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6)
“둘이 만남을 가졌다고?”
“예. 2시간가량의 꽤 긴 만남이었습니다.”
비가 와서 선거 유세 운동을 쉴 수밖에 없었다고는 하지만, 서현미 후보와 신동현이 만났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장소도 꽤 은밀한 곳이었습니다. 따라붙은 언론사도 보이지 않았고요. 만세당에 인물을 심어 두지 않았으면 저희도 모를 뻔했습니다.”
작정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게다가 날이 밝은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신동현은 나에게 이야기를 할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답은 하나.
녀석이 뒤통수를 치려는 것이다.
아마도 후보 단일화겠지.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벌어지기 직전이다.
이러한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한 건 아니다.
다만, 변해 가는 지지율과 욕망으로 인해 삐뚤어지는 인간의 심성을 내가 제어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게 최선일 뿐.
일단 대비책은 마련해 두었다.
그중 하나가 공상욱 검사.
“아무래도 일이 복잡해지겠어.”
신동현의 지지율 35%와 만세당 서현미 후보의 지지율 16%를 합산하면 51%.
순수한 계산으로만 따지면, 내가 가지고 있는 49%보다 높다.
이탈자를 고려하더라도, 신동현은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겠지.
지금까지 만세당은 단일화를 한 적이 없다고는 하나, 서현미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보여 준 나에 대한 반감을 생각하면 충분히 단일화에 대한 가능성도 보이고.
그러기에 승부수를 걸어 본 것이겠지.
그나마 위안 삼을 점은, 이미 김강진 후보가 사퇴하고서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
만약 신동현이 먼저 뒤통수를 쳤다면, 김강진 후보도 나를 지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아직 대선까지는 7일이나 남아 있다.
7일이라는 시간은 상대방을 찍어 누를 수도, 그들의 지지층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만큼, 신동현이 나를 공격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라는 건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고 프로, 담배 있나?”
“예.”
고중혁이 건넨 담배를 입에 물었다.
대선에 출마하며 이미지 때문에 한 달이 넘게 끊었던 담배.
담뱃불을 붙여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였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니코틴에 머리가 핑 돌았다.
“후우…….”
숨을 뱉자,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눈앞을 가렸다.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우자, 아침까지도 머릿속을 지끈거리게 했던 두통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역시나 신동현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예민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던 모양.
물론, 그 두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머릿속은 천천히 정리되어 갔다.
그래.
3자 구도에서 2 : 1로 붙는 것보다는 1:1의 정면 승부가 나을 테지.
충분히 할 만하다.
나는 담배를 태우며 휴대폰을 꺼내 공상욱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후보님.
“어제 보여 줬던 자료들, 전부 터뜨릴 수 있나?”
-말씀만 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
“오늘 밤에 준비해 둬. 내가 신호하면 바로 터뜨려 주게.”
-알겠습니다. 완벽하게 준비해 두겠습니다!
***
정치라는 게 참 쉽지 않다.
신동현 때문에 속에서 불이 나고 열이 받아서 지금 당장이라도 서울에 올라가 녀석을 한 대 쥐어 패주고 싶지만, 선거 유세 중에는 시민들과 만나며 환하게 웃는 연기를 해야 하니까.
“기호 4번 최서준입니다.”
나는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한 번 도와주십시오!”
“최서준! 최서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호남 시민들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겠습니다!”
“와아아아!”
김강진 의원도 아끼지 않고 나를 칭찬하며 유세에 가세했다.
“여러분, 국민 검사 최서준입니다. 말해 뭐 하겠습니까? 게다가 이 친구 고향이 광주입니다!”
나 또한 힘차게 외쳤다.
“광주에서 태어나 나고 자랐습니다. 검사로서 첫 부임지도 광주였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광주에 사시고요. 광주의 아들, 최서준! 제가 광주를 위해…….”
광주 출신.
게다가 대한당의 당대표 김강진이 검증하고 밀어주는 후보.
덕분에 빛고을 시장에서의 호응은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다.
마치 내가 기를 받아가는 듯한 느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창 유세를 하고 있던 도중.
고중혁이 급하게 나를 찾았다.
“후보님, 잠깐 확인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그는 심각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아무래도 서울에 올라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유세 시간 남았잖아?”
“지금 신동현이 기자회견을 소집했습니다.”
“뭐?”
나와 약속했던 기자회견 시간은 오후 9시.
만세당과 단일화 선언을 하더라도 그때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 그것도 대한당의 핵심인 빛고을 시장에서 유세를 할 때 단일화 선언을 하겠다니.
뒤통수치는 걸 넘어서 대놓고 엿 먹으라는 소리다.
끝까지 가 보자는 것이지.
나는 열이 오르는 걸 참고 차분하게 말했다.
“일단 유세는 이어 간다. 오히려 지금 가면 더 촉박해 보여서 꼴이 우스워져.”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었다.
