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6화 (7/258)

6화: 수련의 장

좋은 소식이 하나 있었고 나쁜 소식은 두 개였다.

“신도 연초를 피우는군요.”

“있길래 달라고 했지. 냄새 뺀다고 빼고 온 건데 이게 독해서.”

좋은 소식은 판타지 세계에도 담배가 있다는 것이다. 필터가 있기는커녕 잎을 말아서 만든 시가 형태지만, 일단은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하지만 화신의 몸에 니코틴이 먹히지 않는 건 나쁜 소식이었다. 약한 독성에 면역이 있다나 뭐라나.

“지나가다가 들었는데 사제들이 니 정신병자라고 욕하더라.”

“압니다. 시답잖은 걸 계속 물어보기에 마법을 좀 보여 줬죠. 다들 감탄하던데요.”

“개소리하지 말고 잘해. 니가 지랄하면 그게 다 나한테 온다고. 데리고 다니기에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되란 말이야.”

담당 천사에게서 들은 설명에 따르면 <이스트리아 퀘스트>는 결국 모의 시뮬레이터였다. 동료 요정의 성격 따위는 계산에 넣지 않았다고 했다.

그걸 왜 빼지? 일을 참 못하는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시뮬레이터에 들어가지 않은 요소가 꽤나 많아 보였다. 이게 두 번째로 나쁜 소식이었다.

물론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세상사가 메뉴얼대로만 돌아갔더라면 여기 떨어질 일도 없었을 테니까.

“어쨌거나, 사제야. 로드맵을 세워 보자.”

“로드···로드맵? 그게 뭡니까? 천계에서 쓰는 단어인가요?”

란드와르는 번역기의 정확한 성능을 잠시 궁금해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말만 통하면 됐지.

“앞으로의 계획 말이다.”

일단 거점으로 쓸 단독주택이 하나 생겼다. 일일이 본부에 드나들면서 하급 사제들에게 얼굴을 보여 줄 필요는 없으니까. 징표와 지급품 무기 역시 오늘 안에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일단 나는 칼 받으면 바로 용병 사무소 갈 거다. 몸 좀 풀어 보려고 그래. 거기서 바로 짧은 임무 처리할 수도 있으니까 며칠쯤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사제들 앞에서는 가만히 있고.”

“저는 여기 남아 있으란 말씀이십니까? 왜요?”

“나 요정이요, 하고 광고할 일 있냐. 너 인간 마법 못 쓰잖아.”

이유는 크게 셋이었다.

첫째, 이 요정 놈이 배운 것은 야스와다의 주문뿐이었다. 다른 용병 앞에서 영혼을 제물로 바쳤다가는 단번에 고발이 들어올 것이다.

둘째, 어차피 초반에 나오는 보조 시나리오들은 혼자서도 깰 수 있을 만큼 쉬웠다.

그리고 셋째, 이게 제일 중요했다. 사람 죽이는 연습을 이놈 앞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내장을 보고 토하기라도 하면 변명할 말이 없었다.

씨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현실이 놀랍고 비참했다.

“아, 예. 옳은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용병 임무라뇨, 장창으로 바느질을 하겠단 이야기처럼 들리는데요. 시간 낭비 아닙니까?”

타당한 지적이었다. 수련의 장이야 그렇다 쳐도, 용병 사무소에서 나오는 보조 시나리오는 대개 시간을 들이는 것 자체가 낭비였으니까. 보상이라고는 대개 하급 강화 정수나 교단 지급품 수준의 장비.

하지만 개중에도 괜찮은 물건을 주는 게 몇몇 있긴 했다. 모든 보조 시나리오를 깨 보진 않았지만 코어 아이템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대강 알았다.

“그러려니 해라. 다 이유가 있고 생각이 있으니까 가는 거 아니겠냐.”

