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5)
만세당 서현미의 지지율은 16%.
그리고 신동현의 지지율은 35%.
둘을 합치면 51%로 최서준보다 2% 앞선다.
단일화 과정에서 이탈하는 자들이 발생할 테지만, 만세당의 지지자들 중 대부분이 최서준에게 반감을 가진 이들.
대한당 김강진 후보의 사퇴 때와 달리, 이탈자들의 수가 굉장히 적을 것이라는 뜻.
‘이러면 굳이 내가 사퇴를 할 필요가 없잖아?’
신동현 후보의 눈에서 탐욕이 불타올랐다.
대통령을 안 해 봤으면 모를까, 직접 겪어 본 만큼 권력이 얼마나 달콤한지는 신동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놓고 싶지가 않았다.
신동현은 눈이 돌아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권력이라는 마약에 사로잡힌 이상, 그것을 손에서 놓기 전까지…… 아니, 놓고 나서도 권력에서 헤어 나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굳이 남에게 줄 필요 없다.’
대한민국은 정치판은, 그중에서도 대선은 승자 독식 세계.
본인이 직접 당선되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
머지않아 그는 엉큼하게 입꼬리를 휘었다.
“내가 직접 서현미 후보를 만나 보지.”
“예?”
민국당 수뇌부 의원들은 놀란 티를 감추지 못했다.
“진심이십니까?”
만세당은 원래 단일화를 안 하기로 유명하다.
저들만의 정치 뜻을 펼치는 정당이니까.
그러나 신동현의 입가에선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지난 토론회에서 서현미 후보가 최서준 후보에게 말한 걸 똑똑히 들었으니까.
‘최서준 후보 떨어뜨리려고 출마했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이 유효하다면, 만세당과 단일화를 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최서준 후보를 꺾을 수도 있다.
아니, 충분히 가능하다.
신동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진현수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서현미 후보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만나자고.”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
“어디 안 좋으십니까, 후보님?”
윤설하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괜찮아.”
“힘드시면 오늘 유세는 여기까지 하고 들어가시죠. 날씨도 꾸물꾸물한 게 영 좋지 않습니다.”
12월 들어 처음으로 하늘이 흐렸다.
꼭 비가 오기 직전의 날씨.
하늘이 그 생각 읽은 걸까.
우르릉- 쾅!
기다렸다는 듯이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는.
투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들어가시죠. 감기라도 걸리시면 큰일입니다.”
“맞습니다.”
고중혁까지 동조하기에 나는 더 이상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그러지.”
경호원들이 씌워 준 우산을 쓴 채로 차량으로 돌아왔다.
윤설하가 건넨 손수건으로 옷에 묻은 빗방울을 털어 냈다.
“12월 중순이 넘었는데 눈이 아니라, 비라니.”
“그러게요. 오늘 비 예보는 없었는데.”
적당한 강우도 아니고 폭풍우가 칠 기세다.
그때, 휴대폰을 확인한 고중혁이 날 향해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다른 후보들도 급하게 캠프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네.”
“예. 어차피 천둥 번개가 칠 정도면, 어차피 유권자들도 밖에 잘 돌아다니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이틀 뒤에 있을 마지막 토론회 준비를 하는 게 더 나을 겁니다.”
“그래. 그러자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요 며칠 동안 선거운동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일까.
몸 또한 이곳저곳 욱신거리며 쑤셔 오고 있는 지경.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눈을 감고 시트에 몸을 묻은 채로 물었다.
“지금 일정 이후에 잡혀 있는 스케줄은 없나?”
“예. 오늘은 없습니다.”
“내일은?”
“광주 빛고을 시장에서 김강진 전(前) 후보와 함께 유세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민국당에게 대구의 서문시장이 있다면, 빛고을 시장은 대한당의 텃밭 그 자체.
대한당의 당대표인 김강진까지 함께 출격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후에는?”
“빛고을 시장에서 오후 5시까지 선거 운동을 하고, 그 이후에 바로 서울로 돌아와서 9시에 신동현 후보의 기자회견장에 참석하실 예정입니다.”
내일이다.
무혈입성을 위한 결전의 날.
아무래도 이 두통의 원인은 이것 때문이겠지.
혹시나 일이 엎어질 수도 있다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으로 인해 극도로 예민해졌다는 걸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으니까.
“특별한 낌새는 없지?”
“예. 대한당 김강진이 지지 선언한 이후에 신동현은 민국당 의원들과 몇 번이고 만나고 있긴 하지만, 그 외에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동향 잘 주시하고 있어. 수뇌부 의원들도 잘 살펴보고.”
“알겠습니다.”
만약 신동현이 무혈입성이 아닌, 다른 엉큼한 계획을 품고 있다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선에서 움직일 것이다.
가장 위험한 건 만세당과의 단일화.
그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걸 시행한다고 하면, 내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신동현이 배신할 경우를 대비해 그의 약점을 최대한 손에 쥐고 있는 일.
“공상욱 검사한테 전화해서 오늘 저녁에 들어오라고 해.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고.”
“알겠습니다.”
부디 이 자료를 써먹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
“이제 대선까지 겨우 8일 남았는데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서현미 후보는 도도하게 찻잔을 들고서 입을 열었다.
