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341화 (341/341)

대선 (10)

대망의 선거 날 아침이 밝았다.

오랜만에 푹 잔 덕분에 회복이 되어서 그런지 다행히 몸살기는 사라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두통은 가시질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얼른 씻고 나가자.”

“그래.”

목욕재계를 하듯 경건하게 샤워를 한 뒤, 한지유가 골라 준 옷으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우리의 투표 처는 2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

겨울치고는 포근한 공기를 마시며 한지유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역시나 선거장 입구엔 기자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내가 투표하러 올 걸 대비해 촬영과 인터뷰를 하기 위함이겠지.

오늘은 선거 운동을 하는 게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상태.

평소처럼 손가락 네 개를 뻗는 대신, 손을 쫙 펴고 흔들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투표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서 있는 줄이 꽤 되었기에 기다리는 동안 얼떨결에 간이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물론, 기자들은 이걸 노린 걸 테지만 모른 척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굉장히 예민하고 신경질이 날 것 같다.

그러나 아주 태연하게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싱숭생숭합니다. 기대되지만 떨리기도 하고요.”

“만약 대선에서 승리하신다면 가장 하고 싶으신 게 어떤 겁니까?”

“정책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게 정석이겠지만…….”

나는 가볍게 웃으며 인간미를 뽐냈다.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네요. 푹 자고 싶습니다.”

“하하핫. 다크서클이 내려온 것만 봐도 선거운동 기간 동안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질답을 주고받는 사이, 나의 차례가 다가왔고.

나는 기표소에 들어갔다.

두 명의 후보.

일말의 망설임 없이 4번 무소속 최서준에 도장을 세게 찍었다.

혹시나 기권표가 되지 않도록 잘 주의하면서.

꾹-.

“후우.”

투표 종이는 반듯하고 각지게 고이 잘 접어 투표함에 넣은 뒤, 밖으로 나왔다.

그와 동시에 출입문에 출구 조사를 하고 있는 PBC 방송국의 조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능청스레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기호 4번 최서준 뽑았습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핫. 네. 기록하겠습니다.”

한지유를 기다리는 사이, 시민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어, 검사님. 저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시면 안 돼요?”

그녀는 눈까지 초롱초롱 빛내며 휴대폰을 들었다.

“저 방금 4번 뽑았어요!”

“어유, 그러면 4장 찍어 드려야죠.”

“감사합니다!”

그 외에 몇몇 시민들과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한지유가 나와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 찍었으면 갈까?”

“응.”

그녀는 슬쩍 내게 다가와 팔짱을 끼더니.

“이제 나보다 인기 더 좋은데?”

“아직 멀었지.”

“아닌 것 같은데?”

한지유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고는 물어왔다.

“이제 바로 선거 캠프 돌아가는 건가?”

“응. 자기도 조금 쉬다가 넉넉하게 저녁때쯤에 와.”

“아니야. 지훈이만 어머니한테 보내고 바로 갈게.”

“그러면 고맙고.”

한지유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왠지 이길 것 같아. 느낌이 정말 좋아.”

***

“하아…….”

연신 깊은 숨이 내뱉어졌다.

답답함에 터져 나오는 한숨은 아니다.

그저 자꾸만 긴장이 되어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

“후보님.”

윤설하의 목소리에 나는 되돌아서며 다급하게 물었다.

“방송국에 확인해 봤나?”

“예. 방금 연락 왔는데 실시간 집계 중이라서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오후 6시에 바로 출구 조사 결과 공개되니 그거 봐 달라고 합니다.”

“……아직도 30분이나 남았네.”

출구 조사 결과에 목메는 이유는 하나.

역대 대선에서 단 한 번도 출구 조사 결과가 실제 대선 결과와 다른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실제 득표율과 비교하면 1%에서 2% 정도의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그게 굉장히 미미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지.

표본 자체가 실제로 투표를 한 이들의 대부분을 가지고 조사를 하는데다가, 흑인과 백인처럼 인종이 나뉘는 것도 아니니 브래들리 효과가 일어날 리도 없는 법.

출구 조사 결과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벌어진다면, 그게 곧 결과나 마찬가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후보님, 청심환 하나 드시겠습니까?”

