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혈입성 (1)
“오늘 결판을 내시는 겁니까?”
윤설하의 물음에 나는 눈을 감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지금 나는 김강진 의원과 만남을 위해 여의도로 가고 있었다.
윤설하는 무혈입성에 대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나의 측근 중 하나.
덕분에 숨길 것 없이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준비는 잘되셨습니까? 혹시 제가 뭐 도울 일이라든지…….”
“괜찮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영역이니까요.”
김강진 대표를 설득하는 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게 아니다.
오직 하나.
말발.
그게 전부다.
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물었다.
“그나저나 민국당에서는 대선 후보로 새로 접촉하는 인물은 없는 겁니까?”
“예. 아마도 지금 체제로 굳어질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이 선거로 쏠린 지금.
민국당은 여전히 그렇다할 만한 대권 주자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 몇 가지 합당한 이유가 있긴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근거는 현재 대통령인 신동현이 민국당 출신이기 때문.
대한민국 헌법상, 대통령은 특정한 정당에 소속될 수 없다지만, 그는 민국당 출신으로 당선된 인물.
그걸 모르는 이는 대한민국에 없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대통령 연임제를 채택한 상황.
그렇기에 그가 연임 의지를 내비친다면, 당연히 또 한 번 민국당을 달고 대선에 출마할 수밖에 없다.
물론, 신동현의 지지율은 30%의 벽을 유지하지 못하고 깨지면서 현재는 25%까지 수렴한 탓에 이번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당선될 확률은 낮은 상태.
그러나 현재 민국당에는 신동현보다 더 인기가 있다거나 국민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즉, 대선에 출마할 만한 신동현의 경쟁자가 없는 상황.
그렇기에 민국당 의원들의 시선은 대선과 동시에 펼쳐지는 총선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래도 당을 이끌어 나가는 수뇌부는 대선을 마냥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찾은 후보가 한 명 있긴 했다.
그게 바로 나, 최서준이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소송이 끝나기 전부터 민국당에서는 나에게도 접촉을 해 왔다.
변호사로 전환을 선언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민국당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만큼, 나를 대권 주자로 내세우려는 생각.
사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민국당의 입장에서 보기에 신동현보다는 내가 훨씬 더 당선 가능성이 높았고, 국민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민국당을 달고 나간다면 대한당을 찍어 누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민국당 수뇌부 의원들은 내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대선 후보를 고려치 않은 것 같았다.
몇 번 거절하더라도, 일본에서의 소송이 끝나면 받아들일 거라고 추측했겠지만, 또다시 거절하면서 그들에게 남은 대안이라고는 신동현밖에 남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어진 것이지.
신동현의 지지율이 낮긴 하더라도 마냥 당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통령 연임제를 시행하고 있는 타국의 선거를 보면, 속된 말로 일명 ‘현직 대통령 버프’라는 게 있다.
당장 이 사람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대선 후보들 중에 적합한 사람이 없으면, 현재 대통령을 맡고 있는 사람을 선거에서 찍는다는 것이지.
그런데 그 효과가 상당하니,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직 버프’라는 건 대선에서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드러나며 지금까지 치러온 숱한 총선에서도 증명이 되었으니까.
그렇다고는 하나, 어쨌건 간에 신동현의 지지율이 꽤나 낮다는 건 무혈입성에 더 좋은 소식이다.
신동현의 당선 가능성이 낮아야, 내게 협조할 테니까.
지잉지잉.
그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보낸 이 : 미꾸라지
-말씀하신 기사 올렸습니다. 포털 사이트 들어가시면 메인에 업로드해 뒀으니 바로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인터넷에 들어가자, 메인 포털에 내 얼굴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제목은 ‘민국당, 최서준에게 대권 출마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해…….’
한창 선거로 화제가 집중되고 있는 만큼 실시간으로 뜨거운 반응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럴 줄 알고 내가 기사를 뿌리라고 시킨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니 문제 될 것도 없는 일.
기사를 터뜨린 이유는 하나다.
이런 기사를 보면 국민들이 대권 주자 중 하나로 나를 생각하기 시작할 테니까.
게다가 이렇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이다 보면, 국민들은 하나둘씩 나를 대선 후보로 부르고 응원하게 될 테고, 그때 내가 출마를 선언하면 쌓아 뒀던 기대감이 한 번에 터져 나오며 내 지지율을 폭발시키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터.
모두 계산된 일이다.
이렇듯 민국당은 아직까지도 대선 주자를 확정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고 있는 반면.
대한당은 어느 정도 두 명의 주자로 압축되었다.
황현수 의원과 당 대표인 김강진 의원.
둘 중 하나는 분명 출마할 것이다.
