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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41화 (42/258)

41화. 타라곤

말루카는 사설 차원문 설치를 일체 금지했다. 핵심 재료 역시 엄격한 관리를 받았다. 대신 종단 마력철도가 기다란 영토를 가로질렀다. 세 시간마다 출발해서,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를 오고 가는 복선열차가.

떠날 준비를 마치고 테네브로즈도 마조람의 집에 맡겨둔 참이었다.

“열한 시에 출발하는 게 직통이라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번만 정차한다고 합니다.”

“직통을 탄다면 망치 집결지에서 내리면 될 거요. 북부 기점에서는 다섯 시간쯤이 걸리지.”

“정확한 위치를 아시는 모양입니다.”

“일전에 말했다시피, 캐러웨이 극단은 말루카에서는 꽤나 유명하다오. 군부 공연은 그쪽에서 도맡고 있으니. 나도 아마 옛 부하들 앞에서 대사를 읊게 될 테고······.”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방을 나선 다음부터는 아즈리온 교단의 사제들을 연기해야 했다. 늑대인간 사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 형제를.

그 전에 몇 가지를 더 물어봐야겠다는 계산이 섰다.

“그나저나, 연극의 줄거리는 대강 기억하십니까? 배역을 맡으려면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있어야 할 테니까요.”

“어릴 적에 몇 번 본 게 끝이라오. 그 각본은 꽤 오랫동안 공연되지 않았거든.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소. 아즈리온이 나오는 장면은 많지 않으니까. 그래서 인간을 불러와서 쓸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외울 게 별로 없다는 말씀이시지요.”

“그건 결국 왕가의 혈통 이야기요. 첫 번째 왕이 주인공이지.”

연극은 바단의 신이 쓰러지고 늑대인간들이 혈마법에서 풀려난 직후의 일을 다뤘다. 혼란이 지속됐다··· 모두가 권좌를 원했다. 그리고 아즈리온은 첫 번째 왕에게 늑대인간을 하나로 규합시킬 사명을 내렸다.

“내 선조께서는 다른 군벌을 모두 굴복시키고 왕위에 오르셨다오. 아즈리온은 그분에게 신탁을 내리거나 예언을 하는 역할로만 등장하오. 그마저도 늑대 모양 가면을 쓴 채지.”

이건 란드와르도 대강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늑대인간들은 아홉 명의 인간 신 대신 저승의 선조들을 섬겼지만 왕가는 경우가 달랐던 것이다.

순혈 늑대인간들은 떳떳하지 못한 족보를 지녔다. 예컨대 남부 대장군을 맡은 자의 먼 조상은 타마기스의 노예 검투사였고, 중부 대장군의 핏줄은 야스와다 명문가를 위해 일했다. 반면 왕가의 혈통에는 그런 기록이 일절 없었다. 마치 허공에서 나타난 사람처럼.

신화에 따르면, 첫째 왕은 누군가의 딸이 아니라 아즈리온의 자식이었다. 아즈리온 교단도 그걸 인정하고 있으니만큼 신화라기보다는 역사에 가까울 터였다. 철저한 고립을 유지하고 있는 말루카가 교단에 한해서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늑대인간 왕족들이 아즈리온의 신도라는 건 아니다. 무예의 신이 아니라 조상으로서의 아즈리온을 섬길 뿐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차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랬다.

“가면을 쓴다면 분장 때문에 환술이 풀리지도 않겠군요. 걱정은 없겠습니다.”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인 란드와르는 사소한 의문이 꼬리를 무는 것을 느꼈다. 게임에서는 설정이 그렇겠거니 하고 대강 넘겼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첫째 왕이 아즈리온의 자식이라고?

그는 인간들의 신이었고, 란드와르의 몸 역시 완전한 인간의 것이었다. 두 가능성이 있었다. 화신이 늑대인간 여자와 잤거나, 혹은 아즈리온이 사실 늑대인간이었거나. 일단 후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전자일 경우에는······.

씨발, 이거 신성모독인데. 하지만 궁금증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란드와르는 머릿속으로 티아를 불러 보았지만 답이 없었다. 전담 천사라는 게 필요할 때에는 어디 박혀서 안 나오고 있었다.

