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사랑과 전쟁 (1)
울쿠스는 인간 사제들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붙일지 고민했다. 스카르파를 접견하기 전에 펜닐과도 만나야 할 텐데, 놈이 이방인들에게 무례하게 굴 것이 뻔했던 것이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왕께서 흰둥이와 혼례를 올린 인간 사제를 보고 싶어 하시는데, 그전에 부군이랑도 만나야 할 거라고? 그리고 그 부군이 아주 재수 없는 놈이라고?
사실 이건 울쿠스에게도, 사제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 설명 없이 중앙청에 보내더라도 별 탈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어딘가 껄끄러웠다. 그가 요정이고 상대가 아즈리온의 사제들이라서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환술을 들킬 가능성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정작 그 부분에서는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다.
울쿠스를 심란하게 만드는 건 사제 각각의 품성이었다.
타우베스는, 그러니까 형 쪽은 말이 없고 표정도 없었는데 그 상태로 남을 빤히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 순혈 여자들만큼이나 덩치가 좋은 인간이 그러고 있으니 부담스러웠다.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동생 쪽은 정반대였다. 사교성은 좋았지만 모범적인 사제라고는 할 수 없었다. 작업반과 친해지더니 매일 밤마다 몰려다니며 술을 퍼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당에 골초였고, 시종 소년을 구박할 때에는 날건달이 따로 없었다. 심지어 자기네 교단의 기도문까지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겉모습만 보면 피가 섞인 것 같긴 한데 성격이 그토록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건 울쿠스만의 생각이 아니라 극단 전체의 의견이었다. 둘 다 군부 순혈들과는 상성이 좋지 않으리라는 것까지.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스카르파는 타우베스를 보길 원했고 펜닐도 그것을 허락했다. 따라서 울쿠스에게는 소식을 전할 의무가 있었다.
"여기에서 중앙청까지는 빠르게 갑니다. 정확한 일자는, 내일 혹은 모레 중으로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네요. 그런데 순혈은 저희와는 성격이 많이 달라서요, 사제분들께는 약간… 불쾌할 수도 있어요. 그 부분은 제가 미리 사과드릴게요."
타우베스는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늑대 앞에 놓인 쥐라도 된 느낌이었다. 심지어 대답조차 없었다.
버거운 침묵 속에서, 그는 닥쳐온 문제들에 비하면 이런 시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그랬다. 야스와다에서는 옛 신이 깨어난데다가 추적대까지 곁을 맴돌고 있었다… 심경을 가라앉히는 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심란해지기만 했다. 울쿠스의 마음속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동생에게도 이야기하겠소. 함께 행동하기로 교단 방침이 정해져 있소."
그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동생 쪽이 같이 갔다가는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았다. 그건 아무 근거도 없는 느낌에 불과했지만, 불길한 예감은 보통 빗나가지 않는다.
* * *
란드와르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힐끔 보았다. 군부 중앙청은 도시의 다른 부분이 그런 것처럼 우중충하고 우울한 분위기였다. 중앙청 청사를 지나면 왕궁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곳도 딱히 다를 것 같진 않았다.
스카르파를 만나자는 결정은 쉽게 내렸다. 애당초 결정하고 자시고 할 문제도 아니었다. 군부에서 불렀으면 이방인들로서는 그냥 가야 하는 것이다.
타라곤에게서 소식을 듣고서는 바로 다음 날 군부 수레를 탔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능묘에서 전투를 치르기 전에 한 번은 보아 두는 게 좋을 테니까. 그게 볼로디아에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상상하지도 않은 부분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교단 사람이라지만 중앙청에 이방인을 들여야 하다니, 왕의 명령이라도 껄끄럽군요."
"뭘 그러시나, 어차피 자리에 앉아만 계시면 그만인 분을 가지고. 부군께서라도 명징한 판단력을 갖추고 계시니 다행이지."
란드와르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군부 제복을 걸친 남녀를 보았다. 하나는 스카르파의 남편이고 다른 하나는 중부 대장군인지 뭔지였다. 불러 놓더니 스카르파는 보여주지 않고 둘이서 실컷 보안 이야기로 떠들고 있었다.
저의는 명백했다. 귀하신 순혈들이 보기에 이방인들이 좆같다는 것이다. 대놓고 이런 취급을 받으니 심히 언짢았다. 이걸 지금껏 참은 울쿠스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두 분이서만 이야기할 거면 저희는 왜 불렀습니까?"
그리고 이강현은 그걸 못 참는 사람이었다.
* * *
순혈은 문자 그대로의 개새끼들이었다.
"씨발… 개새끼들……."