고중혁이 다가와 조심스레 약을 건넸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히 먹었다가 축 처지면 보기 안 좋아. 지금 방송국 카메라들 많이 와 있잖나.”

방송국도 둘 중 누가 당선이 될지 모르기에 신동현 후보 측과 나의 선거 캠프에 모두 카메라를 보내 둔 상태.

투표 집계 결과를 볼 수 있는 TV 근처에는 나의 반응을 찍기 위해 수십 대의 카메라들이 몰려 있었다.

대선 당일에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법.

나는 의젓하게 카메라 앞에 앉았다.

그렇게 숨 막히는 30분이 흘러갔고, 마침내 TV에서는 아나운서가 입을 열었다.

-네. 지금 막 출구 조사 결과가 들어왔습니다. 바로 확인해 보시죠.

화면에 5초의 카운트가 세어졌다.

5.

4.

3.

2.

1.

그리고.

-방송 3사 통합 출구 조사 결과

-기호 1번 민국당 신동현 50.1%

-기호 4번 무소속 최서준 49.9%

스읍.

숨이 턱 막혔다.

보통 출구 조사 결과를 보면, 한쪽에서는 만세를 부르고 한쪽에서는 암담한 기운이 감돌며 확실하게 명암이 갈리지만, 이쪽은 물론이고 TV에 비춰지는 신동현의 캠프도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저 박빙의 결과에 놀라는 기자들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감탄사만이 나직이 들려올 뿐.

“충분히 뒤집을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차이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알고 있다.

그러나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숨길 수 없었다.

“기다려 보자고.”

화면 속 아나운서는 차분하게 보도를 이어 갔다.

-이어서 각 지역구별 총선에 대한 출구 조사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개표 방송이 이어질 것이며…….

***

박빙.

박빙이라는 단어 말고 그 어떤 단어로도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개표 결과에서는 계속해서 뒤집히고 뒤집히며 또 뒤집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러나 놀라운 건.

둘의 표 차이가 아무리 벌어져도 1%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49%와 51%사이에서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총선의 각 지역구별 당선자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심장은 더욱더 조여 왔다.

그때, 들려온 아나운서의 목소리.

-현재까지 득표율은 신동현 후보가 50.3%, 최서준 후보가 49.7%입니다. 그리고 막 강원도의 개표가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할 만하다.

강원도는 만세당의 텃밭.

다시 말해 신동현 표다.

그쪽 표가 전부 나왔는데 이 정도 차이면 충분히 극복할 만하지.

“조금 더 지켜보자고.”

오후 8시.

충청도의 개표가 마무리 되었고.

뒤이어 오후 9시.

전라도의 개표가 마무리 되었다.

현재까지 득표율은 신동현이 49.6%, 내가 50.4%

다만, 아직까지 민국당의 텃밭인 경상도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후 10시.

경상도의 개표가 끝이 났다.

신동현이 50.1%, 내가 49.9%

출구 조사 결과 그대로다.

이 정도면 아직까진 할 만하다.

고중혁도 손에 땀을 쥐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제부터 진검 승부입니다.”

남은 곳은 인천과 경기도, 즉 수도권과 서울.

가장 치열하고 전국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는 지역.

얼마든지 차이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손발에 땀이 쥐어지는 건 어찌할 수가 없었다.

10분이 마치 1시간처럼 느껴질 정도.

그리고 오후 11시.

경기도와 인천의 개표가 마무리되었다.

현재까지 득표율은 또다시 역전을 거듭해.

신동현이 49.8%.

내가 50.2%.

이제 지키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정을 갓 넘긴 시간.

개표율이 98%가 되어서야 확정된 결과가 떠올랐다.

-PBC 속보입니다. 제25대 대통령이 막 확정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기도가 콱 조여 와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제발.

나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았다.

믿지 않던 신을 찾게 될 정도.

나는 두 손을 모은 채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현재까지의 개표된 표의 득표율은 1번 민국당 신동현 후보가 49.2%, 기호 4번 최서준 후보가 50.8%로 최서준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습니다.

