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6)
“변호사님, 보셨습니까?”
김상문 변호사는 공항에 와서까지도 싱글벙글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어떤 거 말입니까?”
“인터넷 반응요.”
그는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게 내밀어 보여 주었다.
오늘 있었던 재판의 결과에 대한 기사와 그에 대한 한국에서의 반응.
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 아니던데요?”
정말 아주 난리였다.
한지유에게서 연락을 받았는데, 내 인터뷰가 나오자마자 방영 중이던 드라마가 끊기며 뉴스 속보로 전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매시간마다 뉴스에서 첫 보도를 하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실시간 검색어도 마찬가지.
나와 이번 소송 그리고 추가적으로 김상문 변호사의 이름이 순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것보다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완벽하게 승소 판결을 받아 냈다는 게 큰 의미였던 모양.
국민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는 몇몇 댓글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주모오오오오오! 여기 국뽕 한 사발 말아 주소!
-아, 진짜 나 이거 속보 듣다가 울었다니까 ㅠㅠ
-으아아아아, 이게 나라지!
-대한민국이 왜 강한지 알아? ‘최서준’ 보유국이기 때문임.
-정부가 100년 넘게 못 해낸 걸 최서준이 해내네. 진짜 갓서준이라니까, 갓서준!
-다들 뭐 하냐? 일본 커뮤니티 2CH 가서 놀려 줘야지 ㅋㅋㅋㅋㅋㅋ
-이미 그 사이트 터짐 ㅋㅋㅋㅋ 나도 가서 디도스 공격으로 새로고침 하려다가 서버 터져서 함박웃음 짓고 나왔다.
-이 기회를 살려서 대한민국 정부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명예도 회복시켜라!
-아니, 님들 벌써 기뻐하긴 이름. 일본 정부에서 항소 준비한다는 내용 못 봄? 2심 3심도 지켜봐야 된다.
-ㄴ 아, 여기 진지충 오셨네. 진지나 잡수셈 ㅋㅋㅋ 오늘은 기뻐해도 됨 ^^
-일본 언론 봄? 완전 침울함 그 자체임.
-독도는 우리 땅! 독도는 한국 땅!
-최서준 사랑한다. 나 남잔데 남자가 이렇게 멋있어 보인 적 처음이다. 형, 팬 됐습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운 건 진짜 오랜만이다.
김상문 변호사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말했다.
“들어 보니까 벌써부터 인천공항에는 기자진이 즐비해 있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진짜 이 정도면 대선 출마해도 당선될 분위기라니까요.”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대선을 위해서 변호사로 개업을 한 거니까.
“그럼 출마해야겠네요.”
“……예?”
김상문 변호사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농담입니다.”
“아, 놀랐습니다. 하하하핫!”
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보다도 지금 최 변호사님 인기가 더 높은 것 같다니까요.”
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김상문 변호사는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들어가시죠. 슬슬 탑승 시간입니다.”
“예, 그러시죠.”
오랜만에 들어가는 한국이다.
이게 바로.
금의환향이지.
***
“고생 많으셨습니다, 변호사님.”
간단한 인터뷰를 마친 뒤엔, 윤설하의 에스코트를 받아 공항을 빠져나왔다.
“승소하실 줄 알았다니까요.”
“설하 씨가 한국에서 잘 뒷받침해 주신 덕분이죠.”
그녀는 깜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제가 욕먹는다니까요. 괜히 숟가락 얹은 것처럼 보일 수가 있어요. 지금 국민 영웅은 변호사님입니다.”
“하하하, 이런 일이 저 혼자서 가능했겠습니까?”
“큰 그림을 위해서는 변호사님 혼자 하신 걸로 되어야죠.”
대선.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차 시트에 몸을 묻었다.
“이제 그나마 마음 편하게 쉴 수 있겠습니다.”
“예. 2심이 열리기까지는 또 시간이 꽤 걸릴 테니까요.”
“그나저나 한 의원이랑 그 패거리 녀석들은 어떻습니까?”
한종식 의원과 그 조무래기들.
사실 처음에 일본과 소송을 한다고 했을 때, 마냥 모든 국민들이 찬성하고 응원했던 건 아니다.
특히 만세당의 한종식 의원과 그를 따르는 몇몇 의원들이 나를 비판하고 나섰었다.
주요 두 개 정당인 대한당과 민국당이 가만히 있는데도 그들이 나선 이유는 뻔했다.
유명 인사인 나를 까면, 국민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으니까.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랄까.
까놓고 말해서 반대를 위한 반대와 같았던 것.
오랜 시간에 걸쳐 힘들게 쌓아 온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킨다느니, 괜히 국민들에게 관심을 받아 보려고 승소할 수도 없는 사건을 꺼내 든다느니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다.
물론, 그 녀석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괜히 반박해 봐야 먹잇감만 던져 주는 법이니까.
이 정도 자리까지 올라오니, 적어도 악성 어그로 정도는 구별할 줄 안다.
“한 의원이랑 잔당요?”
윤설하는 백미러로 나를 보더니 싱긋 미소를 지었다.
“완전 잠수 탔습니다. 입도 뻥긋 못 하고 오늘 열린 공식 일정들 전부 취소했다고 하네요.”
그러게 상대를 보고 덤볐어야지.
“혹시나 잠잠해져서 얼굴 들이밀려고 하면…… 아시죠?”
“예. 이날을 위해서 그 녀석들 발언 모두 스크랩해 뒀습니다. 밖에 얼굴 비치는 순간, 터뜨리겠습니다.”
