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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출세하신다!-306화 (306/341)

칼춤 (1)

“아, 안녕하십니까, 총장님.”

갑작스런 방문을 예상하지도 못했는지, 서울서부지검장 황윤성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말까지 더듬었다.

“여기까지는 무, 무슨 일로…….”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눈살을 찌푸렸다.

“서부지검은 원래 차도 한 잔 안 건네고 다짜고짜 목적부터 물어봅니까?”

“죄송합니다.”

그는 황급히 밖에 있는 직원에게 커피에 대한 준비를 지시하고는 나를 소파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나는 자연스럽게 상석으로 가서 앉았다.

아주 편안하게 다리까지 꼰 채로.

황윤성 검사장은 안절부절못하고 소파에 엉덩이만 살짝 걸친 채로 어색하게 자리를 잡았다.

나는 말하는 대신, 입을 굳게 닫고 사무실만을 스윽 둘러보았다.

때로는 직접 말하는 것보다 침묵이 더욱 무서운 법이니까.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는 황윤성 검사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제대로 먹히고 있는 건 확실했다.

잠시 후, 직원이 커피를 가지고 오고 나서야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렸다.

“커피 맛 좋네요.”

“아, 그렇습니까? 얼마 전에 커피 머신을 새로 들였는데 손님들 평가가 전부 좋습니다.”

나는 까칠하게 팍 미간을 구겼다.

“검찰들보고 맛 좋은 커피나 마시라고 국민들의 혈세로 운영비를 주는 게 아닐 텐데.”

“……죄송합니다.”

커피 잔을 내려놓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내가 왜 왔는지 궁금하시죠?”

“…….”

그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오신다는 연락을 조금 전에 받아 가지고…….”

“어쩔 수 없었어요. 오는 게 방금 전에 정해졌거든.”

“……예?”

나는 잠깐 말을 쉬었다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뒤 입을 열었다.

“황 검사장 아이들이 몇 살이었죠?”

“첫째는 스물세 살이고, 둘째는 올해 대학 들어갔습니다.”

나보다 열 살은 더 많을 테니 그쯤 될 거라 생각했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해서 윗사람 대우를 하지 않는다.

이 바닥에선 직급이 곧 서열이니까.

그에게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

내 사람이여야만, 아랫사람이라도 제대로 대우를 해 주는 것이다.

“둘 다 20대면 이제 다 컸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독립할 때도 됐네요.”

“예, 맞습니다.”

자식들 이야기를 하니, 입이 풀리는지 그는 술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 그래도 저들이 직접 생활비를 벌어서 쓰겠다고 알바를 하는데 어찌나 기특한지…… 국립이라 등록금도 비싸지 않으니, 다음 학기에는 직접 벌어서 내겠다고 하더라니까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향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마침 잘됐네.”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용돈 보내기가 힘들어질 것 같았거든.”

“……예?”

아직 제대로 뜻을 파악하지 못한 그가 고개를 갸울였다.

“황 검사장님.”

나는 그에게로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세탁 좀 잘하지 그랬어요?”

황윤성의 어깨에 슬쩍 손가락을 뻗어 닦아 내고는 바닥으로 훌훌 털었다.

“먼지가 많이 묻었더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WM생명.”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뒤를 봐준 게 한두 번이 아니던데?”

“…….”

황윤성 검사장의 입이 굳게 닫혔다.

나는 품에서 서류 하나를 던지며 말했다.

“다른 보험사와 관련된 판결은 제각각인데, 이상하게 WM생명과 관련된 판결에서는 꼭 서부지검 검사들이 승소했더라고. 죄다 유죄야.”

그는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건 우연히…….”

“부산에서 5년, 여기 오기 전 서부지검에서 4년. 그리고 이곳 서부지검장으로서 1년. 다 합쳐서 10년 동안 유죄 판결 확률이 96%예요. 이게 우연이라고 볼 수 있는 수치라고 생각하세요?”

보험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민사소송이 발생하는 경우가 흔히 생긴다.