순간, 모든 게 슬로모션으로 흘러갔다.

옆에 있던 윤설하, 고중혁을 비롯한 캠프의 인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한지유는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와 동시에 세상이 다시금 원래의 속도대로 흘러갔다.

“우와아아아아악!”

“후보니이이이임!”

“이겼드아아아아!”

“축하드립니다, 후보님!”

“어떡해, 진짜 이겼어!”

온갖 환호성이 귀를 파고들었고, 나의 귓가엔 팡파르 환청이 울려 퍼졌다.

“하하…….”

가볍게 웃음이 터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다.

태어나서 이토록 얼떨떨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

“축하해, 여보.”

한지유가 달콤하게 귓가에 속삭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TV 화면 속에 확실하게 내 얼굴 밑에 ‘당선’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

당선이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대통령이다.

“최서준! 최서준! 최서준!”

선거 캠프에 있던 이들은 내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두 주먹을 높이 뻗었다.

“승리했습니다, 여러분!”

“와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함성.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짜릿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퍼져 나가는 전율.

그 어떤 마약을 해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

볼이 상기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후보님…… 아니, 대통령님. 헹가래 한번 받으시죠!”

고중혁의 외침에 기다렸다는 듯이 선거 캠프의 인원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내가 뭐라 할 틈도 없이, 내 몸은 공중으로 들렸다.

그러고는 이내 하나 둘 셋 하는 구령에 맞춰져 내 몸이 붕 떠올랐다.

천장에 닿을 듯이 높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헹가래.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 건 줄 몰랐다.

‘알고 있었으면 많이 해볼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잠시 후, 헹가래를 끝내고 나는 바닥에 똑바로 섰다.

“후보님, 축하드립니다!”

고중혁은 허리를 깍듯이 접으며 인사했다.

“자네 덕분이지. 정말 고맙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캠프의 다른 사람들을 보며 외쳤다.

“다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꾸벅이며 인사를 했고, 윤설하는 함박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후보님…… 아니, 대통령님.”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호칭이다.

대통령.

“그래, 설하 씨.”

“당선 연설하러 가셔야죠.”

“자정이 넘겼는데, 시민분들이 아직 남아 계시겠어?”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현지 모습이 생중계되는 화면을 보여 주었다.

광화문 광장에 빼곡하게 들어찬 시민들의 모습.

그들은 대형 LED 화면에 나온 나의 당선 화면을 보고 힘차게 나의 이름을 연호하며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운데 시민분들 감기 걸리시겠어. 빨리 가자고.”

“바로 차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나도 바로 출발하지.”

나는 입가에 환한 미소를 걸친 채 광화문 광장으로 출발했다.

끝 그리고 시작

“최서준! 최서준! 대한민국 대통령 최서준!”

분명 방음이 잘 되는 자동차다.

그런데 창문을 꽉 닫아 두었는데도 환호 소리가 방음을 뚫고 귀에 파고들었다.

연신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아니, 지어진 채 가시질 않았다.

이게 꿈이라면 평생 깨고 싶지 않을 만큼 기쁘다.

하지만 나는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행복할 수밖에.

호위 차량이 광화문 광장의 중심으로 주욱 밀고 들어가자, 내가 도착했다는 걸 알아챈 시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나를 향해 흔들며 환호했다.

“축하해요!”

“대통령님 사랑해요!”

“투표 보는 게 월드컵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대한민국 만세!”

“최서준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창문으로 몸을 쭉 빼고 환호에 부응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투척물이 들어올 수도 있기에 창문을 열지 말라는 경호원의 경고에 속으로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광화문 광장의 중심에 도착했고, 나는 서울시 측에서 미리 준비해 둔 특설 무대로 올라갔다.

“와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환호와 박수 소리.

나는 두 팔을 높이 뻗어 인사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잦아든 뒤, 힘차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최서준입니다.”

나는 힘껏 웃으며 한 번 더 소개했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제25대 대통령 당선자, 최서준입니다!”

짜릿하다.

사법고시 패스했을 때보다.

한지유와 결혼했을 때보다.

검찰총장이 되었을 때보다 더!

훨씬 더 짜릿하다!

