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322화 (322/341)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1)

고중혁이 보내온 20분짜리 동영상.

재생하자마자 바로 입꼬리가 휘어졌다.

미래 문자를 통해 보았던 영상이 그대로 담겨 있었으니까.

물론, 미래 문자에서는 중간부터 와타나베 기자와 마츠모토 총리가 대화를 나누며 영상이 잘렸지만, 고중혁이 전송해 온 영상은 잘리지 않은 풀버전이었다.

일본 총리와 거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지.

나는 영상을 그대로 복사해 새로운 USB에 담은 뒤, 윤설하를 불렀다.

“네, 변호사님.”

그녀에게 USB를 건네며 말했다.

“이번에 고 프로와 김나나 씨가 입수해 온 영상이 담겨 있습니다.”

“아, 저번에 말씀하셨던 총리의…….”

“예. 혹시 모르니 설하 씨도 들고 계십시오.”

“알겠습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와타나베 기자가 보험이라도 들었다면, 그토록 허무하게 살해당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일본에서 제가 이틀 이상 연락이 되지 않으면 언론에 보도되도록 작업해 주세요.”

“일단 준비는 해 두겠습니다. 그래도 안전에 유의하십시오.”

“당연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윤설하는 고개를 꾸벅이며 USB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이런 작업을 해 둔다면, 마츠모토 총리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해도, 쉽게 나서지 못한다.

이미 와타나베 기자라는 한 사람을 죽인 경력이 있는 인물.

수틀리면 또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나는 외국인이다.

더욱더 안전에 안전을 기해야 하는 법.

사실, 소송이 시작되면 일본 내에서도 활발하게 나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테니, 내가 한국에서 유명인이며 정치적 영향력이 꽤나 크다는 사실도 알게 될 터.

쉽게 건드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보험은 이 정도면 충분할 테고.

다음은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는 일.

때마침 송재훈 PD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최서준입니다.”

-아, 서준 씨. 통화 괜찮죠?

“예, 말씀하세요.”

-저번에 말씀했던 다큐멘터리 방영 날짜 확정되었습니다. 내일 오후 10시에 드라마 하나가 결방인데, 그때가 시청자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이라 괜찮을 것 같아요.

“좋죠. 그때면 황금시간대인데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저한테도 도움이 되는 일인 걸요. 국장 승진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놓이네요. 감사합니다.”

-하하, 진심입니다. 그러면 일 마무리되고 술이나 한잔하죠.

“좋습니다. 그땐 제가 사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그러면 고생하시고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 주세요.

“네,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마무리하자,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모든 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비장의 무기까지 손에 넣었으니, 이제 더 이상 기다릴 필요도 없다.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송되면, 국민들의 관심이 쏠릴 테고, 달아오르기 시작할 즈음, 내가 소송으로 확 불을 지피면 될 터.

다시 한번 국민들의 영웅으로 떠오를 시간이다.

***

“어제 다큐멘터리 봤어?”

“아, PBC에서 한 거?”

여자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난 역사 쪽은 완전 젬병이라 안 보거든.”

“야, 그건 봐야 돼. 진짜 한국인이라면 안 볼 수가 없더라.”

남자가 침까지 튀겨 가며 말하자, 여자는 흥미가 생긴 듯 슬쩍 물었다.

“무슨 내용인데?”

“안중근 의사가…….”

여기저기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로 난리였다.

어젯밤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방영한 다큐멘터리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는 다큐멘터리로서 경이롭게도 1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다큐멘터리가 방송한 시간대에 결방한 드라마가 올해 최고 인기작이었던 탓에 부동(浮動)시청자들이 다른 드라마를 중간에 시청하는 게 아니라, 다큐멘터리로 쏠렸고.

송재훈 PD의 탁월한 편집력이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도록 이목을 고정시켰으니까.

직원들에게 커피를 사 주려고 잠깐 카페에 들른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직원들 중 몇몇은 교복 입은 어린 학생들이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 들었다고 하니, 파급력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에 더불어 박수형 기자가 일본의 막말에 대한 기록들을 모아서 주말에 보도한다고 했으니, 다음 주가 되면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지상파 뉴스에서도 안중근 의사의 생애에 대해서 다룰 확률이 높다.

그때, 내가 일본에 소송을 걸면 되는 것이지.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

김상문 변호사는 고개를 꾸벅이며 내게 돌아섰다.

“접수 완료되었습니다.”

“금방 정리되었네요.”

“예. 민간인 대 민간인이 아니라 정부와 소송하는 거라서 서류가 더 복잡하긴 해도, 미리 준비해 오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소송 준비에 필요한 서류부터 구체적인 내용은 전부 김상문 변호사가 맡았다.

일본에서의 법적 체계 자체가 한국과는 달랐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언어들은 단순 회화를 할 수 있는 내 선에서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일을 준비하는 과정에 서 본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소송에서 도움이 되면 되었지, 절대 폐를 끼칠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 또한 내가 준비한 자료의 법적 검토를 마친 상태.

덕분에 일본의 어떤 법을 적용하더라도 정정당당한 소송이라면,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내용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정정당당’이 지켜질까가 문제겠지만.

일본에서는 윤설하를 대신해 김상문 변호사가 자잘한 업무를 맡아 주기로 했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 윤설하는 한국에 남기로 한 탓이다.

한국에서 필요한 서류들을 보내 주는 역할도 하고, 언론에 대한 보도 등 그녀의 역할이 많았으니까.