홍보된 만큼의 금액을 받으려는 서민들과 애매한 조항을 악용해서 어떻게든 보험금을 줄여 보려는 보험사 간의 소송.

이러한 민사소송의 경우, 대게 판결은 형사소송에서의 결과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그런데 형사소송에서 검사들이 힘을 써서 보험 피해자들의 과실 위주로 판결을 받아 낸다면 결과는 뻔하다.

보험사에서 보험비를 지급할 가능성이 현저하게 적어지는 것이지.

적은 확률로 지급하더라도 그 액수에 큰 차이가 생기고.

단순히 그게 전부가 아니다.

대기업은 법무팀이 직접 나서서 소송을 거치지만, 서민들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그 절차가 생소한 만큼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재판 과정에서 들어가는 시간과 액수를 생각하면, 민사소송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

결국 보험사가 서민들을 갈취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그걸 이 인간은 방관하는 걸 넘어 조장하고 있는 거였고.

“까놓고 말해서 대기업에서는 조항에 나온 대로 주는 게 정상이잖아요? 없는 돈 뜯어내려는 것도 아니고, 처음 홍보한 대로 받자는 건데.”

절로 언성이 높아졌다.

“그거 한두 푼 아끼려는 속셈이 다 보이는데 그렇게 뒷돈 받고 유착 관계 맺고 그러는 거 쪽팔리지도 않습니까?”

“…….”

“대기업은 그 돈 없어도 잘 유지돼요. 하지만 서민들은 아니거든. 몇십, 몇백에 울고 웃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그 사람들 세금으로 먹고사는 건데 뒤통수를 치면 쓰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이 있더라도 할 말이 없겠지.

그러나 가만히 둘 생각은 없었다.

“황 검사장님,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그게…….”

황윤성 검사장은 눈치를 살피더니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사소한 재판까지 하나하나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어서…….”

나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시나? 내가 증거까지 보여 드려야 똑바로 털어놓으실 거예요?”

“아닙니다, 총장님.”

그는 힘겹게 걸터앉아 있던 엉덩이를 떼어 내서는 다급하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여기까지 직접 왔다는 건 확실한 증거들을 쥐고 있다는 것쯤은 눈치챘을 테니까.

애초에 최서준이라는 인물은 그렇지 않고서는 여기까지 올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테고.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이번 사건을 공론화시키는 것까지 생각했던 만큼, 오는 길에 WM보험과 관련된 사건들의 피해자에 대해 추가적으로 알아봤다.

그리고 이 보험금을 받지 못해 빚더미에 앉아 자살했다는 남성의 소식까지 인터넷 단신 뉴스로 확인했다.

고작 1~2시간 만에 찾은 정보인 만큼, 더 찾아보면 무수히 많이 쏟아져 나올 터.

그렇게 사람까지 죽게 만들어 놓고 이 인간은 자기 살자고 파리에 빙의해서 손을 빌고 있는 지경이라니.

그래서일까.

손까지 싹싹 비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열이 쫙 올라왔다.

“X발.”

육두문자가 사무실에 나직이 울려 퍼졌다.

“여기가 무슨 학교야?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고 다시는 그러지 마라, 훈육하고 그러면 끝나?”

“죄송합니다.”

“왜 나한테 사과해?”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 피해자들한테 가서 사과해야지. 그깟 뒷돈 좀 받아 처먹겠다고 부하 검사들한테 압박을 넣은 덕분에 대기업 배때기에 기름만 잔뜩 끼고, 서민들은 죽을 만큼 고생하고 있는데, 그거 생각했으면 당신처럼 못 놀았어.”

“…….”

“대기업이나 재벌 녀석들은 한두 푼 잃어도 어차피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아. 그런 녀석들 기름때나 좀먹었으면 몰라. 그런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들 뒤통수치는 건 아니지.”

황윤성 검사장은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한껏 쏘아붙이고 나서야 겨우 감정이 가라앉았다.

“후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

“옷 벗으세요.”

“……예?”

