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9)
1번 민국당 신동현 49.3%
4번 무소속 최서준 50.7%
꽤나 크게 뒤집혔다.
진흙탕 싸움이라고는 하나, 신동현과 나 모두 대선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치명적인 건수가 없었던 만큼, 지지율을 야금야금 좀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굉장히 큰 수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TV 인터뷰에서의 내 발언이 짧게 편집되어 인터넷에 나돌며 화제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효과가 컸던 모양.
거기에 더불어 신동현을 고발까지 해 버리니, 민심이 크게 요동친 모양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충분히 뒤집힐 수 있는 수치였다.
출구 조사가 저 정도의 수치라고 한들, 막상 까 보면 반대로 나와도 할 말이 없는 정도인 건 사실이니까.
그러나 계속해서 지지율이 상승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대로만 가면 된다.
이제 남은 건 사흘.
할 수 있는 방법을 총 동원해야 하는 시기다.
***
-올림픽 스타, 최승호 네 손가락 펼친 채 최서준 지지 인증!
-블라인드 미션의 한시아 SNS에 올라온 ‘최서준 검사님 파이팅!’
-슈퍼스타 임서준. 생애 처음으로 정치인 응원! 해외 팬들은 최서준이 누군지 궁금해 하는 걸로 밝혀져…….
-블랙다이아, 곱게 펴든 손가락 네 개. 알고 보니 블랙다이아도 최서준 덕후라는 고백!
-남편의 선거 유세를 돕는 한지유! 은퇴했지만, 꽃미모는 여전…….
한지유의 지인들도 가세했다.
정치적 견해를 밝히기 곤란해 하는 인물들은 거절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최서준이라는 사람 자체가 특정 정당을 떠올리게 하거나 정치적 색깔을 특정 짓지는 않았기에 그녀가 알고 지내던 연예인들 중 대다수가 SNS로 나를 지지한다는 견해를 밝히며 응원해 주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SNS로 글을 쓰는 걸 넘어서, 진지하게 나의 팬이라며 선거 유세 운동을 도우러 온 연예인들도 간혹 있었다.
덕분에 선거송을 녹음한 AR이 아니라, 실시간 라이브로 부르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실제로 연예인들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인터넷을 보면 그들의 팬층 중에서는 지지층을 갈아탔다고 말하는 이들까지도 간혹 보이곤 했으니까.
게다가 선거 운동 중에 연예인이 껴 있기라도 하면, 유권자가 아니거나 신동현을 지지하는 인물들의 발까지도 잡아 세우고 나의 유세를 듣게 만들었으니까.
이것들은 전부 아내가 한지유였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2032 하계 올림픽 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임정환 선수까지도 나를 위해 출격했다.
과거, 김강진 의원의 아들에 대한 편파 판정으로 인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당하게 떨어졌던 걸, 내가 되돌려 주었던 게 너무나도 감사하다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치색을 내지 않았지만 대놓고 나를 지지한다고 선언하며 응원했다.
그를 포함해서 내가 오래 전부터 베풀고 도와줬던 이들에게 조금씩이나마 보답을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당선되어서 이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
선거 이틀 전.
1번 민국당 신동현 49.5%
4번 무소속 최서준 50.5%
격차가 조금 줄어들었다.
겨우 1% 차이.
“후보님, 괜찮으십니까?”
“어, 문제없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나왔다.
“목이 다 쉬셨습니다. 아무래도 다음 일정은 취소하시는 게…….”
“가겠네. 아니, 가야 하네.”
어차피 선거운동 현장에서 힘을 주어 말하면 목이 쉰 것쯤은 충분히 숨기고 멀쩡하게 유세를 할 수 있다.
신동현과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이제 겨우 이틀 남았다. 조금이라도 더 득표율을 올릴 수 있다면, 뛰어야 한다.
쓰러지는 건 승리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가는 길에 약이나 하나 사다 주게나.”