란드와르는 단념하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즈리온의 자손이 어떻게 늑대인간이 되는 겁니까? 일단, 당사자 비슷한 것으로서 말씀을 드리자면―”

순간 볼로디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란드와르는 이 발언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았다. 문제가 많았다. 아즈리온의 화신이, 비록 내용물은 다를지라도, 제3자에게 후손의 일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볼로디아가 걱정하는 지점은 란드와르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건 교단과 우리 사이에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오. 우리가 그쪽에게 호의적이긴 하지만 뜻을 같이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지.”

“의견이 갈린다고요.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본신이 아니고, 교리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설명을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볼로디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도대체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말해도 되겠소? 신성모독을 저지르는 게 아닐까 염려스러운데. 그대 정도의 존재라면 천사에게 물어봐도 될 일이라 생각하오.”

“제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나중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다만, 예, 천사가 대답을 안 하는군요. 그냥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망설이는 듯한 침묵이 있더니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왕가의 오래된 전설 중에는 아즈리온의 본신이 머리 아홉 개 달린 늑대라는 말이 있거든. 그 늑대가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직접 빚은 피조물이 첫째 왕이라는 거요.”

“아즈리온의 신격은 무예와 살육일 텐데요. 생명을 창조하는 신은 아닙니다.”

“그렇지. 그래서 왕가에서도 이걸 믿는 이들은 아주 적고,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대의 부탁이니 솔직히 이야기한 거요.”

그 순간 티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틈입했다.

<드릴 말씀이 없군요. 마조람이 올라오고 있으니 대화는 거기에서 멈추는 게 좋을 겁니다. 윗분께서 말씀하시길, 앞으로도 그런 주제는 삼가 주시라는군요. 천계에 대해 의심을 불러일으킬 행동도요.>

란드와르는 앞선 질문에 티아가 대답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일부러 무시했던 게 틀림없었다. 비록 신성모독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런 이유로 업무 협조 요청을 거절하다니 건방진 것들이었다.

***

테네브로즈는 포도밭 골목에 남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극단 사무실까지 동행해 봤자 할 일이 없었다. 그럴 시간에 혈마법을 쓴 여자애와 관계를 진전시키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귀엽다. 펠로시가 어릴 때 이런 거 잘 했는데.”

여자애를 만나러 가기 전에 마법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마조람은 테네브로즈가 만들어낸 토끼 모양 얼음을 빤히 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이런 건 누구한테 배웠니? 같이 다니는 분들은 전사니까 아닐 테고, 아즈리온 교단에서 마법을 가르치지도 않을 테고······.”

“카스바에서 배웠어요. 지하 투기장에서요.”

“투기장이라구?”

“갑자기 끌고 가서 경기를 뛰라지 뭐예요. 맞아 죽기 싫으면 배우라면서 원소학 마법서를 던져 주길래 밤을 새서 봤죠. 다행히 죽진 않았네요. 뼈가 부러지기 전까지 맞긴 했지만.”

진실을 약간 각색하자 마조람의 얼굴에 동정이 일었다. 열네 살짜리 꼬마의 삶이 펠로시의 반성문과 뒤섞이며 머릿속에서 기승전결을 갖추는 듯했다.

무법도시 투기장에 팔려간 고아. 명줄을 붙여 놓으려면 마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임무를 처리하러 온 아즈리온 교단의 사제에게 구출되고······.

완전히 사실무근이긴 하지만 요정족 부제사장이 노예로 위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마조람은 테네브로즈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미안해. 더 안 물어볼게. 그래도 잘 돼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전사님들도 착하시고.”

귀가 만져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해묵은 추억이 뇌리를 스쳤다. 정말로 열네 살이었을 적에 누님들은 그를 그런 식으로 안아주곤 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태연한 마음 속에서 살았지만 누님들에 대한 것만은 예외였다. 그 회상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생각을 멈추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누님들의 환영 뒤에 나타난 것은 은발의 중년인.

어둠달의 스티그미르는 테네브로즈의 큰삼촌이자 마법 스승이었다. 그래서 가문에서 내쫓기고 나트람의 개가 된 후로도 오랫동안 그를 피해 다녔다.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기 전까지.

나트람이 제사장 자리에 오르려면 스티그미르가 사라져야 했다.

그때 누님들은······.

“어머, 울면 안 되지. 잠깐만. 손수건이 어디 있더라.”

테네브로즈는 마조람을 밀쳐낸 뒤 옷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다행히도 목소리가 떨리지는 않았다.

“안 울어요.”