“저를 믿고 투표해 주신 유권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깍듯하게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최서준! 최서준!”

연신 나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저히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아니, 숨기고 싶지 않았다.

오늘 밤의 주인공은.

아니, 앞으로 4년 동안 주인공은.

바로 나, 최서준일 테니까.

“저 최서준은 25대 대선의 승리를 알리고 당선을 수락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엔도르핀이 쏟아진다.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분비된다.

그래, 이게 삶이지.

이게 바로 최서준이지!

“저와 함께 경쟁했던 신동현 후보에게도 감사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엿 먹어라, 신동현.

“제가 당선되었다고 한들, 저 혼자만 정치를 이끌어 나가는 게 아니라, 같이 경쟁을 하신 후보님들과 함께 손을 잡고 수용할 점은 수용해서 더 나은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기왕 엿 먹는 거 두 번 먹어라.

“저를 지지해 주신 분들도, 지지하지 않으신 분들도 모두 포용하고 국민 모두를 위한 정치를 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반대파들까지 모두 안고 가겠다는 포용심과 관용 그리고 넓은 아량!

“저는 선거운동 때부터 오직 하나만을 말씀드렸습니다. 정의. 대한민국에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국민을 위한 나라. 정치인이 국민 위에 있는 게 아닌, 국민이 정치인들 머리 위에서 대접받을 수 있는 국가를 만들겠습니다.”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해외에 나가서도 당당하게 태극기를 달고 다닐 수 있는 자랑스러운 나라. 행복이 꽃피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진심이다.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국가를 만들 것이다.

강대국 대한민국.

그게 나의 꿈이자 염원이며 내 정치적 목표다.

나는 미리 준비해 놓은 태극기를 품에서 꺼내 세차게 흔들었다.

역대 대통령 중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퍼포먼스.

미친 듯한 환호성이 귀를 짜릿하게 파고들었다.

흥분된다.

마구 심장이 뛴다.

나는 태극기를 활짝 편 채 입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 감사함에 대해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이 더 나은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훌륭한 정책을 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팔을 세차게 뻗어 태극기를 높이 들었다.

“앞으로의 4년 동안, 국민 여러분의 선택에 한 치의 후회도 들지 않게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 문득 되돌아보더라도 ‘그때, 투표 참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끊임없이 환호가 터져 나왔다.

“부정부패가 없는 대한민국. 살기 좋은 대한민국. 여러분이 꿈꾸는 이상향, 유토피아가 현실화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더욱더 힘차게 외쳤다.

“최고의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퍼져 나가는 소리를 덮을 만큼 커다란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광화문 광장을 뒤덮었다.

나는 태극기를 세워 둔 채 단상 옆으로 나와서 다시 한번 90도로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두 팔을 높이 뻗어 힘차게 흔들었다.

어느새 두통과 예민한 신경은 싹 가시고 사라져 있었다.

그러고는 그저 행복과 기쁨이라는 감정만이 내 몸을 채우고 있을 뿐.

그때, 문득 단상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한지유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품에 와락 껴안았다.

“정말 고맙고 사랑해.”

한지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국민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 모습은 전국으로 생중계되고 있었고,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다시 태어났다.

***

-네. 지금 최서준 당선인이 탄 차량이 청와대 경호팀의 호위를 받으며 청와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방송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2033년 2월.

지난 12월의 당선 이후, 두 달 동안 신동현은 청와대의 업무를 마무리했고, 마침내 나의 임기 시작 날이 다가와 나는 청와대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언덕 너머로 푸른 기와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파란집.

내일부터 4년간 내가 살게 될 청와대.

잘하면 연임을 해서 8년간 묵게 될 수도 있고.

상상만 해도 벌써 기분이 좋다.

차는 부드럽게 청와대에 들어갔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청와대에 도착할 때까지 차는 단 한 번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이게 대통령에게만 행해지는 ‘의전’이라는 것이지.

지난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축하 인사와 전화를 받고, 대통령 당선의 순간을 녹화해 몇 번이나 되돌려 봤지만 이제야 실감이 나는 기분이다.

꿈에 그리고 그리던 청와대 입성.