당황한 듯 그의 동공이 휘둥그레졌다.

“이제 그만 검찰청에서 꺼지라고.”

“하지만…….”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직접 내쫓아 줘야 되겠습니까?”

“…….”

“증거들이 세상에 까발려지고 파면당하는 것보다는 직접 물러나는 게, 황 검사장님 입장에서도 더 좋을 텐데요.”

그는 입술을 깨물고 내게 물었다.

“제가 물러나면, 이번 일들은…….”

“책임 묻지 않겠습니다.”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여기서 버틸지, 아니면 순순하게 나갈지, 지금 결정하세요.”

한참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가 내린 결론은 뻔했다.

“나가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릴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흘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정리하세요.”

“사흘은 너무 짧…….”

“사흘입니다.”

여지조차 남기지 않게 딱 잘라 말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곧바로 주차장에 내려가자, 윤설하가 차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검으로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시트에 머리를 묻은 채 눈을 감았다.

사흘 안으로 황윤성 검사장의 사표가 올라올 것이다.

물론, 이걸 처리하는 건 검찰총장인 나.

이번 주 내로 녀석은 사직 처리가 되겠지.

세간의 눈치가 있으니 잠시의 휴식 이후에 검사장 출신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들고 대형 로펌에 들어가서 돈을 쓸어 담겠지.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그걸 지켜볼 생각은 없다.

사실, 현직 검사장인 시절 정보를 들춰내 처벌하는 게 녀석을 엿 먹이기엔 더욱 좋다.

그러나 황윤성이 검사장 타이틀을 쥐고 있으면, 절대 쉽게 물러나려고 하지 않을 터.

이를 갈고 바득바득 버틸 테니, 시간을 오래 뺏기겠지.

그렇기에 빠른 시간 내로 처리하기 위해 녀석이 검사장 직에서 물러나도록 만든 것이다.

물론, 황윤성 검사장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긴 했다.

그런데 그건 내가 했지, 다른 검사들이 한 게 아니다.

까놓고 말해서 서민 등골을 빼먹는 범죄자 새끼랑 한 약속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고.

애초에 사법연수원에서 검찰로서 대한민국의 정의를 수호하겠다고 서약까지 한 놈이 정의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 놓고 뭘 바라면 안 되는 법이니까.

녀석의 사표가 수리되면, 머지않아 설치될 공수처의 검사들이 발톱을 드러내고 녀석에게 달려들 것이다.

더불어 언론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도피성 사직을 했다는 보도가 이어질 테고.

즉.

녀석은 로펌에 들어갈 게 아니라.

차가운 교도소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

-전(前) 서울서부지검 검사장 황윤성, 결국 구속…… 새롭게 탈바꿈한 검찰!

“와, 이거 미친 거 아니야?”

“그러게.”

두 명의 검사가 흡연실에서 신문을 붙잡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감찰부에 내 동기 말을 듣기로는 서울 전역 검사들 조사 들어갔다더라.”

“전부?”

“아니, 뻔하잖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성태현 라인을 탔던 경력이 있는 검사들.

그들이 주요 수상 대상이었다.

한마디로 보복이 시작된 것.

물론, 자신이 깨끗하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라인을 타는 인물들 중에 먼지 한 점 묻지 않은 검사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애초에 그런 인물들이라면, 라인에 들어올 리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언론에 한마디라도 입을 뻐끔할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새어 나갔다가는, 곧바로 타깃이 될 테니까.

“하아, 이거 미치겠네.”

“최서준, 이 자식. 총장 되자마자 칼춤을 출 줄은 몰랐어.”

그는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우리도 옷 벗어야 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 내가 이럴 것 같아서 신동현 당선되자마자 바로 경기도로 빠졌잖아.”

그러나 듣고 있는 남자 검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기도 그렇게 안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지방으로 빠질 걸 그랬다.”

“거기도 안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만약 최서준이라면…….”

“…….”

설마하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머릿속엔 머지않아 최서준의 마수가 닿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느낌은, 확신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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