란드와르는 연병장 외곽에 앉아 중얼거렸다. 대놓고 들이박았더니 대화가 끊기긴 했는데 자신은 청사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당사자도 아닌 동생까지 왕을 접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럴 거면 기다릴 곳이라도 내어 달라 주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볼로디아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는 연병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할 것도 없고 추웠다. 막연히 허공을 응시하다가 품에서 시가를 꺼내 물었다. 어차피 구석자리니까 훈련 중인 사람들한테는 방해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불을 붙이자 연기가 눈앞을 잠시 메우더니 바람을 만나 옆으로 꺾였다. 란드와르는 그 궤적을 눈으로 좇으며 늑대인간의 종족 특성을 곱씹어 보았다.
일단 흰둥이는 쾌활하고 순혈은 싸가지가 없다. 둘 다 명령을 잘 따르고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는다. 특히 순혈의 경우, 서열이 정해지면 철저한 상명하복이 된다… 말인즉슨 늑대인간은 충성심과 공격성으로 움직이는 종족이었다. 개들이 그런 것처럼.
물론 개도 품종마다 성격이 다르다. 포메라니안과 핏불은, 사모예드와 도사견은 결코 같지 않단 말이다. 란드와르는 순혈과 흰둥이 사이의 성격 차이가 여기에서 오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어쨌거나, 덕분에, 군부 독재와 계획경제 체제 아래에서도 도시는 무탈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인간이었더라면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잔뜩 뜯다가 진작 죽창을 맞았겠지만 늑대인간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흰둥이 저항군들이야 항상 있긴 해도 수는 적었다. 순혈들이 흰둥이를 멸시하고 보람 없는 일자리로 쫓아 보내는 것과는 별개로, 배급으로 장난을 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순혈 늑대인간들은 훌륭한 관료였다. 깐깐하고, 규칙을 잘 따르고, 다른 생각을 품지 않고… 물론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대신 대놓고 싸움질을 벌인다는 단점은 있지만…….
"봐봐, 진짜 인간이야!"
"아즈리온 교단 사제라더군. 이번 공연 때문에 불렀다던데.
"인간치고는 잘 싸울 것처럼 생겼네."
관념적인 생각들을 더듬어 나가던 란드와르는 머리 위에서 와글거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군부 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저 멀리에서 힐끔거리는 것들까지 합하면 더 많았다.
바깥으로 쫓겨난데다가 이제는 서커스 원숭이 신세가 된 판이었다. 짜증이 훅 치밀었다. 란드와르는 손바닥에 시가를 눌러 껐다. 니코틴의 효과가 없는 건 아쉽긴 해도, 고통을 덜 느끼고 상처가 빨리 아무는 것은 분명 장점이었다.
"구경이라도 났습니까?"
감정 실린 목소리로 내뱉자 대원들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원숭이가 말을 하니 당황한 모양이었다. 잠시였다. 그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정중한 척 인사했던 것이다.
"부탁드릴 게 있어 왔는데 실례를 저질렀군요. 죄송합니다."
"뭐요."
대답이 영 곱게 나오지 않았다. 대원은 읊는 말과는 달리, 딱히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리어 비웃는 느낌이 더 강했다.
"아즈리온 교단의 사제들은 저희처럼 무예를 수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수 가르침을 주시지요."
무슨 심리인지 알 듯했다. 순혈 입장에서 인간이라면 흰둥이와 엇비슷한 것들인데, 꼴에 칼을 쓴다니까 가소로워 보이겠지.
그래, 마음은 이해를 하는데.
강현은 무릇 성인이라면 아무리 좆같은 마음이 들더라도 그걸 숨기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안타깝게도 순혈들은 그게 안 됐다. 놈들은 기분이 나빠지면 일단 결투를 신청했으며 그 결투에서 이길 정도로 강한 놈만 입을 털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현은 자신 역시 별반 다를 게 없음을 알았다. 인격적 성숙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인격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는 건 별개니까.
"좋습니다, 훈련용 목검은 있겠죠."
단순히 짜증스럽다는 이유로, 아즈리온의 화신이 보통 사람과 결투를 벌이는 건 치졸한 일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냥 살기로 했다.
매너도 지킬 상대에게나 지키는 것이었다.
* * *
시합은 순식간에 준비되었다.
란드와르는 목검을 움켜쥐고는 상대를 마주보았다. 모래바닥에 목검으로 그린 경기판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그 둘레에 모여들었다.
카스바의 지하 투기장에서, 검투사로 구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볼로디아와 특별전을 치렀을 때가. 란드와르의 승리를 점치는 자는 거의 없었고, 가끔은 노골적인 야유가 들려왔다.
하지만 시비를 걸어온 늑대인간은 볼로디아가 아니었다.
그건 엄청난 차이였다.
