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300화 (300/341)

새로운 왕좌의 주인 (3)

“지금 당장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박형태 국무총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만하지.”

나와 신동현의 긴밀한 관계는 박형태도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민국당을 집어삼키는 데 신동현이 없었다면, 이토록 빠른 시일 내에 결판이 나지 않았으리라는 걸 그가 모를 리 없을 터.

그렇기에 박형태의 입장에서는 내가 신동현을 대권 주자로 밀지 않는 것과 함께, 자신이 그와 당내 경선을 치르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쓴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자네가 아니었으면 당내 경선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야.”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며 말을 이었다.

“이번 당내 경선에서는 제가 누굴 돕는 것 자체가 다른 의원들이 보기에 그림이 굉장히 애매하잖습니까?”

“그렇지. 신동현이 유력한 상황에서 나를 당내 경선 후보로 추가한 거니까.”

“총리님께서 대통령 권한대행 직을 이수하시며 민국당 당원들의 표를 쓸어 모으실 수 있으니, 분명 최종 후보로 선정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저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래. 역시 최 검사가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잘 돌아가는구먼.”

“감사합니다.”

박형태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면 내가 당내 경선 출마 선언 시기는 언제로 잡으면 되겠나? 얼마 전부터 언론에서 슬슬 이름이 비춰지고는 있던데.”

“조만간 언론 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로 총리님의 이름이 급상승해서 올라오기 시작할 겁니다. 그때에 맞춰 슬슬 준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놀란 듯이 눈을 번쩍 떴다.

“그것도 자네가 준비하고 있는 건가?”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고맙네. 역시 최 검사밖에 없어.”

“아닙니다.”

나는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박형태는 흡족한 표정을 한껏 드러낸 채 밖으로 빠져나갔다.

쯧쯧.

권력에 눈이 멀어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본인의 주제를 아직까지 모르는 것이지.

물론, 실제로는 그에게 말한 대로 미꾸라지가 언론을 통해 온갖 조작 섞인 자료를 내놓을 것이다.

해당 조사에서는 민국당 당내 대권 주자 후보로 신동현과 박형태가 55% vs 45% 정도로 경합을 벌일 것이다.

국민들은 이에 관심을 가지고 박형태에 대해 어느 정도 표심이 향할 수도 있을 터.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인지도를 짧은 시일 내에 높이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국회의원으로 선거를 치러 봤다고 한들, 대한당과의 정면 승부를 통해 서울시장에 당선된 신동현을 표심으로 이기기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을 터.

실제 표결에서는 적게 차이가 나면 7 : 3, 크게 난다면 8 : 2에서 9 : 1 정도까지 차이가 벌어져 신동현이 압승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박형태에게 빈집 털이를 위해 약속했던 걸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 수치는 신동현에게 힘을 실어 줄 터.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내 경선에서 승리했다면, 대권을 거머쥘 만한 후보로 민국당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뜻이 되는 법이니까.

한마디로 힘 실어 주기다.

박형태는.

신동현을 당선시키기 위한 맛있는 먹잇감으로서 운명을 다하고 사라지겠지.

***

“이전까지는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 박형태는 담백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이 혼란스러운 시국을 바로잡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들께서 원하신다면!”

그는 자연스럽게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응하는 게 정치인으로서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대권 주자를 뽑는 민국당 당내 경선에 출마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박형태 총리의 출마 선언은 커다란 파장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이제 겨우 안정되어 가는 시국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정을 운영하는 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 선거에 치중한다는 건 고운 시선으로 보일 리가 없으니까.

대한당 의원들과 당원들은 그를 욕하며 민국당을 함께 까 내리기 시작했다.

그쪽에서도 대선을 위한 포석을 깔고 있는 것이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박형태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태현 사건으로 인해 출렁였던 경제 및 환율을 잘 마무리하며 어느 정도 업무 능력을 보여 주기는 했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선 후보로 올라가기엔 무리.

단순히 하루 이틀 반짝하는 걸로 대권을 쥘 정도로 대한민국 정치판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실제로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자리를 통해 진정한 인기를 얻으려면, 대선 전까지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난 뒤에 당대표 혹은 원내대표와 같은 간부로 활동을 하는 게 오히려 국민들에게는 진정성을 보여 줄 수 있을 테지만, 박형태는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당내 경선의 승패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신동현의 당선을 도우면서도 대한당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물색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렵게 맺어 놓은 대한당과의 우호적인 사이가 이어질 수 있으니까.

윤설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차장님, 혹시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상황에서는 굳이 대한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차장님께서는 검찰총장을 넘어 더 큰 곳을 바라보고 계시잖습니까?”