“이 시간에도 최서준 후보는 선거 유세하고 있는 거 몰라요? 지지율도 계속 오르고 있고. 내일이나 모레에는 50%도 찍을 것 같던데.”
신동현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난 것 아니겠습니까?”
서현미는 여전히 다리를 꼰 채 소파에 몸을 묻고 있었다.
“빙빙 에둘러 말하는 건 시간 아까우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좋죠.”
신동현은 두 손에 깍지를 끼고 테이블에 올렸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직설적으로 내뱉었다.
“단일화하시죠.”
서현미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다시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신동현은 자신의 말을 강조하듯 덧붙였다.
“민국당과 만세당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할 만합니다.”
서현미는 아주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글쎄요.”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만세당이 역대 대선에서 단 한 번도 단일화를 한 적이 없다는 걸 모르실 리가 없을 텐데.”
“알을 깨고 나와야 새가 부화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현미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알 속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굳이 나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요?”
“그러면 결과는 뻔하죠.”
신동현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알 째로 사냥꾼에게 삼켜지는 겁니다. 저랑 같이 손잡고 최서준에게 패배하는 거죠.”
서현미도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자신이나 신동현이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면, 최서준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최서준 성격 아시잖습니까? 한 번이라도 자신을 건든 적이 있다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겁니다. 후보님도 반드시 보복 당할 테죠.”
이 또한 알고 있었다.
서현미도 그래서 이 악물고 달려든 것이다.
어떻게든 그를 낙선시키기 위해서.
그러나 예상한 것과 달리, 분명 확실한 증거를 찾았다고 생각했음에도 최서준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마치 이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처럼.
“오라버니이신 서기웅 전(前) 검사장님이 청백리로 유명하셨잖습니까? 그런데 그분까지 교도소에 넣은 인간입니다. 대책을 세우시지 않으면 서현미 후보님도 마찬가지 꼴을 당할 테죠.”
서현미는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지그시 신동현을 바라보았다.
“그 위협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단일화를 하자는 겁니까?”
“그것뿐만이 아니죠.”
그는 컴컴한 미소를 흘렸다.
“최서준에게 엿을 먹이자는 겁니다. 지금까지 성공만 해 온 녀석을 고꾸라뜨리는 겁니다.”
“흐음…….”
“까놓고 말씀드리죠. 최서준은 저에게도 단일화를 제안했습니다.”
서현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
그녀의 손가락이 움찔거렸지만, 신동현은 이를 포착하지 못했다.
서현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물었다.
“그런데 대한당과 단일화를 해서 뒤통수를 쳤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러면…….”
“단일화 이후에 저에게 제안했습니다. 지지 선언을 해 달라고 하더군요.”
시기에 있어서는 거짓이 섞여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현미의 얼굴에서 놀란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일반인들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이야기.
그러나 최서준은 이를 시행했고.
“사실, 저도 그 뜻에 따라 단일화를 하려고 했습니다.”
성공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이대로 갈 수는 없더군요. 녀석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권력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통령이라는 명예, 타국에서의 대우, 상상 이상의 의전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까지.
신동현은 그 어떤 것 하나도 놓고 싶지 않았다.
“서 후보님, 최서준을 막을 방법은 우리 둘의 단일화밖에 없습니다. 아니,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서현미 후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고민하는 듯한 모습에 신동현은 더욱 몰아쳤다.
“까놓고 말해서 서 후보님께서 받아들이시지 않는다면, 저는 최서준의 제안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
“제가 사퇴하고 최서준을 지지 선언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러면 최서준이 갑자기 사고가 나서 죽지 않는 한, 무조건 당선이 됩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죠.”
서현미 후보는 질끈 눈을 감고 고민에 빠져들었다.
고민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서현미가 출마한 건 친오빠인 서기웅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녀의 생존이 달려 있는 문제가 되어 버렸으니까.
만세당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고, 나락으로 떨어지느냐.
아니면, 안면몰수하고 신동현과 손을 잡고 살아남느냐.
오래도록 고민했지만, 마음과 이성 모두 선택한 결론은 같았다.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있고, 서기웅의 명예를 회복시킬 기회가 찾아온다.
서현미는 당의 사활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버릴 만큼 신념이 확실한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둘이 합친다고 무조건 당선이 되는 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단일화로 인해 이탈자도 반드시 생길 테죠. 하지만!”
신동현은 언성을 높였다.
“확실한 건, 이대로 가면 우리 둘 다 죽는다는 겁니다.”
서현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신 후보님 말씀대로 하죠.”
신동현의 입가엔 거칠게 미소가 휘어졌다.
“감사합니다.”
“언제 지지 선언을 하면 되겠습니까?”
“내일입니다.”
서현미 후보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도 당원들과 이야기할 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신동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내일 기자회견을 준비해 뒀습니다. 그리고 최서준은 그때 저에게 사퇴 및 지지 선언을 지시했죠.”
“…….”
“내일 기자회견에서 선언하지 않으면, 분명 낌새를 알아챌 겁니다. 그 녀석 눈치는 서 후보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후우…….”
서현미 후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정리해 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신동현 후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내일 기자회견장에서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