“호남의 아들, 기호 4번 최서준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만세당의 서현미입니다.”
오늘 기자회견을 연 인물은 민국당의 신동현.
그러나 신동현은 단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예상외의 상황. 그리고 생각지 못한 조합에 기자들은 눈을 의심하며 셔터를 눌러 대기 시작했다.
“저는 만세당의 당 대표이자, 대선 후보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녀는 특유의 날카로운 말투를 버리고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저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세당에 몸을 담으며, 만세당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만세당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선에 도전했죠. 그리고 수차례의 토론 및 면담을 통해 뒤에 계신 민국당의 신동현 대통령님이 계획하고 계신 향후 4년간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서현미는 신동현에게 후보 대신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썼다.
이 또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함.
“이는 만세당이 생각하는 이상향과 굉장히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신동현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 청와대에서의 경험을 살려 한 번 더 당선이 된다면, 이러한 정치적 신념을 전부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와 만세당은 오랜 고민 끝에 국민들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사회. 그걸 이룩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신동현 후보라는 결론을 내렸고!”
서현미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외쳤다.
“그래서 저 서현미는 오늘부로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하고 신동현 후보를 지지하며 기호 1번 신동현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그녀는 단상 옆으로 나와 허리를 접어 인사한 뒤, 신동현과 바통을 터치했다.
신동현은 곧바로 마이크에 다가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신동현입니다.”
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의 손이 더욱더 빨라졌다.
“우선, 저를 믿고 양보를 해 주신 서현미 후보와 만세당 당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의 4년이 아니라, 앞으로의 4년을 생각해 주십시오. 저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쌓은 지식 및 정치적 경력으로 노련하게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한국을 부강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국내 경제가 더욱더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정의’보다도 ‘평등’이 앞설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입니다.”
신동현은 준비했던 대로 최서준에 대한 돌려 까기를 시작했다.
“정치는 정치를 해 본 적이 있는 인물이 해야 합니다. 저는 SV그룹 총수부터 시작해서 경제 및 국제 정세에서 대처할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국회의원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고, 대통령으로서 4년간 외교적 문제를 전부 잘 다루어 왔습니다. 그에 반해 경험이 없는 후보가 국회의원도 아니고 무려 국가원수인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면 이는 미숙아가 나라를 쥐고 흔드는 꼴로…….”
그는 적당한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또한, 저는 최서준 후보로부터 단일화를 제안 받았습니다. 이미 대한당이 지지 선언을 한 이후에 말이죠. 제 입장에서 이러한 행동은 대놓고 지지율을 80% 대로 끌어 올리며 독재를 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동현은 최서준에게 끝장 승부를 걸었다.
***
“이런 개X끼가!”
단일화에 대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단순히 만세당과의 단일화를 선언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내가 김강진 의원과 단일화 때 사용한 ‘정의’라는 단어를 저격하며 나의 정책들을 깎아 내리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내가 정치적 경력이 없다는 걸 꼬집어 ‘미숙아’라고 조롱하기까지 하고 있다.
단일화 선언 기자회견에서 대놓고 네거티브를 시작한 것이지.
까놓고 말해서 내가 공식적으로 국회의원이라는 경력 사항이 없을 뿐이지, 검사 시절에 온갖 줄타기를 다했고, 정치적 힘을 휘둘렀던 건 사실이다.
게다가 더 어이가 없는 건, 신동현이 말하는 그의 정치적 경력은 전부 내가 쌓도록 만들어 준 것이라는 거고.
그것뿐만이 아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까지 건드렸다.
뒤통수를 치더라도 내가 단일화를 제안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이는 대한당에서 나를 지지하는 인원들까지 뒤흔드는 일이니까.
그런데 이걸 기자회견에서 꺼냈다는 건 한마디로.
끝까지 가 보겠다는 소리다.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저 말을 할 리가 없지.
치킨 게임이다.
내가 죽거나 신동현이 죽거나.
살아남은 사람은 반드시 상대방을 죽일 테니까.
“최 후보, 괜찮겠나?”
김강진은 걱정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쪽도 만만치 않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오래 전부터 대책은 세워 뒀습니다.”
그동안 디스할 게 없어서 네거티브를 참았던 게 아니다.
좋게 마무리하기 위해.
무혈입성을 생각해 녀석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서 참고 있었던 거니까.
그러나 신동현이 먼저 억제기를 깨부쉈다.
이젠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무조건 당선되는 수밖에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반드시.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공상욱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후보님.
“지금부터 당장 순차적으로 터뜨려.”
-알겠습니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뒤, 곧장 미꾸라지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바로 기사 띄울 준비하세요. 10분 안에 자료 넘어갈 겁니다.”
-예!
김강진 후보도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당에서 파악한 자료가 있을 걸세. 자네에게 전부 넘기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뒤가 없어. 무조건 자네가 당선되어야 하네.”
나는 결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