상처받은 열네 살 행세를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데다가 쌓은 업보도 한참이었다. 테네브로즈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악당인지를 알았고, 그 점에 있어 떳떳할 수 있었다··· 누님들을 눈앞에 그리지만 않는다면······.

이윽고 감정이 달아나면서 평온이 되돌아왔다.

“나가 볼래요. 어제 싸운 애한테 사과해야 해요.”

나트람을 따를 적에, 테네브로즈는 주인이 시키는 모든 짓을 했다. 지금도 다를 것은 없었다. 할 일의 목록은 여전히 길었다.

***

열차에 탄 란드와르는 볼로디아에게 자신의 상황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자신이 본신이 아니라는 것. 심지어 교리도 정확히는 모른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질문과 대답들.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만큼은 감췄지만 대부분은 솔직히 털어놓았다.

물론 모든 대화는 종이 위에서, 펜으로 이루어졌다. 늑대인간들로 가득한 열차 안에서 그런 이야기를 소리 내어 떠드는 건 자살 행위였다. 인간 둘이 탄 탓에 시선이 몰리기야 했지만, 좌석은 의자 둘이 마주보는 형태였기 때문에 누군가가 필담을 엿볼 위험은 적었다.

기나긴 대화를 마치자 어느덧 망치 집결지였다. 역사 앞 도로에는 마공학 수레가 줄지어 서 있었다. 볼로디아가 운전수에게 갈 곳을 설명하는 동안 란드와르는 도로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건물들은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에서 잘라낸 듯 직각이었고 창문은 구겼다가 펼친 은박지처럼 초라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레는 십여 분을 달리다가 대로변에서 멈췄다. 길이 좁아지는 곳부터는 직접 걸어 들어가야 했다. 둘은 202번가라 쓰인 표지판을 지나쳐 오른편으로 꺾었다. 오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생기가 없었다. 소음마저도 죽은 듯했다.

“여기보다는 카스바가 더 활기차겠군요.”

“검투사 시절의 기억은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그럴 거요.”

볼로디아는 선뜻 동의했다. 기묘한 자부심과 자조가 동시에 느껴졌다. 란드와르는 정확한 의미를 가늠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캐러웨이 극단의 건물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배낭을 고쳐 멨다. 그 안에서 마력 결정 묶음이 묵직하게 구르다가 등에 닿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곧게 뻗은 계단이 손님들을 맞았다. 그 옆에는 현관과 연습실을 나누는 가벽이 서 있었다.

“이 옆에는 연습실이 있고, 사무실로 가려면 5층까지 올라가야 하오. 꼭대기지.”

“건물 전체가 극단 소유란 말씀이시지요. 돈은 확실히 많은가 봅니다.”

“일전에 말했잖소. 집계해 본 적은 없지만, 흰둥이 학생의 절반은 캐러웨이 극단에게 장학금을 받고 있을 거라고······.”

볼로디아는 누군가가 연습실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흠칫 말을 멈췄다. 하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길러 묶은 남자였다. 청년은 눈을 깜박이다가 반가운 어투로 인사했다.

“교단에서 오셨군요! 어머니는 사무실에 계시니까 바로 만나 뵐 수 있을 겁니다. 같이 가시겠어요?”

캐러웨이 부인의 아들인 모양이었다. 잘 됐다고 생각하던 찰나 볼로디아가 입을 열었다.

“잠시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올라가시오.”

“너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저희 어머니께서 교단 소식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조금만 늦었다가는 의안을 마련해야 할지도 몰라요.”

농담을 던진 청년은 기대했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계단을 밟아 오르기 시작했다.

발걸음마저도 느껴지지 않게 된 뒤에야 볼로디아는 란드와르의 앞에 바짝 붙어 섰다. 아주 낮아진 목소리가 귓가 언저리에서 울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도시 바깥에 저자의 무덤이 있소.”

란드와르는 곧바로 말뜻을 이해했다. 말루카에서, 죽은 이가 살아 돌아다닐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요정이 그 신분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티아가 말을 걸어왔다.

<저희는 현재 아홉 교단의 신도 명부를 통합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늑대인간들은 대다수 인구가 이교도이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에 신상이 등록되어 있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리며······.>

그래서, 모른다는 겁니까?

<다행히도 사건 조사에는 진척이 조금 있었습니다. 말씀대로, 캐러웨이 부인의 아들, 타라곤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일곱 해 전의 일이라는군요. 자세한 사항은 살펴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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