대권을 거머쥐려는 나의 목표를 윤설하는 당연히 알고 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민국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실 계획이시잖습니까? 그러면 김강진 당대표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셨다고 한들, 대선은 당 대 당으로서의 싸움인지라 어차피 대선이 펼쳐지면 온갖 비방과 네거티브가 판을 칠 겁니다.”

그녀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민국당의 영역을 더 확대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아니, 누구라도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나는 그녀의 생각과 달랐다.

“설하 씨.”

그녀는 아차 싶었는지 고개를 숙였다.

“선을 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의견을 나눔에 있어서 상호작용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니까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거는…….”

“저는 민국당 후보로 대선에 나가지 않을 겁니다.”

윤설하의 동공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대한당으로 출마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왜…….”

고개를 갸울이는 그녀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겁니다.”

“……예?”

윤설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지금까지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된 인물은 대한민국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수밖에 없는 정치 구조니까.

그러나 나는 이변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럴 만한 계획을 세워 놨고.

“설하 씨가 생각하는 대선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천천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서로를 죽일 듯이 물어뜯고,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하는 경쟁입니다. 칼이 난무하고 핏자국이 낭자한 전쟁터죠.”

“맞습니다.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상처로 난자된 채 피투성이가 되어 청와대로 입성하는 일이 흔하죠.”

나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저는 무혈입성을 할 생각입니다.”

“네?”

“말한 김에 이번 작전명은 무혈입성으로 정하죠.”

나는 차근차근 내 계획을 설명해 나갔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겁니다. 그러면 한쪽 당이 커지는 것보다는 서로 비등비등하게 균형을 이루는 게 좋겠죠?”

“예. 그렇지만, 굳이 그러실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가.”

나는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대선 후보들이 저를 밀어줄 예정이거든요.”

“……예?”

“물론 아직까지는 계획에 불과합니다.”

최근 정치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흔했던 일명 ‘후보 밀어주기’.

예를 들어 A, B, C 세 후보가 선거에 출마한 경우.

A의 지지율이 압도적이라면, B와 C 중 한 명이 사퇴를 하며 다른 후보를 지지 선언한다.

B가 사퇴를 선언했다면, 그의 표심이 C에게 몰려 A와 충분히 경쟁을 할 수 있는 구도가 마련되는 것.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갈 생각이다.

“대한당과 민국당의 대선 후보가 사퇴하며 저를 지지하는 거죠.”

단순한 사퇴라면, 부동표가 되겠지만 지지한다는 선언까지 한다면, 확실하게 내게 표가 몰릴 터.

“그 말씀은…….”

“제가 압도적인 표를 확보하며 당선이 되는 겁니다.”

못해도 80% 이상의 득표율.

독재는 아니지만, 독재 정권을 연상케 할 정도로 엄청난 득표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정치에서 지지율은 곧 힘으로 이어진다.

즉 대통령으로서 엄청난 파워를 갖게 되는 것이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독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힘.

윤설하는 놀라움이 가시지 않는지 입을 쩍 벌린 채 얼어붙었다.

“물론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죠.”

그리고 만약 성공하기만 한다면, 대한민국의 왕으로……. 아니, 신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되는 길이 펼쳐진다.

“남들이 말하면 헛소리라고 치부하며 제대로 듣지도 않고 흘려 넘겼을 겁니다. 하지만 차장님께서 말하시니…….”

윤설하는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심으로요.”

그녀의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꼭 그렇게 되도록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설하 씨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윤설하는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전부 지시하십시오. 무슨 일이든 해내겠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아까 이야기하던 주제로 다시 돌아가죠.”

“예.”

그녀의 표정이 한결 진지해졌다.

“대한당과의 관계를 개선 혹은 유지해 나가되, 민국당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법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혼자서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놓았지만, 그렇게 매력적인 계획은 없었다.

실제로 대한당이나 민국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는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것보다 중요한 건 ‘티를 내는 것’이니까.

대한당에서는 ‘최서준이 우리 편이다.’라는 생각을.

민국당에서는 ‘역시 우리 수장답게 잘 이끌어 나간다’라는 생각을 심어 주기 위한 방법.

그게 필요하다.

윤설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한당에게 신동현의 약점을 넘겨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 대한당에서는 당연히 반갑게 맞이할 테고…….”

“신동현에게는 미리 알려 주고 그걸 방어할 만한 기재를 갖추도록 준비하고요?”

“네, 맞습니다.”

꽤 흔하지만, 그 만큼 잘 먹히는 방법.

“그거 좋네요.”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휴대폰을 들어 공상욱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 부장, 지시할 게 있으니 이따 점심 같이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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