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8)
“오늘 오후 2시 30분부로 특수부의 검사 13명에게 정직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전직 검사 출신으로서. 아니, 검찰총장 출신으로서 이번 사태에 굉장히 실망하고 결정 내린 이를 규탄합니다.”
절망적인 심정이 전달되게끔 아련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는 아주 참담한 심정입니다. 대통령이 자신과 관련된 조사를 하는 검사들을 규제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쾅!
단상을 세게 내리쳤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13명의 검사에 대한 정직 처분에 대한 근거는 해당 검사들이 제가 속한 최서준 선거 캠프에 수사 자료를 유출했다는 겁니다. 그걸로 인해 정치적 중립까지 위반을 했다는 혐의고요. 그러나 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왜겠습니까? 제가 관련자에게 수사 내용에 대해 들어서가 아닙니다. 애초에 사실이 아닌데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최서준 선거 캠프의 책임자입니다. 제가 모르는 일인데 어떻게 사실이 될 수가 있다는 겁니까?”
울분을 내뱉었다.
“이건 대선 후보가 아닌, 한 명의 전직 검사로서. 그리고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말 잘못된 일이라는 걸 통감하고 절감합니다. 게다가 지금이 어떤 시국입니까? 대선이 펼쳐지고 있는 시기입니다. 이제 대선까지는 겨우 5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이 독재 국가입니까?”
쉴 새 없이 몰아쳤다.
“까놓고 말해서 최규현 전(前) 대통령 시절의 언론 통제와 이게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이건 명백한 권력 남용입니다.”
사실이었다.
그때와 명백히 똑같다.
그저 규모가 작고 대상이 국가 소속의 검사들이라 목소리를 내지 못할 뿐이지.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현재 신동현의 행위는 탄핵 사유에 해당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10년간 대통령이 몇 번 바뀌었습니까? 또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대통령을 뽑고, 힘들게 땀과 눈물 흘려 가며 촛불을 밝혀야겠습니까? 그렇게 힘들게 또 탄핵시켜야겠습니까? 그러고 싶지 않다면, 신동현 후보가 아예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만들고 제대로 처벌을 받게 해야 합니다.”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또 잘못된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 되잖습니까?”
숨을 천천히 몰아 쉰 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으로 신동현의 행위에 대해 법적 고발을 취할 것이며, 이러한 사실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
신동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기자회견에 응했다.
“저 신동현은 대선 후보이자, 대한민국의 대통령입니다. 대선에 출마해서 유세 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직 대통령으로서 업무에 소홀해서는 안 되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 대한 처분은 검찰총장의 권한이며, 이러한 혐의가 있는 검사들이 현직에서 종사한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일시 정직 처분을 내린 겁니다. 그 혐의에 대해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말이죠.”
신동현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이에 대해 검찰총장에게 지시한 적도 없으며 압박을 넣은 적도 없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없고요.”
그는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혐의가 있는 검사들에 대해서는 명명백백히 조사를 시행할 것이며, 그들이 결백하다면 당연히 복직을 시킬 것이며,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 단언합니다. 그렇기에 ‘정직’처분이 아닌, ‘일시 정직’처분을 내린 겁니다.”
그는 오히려 성을 냈다.
“저는 이러한 사항에 대해서는 저보다도 전직 검찰총장 출신인 최서준 후보가 내부 구조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현직 대통령을 고발하니, 뭐니 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 자체가 더 악질적이라고 봅니다.”
신동현은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저는 이 자리에서 최서준 후보에게 요청합니다. 이번 검사들의 수사 자료 유출 혐의에 대해서 정확한 해명과 함께 성실히 조사에 응해 줄 것을 말이죠.”
이러한 인터뷰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둘은 이미 선을 넘었고, 여기서 낙선하는 이들은 정치적으로 영원히 매장될 것이라는 사실을.
***
해명?
X이나 까 잡수라고 해.
안 한 걸 안 했다고 하면 끝이지, 뭘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법적으로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다.
피의자가 무죄를 입증하는 게 아니라, 유죄를 주장하는 이들이 그들의 주장을 입증해야 한다.
그게 대한민국의 법이다.
그렇기에 신동현이 주장하는 바에 말릴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더 치고 들어가야지.
나는 PBC의 TV 생중계 단독 인터뷰를 받아들였다.
방청객으로는 특정 지지자들이 아닌, 중도층 유권자들이 온다는 조건이었지만, 전혀 문제없었다.
난 그들까지 내 지지층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으니까.
“신동현의 일자리 정책은 실패했습니다. 신동현이 대통령으로 부임하기 전 8%였던 청년 실업률은 결국 10%를 돌파하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벌써 12%에 육박하죠. 이는 국가적 재난 상황과 다름이 없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신동현의 가장 큰 약점.
SV그룹 총수 출신으로 경제 정책을 내세워 당선이 되었지만, 여느 대통령 때보다도 무참하게 실패했다.
“신동현이 뭐라고 했습니까? 지난 4년 동안 많은 걸 배웠기에 이를 기반으로 더 좋은 정책을 펴 나가겠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랬으면 진즉에 바뀌었어야 합니다.”
지킬 선이 없다.
네거티브의 한계가 없다는 건 녀석이 먼저 선언했으니까.
끝까지 조롱해 줘야 한다.
“배웠으면 바로 써먹어야지, 안 바꾸고 뭐 했답니까? 까놓고 말해서 4년 동안 했는데 안 되던 게, 4년 더 한다고 바뀌겠습니까?”
신동현이 실패한 정책을 까 내리면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주는 것으로 내 능력을 입증하고 녀석의 무능을 까발릴 단계로 넘어갈 타이밍.
그 전에 우선 밑밥을 깔았다.
