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선조의 능묘 (6)
네 명의 피조물 전사가 볼로디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정신을 공유했으며 거기에서 오는 정밀성은 엄청난 무기가 되었다. 각각은 정확히 여섯 걸음씩 떨어진 채 사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놈들은 일정한 보폭으로, 오른편으로 탐색하듯이 돌더니 동시에 몸을 날렸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날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서로 다른 각도로 쇄도했다. 동시에 볼로디아는 정면을 향해 돌진하며 한 놈의 허리를 으스러뜨렸다.
뜨거운 감각이 목뒤에 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한순간에 거리가 벌어진 탓에, 목을 찌르려던 장검이 살갗만을 스친 것이다. 다른 두 놈의 검 역시 얕은 상처만을 내고는 끝났다. 볼로디아는 즉시,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놈의 몸을 밟고 넘어가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셋은 빠르게 교감을 마치고서는 진열을 재정비했고, 곧바로 삼각 편대를 갖추고 공격에 나섰다. 이번에는 모든 공격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새로 얻어낸 힘을 시험할 때였다.
늑대인간 전사들은 혼을 다루는 법을 아주 어릴 적부터 연마했다. 두 종류의 영혼 사이에서 정확한 균형을 찾아내는 것은 초보적인 기교에 속했다. 거기에 하나가 더해졌을지라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집중하는 동시에 낯선 빛깔의 마력이 장막처럼 몸을 감쌌다. 번뜩이는 초록색이었다. 날아들던 검신은 가죽을 파고들기 직전에 형체를 잃으며 흩어졌다.
그때 가장 처음으로 나자빠진 녀석이 재생성을 마치고 전투에 뛰어들었다. 놈의 기척을 느끼는 동시에 마음이 흐트러지면서 장막이 걷혔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신이 등줄기를 비스듬히 찌르고 들어왔다. 칼날이 뼈를 긁으며 격통을 일으켰다.
볼로디아의 잇새에서 그르렁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까스로 장막을 되살린 그녀는 반격에 나서는 대신 헤이딘이 만들어낸 황금색 지대를 향해 몸을 던졌고,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적수를 똑바로 마주하도록.
고통은 머리를 어지럽히지만 그걸 거스를 수만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 전의를 드높이고, 불필요한 감정을 떨쳐내고, 마음을 한 점에 모은다…….
전사 넷은 잠시 움직이며 전열을 갖추는 듯하더니 일시에 달려들었다. 그녀는 맹렬히 돌진하며 한 놈을 들이받아 쓰러트렸다. 마력 칼날은 영혼 장막에 가로막혀 사라지고 말았다.
목청에서는 본능에 가까운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지만 정신은 기묘하게도 명징했다. 발톱이 피조물들의 목을 찢었고 허리를 잘랐다.
* * *
우리는 자수 작품의 앞면을 본다. 옷감에 색실로 수놓은 꽃과 새들을 구경하면서, 그 화려한 모습에만 감탄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서 뒷면을 마주했을 때, 관람객을 기다리는 것은 엉킨 실과 매듭 덩어리다.
세계는 거대한 자수 공예 작품이다. 각각의 마력 갈래는 서로 다른 색실이 되어 현계를 이루고 마법사들은 거기에 색실을 더하는 식으로 옷감 위에 한 획을 그린다. 그러나 그 뒷면을, 즉 이면 세계를 파악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이면 세계 각각은 마력 그 자체이며, 시전되었거나 시전될 주문의 총합이고, 요정 신들의 영토다. 슈문이 황금빛 마력 갈래의 이면을 다스리며 이시 첼은 혈마력의 주인인 것처럼.
하지만 이면 세계를 다스리려면 우선 심장을 차지해야만 한다. 단순히 심장을 삼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때 그곳을 지배했던 자들을 물리치고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도전자가 있었다. 그들의 결말은 셋 중 하나다. 완전히 미치거나, 전대의 의지에 굴복하거나, 혹은 아주 가끔… 승리하거나.
* * *
뱀은 짜증스러운 태도로 영토를 둘러보았다. 뼈와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성채는 아득하게 컸고, 그녀가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함께 흔들렸다. 피로 이루어진 거수들과 뱀의 하체를 지닌 인간들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녀는 시종들이 자신의 비늘을 다듬을 수 있도록 멈추었다. 바닥을 이룬 살덩어리가 꿈틀거리더니 곳곳에서 뱀 인간이 치솟았다. 그들 중 하나가 움푹 패인 상처를 살피고는 비아냥대듯 말을 얹었다.
"자만하셨군요, 주인님."
"닥쳐라!"
짜증스레 외치는 동시에 건방진 시종은 피로 변해 땅으로 돌아갔다. 바닥에서 돋아난 이빨 더미가 그것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고는 곧바로 사라졌다. 그러나 다른 하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늘 손질을 계속했다.
뱀은 단순한 찌꺼기가 아니었다. 심장 그 자체이자 거기에 남은 의지였다. 이따금 나타나는, 건방진 시종 또한 그녀의 무의식에 불과했다. 신이 되고자 했던 필멸자들은 모두 뱀에게 굴복했고, 반항심의 파편만이 그런 식으로 드러나곤 했다.
그러나 그들이 위협적인 변수였던 적은 없었다. 진정한 문제는 다른 데에서 왔다. 뱀이 바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접점이 필요했던 것이다. 심장과 하나가 된 누군가가. 그 전까지는 심장이 놓인 곳 근처에서만 가까스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윽고 시종 하나가 입을 열었다.
"곧 있으면 어린 요정마저 패배하겠군요. 어쩌실 생각입니까?"