심판을 맡은 대원이 개전을 알리기 위해 붉은 손수건을 흔들었다. 상대는 왼쪽 발을 약간 내밀었다. 언제든 돌진할 수 있도록 무게를 앞쪽에 실은 상태.
란드와르 역시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경계 태세를 취했다. 멈춘 듯한 공기 속에서 두 칼이 서로를 향해 뻗었다. 그 사이에는 목검 하나 길이의 간격이 남아 있다.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탐색하듯이 빙빙 돈다.
먼저 움직인 건 상대였다. 곧게 내질러오는 찌르기. 손목만을 꺾어 받아치자 순간적으로 균형이 흔들린다. 순간이다. 곧바로 자세를 추스르더니 내려치는 검격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란드와르도 강하게 쳐낸다. 그리고 다시 벌어지는 간극. 유효타일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공격이 몇 차례.
란드와르는 그 모두를 매끄럽게 받아치면서 분위기를 살폈다. 인간이 늑대인간을 힘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기교는 충분히 증명했다는 판단이 섰다.
때마침 상대도 다시 몰아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각선으로 베는 동작이다. 강하게 쳐내자 목검 둘이 순간, 서로의 잔영인 것처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곧바로 동작을 끊고서는 파고들듯 검을 날린다.
열기 서린 암흑이 정신을 사로잡는다.
"중단, 중단! 거기까지만!"
…심판의 목소리에 란드와르는 이강현으로서의 자신을 되찾았다. 목검의 끝이 쓰러진 상대의 명치를 누르고 있었다. 구경을 위해 모여든 대원들의 얼굴에 순전한 감탄이 일었다.
* * *
웃긴 녀석들이었다. 하나를 쓰러트렸더니 나머지까지 결투에 나섰던 것이다. 동료의 복수 때문은 아니었다. 강한 사람과 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영광이라나 뭐라나.
지원자들을 한 번씩 눕혀준 다음 열렬한 관심을 뒤로 하고 구석자리로 돌아온 참이었다. 정말로 온갖 질문이 쏟아졌다. 교단 사제들은 모두 그렇게 강하냐는 것. 누구에게서 칼 쓰는 법을 배웠냐는 것. 그리고 기타 등등.
덕분에 기분은 조금 나아진 상태였다. 비록 순혈들이 싸가지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솔직하고 올곧은 게 보기 좋았다. 최소한 원한을 품는 것보다는 낫다. 어차피 시간을 때울 일도 필요했으니 잘 된 셈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는지 볼로디아는 아직도 소식이 없었다. 란드와르는 품에서 목제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시가가 반쯤 들어차 있었다. 돌아가자마자 바로 채워야겠다 싶었다.
상자 뚜껑에 붙은 미닫이 손잡이를 밀자 작은 칼날이 드러났다. 캡 부분을 잘라내기 위한 시가 커터였다.
끄트머리를 자른 다음 시가를 입에 물었다. 처음에는 아쿠아 3미리가 그리웠는데 이 짓도 하다 보니 손에 익었다. 마공학 라이터는 주머니에 있었다. 불을 붙이려던 란드와르는 앳된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췄다.
"인간."
고개를 돌리자 여덟 살쯤 될까 싶은 꼬마가 옆에 선 게 보였다. 더 어릴지도 모른다. 늑대인간은 인간에 비해 성장이 빠르다고들 하니까. 어린애가 왜 군부 연병장을 돌아다니는지 의문이었다.
"연기 몸에 안 좋다. 가서 놀아라."
란드와르는 검지로 어딘가 먼 곳을 가리켰다. 꼬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들었다.
"인간이고, 남자고, 빨간 머리인데 강하구나. 셋 다 약한데. 이유가 뭐지?"
말투가 아주 앙증맞은 어린애였다. 누가 보면 왕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그는 멍하니 라이터를 딸깍거리다가 아무 말이나 했다.
"그러게 말이다. 가서 엄마한테 물어보든가……."
여전히 꼬마는 갈 기미가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는 란드와르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래서야 시가 태우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씨발, 캡을 잘랐으면 바로 물어야 되는데. 하지만 어린애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못할 짓이었다. 애들한테는 약한 독성 면역이 없었다. 그는 꽤 오랫동안 상식인의 면모를 발휘했다.
이윽고 꼬마의 입이 다시 열렸다.
"어머니 머리도 너랑 같은 색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약하다. 그래서 너한테 물어본 거다."
순간적으로 란드와르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떠올렸다.
스카르파는 붉은 머리였고, 중앙청사 뒤편의 왕궁 별채에 기거했고, 혼례까지 올린 상태였다. 아이가 있다 쳐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아이가 중앙청 연병장을 돌아다니는 것까지도.
잠깐만, 씨발.
스카르파한테 아이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