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305화 (305/341)

역사의 시작 (2)

검찰총장.

내가 이 자리에 오르고 제일 먼저 한 것은.

“검찰 개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검찰 개혁요?”

신동현 대통령은 놀란 눈치로 물었다.

“총장이 되자마자 바로 시행하시면 반발이 심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검찰총장의 권한이 가장 강력한 건 대통령이 레임덕에 걸릴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임명된 신임 시절이다.

다시 말해.

검찰총장으로서 나의 힘은 최절정이라는 것.

지금이 아니면 검찰 개혁을 시행할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검찰총장으로서 2년이라는 시간은 절대 길지 않으니까.

신동현 대통령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하시죠. 검찰에 대한 권한은 총장님께 모두 넘기기로 이미 결정한 사항이니까요.”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이고는.

“그리고 하나 더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공수처를 설치했으면 합니다.”

순간, 신동현 대통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가 아는 그 공수처 말씀이십니까?”

“예. 제가 직접 칼을 뽑아 휘두르겠습니다.”

“허…….”

그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수처.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의 줄임말로 현직 고위급 공무원은 물론이고,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의 비리를 중점적으로 수사하고 기소까지 직접 하는 독립기관.

다시 말해, 이전 정권들의 잔재를 내가 직접 깡그리 쓸어버리겠다는 소리였다.

성태현의 죽음 이후, 민국당이 나와 신동현에게 넘어오긴 했으나, 그건 국회의원에 한정된 이야기.

그 외에 아직 선거까지 기간이 많이 남은 지방선거의 당선자들과 같이 우리의 손이 쉽게 뻗지 못하는 곳에서는 여전히 성태현의 잔당이 남아 있었으니까.

대놓고 본인이 성태현의 지지 세력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전 정권에서 몇 번이나 특혜를 받은 사실이 있고 은연중에 현 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을 모으고 있으니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

까놓고 말해서 이들은 신동현에게도 눈엣가시였다.

물론, 대통령의 힘으로 찍어 누르는 방법도 있다.

다만, 그랬다가는 괜히 공론화되어 반발이 커지기라도 하면, 임기 초부터 정권이 휘청거릴 수가 있기에 지켜보고 있는 상태랄까.

그렇기에 신동현의 입장에서도 내가 나서서 공수처를 설치하자는 게 반갑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총장님께서 직접 추진하신다면, 만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임기 초라서…….”

“반발이 있을 거란 말씀이시죠?”

“예.”

그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제 겨우 한 달 차인데 시작부터 바로 공수처가 설치되어 고위급 공직자들의 목이 잘려 나간다면, 정치적 보복이라는 뉘앙스가 풍겨지는지라…….”

“그것까지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제가 직접 공수처장을 겸임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누구를…….”

“하진일 원장이라고 아십니까?”

“혹시 법무연수원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진일 원장은 성태현 라인에 반기를 든 대표적인 인물이죠.”

“아…….”

한마디로 말해, 우리에게 알아서 기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물론, 본보기는 필요하다.

그렇기에.

“공수처가 정식으로 힘을 발휘하기 전에.”

순간, 나도 모르게 눈에 살기가 피어났다.

“감찰부를 이용해 성태현 라인 검사들을 전부 조질 겁니다.”

신동현은 입을 굳게 닫고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가 괜히 검찰 개혁을 하겠습니까?”

정의로운 검찰로 탈바꿈하기 위해 부패한 검찰들을 찾아낸다는 큰 뜻을 풍기고 있었지만, 사실 속내는 따로 있었다.

발본색원(拔本塞源).

춘추좌씨전에 나온 말로 ‘나쁜 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뿌리부터 완전히 제거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것’.

내게 반기를 들었던 검찰 녀석들의 싹을 전부 다 잘라 버리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검사들의 별’, ‘국민 검사’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들,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건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성태현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고검장으로 밀려난 나를 보고 이때다 싶어 비웃거나 손가락질하던 녀석들까지 내가 포용하고 이해해 줄 필요는 없었다.

단순히 그들이 눈꼴셔서 쫓아내는 건 아니다.

내가 직접 칼을 빼 든 이유는 하나.

최서준에게 반기를 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기 위해서.

단 한 번이라도 나를 거역하고 헐뜯은 녀석들은 내가 반드시 조져 버린다는 걸 직접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녀석들이 그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니까.

절대 권력이라는 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다른 이들이 반발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게 절대적인 힘.

대한민국 정치에서의 핵심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 검사 중에 깨끗한 놈은 없다.

있더라도 그 녀석들은 승진 줄을 잡지 못하고, 지방에 박혀서 유배 생활이나 하다가 법률 서비스나 하는 게 정석적인 루트니까.

이 바닥에서 너무 깨끗하면 더러운 자들의 표적이 된다는 건 지나가던 검찰 수사관도 알고 있는 사실.

서울 혹은 주요 보직에서 근무를 하는 검사들에게 먼지가 묻지 않았을 수가 없다.

그저 오물이 묻었느냐, 홍진 속에서 적당하게 버텼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렇기에 내가 직접 칼을 빼 들고 본보기로 하나둘 정도만 잘 털다 보면, 나머지 녀석들은 쫓겨나기 전에 스스로 옷을 벗고 검찰직에서 물러날 것이다.

그래야 최소한 변호사 가판을 내더라도 ‘검사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으니까.

