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2)
***
“오랜만이에요, 검사님.”
문이 열리며 몸매가 드러날 정도로 쫙 붙는 옷을 입은 여성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잘 지내셨죠?”
“실내에서 선글라스는 벗으셔도 괜찮을 텐데.”
“아, 그런가요?”
그녀는 방긋 웃으며 선글라스를 내려놓더니, 곧장 소파로 직행해 편하게 기대어 다리를 꼬았다.
“여기 잘해 놓으셨네. 인테리어도 좋고.”
이러한 행동이 거만하다거나 미워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런 사람이란 걸 직접 보았기에 나쁜 뜻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칭찬 고마워요. 그리고 저 이제 검사 아니고 변호사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휘휘 저었다.
“그래도 저한테는 검사님이죠. 변호사님은 뭔가 입에 안 붙어. ‘변’이라는 글자가 똥 같아서 별로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상석에 앉았다.
“나나 씨는 잘 지내셨어요?”
눈앞에 있는 여자는 다름 아닌, 김나나.
해외에서의 범죄 활동에 거리낌이 없으며,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것을 빼내기에는 그 누구보다도 적합한 인물이지.
“그럼요. 검사님 덕분에 어찌나 자유롭던지, 얼마 전에는 캐나다까지 가서 한 건 했다니까요?”
“자랑이십니다.”
김나나는 능청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업계에서는 자랑이죠.”
그녀는 인화된 사진 한 장을 테이블에 올리며 말했다.
“이번에 훔친 핑크 다이아몬드예요. 예쁘죠?”
저번 달에 해외 토픽으로 본 적이 있다.
아마 러시아의 한 왕조에서 잃어버린 보석이 캐나다에서 전시되던 도중 사라졌다는 기사.
장물을 대도(大盜)들이 또 훔쳤다며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전직 검사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너무 당당하게 하시는데.”
“에이, 우리 검사님 사랑꾼이시니까 혹시 관심 있나 해서. 사모님 드리면 무척 좋아하실 텐데.”
그녀는 음흉하게 눈꼬리를 휘었다.
“제가 동업자 할인도 해 드릴게요.”
“그래도 최소 100억은 넘어갈 거 아닙니까? 살 돈 없습니다. 몇 달 전까지 공무원이었는데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면 어쩔 수 없고요.”
김나나는 사진을 가방에 넣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을 하면 되는 거예요?”
그녀는 능청스레 눈썹을 들썩였다.
“보물찾기라니, 제목만 들어도 벌써 막 두근두근하는 거 있죠?”
이 정도면 진짜 천생 직업이다.
“하나 찾아 주셔야 할 물건이 있습니다.”
김나나는 구미가 당기는 듯 소파에서 등을 떼고 내게로 몸을 기울였다.
“얼마 주실 건데요?”
프로답게 역시 어떤 사건이냐 보다도 보상이 더 중요하다.
“저번에 작업 끝나고 드렸던 보상금 기억하시죠?”
“그거면 조금 작은데.”
나는 피식 입꼬리를 휘며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그 액수의 3배.”
그제야 김나나는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해외 작업인가 보네요?”
눈치가 웬만한 검사들 뺨친다.
“일단 콜.”
김나나는 다시금 소파에 몸을 묻으며 말을 보탰다.
“아, 그런데 전부 다 되는 건 아니에요. 중국이랑 몇몇 국가엔 수배되어서 입국이 안 되는 것 같더라고.”
“제가 찾아본 기록에 의하면 일본에서 수배되거나 잡혔던 기록도 없더라고요. 일본은 전부 여행으로만 가고 작업은 안 하신 거 아닌가?”
“한 번 있어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중세 시대 왕관이었는데 안 걸렸거든요.”
“허허.”
참 대단하다.
“그거 엄청 비싸게 팔아먹었다니까요? 티아라가 얼마나 예쁘던지…… 비싸지만 않았으면 내가 차고 다녔을 거라니까.”
“그렇게 돈을 많이 벌면서 왜 아직도 일을 못 그만두고 있는 거예요?”
“장물로 계산하는 거라 막상 팔고 보면 얼마 안 돼요. 게다가 우리는 몇 년 동안 쫙 당겨서 버는 거라서 많이 벌어야지. 노후 대비도 해야 되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네.”
신변잡기는 여기까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는 품에서 남자의 얼굴이 찍힌 사진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이름은 와타나베 켄시. 아스하 신문 소속 기자인데 5년 째 실종 상태입니다.”
“실종이에요, 아니면 죽은 거예요?”
“아마 살해당했을 확률이 큽니다.”
김나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변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판돈이 큰 이유가 있었네.”
“그리고 아마 죽음의 배후는 현재 일본 총리인 마츠모토 신이치일 겁니다.”
그녀는 흠칫 놀라나 싶더니, 이내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생각보다 재미있겠는데요?”
“자세한 건 이제부터입니다.”
나는 본격적으로 사건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와타나베 켄시가 살아 있던 시절에…….”
***
이야기를 끝내기 전까지 김나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잃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동영상이 담겨 있는 백업본을 구하면 된다, 이 말이죠?”
“맞습니다.”
“오케이, 콜. 어렵지 않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죽은 사람이라서 이 빛나는 미모를 활용할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게 내 전부는 아니니까.”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조사하다보면 마츠모토 총리 측에서도 다시 마수가 뻗어 올 테니까요.”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예요. 뭔가 탐정 같고 멋있잖아요?”