나는 곧장 한국에 있는 윤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변호사님.

“방금 막 소송 접수 완료했습니다.”

-말씀하신 보도 자료 준비하면 될까요?

“예. 바로 뿌려 주세요.”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설하 씨도 언론 데뷔하겠네요.”

-떨지 않을지나 모르겠어요.

그녀는 걱정되는지 헛웃음을 쳤다.

-그러면 바로 보도 끝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파이팅입니다.”

단순히 접수한다고 바로 소송이 시작되는 건 아니다.

상대방에게 전달이 되고, 준비하고 수차례의 공판을 치른 뒤에야 선고가 나오는 법.

1차 공판 기일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할 일은 없었다.

아마 일본 측에서 접촉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고.

일단 오늘의 할 일은 마무리되었기에 곧장 호텔로 돌아갔다.

씻고 나오자, 휴대폰을 통해 속보 알림이 떴다.

곧장 휴대폰을 확인하자, 기다렸던 기자회견 모습이 생중계 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최서준 법률사무소의 사무장 윤설하입니다.

그녀의 첫 기자회견.

생각보다 화면발은 훨씬 더 잘 받았다.

-최서준 변호사님의 두 번째 사건이 결정됨을 알려 드림과 동시에 사안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자…….

이번 사건의 개요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그녀는 전혀 떨지 않았다.

최서준 법률사무소의 사무장답게 늠름하달까.

국민들의 신뢰가 더욱 짙어지게 생겼다.

윤설하가 이야기하는 내내 모인 기자들은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쉴 새 없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어찌나 급한지, 기자회견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오며 인터넷에선 속보 알림이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사실, 최서준 변호사님은 오래전부터 안중근 의사님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분들의 명예 회복 및 과거의 판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중근 역사문화 재단에서 법률 상담을 요청하시며, 사안의 심각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워낙 예민한 사안이기에 변호사 일을 생업으로 삼고 계신 분들은 함부로 사건을 맡기가 힘드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보도 자료에 내달라고 말했을 때의 내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내가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이 건을 넘기면, 필시 국선 변호사들이 이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인물들.

이러한 사건을 맡았다가 실수라도 한다면,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힐난이 이어질 테기에 더 이상 변호사 일을 맡을 수 없을 터.

생계에 문제가 생기고 만다.

그뿐만이 아니라, 국선 변호사들의 소속은 국가. 즉 대한민국이다.

다시 말해 이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다면, 국가 대 국가의 싸움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그렇다고 안중근 역사문화 재단에서 거액을 투자해 유명 로펌을 고용할 수도 없는 법.

그렇기에 내가 맡는 게 옳았다.

내가 아니면 맡을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대로 두면 우리의 뿌리가 부정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더 지켜볼 수 없다는 게 최서준 변호사님의 결정이셨습니다.

윤설하는 똑부러지게 목소리를 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번 소송은 한 사람의 명예 회복에 관한 일로서 ‘안중근 재단’과 일본의 소송이지, 저희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거나, 국제적 논쟁을 위해서 벌이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게 가장 핵심이었다.

일본 측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미리 밑밥을 깔아 두는 것이지.

-또한, 최서준 변호사님은…….

한참 동안 기자회견이 이어졌지만, 윤설하는 내가 이야기했던 대로 일본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은 전혀 하지 않았다.

워낙 예민한 사안이기에 일본에서도 주시할 테니, 민감한 단어를 넣었다가는 날 선 반응이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내가 마츠모토 총리의 약점을 쥐고 정정당당하게 소송을 할 수 있는 판을 짤 테지만, 일본인들까지 자극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 정도면 기자회견은 훌륭했다.

국민들의 반응만 괜찮으면 좋을 텐데.

나는 곧장 실시간 댓글을 살피기 시작했다.

-퍄, 혹시나 국가 외교 문제로 번지지 않도록 사전에 싹 자르는 거 보소.

-그렇게 말하더라도 최서준 당신은 대한민국의 대표입니다! 국가대표 최서준 파이팅!

-와, 근데 승소 가능성 있다고 봄?

-ㄴ솔직히 무리. 판사도 일본인, 잘못한 사람도 일본인, 국가도 일본인. 까놓고 말해서 제대로 재판이 진행되기는 하겠냐?

-나도 공감. 그 대신 이걸 소송을 걸어서 국제적 이슈로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맞아. 최서준 아니면 이 정도 소송 걸 만한 배짱 있는 변호사 없음.

-솔직히 요즘 신동현 정부가 일본에 굽실대는 거 보기 싫었는데 개시원하다. ㅋㅋㅋ

-대한당, 민국당 뭐 하냐? 이런 인재 안 모셔 가고!

-진짜 이런 분이 정치를 해야지. 최서준을 국회로!

-양심 있으면 정부도 지원해라. 국가 대신해서 나서는 거잖아?

-라면 물 올린다! 최서준이‘라면!’ 진짜 최서준이라면 승소할지도 모른다.

-제발 출마해 주세요.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무조건 한 표 드립니다.

-보여 주세요, 한국의 뿌리! 조상들의 애국 정신! 민족의 얼!

-진짜 존경합니다. 오늘부터 장래 희망 최서준임.

이 정도면 내가 바라던 그림에서 한 치의 모자람도 없다.

나에 대한 민심은 하늘을 찌르는 걸 넘어 우주까지 닿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테지.

국민들도 승소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승전보를 알린다면.

대선은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을 테지.

국민을 위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승소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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