정치적 영향력이나 파워를 따지면 당연히 김강진 의원이 한 수 위지만, 김강진 의원이 나와 대화했던 걸 생각해 보면 확실하게 당선되기 위해서 이번 대선에서는 한 템포 쉬며 더 힘을 길렀다가 다음 대선에서 출마할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물론,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지만, 김강진 의원 성격상 큰 변화가 없다면 준비했던 대로 갈 것이다.
만나 보면 확실해지겠지.
“변호사님, 도착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여의도 어딘가의 지하 주차장.
나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차에서 내렸다.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나가서 커피라도 한잔 드시고 계세요.”
“테이크아웃으로 가져와서 여기서 마시겠습니다.”
나는 가볍게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나는 김강진 의원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간만에 뵙네요. 근 1년 만인가요?”
“한 2년 됐지. 내가 자네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총장이었으니까.”
“아, 그런가요?”
“그래. 일단 앉지.”
그의 말에 따라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김강진 의원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질질 끌 필요 없지.”
그는 손가락의 깍지를 낀 채 무릎에 올리고는 내게 물어왔다.
“시국에 관해서 말한다는 건, 당연히 선거 이야기겠지?”
“맞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김강진 의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당 대권 주자 목록에 의원님이 계시던데…….”
나는 넌지시 그에게 물었다.
“대선, 출마하실 겁니까?”
“아니.”
그는 딱 잘라 말했다.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 이번 대선까지는 지켜볼 생각이라고. 아무리 빨라도 다음 대선이 적기야. 지금은 일러.”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런데 대한당 인재가 없어서 걱정이야.”
“의원님이 출마하시지 않는다면, 황현수 의원이 출마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황 의원이 유력하긴 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민국당에서 신동현 대통령이 출마할 것 같은데, 지지율이 상당히 낮잖아?”
김강진 의원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나는 그 의미를 알아채고 바로 캐물었다.
“그 약한 상대에게 대권을 뺏길 것 같아 아깝다는 뜻이시죠?”
“역시 척하면 착이야.”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동현 대통령이 약하지만, 황현수 의원은 더 약하잖나.”
“그러면 의원님께서 직접 출마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허심탄회한 톤으로 말했다.
“까놓고 말해서 신동현 대통령과 의원님이 붙으면 제 생각으로는 대한당이 이길 게 확실해 보이거든요.”
“에이, 근데 신동현 대통령이 출마할지 다른 사람이 출마할지 아직까지는 모르지 않나?”
김강진 의원은 그 말을 하고는 능청스레 나를 향해 가볍게 턱짓했다.
내가 출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나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기사 보시지 않았습니까?”
“민국당에서 대선 출마 제안에 대해 거절한 기사 말인가?”
“예.”
김강진 의원은 날 지그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그의 눈꼬리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누가 대한당의 핵심 아니랄까 봐 역시 예리하다.
“특히 권력 앞에서는 말이지.”
그의 말이 맞다.
실제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다.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출마한다거나, 정계에서 은퇴한다며 선언해 놓고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음 선거에서 출마하는 인물들이 파다한 게 정치판이니까.
“실제로 민국당도 최 변호사가 정말 출마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을 거야. 자네도 그렇지 않나?”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민국당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겁니다.”
순간, 김강진 의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기회를 포착한 야수의 눈빛.
“그 말, 진심인가?”
“예. 이건 제가 확실하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최서준이 출마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민국당의 후보는 신동현으로 확정될 터.
그러면 김강진 의원이 굳이 다음 대선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본인이 대선에 출마할 기회라는 뜻이지.
“그러니까 의원님이 출마하십시오.”
김강진 의원은 다시금 확인하듯 물었다.
“자네, 정말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생각인가?”
“아니요.”
너무나도 태연한 나의 대답에 그는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그러면 방금 나한테 거짓말한 겐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가 민국당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고 했지, 대선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
김강진 의원의 눈이 커다래졌다.
“설마…….”
“예.”
나는 아주 단호하게.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할 겁니다.”
“허어…….”
그의 눈빛에 당황한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로 몸을 기울이며 한마디를 보탰다.
“그러니 의원님이 출마해 주시기를 바라는 겁니다.”
“……뭐?”
여전히 내 계획을 파악하지 못한 그를 향해 아주 당돌하게 말했다.
“그리고 대선 도중에 사퇴하시고 저를 지지 선언 해 주십시오.”
순간, 그의 얼굴이 황당함이 드러났고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김강진 의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이내 불편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예, 있습니다.”
나는 당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과거, 아드님의 올림픽 비리 사건을 묻어 줄 때 저랑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눈썹을 들썩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무슨 부탁이든 한 번은 들어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