“신동현이 말하기로 저는 검사 출신이라서 정책을 모른답니다. 경제도 모르고요. 그런데 그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변호사로 처음 부임하자마자, 대기업의 비정규직 종사자들을 전부 정규직으로 바꿔 드렸죠. 다들 보셨잖습니까?”
이를 듣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정치 할 줄 모른다고 꼬집어 말하더군요. 외교, 중요하죠. 그런데 그걸 할 줄 아는 양반이 일본이 독립운동가를 무시할 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습니까? 대놓고 부모님 욕을 하는데 못 들은 척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르다는 겁니까?”
속을 긁어 주는 사이다 발언에 유권자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분명 신동현과 나 사이에서 지지할 사람을 결정하지 못한 중도층 방청객들이었다.
그들이 환호했다는 건, 명백한 청신호.
“4년 동안 경제가 망가졌습니다. 왜 망가졌는지에 대해 저희 선거 캠프에서 분석한 결과, 답은 뻔했습니다. 모든 기업들이 하강 곡선을 그리는데 유일하게 한 기업만이 상승 곡선을 그리더군요. 그것도 아주 가파르게 말이죠.”
직접 준비한 자료를 꺼내 보여 주었다.
“4년 동안 SV그룹만 성장을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눈부신 성장이죠. 여기가 어딘지는 다들 아시죠? 신동현 후보의 장남이 회장, 차남이 부회장을 맡고 있는 재벌 그룹입니다. 애초에 신동현 후보도 SV그룹의 전(前) 총수였고요.”
유권자들 사이에서 낮은 탄식이 내뱉어졌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에게 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더욱 몰아쳤다.
“지난 4년 동안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물가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허덕이며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 파산 신청한 기업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요. 그에 반해 SV그룹은 엄청난 성장을 보이며 성과급을 펑펑 뿌렸죠. 4년 내내 말입니다. 이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권자들을 바라보며 호응을 이끌어 내고서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검사들은 전부 정직 처분까지 당했습니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민주주의 국가입니까?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그 후보가 저보고 독재를 하려는 속셈이라고 말했죠?”
나는 다시금 SV그룹의 성장 그래프를 가리키며.
“오히려 이게 독재 아닙니까?”
언성을 높였다.
“이걸 보시고도 또 신동현에게 대한민국을 맡기시겠습니까?”
더욱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예. 이걸 듣고 계신 분이 SV그룹의 종사자라면, 신동현을 뽑는 게 맞습니다. 그래야 회사가 커지고 성과급이 나오니까요.”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SV그룹의 종사자는 전국적으로 1만 명이 넘어간다.
그들의 표를 잃을 각오는 되어 있다.
어차피 그들 중 대다수는 신동현 지지자들이니까.
그에 반해 이러한 발언을 통해 비(非) SV그룹의 종사자들의 마음을 더욱 동요시킬 수 있다.
자신이 잘되는 것에 대한 기쁨보다도 남이 잘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 더 큰 게 인간의 본성이니까.
결국 살을 주고 뼈를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다만, 살을 온전히 놓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그게 옳은 국가라고 보십니까?”
뼈를 취하면서 살도 취하면 좋은 법이니까.
“자본주의에 집어삼켜져서 눈이 멀 수는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간절하게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
“저 최서준, 한 번만 믿어 주십시오. 검사 시절에 온갖 부패 정치인들 및 비리 있는 선배 검사들까지 전부 다 때려 잡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먹을 꽉 쥐고 외쳤다.
“우리 대한민국 돈 많습니다. 재정적으로 부유한 국가죠. 그런데 우리나라가 발전을 못하는 건!”
SV그룹이 적힌 패널을 콱 부수며 외쳤다.
“이 나라에 도둑놈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겁니다. 그놈들만 다 때려잡아도 증세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감세해도 될 정도죠.”
또 한 번 방청객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세가 충분히 올랐다.
주요 부동층인 20대와 30대 초반의 유권자들 중 부동층이 많은 이유는 기존 정치인들에게 싫증을 느낀 이들을 많기 때문이다.
그들을 자극하면 된다.
“여러분, 언제까지 정치인들에게 개돼지로 불리며 머리 숙이며 사시겠습니까?”
조금은 과격한 발언.
그러나 부동층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애매하게 나가면 안 된다.
“요즘 같은 선거철에는 정치인들이 매일같이 찾아와서 머리 숙이며 한 번만 도와달라고 하잖습니까? 그런데 그 인간들 당선되고 나서 4년 동안 한 번이라도 찾아온 적 있습니까? 코빼기라도 보이든가요? 우연히 보더라도 머리를 숙입니까?”
세게.
더욱더 세게.
“아닙니다. 절대 안 그러죠. 오히려 빳빳하게 고개 들고 엣헴엣헴 기침이나 하며 갑질이나 일삼는 게 요즘 정치인들입니다.”
그에 반해 나는 지난 2년 동안 시민들 곁에서 직접적으로 법률 봉사를 해 왔다.
아주 대비되는 처사인 것이지.
“여러분, 민심은 곧 천심입니다.”
녹두장군이라 불리는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의 말을 응용했다.
“국가 없는 국민은 있어도, 국민 없는 국가는 없습니다.”
유권자들의 입이 다물어졌고 귀가 나에게로 쏠렸다.
“국가가 있기에 정치인도 있죠.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정치인들에게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 국민 여러분이 갑이 되셔야 합니다.”
방청객들 사이에서 터지는 박수 소리에 맞춰 고개를 숙였다.
“최서준이었습니다.”
***
선거 사흘 전.
신동현이 무리까지 해 가면서 내 라인을 타고 있는 검사들의 손발이 묶었지만, 녀석의 지지율 하락세는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지지율이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