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335화 (335/341)

대선 (4)

토론회는 나의 완전한 승리였다.

물론, 서현미는 친오빠인 서기웅 건 외에도 많은 준비를 해 왔다.

그러나 토론회 1부가 끝나고 2부까지의 20분은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서현미도 제 딴에는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윤설하와 고중혁이라는 나의 참모들이 너무나도 유능해 20분 만에 모든 상황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준비를 해 주었다.

휴식 시간에 반해 그녀의 발언 시간은 짧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내 의견을 듣느라, 본인의 시간을 할애한 탓에 직접 말을 할 시간이 줄어들기까지 했으니까.

이 토론회 덕분에 1차 조사에 비해 지지율 구도 또한 크게 바뀌었다.

1번 민국당 신동현 27% → 28%

2번 대한당 김강진 25% → 25%

3번 만세당 서현미 16% → 11%

3번 무소속 최서준 32% → 36%

신동현과 김강진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토론회에서 죽을 쑨 서현미의 지지율은 꽤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탈한 5% 중 4%는 내가 차지했다.

만세당 자체가 고정적인 지지층이 없는 터라, 어느 정도 내려갈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크게 떨어진 건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덕분에 2등인 신동현과의 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었으니까.

양자 구도라면 모를까, 4자 구도에서 8%는 절대 뒤집기 쉬운 수치가 아니다.

그렇기에 무혈입성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확률도 줄어들고.

이대로만 가면 된다.

그러면 청와대의 왕좌에 앉을 수 있다.

물론,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다.

서현미는 끈질기게 나를 물고 늘어질 테니까.

1차 토론회에서 발언하던 도중 시간이 없어서 끝까지 말하지는 못했지만, 과거에 내가 뇌물 수수 과정에서 꼬리가 밟혔던 걸 친구인 신용호가 커버했던 사건까지 꺼내려고 했었던 걸 확인했다.

녀석이 공격하려는 걸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방어해 내야만 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실수를 나의 기회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야 대선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법이니까.

***

“그게 낫겠지?”

“예. 지금 여기서 버텨 봤자 당선 가능성은 굉장히 낮은 것으로 사료됩니다.”

김강진 후보는 자신의 비서실장 박현덕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렇게 되리라는 건 본인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애초에 이번 대선은 당선되려고 출마한 게 아니라, 최서준을 밀어주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러나 막상 출마를 선언하고 자신에게 호응해 주는 지지자들을 보니 욕심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혹시라도 지지율이 급변한다면, 굳이 최서준에게 붙을 필요가 없는 법이니까.

까놓고 말해서 뒤통수를 때린다고 최서준이 언론 앞에서 같이 손잡기로 했다고 말할 리도 없고.

그러나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이 시작한 지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지율이 상승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몇 번의 토론회를 거치며 만세당의 서현미가 자충수를 두면서 최서준의 지지율을 올려 주고 있는 판국이었으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뒤통수를 치려던 속내를 숨겨 두고 원래부터 최서준의 계획을 위해 움직였다는 듯이 자연스레 사퇴를 하고 그의 계획에 일조하는 게 낫다.

차기 대선을 생각하면, 그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래, 박 실장. 원래 우리 계획대로 다음 대선을 바라보자고.”

“예, 후보님. 잘 선택하신 것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김강진은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대기실에 들어서자, 최서준 후보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미안하네. 오는 길에 길이 막혀서 조금 늦었네.”

“아닙니다. 아직 기자회견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김강진 후보는 자신이 생각하던 야욕을 완전히 숨긴 채 미소 짙은 가면을 썼다.

“저번에 말한 대로 진행하면 되겠나?”

“예. 맞습니다.”

최서준은 환하게 웃으며 말을 보탰다.

“그리고 입장을 표명하시던 중간에 ‘정의’와 함께 제가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이라는 식의 뉘앙스를 풍겨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현덕 비서실장이 대기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후보님. 이제 들어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김강진 후보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만지고는 곧장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

대선 후보자의 중대 발표라는 자리답게, 기자회견장에는 엄청난 수의 인파가 몰려 있었다.

단순히 기자들뿐만 아니라, 대한당의 지지들과 유권자들까지 모여 있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

나는 이 상황을 대기실에서 바라보며 내가 등장할 타이밍을 기다렸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당 대선 후보 김강진입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이며 능숙하게 입을 열었다.

-먼저, 지난 열흘간 함께 달려와 주시고 힘을 불어넣어 주신 유권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강진 후보는 깍듯하게 고개를 꾸벅인 뒤,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저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정권 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합니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유권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기자들의 손은 더욱 빨라졌다.

그동안 김강진은 후보 사퇴에 관해서 어떠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으니 이러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당원분들과 유권자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정말 오래도록 고민하고 또 고뇌한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그러나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사실은 제가 물러나는 건 단순한 사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긴장을 놓지 않았다.

나를 지지한다고 말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까.