겁이 없는 건지,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구하면 돼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늦어도 올해 안,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요.”
“그러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김나나는 입술을 한쪽으로 살짝 내밀었다.
“제가 일본어는 못 하거든요. 그 죽은 기자의 뒷조사를 하다 보면 분명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제 와서 공부하고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거든요?”
“그럴 것 같아서 김나나 씨를 도와줄 사람을 한 명 구해 뒀습니다.”
“그래요?”
그녀는 눈썹을 들썩였다.
“기왕이면 남자가 좋은데.”
나는 피식 웃으며 밖에 소리쳤다.
“들어와.”
사무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성은 어깨를 활짝 편 채 들어왔다.
“제니퍼 씨, 오랜만에 뵙네요.”
신의 손, 고중혁.
그가 신분을 바꿀 때 성형수술을 하고 일본에서 6개월이 넘게 살았던 만큼, 회화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실력과 임기응변 능력 또한 최상급. 다른 점보다도 내가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게 이번 사건에 투입한 이유였다.
게다가 그의 실력이라면 아무리 김나나라도 어느 정도 그의 손으로 컨트롤할 수 있을 테지.
김나나는 반갑다는 듯 손뼉을 쳤다.
“어머, 우리 여기서 다 보네요?”
“그러게요.”
이미 청와대에서 몇 번이고 마주쳤을 테니 안면도 있는 사이일 테지.
무엇보다도 빈집 털이 시행 직전에, 김나나에게 나의 쪽지를 전해 준 게 바로 고중혁이었으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한번 재미있게 일해 봐요.”
고중혁과 김나나는 가볍게 손을 맞잡았다.
***
“예, 방금 자료는 전달 받았습니다.”
내 책상에는 두툼한 서류 봉투가 올라와 있었다.
안중근 역사문화 재단에서 오랜 기간 동안 수집해 온 자료들.
일제강점기 당시의 법률은 물론이고, 실제 어떤 식으로 적용이 되었는지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거사 준비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빼곡히 적힌 내용.
일본에서의 소송을 위해 나 또한 전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사료들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제가 맡았다는 사실은 외부에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혹시 모르니 재단 내에서도 가급적이면 비밀로 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혹시 이유가 있나요?
“예.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 당연히 일본 측에도 소식이 전해질 겁니다. 그러면 그쪽에서도 소송을 준비할 테고요.”
-아, 미리 대비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군요.
“맞습니다. 괜히 소송 전에 관련 특별법이라도 제정되었다가는 절대 이길 수 없을 테니까요. 승소하기 위해서는 기습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번 소송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 자료를 전달한 비서와 저까지 두 명이 전부니, 비서에게도 단단히 입단속 시켜 두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금전적으로든, 인력적으로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제 손이 닿는 한…… 아니, 남의 손을 빌려서라도 돕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필요한 게 생기면 연락드리죠.”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나는 서류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역사 자료라서 그런지, 분량이 아주 어마어마하다.
책상에 한쪽으로 쌓으면 적어도 내 어깨까지 올 것 같으니까.
다만, 검사로 재임하던 시절, 매일같이 처리했던 업무량에 비하면 이 정도는 할 만하다.
“설하 씨.”
입구에서 대기하던 윤설하가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왔다.
“네, 변호사님.”
“같이 자료 읽어 보시죠. 설하 씨도 전부 파악하고 계셔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사무실에 박힌 채 1주일이 넘도록 사료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단순히 암기하는 게 아니라, 당시 법률에 대한 해석까지 가미되어야 하기에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여부에 대해 오류가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안중근 역사문화 재단에서 넘긴 사료는 한국식으로 해석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소송 장소는 일본.
이 자료들이 ‘국제적’으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석을 해야 하기에 추가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그리고 열흘째 되던 날.
“흐아아, 드디어 끝났네요.”
윤설하는 펜을 놓으며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열흘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서류만 붙들고 있던 탓인지, 그녀의 눈이 새빨갰다.
“눈 좀 감고 계셔요.”
“변호사님이야말로 좀 쉬세요. 지금 완전 충혈되셨거든요.”
“그런가요?”
거울을 보니, 눈에 핏줄이 다 서 있다.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일단 명확해진 건 하나네요.”
“네, 맞습니다.”
자료를 정리하면 정리할수록 우리가 처음 해야 할 일이 정해졌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쏘고 러시아군에게 잡혀간 것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이번 사건에 문제가 생기는 시발점은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군에서 일본 영사관에게로 연행이 된 점.
거기부터 잘못되었다는 걸 차근차근 증명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
일본이나 한국의 자료가 아니라.
중간에 끼어 있던 러시아의 자료를 찾는 것이다.
“러시아로 갈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내일 중으로 출국하는 비행기 찾아볼게요.”
“통역가도 한 분 동원해 주시고요. 최대한 비밀 엄수가 가능한 분으로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정도 비공식적으로 잡겠습니다.”
“그래 주세요.”
“그러면 통역가는 제가 아는 분으로 섭외해도 될까요?”
“아, 있습니까?”
“네. 제 사촌오빠가 러시아에서 대학교를 나온 덕분에 러시아 외무부에서 한국 담당으로 몇 년 동안 근무했었거든요. 높은 직급은 아니었지만 일반 통역가들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그러면 좋죠.”
무엇보다 피붙이니 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은 없을 터.
게다가 외무부에서 일했다면, 높은 직급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통하는 인맥이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일이 훨씬 더 수월해질 수 있겠지.
그녀는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바로 비행기 표 예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