“알겠습니다.”
***
마침내 선거 하루 전.
지지율이 공개되지 않는 블라인드 기간.
소위 말하는 ‘깜깜이’ 기간이 시작되었다.
그 때문일까 사라졌던 두통이 다시금 찾아왔다.
그것도 평소보다 훨씬 더 심하게.
“후보님, 이번 선거 장소에서는…….”
“지금 말하려는 거, 중요한 건가?”
“시장 상인들 성향입니다.”
“그러면 태블릿에 적어서 줄 수 있겠나? 골이 아파서 못 듣겠어.”
“아, 네.”
꾀병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도 두개골이 울리고 지끈지끈 쑤시는 지경.
유세를 하면 큰 소리에 노출이 되니, 누군가가 계속해서 머리를 두들기는 느낌이었다.
목은 쉬었고, 두통은 심해지고 있다.
잠도 제대로 못 자서 눈까지 시린 상태.
심지어 과거에 경찰에게 오발탄을 맞았던 배의 옆구리도 찌릿찌릿한 지경.
말 그대로 종합병원이었다.
그러나 하루만 참으면 된다.
어차피 내일은 선거운동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그래야 후회를 하지 않을 테니까.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아쉬움을 남겨서는 안 되는 법.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내 좌우명이니까.
톡톡.
어깨를 두드리는 감각에 눈을 뜨자, 윤설하가 조심스럽게 태블릿 PC를 내게 건넸다.
“고마워.”
그녀는 나를 배려해 말 대신 미소를 지었다.
내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런지, 눈빛이 아련해 보였지만 그건 못 본 척했다.
시장 상인들의 대부분이 50대에서 60대.
자식들 또한 20대 중후반이 제일 많을 나이다.
이들에게는 교육보다는 자식들의 미래와 결혼에 관한 정책을 어필하는 게 더 좋겠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차는 천천히 정차했다.
“도착했습니다, 후보님.”
“그래.”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했다.
그러고는.
“크흠!”
쓰라린 목을 가다듬고.
차에서 내렸다.
“아이고, 최 검사님!”
“최서준 검사님이시구마잉!”
“후보님께서 여기까지 오셨는가?”
기다렸다는 듯이 친근하게 날 반겨 주는 상인들.
그들을 실망시킬 생각은 일말도 없었다.
나는 누가 목이 쉬었냐는 듯 힘차게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그리고 아주 씩씩하게.
“기호 4번 최서준입니다!”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접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예. 전부 터뜨렸습니다.”
공상욱 검사는 자신이 준비한 모든 사건을 터뜨렸다.
한 치의 빠짐도 없이 전부.
“고생했어, 공 부장.”
공상욱 검사는 이번 대선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특수부 쪽 검사들은 어때?”
“장하영 부장 말에 의하면, 좋지는 않습니다. 압박 수사와 짜 맞추기식 수사로 자백을 강요받으려고 하는 기색입니다.”
신동현 이 자식은 정도를 모른다.
내 안색이 나빠지자, 공상욱은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그래도 못 견딜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라고 전해 줘. 이번 대선만 마무리되면 내가 직접 해결할 테니까.”
“예. 검사들도 믿고 있을 겁니다. 저도 믿어 의심치 않고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물었다.
“내일 오전에 한 번 더 전체적으로 정리해서 보도 자료 한 번 뿌려 줄 수 있겠나?”
선거 직전에 고민하던 유권자들이 그걸 보고 마음을 돌릴 수도 있는 법이니까.
공상욱 검사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당연합니다. 맡겨 주십시오.”
“고맙네. 내일 하루만 더 고생해 줘.”
“걱정 마십시오, 후보님.”
공상욱 검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
“후보님 기사 떴습니다.”
-만세당 서현미 팬클럽 ‘밤안개’ 신동현 지지 철회 선언. 그들이 그리던 이상향은 민국당과 달라…….
