도 메기도는 그 모든 난관을 어떻게든 헤쳐 나왔다. 뛰어나지도 못했고 어설픈 구석도 있었지만, 스스로 망친 부분도 많았지만 어쨌거나 살아남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메기도는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별들이 사이라크와 메기도의 운명을 뒤튼 까닭이었다. 바로 며칠 뒤에, 둘은 의회의 결정에 따라 로야페타로 떠나야 했다.

"너와 함께해야 한다니 끔찍하구나. 차라리 네르갈이 나았을 텐데."

"하지만 그 애는 누님을 죽이고 싶어 하는걸요. 이걸 기회라고 생각할 거예요. 테네브로즈가 아니라 누님의 피가 먼저 쏟아질지도 모르죠."

"셋째는 너처럼 분별없는 성격이 아니야. 무엇이 중요한지를 안단 말이다!"

사이라크의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막내 동생이 가주 자리를 노리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금 당장 피붙이에게 칼을 들이밀진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다면 별불꽃은 물론이고 야스와다 전체가 위험해졌던 것이다.

뒤틀린 별자리가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는 누구도 몰랐다. 로야페타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게 무엇인지도. 하지만 결국엔, 두 눈으로 보게 될 터였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므로.

"다행히도 지원은 충분히 받을 예정이다. 나는 2교구 소속이고, 우르게슈 시민증을 빌려 쓸 수 있어. 상업 가문의 일원에게서 얻어낸 물건이지……."

*  *  *

우르게슈는 강령술―공학의 도시였으며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유용할지라도 사람의 영혼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태엽인형을 집에 들일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똑같은 이유로, 기업들은 우르게슈보다는 타일라프람에 더 많은 투자를 퍼부었다. 훨씬 상업성이 높고 도덕적 결격사유가 없는 연구과제를 내버려두고 음침한 강령술사들에게 돈을 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그들은 모든 영혼이 사형수의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우르게슈 당국은 시민증 판매로 재정 불균형을 충당하고 있었다. 충분한 돈을 ‘기부’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원하는 이름이 적혀진 시민증을 발급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는 비밀리에 진행되었지만 알 사람은 모두 아는 류의 것이었고, 곧잘 외교적 문제가 되었다. 우르게슈를 도시 연합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한 지지를 얻을 만큼.

그와 비슷한 이유로, 로야페타 당국은 우르게슈 시민증을 상대로 제한을 두었다. 특히 대출에 대해서는. 가짜 명의로 대출을 받은 뒤 잠적하면 찾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생상품 투자는 허용 범위 안에 있었다.

따라서 벨레다는 손쉽게 선물 거래 계좌를 만들고 투자금까지 예치했다. 우르게슈 시민증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으며 재물은 슈문의 영토에 보관해온 덕분이었다.

일은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벨레다는 호위 사제에게, 투자금이 담긴 상자를 각인 재료라고 속이고서는 옮기게 시켰다. 로야페타에 도착한 다음에는 짐꾼을 고용했다. 온갖 곳을 돌아다니다가 호위가 숙소에서 쉬는 틈을 타 상자를 들고 서부 거래소로 갔다.

겉모습 때문에 창구 직원에게 시비가 걸린 걸 제외하면, 일처리는 완벽했다. 벨레다가 믿기로는 그랬다. 착각이었다.

<화신을 옆에 두고서도 돈 생각부터 하는 사람은 세상에 둘밖에 없을 게다. 신의 진노가 두렵지도 않으냐?>

"진노라뇨, 팔다리만 아프고 끝났는걸요. 반성문도 써야 하니까 손가락까지 아프겠네요."

<그 태도가 문제란 말이다. 신을 곁에 두고서는 금전 따위에 연연하다니, 사제들이 너를 참아주는 게 용한 일이지. 내가 신관이었더라면 진작 쫓아냈을 게다.>

벨레다는 잠시 생각하다가 유창한 변론을 쏟아냈다.

"세계의 운명이 별들의 의지에 달린 것처럼, 하인의 미래도 주인의 손에 달려 있는걸요. 1호부터 5호까지, 제 하인들이 카스바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돈이 더 필요했어요. 그래서 한 일이에요."

<말은 잘만 하는구나. 왜, 가서 그렇게 변명해 보지 그러냐? 반성문 쓰는 게 불만인 모양인데…….>

헤이딘의 핀잔에, 벨레다는 입술을 잘근거렸다. 천사의 감독 아래 얼차려를 받다가 이제는 반성문을 쓰는 중이었다.

뭐라고 써야 하지? 저는 다사다난한 이 시기에, 금전 따위에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제가 단순히 탐욕스러워서 그런 건 아니고, 하인들을 걱정하다가 그랬지만, 아무튼 죄송합니다.

"됐어요. 스승님 잔소리를 옮겨 적었으면 벌써 이 종이를 다 채우고도 남았겠네요."