그것도 무려 대한민국의 정점 대통령으로서 말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코흘리개였던 광주 촌놈이 대통령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시죠, 대통령님.”

“그러지. 고 프로. 아니, 이제 고 비서실장이라고 불러야겠구먼.”

고중혁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날 안내했다.

나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그를 뒤따라 청와대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도 좋네.”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좋습니다.”

고중혁은 박형태가 국무총리로 재임하던 시절, 그의 곁에 있으며 청와대에 머물렀던 탓에 내부는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청와대의 연회장.

검찰총장 임명식 때 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신동현에게 내가 임명을 받았지만, 이제는 바통 터치를 할 차례다.

신동현은 이미 도착해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신동현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았다.

“예.”

차마 반갑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모양.

나는 능청스레 말을 내뱉었다.

“앞으로 국정 운영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이를 지르물고 답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취임식에 참석한 기자들이 워낙 많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다.

신동현과 내가 함께 이곳에 모인 이유는 하나.

대통령 취임식이 펼쳐질 장소니까.

간단한 식순이 이어졌고, 마침내 나의 선서 차례가 다가왔다.

“대한민국의 제25대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수호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고개를 들고 정면에 펼쳐진 커다란 태극기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힘차게.

아주 힘차게 외쳤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최서준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

청와대 집무실.

‘대통령 최서준’이라고 적힌 검은색의 화려한 명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고중혁 비서실장은 내 미소를 보고 슬쩍 입을 열었다.

“윤설하 씨가 직접 준비해 준 명패입니다. 옥으로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옥이라니.

어쩐지 검찰총장 시절의 명패보다 훨씬 더 빛나고 멋있는 것 같더라.

“설하 씨는 아직 여행 중이지?”

“예. 지금은 캐나다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꼭 청와대에 들르라고 전해 주게.”

“알겠습니다.”

“그래. 쉬고 있게, 고 실장.”

“네. 필요한 거 있으시면 바로 불러 주십시오.”

집무실에는 고요가 내려앉았다.

나는 두 팔을 넓게 뻗고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이게 바로 정상의 공기라는 것일 테지.

또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래도 웃음 중독인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집무실을 한 바퀴 돌며 물건들을 스윽 매만졌다.

이게 전부 대통령의 것.

즉 내 것이다.

그러고는 나의 책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눈길이 가는 건 검은색의 화려한 명패.

‘대통령 최서준’이라는 여섯 글자를 천천히 어루만지고는, 안쪽으로 다가가 커다란 의자에 몸을 앉혔다.

세상에 앉았던 그 어떤 의자보다도 푹신하고 편하다.

대한민국에서는 이게 바로 용상이지.

천천히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묻었다.

아주 어렸을 적.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나는 내 꿈을 ‘대통령’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꿈을 이뤄 냈다.

앞으로 나는.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그리고 나 최서준을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처음엔 그저 악에 받쳐 대통령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나만의 확고한 신념이 생겼으니까.

그저 말뿐인 게 아니라 진정으로 정의로운 대한민국,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말 것이다.

이뤄 낼 수 있다.

고작 마흔다섯 살의 나이에 대통령에 올랐는데 불가능할 게 어디 있겠는가?

천천히 눈을 떴다.

역시나 내 앞에 펼쳐진 건 대통령 집무실.

나는 이 방의 주인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Epilogue

똑똑.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나의 아들.

“아빠!”

최지훈이 달려와 내 품에 와락 안겼다.

“우리 아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볼에 입을 맞췄다.

“아빠, 근데 나 이상한 문자 왔어.”

“문자?”

“응. 이거 봐 봐.”

아들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 함에 들어갔다.

“수업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이상한 동영상이 왔어.”

“무슨 동영상? 같이 봐 볼까?”

“잠깐만 기다려 봐.”

지훈이 녀석은 꼬물거리며 휴대폰을 만졌지만, 문자를 찾지 못했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분명히 왔는데…… 지금 문자가 안 보여.”

“그래? 혹시 누가 보냈는지는 기억 안 나?”

“음, 보낸 이가 분명 숫자였던 것 같은데? 15였나?”

《검사님 출세하신다!》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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