기사 제목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됐네.”
만세당의 지지 기반 중 가장 큰 일반인 당원 모임.
그 회원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건 아니지만, 이러한 기사 한 줄이 서현미의 지지자들에게 신동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는 법.
이렇게 만들기 위해 선거 캠프 인력을 통해 사흘 밤낮으로 로비를 했고, 선거 직전에야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만세당 커뮤니티에서 이에 대해 논란이 큽니다. 아무래도 내일 투표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 김 실장한테 고생했다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더 기다릴 건 없는 건가?”
“예, 맞습니다. 전부 끝났습니다.”
“그래.”
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설하 씨야말로 고생했지.”
나는 차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네. 좀 쉬어야겠어.”
***
“고생했어.”
한지유는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실로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다.
요 며칠 동안 선거 캠프에서 새우잠을 자며 유세를 펼치고 전략을 짜기에 바빴으니까.
두통은 더욱더 심해져 있었다.
그러나 한지유의 목소리만큼은 두개골을 울리거나 불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저녁 먹을래?”
“아니, 별로 안 먹고 싶어.”
“주스만 한 잔 만들어 둘게. 그거라도 마셔. 너무 야위었어.”
“알았어.”
“얼른 씻고 나와.”
“응.”
욕실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전신을 적셨다.
그제야 두통이 조금씩 가시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는 하나, 지끈지끈거리는 게 사라질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신경과민이겠지.
대선 하루 전이니 당연히 그러려니 싶었다.
기초 의원부터 시작해서 6선, 7선 국회의원까지 올라온 이들은 매 선거마다 이러한 경험을 했다는 것일 터.
그들이 새삼스럽게 존경스러워졌다.
쏴아아아-.
몸이 녹아서일까.
10분 전까지만 해도 불쾌하게 들리던 샤워기의 물소리가 차츰 귀에 익어 갔다.
다행히 긴장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 모양.
그래서일까.
다시금 머릿속에 선거에 대한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일이다.
이를 위해서 17년 동안 검찰에서 일했고.
2년 동안 변호사로서 봉사했다.
근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노력한 것을 보상받는 시간이 바로 내일의 대선이다.
혹자는 한 번 실패한다고 해서 모든 게 무너지는 게 아니라고 말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정치판에서는 아니다.
한 번 패배하면, 그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뿐이다.
특히나 이번 대선은 더욱더.
신동현과 사활을 걸고 싸우고 있다.
결국 생존하느냐, 죽느냐의 문제라는 것.
나는 반드시 생존해야 한다.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저어 사념을 털어내고 몸을 씻는 데 집중했다.
***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한지유가 정성스레 갈아 놓은 주스를 내게 건넸다.
“무슨 주스야?”
“귤이랑 사과랑 유자에 꿀 조금 탔어. 먹을 만할 거야.”
한 모금 들이켰다.
시큼하지만 달달하니, 부드럽게 넘어갔다.
“설하 씨한테 들었는데 오늘 한 끼도 못 먹었다며?”
“어. 목이 아파서 못 먹겠더라고.”
“이건 괜찮아?”
“응. 딱 좋아.”
남은 주스를 단번에 털어 넣었다.
한지유는 내게 컵을 받으며 말했다.
“침대에 전기장판 깔아 뒀으니까 이불 깔고 누워.”
“응.”
지쳐서일까.
더 말하지 않고 한지유가 시키는 대로 침대 속을 파고들었다.
따끈하게 데워져 있어 포근함이 온몸을 감쌌다.
머지않아 한지유도 불을 끄고 이불속으로 들어왔고.
“정말 수고 많았어.”
따뜻하게 날 안아 주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난 영원히 당신 편이야. 그리고 평생 사랑할 거야.”
“고마워.”
나는 그대로 한지유를 품에 꼭 안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했다.
남은 건 겸허히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
그리고 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 생각을 품기 무섭게.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