<네가 반성을 안 하니까 이러지. 제발 계산을 하고 행동을 하란 말이다. 네가 생각이 안 되는 아이는 아니잖으냐.>

"생각을 했죠. 생각을 했으니까 거기에 투자한 거죠."

<또!>

헤이딘의 일갈이 머릿속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벨레다는 펜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귀를 싸매 쥐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반지의 마법은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여기가 카스바였으면 말을 안 한다. 네가 노예 기술자였으면 이해를 했겠지. 그런데, 바로 옆에 화신이 내려와 있는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일을 저지른 게냐?>

벨레다는 대꾸하지 않고 반성문을 계속 썼다. 속마음을 그대로 말했다가는 더한 불호령이 날아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게 잘못이라는 건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맡은 직책이 있기는커녕 교단 소속조차 아니었지만, 극비 정보를 가지고 투자에 나서는 게 떳떳한 일일 리가 없다. 그래서 들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위장은 거의 완벽했다. 너무 어려 보인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사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들킬 일도 없었을 터였다. 스물 중후반으로만 보였더라면 거래소가 투자금의 출처를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항상 겉모습이 문제였다. 벨레다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하여간, 제자를 들이고 싶대서 허락해 줬더니 이런 일이나 벌이는구나. 늑대인간은 수도원으로 돌려보낼 예정이야. 너는 스승님 소리를 듣기엔 아직 어리단 말이다.>

"저도 성년은 넘었다고요!"

<마음이 어른이 되질 못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헤이딘은 벨레다를 실컷 꾸짖고서는 누그러진 어조로 덧붙였다.

<그리고 어차피, 두 해 뒤면 말루카로 돌아갈 아이다. 놀이가 조금 일찍 끝났을 뿐이야. 너무 속상해 하진 말거라.>

"말루카로 돌아간다고요?"

<그럼. 그 대장군이 왕실에 들이겠다고 했는데… 설명을 듣지 못했느냐?>

"금시초문인걸요. 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이번 일에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수도원에 가둬 두기에는 민폐고, 풀어 두면 객사할 게 뻔하니 곁에 두겠다는구나. 왕가가 식객 하나 못 거두겠냐면서.>

벨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눈을 깜박였다.

"그래도 되는 건가요?"

<무슨 질문인지 모르겠구나.>

"…멀쩡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스승님 소리를 들어서 좋았고 투자 조언도 받았지만, 의외로 똑똑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까지도 알게 되었지만, 한 달간 어울리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지만… 벨레다는 펠로시가 글러먹은 인간이라는 사실 또한 알았다.

지하 투기장에서, 란드와르에게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몇 달 뒤에는 노예 경매에서 팔려나갔을 게 분명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왕가의 일원이 된다고? 물론 안 될 건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안 보내면 안 되나요? 펠로시도 왕실에서 사는 것보다는 저랑 같이 지내고 싶어 할 텐데요. 이 일이 모두 끝난 다음부터는 제가 계속 붙어 다닐 수도 있고요. 스승님을 귀찮게 만들진 않을게요."

<그거야 네가 부탁을 해볼 일이지. 소용이 있을 것 같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인다만…….>

"하지만 보냈다가는 도시가 망할지도 모르는걸요. 볼로디아가 저처럼 펠로시 말 들어주면 어떡하게요? 이왕 사고를 칠 거면 저랑 치는 게 낫죠."

<일단 볼로디아가 충분히 현명한 사람이라는 건 넘어가더라도―간만에 옳은 말을 하는구나. 내가 보기에는 펠로시나 너나 똑같아. 논리를 잘 다루는 것과 삶을 훌륭하게 살아가는 건 다른 일이란 말이다. 내가 보기엔 너도 그 면에서 뛰어나진 못해.>

"하지만 카스바에서는 잘 했는걸요. 기억하시잖아요."

<여기에서도 카스바처럼 하고 있으니까 문제지!>

신랄한 지적이 날아들었다. 벨레다는 꽁한 채 멈춰 있다가 겨우 반박할 말을 찾아냈다.

"스승님도 제대로 된 인간 사회는 잘 모르잖아요! 야스와다에서도 수십 년을 별채에서만 갇혀 지냈으면서!"

<그런 요정 늙은이보다 못한 주제에 무슨 불만이냐?>

이제는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벨레다는 단념하고는 잠자코 글줄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현실적인 고민들이 억울한 감정을 덮기 시작했다.

수익이 두 배 넘게 나긴 했지만 아직은 진짜 돈이 아니었다. 거래 계약을 청산하기 전까지, 그건 올랐다가 내려가는 가상의 숫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게다가 계좌 역시 접근 제한을 먹은 상태였다.

직접 와서 해명하라는 것이 거래소의 입장이었다. 란드와르도 가서 사과하자는 뜻을 밝혔다. 그러니까, 갈 수밖에 없었다. 그 돈을 이런 식으로 날려서야 안 될 일이었다.

벨레다는 그때까지 마력 결정의 가격이 기준 무게당 216을 상회하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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