“역시 설하 씨라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부드럽게 운전대를 꺾으며 물었다.
“대선 관련해서 제가 더 준비할 사항이 있을까요?”
“고 프로와 이야기한 건 다 정리됐습니까?”
“예. 우선 선거 캠프에 영입할 인물들에 대해서는 1차적으로 작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계시는 동안 한번 컨펌해 주시면 저희가 추가적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선거 자금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고 있습니다.”
“민 대표는 아직 눈치 못 챘죠?”
“네, 그렇습니다. 전부 차명 계좌인 데다가 신분 세탁 과정을 복잡하게 해 둬서, 전부 해외 투자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펌 Min.
빈집 털이 당시, 차장검사 직에서 물러나고 내가 세워 준 로펌의 대표로 들어간 민호선 변호사가 대표가 되어 운영하고 있는 회사.
민호선은 내가 주요 투자자인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정확히 따지면 회사 지분의 75%가 내 손에 들어와 있다.
자금 관련해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이지.
현재 로펌 Min이 W&K를 포함한 4대 로펌과 어깨를 견줄 정도는 아니어도, 특수부 출신의 화려한 검사 출신 변호사진을 영입한 덕분에 5대 빅로펌은 넘어선 상태.
다시 말해 돈을 어마어마하게 쓸어 담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회사의 수익을 차명 계좌의 주주들에게 돌려서 선거 자금으로 세탁하는 작업을 고중혁에게 맡겼고.
윤설하의 보고에 의하면, 아주 넉넉하게 준비되고 있는 상태.
지금처럼만 간다면 늘 재벌들에게 후원을 받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나 혼자서도 자금에 아쉬움은 없을 것 같았다.
대선 준비 과정이 아주 순조롭다.
이제 남은 건, 안중근 의사 재판에 대해 2심과 3심에서 승리하고, 무혈입성을 위해 신동현 대통령과 대한당의 김강진 당 대표를 설득하는 것뿐.
모든 게 순조롭다.
***
2심은 가뿐하게 승리했고, 3심의 대법원 또한 우리의 손을 들어 주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3심은 펼쳐지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상고가 기각된 것.
2심에서도 일본 정부 측 변호사는 1심에서 우리가 주장한 내용의 논리를 깨뜨리지 못했고, 이를 반증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2심에서도 처참하게 패배했고, 상고를 했지만 2심의 판결을 뒤집을 만한 근거와 논리를 꺼내지 못했기에, 대법원에서는 3심을 진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의 손을 들어 준 것이지.
그리하여 2032년 9월.
1년 여에 걸친 소송이 최종적으로 종료되며,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라는 불명예를 벗고 독립운동가로서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민심은 최고조였다.
1심을 이겼을 때도 장난이 아니었지만, 대법원에서까지 우리의 손을 들어 줬다는 건.
다시는 이 판결을 뒤집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심지어 일본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이 선언된 뒤에 내가 인천공항으로 귀국했을 때는, 기자진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까지 몰려온 덕분에 공항이 마비되어 연예인들만 쓴다는 VIP통로를 사용해서 빠져나왔으니, 국민들 사이에서 나의 인기는 더 말할 것도 없을 정도.
대선까지는 앞으로 3개월.
시기적으로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었다.
소송에서 승리한 것만 해도 충분한데, 며칠 전에 재벌 3세라는 녀석이 갑질 사고를 쳐 주고, 그에 더불어 중국에서 고구려에 대한 역사 왜곡 문제가 터지면서 국민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사로 나를 기대하기 시작했으니까.
이제는 서서히 대선 출마 선언을 할 타이밍을 노려 봐야 할 터.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안중근 의사의 명예 회복을 위한 소송 때문에 한국에서 오래 자리를 비웠던 만큼, 대선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가야 했으니까.
일단 여의도는 지금 정신이 없었다.
지난 선거부터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모든 의원들이 누가 공천을 받을 것인지와 누구에게 공천을 해 줄 것이냐에 대한 고민과, 국민들이 어떤 이를 대선 후보로 기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하는 등 선거에 대한 준비로 정신이 없었으니까.
나는 그들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대선을 위한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언론 담당인 미꾸라지가 재벌 3세 갑질 사건에 대해 자료를 확보하고 비축해 두었으며, 송재훈 PD는 안중근 의사 소송과 관련하여 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었다.
즉 국민이 나를 원하게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것이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처음 내 계획이었던 ‘무혈입성’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김강진 대한당 당 대표와 신동현 대통령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
둘을 설득할 시나리오는 이미 충분하게 짜여 있다.
남은 건 직접 만나서 승부를 보는 것뿐.
단, 신동현은 아직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으니, 우선은 김강진 당 대표가 먼저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최서준입니다.”
-어, 최 변. 오랜만이야. 정말 고생 많았어. 내가 따로 연락한다는 걸 깜빡했네. 미안해.
“아닙니다.”
-이렇게 전화로 할 게 아니라, 직접 만나서 회포라도 한 번 풀어야 되는데 말이야.
“그러면 오랜만에 한잔하실까요?”
-어유, 좋지. 근데 이제 선거철이라 정신이 없어서 말이야.
“시국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요.”
그 순간, 그의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자네, 혹시…….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저도 복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봐야지.
휴대폰 너머로 김강진 의원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내일 저녁에 보세. 시간 괜찮은가?
“예.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장소만 지정해 주십시오.”
-그래. 내일 보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