그러한 상황에서 공수처까지 설치가 된다?

나와 신동현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녀석들은 피를 보기 싫으면 조용히 입을 닫고 옷을 벗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내가 직접 공수처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법무연수원장으로 서울의 정치판에서 벗어나 지방에 있던 하진일이 공수처장을 맡으면 국민들이 보기에도 더욱 공정해 보일 테고.

신동현은 낮게 감탄을 뱉어 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생각은 해 봤지만, 감히 실천할 생각은 못 하고 있었는데…… 역시 총장님이십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이 제 뒤에 계시니까 실현 가능한 일이죠.”

그는 가볍게 입꼬리를 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공수처 설치에 관해 빠른 시일 내로 발표하겠습니다.”

“예. 그러면 저도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신동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손을 뻗었다.

“총장님과 함께하니, 일이 아주 술술 풀리는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머지않아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두 손 모으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어, 왔어?”

송현성은 한껏 웃으며 나를 반겼다.

“얼른 앉아.”

나는 피식 웃으며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너 얼굴이 좋다?”

“차장 소리 듣다가 검사장 소리 들으면 기분이 째지거든.”

그는 눈썹을 들썩거리며 은어를 내뱉었다.

“뽕이 가시질 않아.”

올해 초.

내가 검찰총장으로 올라감과 동시에 송현성은 서울고검장으로 승진 발령이 났다.

그가 고검장이 되었다는 건, 단순히 이전에 내가 약속했던 것을 지키는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공상욱 부장이 감찰부에 있다고 한들, 모든 검사들을 잡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직접 나서야 차장검사 이상 급들을 견제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고검장이 힘을 쓴다?

그렇다면 내가 손을 뻗기도 전에 알아서 깨갱하며 숙이고 들어 올 수밖에 없어질 터.

결국 서울의 모든 검찰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지.

나는 클클 대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저번에 말했던 일은?”

“검찰 개혁 관련한 거?”

“응.”

“네가 말한 대로 공상욱 부장한테 전달했어. 대충 자료 브리핑한 거 보니까 양이 어마어마하던데?”

“그 정도 수준이야?”

“어. 대단하다니까? 진짜 업무 능력 하나만큼은 내가 본 사람 중에 원톱이더라. 전성기 시절 너 보는 느낌이었어.”

공상욱 검사에게는 검찰 개혁을 통해 우선적으로 혼쭐을 낼 검사들에 대한 조사를 맡겨 두었다.

기왕이면 고위급으로.

“공 검사도 만나 봐야 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그럴 것 같아서 들어오라고 해 뒀다.”

아니나 다를까, 타이밍에 맞춰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공 부장 왔나 보네.”

송현성은 밖을 향해 외쳤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공상욱 검사는 서류를 품에 한아름 안은 채 들어와 깍듯하게 머리를 숙였다.

“오랜만이야, 공 부장.”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 당연하지. 앉게.”

“예.”

공상욱 검사는 서류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서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전부 검찰 개혁 관련한 자료들인가?”

“예, 맞습니다.”

나는 그중 제일 위에 있던 서류 하나를 들어 찬찬히 읽기 시작했고.

송현성은 낄낄대며 기대감에 찬 눈으로 내게 말했다.

“너 그거 보면 놀랄걸?”

“이랬는데 별거 없기만 해 봐.”

“내가 보장한다니까.”

서류를 읽어 내려간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허…… 장난 아니네?”

송현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했지?”

“공 부장, 이거 언제부터 준비한 거야?”

“대선 끝나자마자 필요하실 것 같아서 바로 준비했습니다.”

겨우 한 달 남짓.

그런데도 그가 조사를 마친 인물은 10명이 넘었다.

단순히 평검사들 10명이 아니라, 최소 부장급 이상만 10명.

말이 쉬워서 10명이지, 날짜상으로 계산하면 사흘에 한 명씩 조사를 마쳤다는 소리다.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지.

공상욱 검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고검장님께서 제 권한의 제한을 풀어 주신 덕분에 조사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리미트가 없어진 덕분에 공상욱 검사는 한마디로 말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집행일을 앞둔 사형수에게 구속을 풀어 주면 이런 느낌이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

나는 헛웃음을 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자네, 여기 있는 명단 전부 집어삼키면, 국회로 나가도 되겠는데?”

“과찬이십니다.”

더 대꾸하지 않았지만, 진지하게 국회로 나간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이 목록에 있는 검사들만 전부 잡아들이며 기자회견을 한다면, 일약 스타 검사로 도약하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검사장급 인물도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송현성은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그중에 처음은 누구로 하려고?”

“이 사람이 좋을 것 같은데?”

나는 들고 있던 서류 중 하나를 툭 던지듯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서울 서부지검장?”

“어. 보여 주기로 치기에는 이만한 녀석이 없으니까.”

검찰 개혁은 단순히 비리 검찰을 잡아들이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본보기.

나를 건드렸던 녀석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는 것.

그중에서도 성진현과 가까웠던 서울 서부지검장을 치는 건 그쪽 라인으로 하여금 똥줄이 타게 만들기엔 충분하지.

“증거 다 확보했지?”

“예. 당장 내일이라도 공론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일까지 끌면 재미없지.”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바로 서부지검장에게 연락해. 지금 내가 직접 갈 테니까 커피 한잔하자고.”

공상욱 검사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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