***

도시 서북부의 용병 중개소는 인력 사무소 대기실과 복방을 섞어 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일을 구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떠들면서 시간을 죽일 요량으로 나왔는지 대기실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다. 얼핏 보기엔 한량 같기도 했다.

란드와르는 그들을 지나쳐 접수처로 향했다. 사무원이 그림자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들었다.

“무슨 업무 처리하러 오셨어요? 신규 등록? 등급 재검사? 소속 변경?”

“신규 등록으로 하겠습니다.”

성흔과 동일한 형태의 파란색 브로치를 보여 주자 사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즈리온 교단의 징표였다. 수련의 장을 거치지 않고서도 중급 용병패를 받을 수 있는 물건이기도 했다.

“참, 등급 검사도 부탁드립니다.”

“수련의 장 말씀이시지요? 가동비용과 발급 수수료까지 해서 50탈로나입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수련의 장을 건너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모의 전투는 한 번쯤 해 봐야 했으니까.

“마법진 가동까지는 30분쯤 걸리고요, 저쪽에서 기다리시면 되세요. 여기, 마저 작성하시고요.”

란드와르는 관련 서류에 서명하고 값을 치른 후 대기실로 향했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용병들이 신참을 보고는 관심을 비췄다. 대부분은 지급품으로 받은 장검 때문이었다.

“보니까 교단 소속이구먼. 요즘 일이 많을 텐데.”

“그렇지. 여기까지 상단 호위 일이 내려오는 거 보면 심상찮아. 소문 들어 보면 며칠 사이에 본부 사제들까지 죄다 일 받아서 나가고 있다던데, 레오나 쪽이랑 같이.”

“정식 사제가 이런 데 와도 되는가? 바쁘지 않아?”

레오나 교단이 의사 협회라면 아즈리온 교단은 전문 군인들. 경호부터 괴수 퇴치까지 각종 전투 관련 업무를 도맡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의뢰비는 서비스 품질에 비례했다. 아즈리온 교단이 레오나 교단에 버금가는 재력을 자랑하는 이유였다.

달리 말하면, 용병 사무소에 내걸리는 의뢰는 중요도가 낮거나 금액이 짰다. 혹은 어딘가 구린 데가 있었다.

용병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감이 잡혔다. 교단에서 일을 안 줘서 사무소나 기웃거리는 폐급으로 보이겠지. 그것도 이 바쁜 시국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란드와르는 짧게 답하고서는 입을 다물었지만 용병들의 수다는 멈출 줄을 몰랐다. 다들 교단 소식을 궁금해했다. 괴수들이 눈에 띄게 흉포해진 이유가 무엇인지. 교단은 이유를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무엇인지.

“뭘 떠들어 대고 그래? 그걸 알았으면 이미 외곽으로 발령을 갔겠지. 눈 밖에 났으니까 교단 징표 달고서도 용병 사무소나 기웃거리는 거 아니야.”

···짐작은 했지만 이걸 실제로 말하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다. 란드와르는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떡 벌어진 어깨에 그럴듯한 대검까지, 외관에서부터 자신감이 느껴지는 놈이었다. 그러니까 대뜸 시비부터 걸어오는 거겠지.

“그쪽도 여기서 노닥거리는 걸 보면 피차일반인데, 조용히 지나갑시다.”

“허, 경험도 없는 파랭이 주제에 선배님을 무시하면 안 되지.”

곧바로 란드와르는 궁금하지도 않았던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용병의 이름이 알톤이라는 것. 한때는 아즈리온 교단에서 붉은 징표까지도 받았는데 실수로 동료 사제를 죽였다가 파문당했다는 것. 하지만 실력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어쩌라고.”

더 해 줄 말이 없었다.

알톤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당황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 둘 다겠지. 놈은 말문이 막힌 듯 잠시 멈칫거리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등급 검사를 신청했더군. 교단 징표가 없으면 중급도 못 딸 거라는 데에 걸겠어.”