-저는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 정치에 새로운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집권하는 정당이 변화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을 더 나은 국가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더 큰 영웅의 출현이 절실하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지 선언을 위한 시나리오는 아주 좋다.

-저는 무소속의 최서준 후보와 긴 시간 동안 이야기하며 그분의 정치 철학과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탈바꿈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결론을 냈습니다.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나의 입가엔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동안 대한민국에 숱한 정의를 펼쳤고, 서민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게다가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도 우유부단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는 결단력은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인물이며, 누구보다도 대통령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곧장 기자회견장의 입구에 섰다.

잠시 후, 스피커를 통해 김강진 후보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이 자리에서 대한당과 최서준의 후보 단일화 및 최서준 후보를 지지할 것을 선언합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문을 열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갔고.

어깨를 펴고 김강진 후보의 옆에 섰다.

그는 자연스레 옆으로 물러나 내게 마이크를 넘겼다.

-안녕하십니까, 최서준입니다.

기자들의 카메라는 나에게로 향해 왔다.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한당 수뇌부와도 이야기를 했지만, 김강진 후보님께서 추구하시는 정치관과 제가 생각하는 정치적 이상향이 같기에 대한당과 제가 후보 단일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양보해 주신 김강진 후보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아직까지는 김강진 후보가 대한당에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를 해 놓으면 그들이 돌발 행동하는 건 막을 수 있을 터.

그사이, 김강진 의원이 가서 이야기를 하면 정리되는 것이다.

이미 김강진 의원이 사퇴 선언을 했기에 그들이 쉽게 움직일 리는 없으니까.

사퇴 선언을 한 상황에서 대한당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게 붙는 것뿐.

나는 국민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말을 보탰다.

-물론, 김강진 후보님께서 저를 지지 선언해 주셨지만, 저는 정당 정치를 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강진 후보님도 동의를 해 주셨기에 후보 단일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과할 필요가 없다.

차분하게. 그리고 무게감 있게.

그러면 후보 단일화를 이끌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언론이 칭송할 테니까.

-제가 김강진 후보님과 이야기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보다도 어떠한 정치를 펼치느냐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였습니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외쳤다.

-늘 지금까지 말해 왔던 사회적 정의가 설 수 있는 국가를 위해. 누구든지 노력하면 행복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호 4번 최서준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였고.

김강진 후보는 자연스레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양손을 머리 위로 뻗었고, 카메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셔터음을 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일 대한민국 모든 신문의 1면은 이 사진으로 채워지겠지.

***

김강진 후보의 사퇴로 인해 지지율 구도는 크게 요동쳤다.

1번 민국당 신동현 28% → 35%

2번 대한당 김강진 25%

3번 만세당 서현미 11% → 16%

4번 무소속 최서준 36% → 49%

김강진 후보가 갖고 있던 25%의 지지율 중 13%가 내게로 흡수되었다.

과반이 넘는 수치긴 하지만, 영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나머지 절반이 민국당과 만세당으로 나눠 들어갔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나에게 반감이 있어서 대한당을 지지하는 인물들과 대한당과 다른 당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김강진 후보를 찍은 인물들은 나에게로 올 리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인건 신동현과 나의 격차가 14%나 난다는 것.

이 정도면 엄청난 차이다.

현재 대한민국 유권자 수는 약 4,500만 명.

투표율을 70%라고 칠 경우, 현재까지의 격차인 14%를 득표수로 계산하면 약 440만 표.

득표수로 따지면 따라잡히기 힘든 수치인 건 두말하면 잔소리.

일반적으로 대선에서도 100만 표 정도만 격차를 벌리면 어느 정도 차이가 벌어졌다고 하니까.

무혈입성에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

신동현만 나를 지지 선언하면 된다.

그러면 이 대선은.

내가 완벽하게 승리할 수 있다.

***

“이거 진짜 완전히 X된 것 같은데요?”

“정말 큰일 났습니다.”

민국당 수뇌부 의원들은 심각한 얼굴로 걱정을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이렇게 흘러가면 승리하기는 영 힘들 것 같은데…….”

“지지율도 지지율인데, 지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김강진 후보의 사퇴로 인해 최서준의 지지율은 무려 50%에 육박했다.

그것도 모자라,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상태.

최서준이 부각되며 자연스레 그에 반대하는 만세당 또한 상승세를 타고 있었지만, 신동현은 그들에 비해 지지율이 횡보하고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대통령님, 이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신동현은 턱을 매만지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는 이번 지지율을 보고 아무래도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원치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최서준의 계획에 동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로 인해 슬쩍 단일화에 대한 운을 떼려고 의원들을 만난 것이고.

그런데 의원들 사이에서 예상치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저희도 단일화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갑자기 무슨 단일화? 대한당도 없어졌는데.”

“아직 만세당이 남았잖습니까?”

그 순간, 신동현의 머릿속에 아주 기가 막힌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최서준을 배신하고, 자신이 당선될 만한 시나리오가.

이내 신동현의 입꼬리가 아주 음흉하게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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