"생각보다도 훨씬 쓸모없는 놈이로구나. 힘을 그렇게나 빌려 주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이대로라면 언니 쪽이 심장을 차지할 겁니다. 혹은 다시, 지하에 버려질지도 모르지요."
"각인에 갇혀 있던 짐승 놈들이 거슬리긴 하지만, 상관없다. 결국엔 내가 승리할 테니까. 지하층에 내버려진다 해도 괜찮아. 나는 사라지지 않아.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기회가 또 올 것이다."
온전하지 않은 상태로 현계에 나타났다가 부상을 입기야 했지만, 큰 그림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능묘에서의 전투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심장 속에서 통용되는 것은 힘의 논리가 아니었다. 신념과 의지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감히 신이 되고자 한 이들은 확고한 자아의 소유자였지만 뱀은 그들의 총합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아즈리온의 예언이 있지 않습니까……."
시종은 겁먹은 기색으로 반론했다. 하지만 뱀이 느끼기에, 둘째 왕녀는 지금까지의 도전자들에 비하면 티끌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볼로디아를 집어삼키는 데에는 그 동생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마저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뱀은 지금껏, 능묘의 지하층에서 천 년을 기다렸다. 훨씬 오랜 시간도 감내할 수 있었다.
"허튼 소리를!"
뱀은 그렇게 일갈하고는 현계를 들여다보았다. 울쿠스의 생명력이 꺼져가고 있었다.
― 마지막 소원이… 별채의 창가에… 스카르파가 항상 보던 그곳에… 묻어 주십시오…….
현계에 스스로 나섰을 때, 제대로 맞서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요정 마법사를 얕잡아본 것이 패착이었다. 이 전투는 볼로디아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최후의 발악은 가능했다.
바로 다음 순간, 뱀은 스카르파의 몸속에서 눈을 떴다. 불안정한 힘이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지더니 강렬한 현기증이 머리를 쳤다. 심장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움직이는 건 자살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것은 승리가 아닌 공멸이었다. 아즈리온의 본상은 현계로 올라올 수 없었고, 여기에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그림자였다. 천 년 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약해진 그림자 말이다…….
[곧 끝날 목숨이라면, 내가 대신 써 주마!]
보호장이 폭발하며 울쿠스의 주검을 바닥으로 밀쳐냈다.
* * *
<주인장의 눈에는 반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술꾼의 눈에는 반이나 남은 것으로 보인다>. 1975년의 시바스리갈 광고 포스터는 절반쯤 찬 술병 사진과 함께 그런 카피를 내세우고 있다.
이 이야기는 가끔, 주제를 바꾸어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차이를 보일 때 쓰이기도 한다. 반밖에 안 남았네…를 외치는 사람은 비관론자고, 반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한다면 낙관론자라고.
그러나 강현은 그 주장을 좋아한 적이 없다. 의견을 골라야 한다면 시바스리갈 포스터에 적힌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현상에 대한 해석을 좌우하는 것은 입장과 상황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3분 30초 지났습니다.>
핏빛 뱀이 스카르파의 몸을 차지하고 갖가지 주문을 쏟아내는 시간은 약 7분. 그동안 섣불리 공격을 가할 필요는 없다. 온갖 투사체와 바닥에서 치솟는 기둥들을 피하다 보면 자연스레 쓰러지니까.
달리 말하면, 3분 30초를 더 버텨야 했다.
강현은 이 미친 짓이 절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절반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할 새끼는 둘 중 하나다. 완벽한 바보거나, 아니면 공세를 퍼붓는 쪽이거나.
속에서 푸념이 한없이 흘렀다. 그래, 뱀은 3분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겠지. 아쉬워 하겠지. 누구 다리든 간에 한 짝은 잘라 놓으려고 저 발광을 떨고 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큰 피해가 없었다. 울쿠스가 쓰러지자마자 산개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주문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중력을 계속 유지한다면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 터였다.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예, 20초 남았습니다. 안전지대는 지금 위치에서 우상단에 있습니다. 보면 바로 찾으실 겁니다.>
티아의 알람이 머릿속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이제부터 뱀은 자신 주위에 보호막을 두른 뒤 정신 집중에 빠질 것이다. 지금 떨어지고 있는 구체와 피 분수만 피하면 갑작스러운 공격은 없다는 말이 된다.
대신 20초 뒤에는 전멸기가 온다. 15초간 이어지는, 피할 수 없는 광역 주문 피해.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수준의…….
시야가 다시 지하층 전체를 담았다. 입구를 가로막은 것은 핏빛 장벽. 허공에서는 연신 혈기 구체가 떨어지고 곳곳의 웅덩이에서는 새끼뱀들이 기어 나온다. 덜걱거리는 바닥에서는 피 분수가 솟는다.
강현은 이 좆같은 광경 앞에서도 평정을 유지하는 자신의 정신력에 감탄을 느꼈다. 감탄하면서도 계산은 할 수 있으니까. 이윽고 우상단의 텅 빈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혈기 구체도, 피 분수도 없는 안전지대.
안전지대의 반경은 고작 사람 넷이 겨우 모여 설 크기. 20초 안에 모두가 그곳으로 이동해서 차원 분리의 효과를 받아야 한다. 지속시간이 끝나자마자 수호 영역과 테네브로즈의 보호장을 동시에 깔아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18초 남았습니다.>
도화선이 더 빠른 속도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위를 보고, 아래를 보고, 옆을 본다. 최적의 경로를 찾을 수 있도록. 판단까지 걸린 시간은 다시 2초.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고 달린다. 걱정과 불안을 담기에는 두개골이 너무 좁다.
"―여기로!"
그리고 거친 고함이 폐를 한 바퀴 돌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