한 귀로 듣고 흘려도 될 소리인 걸 아는데도 짜증이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교단 시설을 쓰는 게 나을 뻔했다. 물론 그 경우에도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겠지만······.

“걸 건 없고, 기다려 봐라. 바로 따 올 테니까.”

이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는 건 신성모독이었다. 본체에 대한 모독.

질 가능성은 배제하기로 했다. 아즈리온도 체면이 있으니만큼 알아서 잘 해 줄 터였다.

***

수련의 장 부지는 그 넓이 때문에 콜로세움을 겸했다. 평시에는 테스트 용도로 쓰다가, 무투회 등의 이벤트가 있을 때에는 경기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따라서 할 일 없는 용병들은 도전자가 나타날 때마다 관람석으로 달려가곤 했다. 몇 단계에서 나가떨어질지, 등급 갱신에 성공할 수 있을지로 거는 내기 도박은 사무소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이거, 내기할 사람 없나?”

“내기는 무슨 내기야? 이긴다는 쪽에 걸 놈이 있어야지.”

“혹시 모르잖아. 난 이긴다에 50탈로나 건다!”

“아주 그냥 돈을 땅에 버리는구만. 좋아, 그러면 나는······.”

용병들이 떠들어 대는 와중 란드와르의 맞은편에서는 환영 괴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뼈대는 개를 닮았지만 훨씬 크고 말랐다. 정확한 이름은 잿불사냥개. 등을 덮은 암적색 불꽃이 특징인 놈이었다.

“하여간 알톤 녀석도 성격이 나빠. 시킬 거면 중급으로 아무거나 시키면 그만이지, 하필 저놈인가.”

“뭐, 어때. 간만에 볼거리도 생기고 좋지.”

잿불사냥개는 초급 단계의 괴수였다. 설계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시공 과정에서 마법진의 일부가 잘못 새겨진 탓에 세카두 용병 사무소의 잿불사냥개는 상급 수준의 괴수가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환영 하나를 고치겠답시고 바닥을 모두 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잿불사냥개는 공식적인 목록에서는 빠진 채 아주 가끔씩만 불려 나오고 있었다.

잿불사냥개가 수련의 장에 나서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건방진 신입을 초급도 못 통과하는 놈이라며 망신 줄 용도인 것이다. 진상을 알 때쯤이면 이미 기강이 잡힌 뒤.

“그나저나 신참이 저거 잡으면 둘이 붙는다고 했지? 알톤 놈, 이번에 호되게 당하는 거 아닌가 몰라.”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지, 저걸 누가 잡아? 어지간한 힘으로는 날도 안 들어가는 놈인데.”

“그래도 끝나기 전까진 모르지. 한번 보자고.”

잠시 뒤, 형체를 갖춘 잿불사냥개는 앞발로 땅을 내려찍은 다음 고개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개전의 표시였다.

아우우―

잿불사냥개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도약했다. 땅을 박찬 란드와르는 우측으로 앞서 나갔고, 동시에 사냥개의 앞발톱이 소름 끼치는 휙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사냥개류 괴수는 도약 공격이 특징. 그 이후의 연타까지 대처해야 한다.

허탕을 친 사냥개는 서둘러 몸을 꺾고는 란드와르를 후려치기 위해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그 틈을 노려 안쪽으로 파고든 뒤, 검을 쳐올렸다.

날이 괴수의 배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순간이었다. 잿불사냥개는 고통스러운 듯 몸을 흔들더니 이내 허공 속으로 흩어져 갔다.

“란드와르, 상대는 잿불사냥개, 통과!”

시공팀의 실수라기에는 너무 허무한 결과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결과이기도 했다. 갑자기 시설이 고쳐질 리가 없었거니와 전사의 움직임 역시 완벽했다. 긴장 섞인 침묵이 관람석을 사로잡았다.

“어이, 내려와! 끝을 봐야지!”

란드와르의 목소리가 정적 속에 쩌렁쩌렁 울렸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