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왕좌의 주인 (2)
의원들과 한참 동안 술을 퍼부었다.
도수가 높지 않은 샴페인과 와인을 주로 마신 덕분에 고주망태가 될 정도까지는 아니고, 적당히 취기가 올라 기분이 좋은, 딱 그 정도.
물론, 양주를 사발 들이켜듯 마신 박철성 의원은 일찍이 뻗어 룸으로 실려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라인에 있는 병원장 중 하나를 데려가 확인시켜 보니 술에 취한 거지, 별 이상은 없다기에 마음을 놓았다.
아무리 토해 냈다고 한들, 한 번에 들이켠 게 워낙 많으니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조병갑 원내대표와는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원내대표 자리를 빼앗을 생각은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진심인가?”
그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어왔다.
“예. 제가 원한 건 ‘개혁’이 아니라, ‘안정’이니까요.”
단어를 강조해서 말하자, 조병갑 원내대표는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최 검사…….”
“감동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 또한 의원님의 실력을 인정하기에 내린 결론이니까요.”
슬쩍 입에 발린 말을 덧붙이자, 그의 얼굴엔 은연한 미소가 걸렸다.
“그동안 내가 최 검사를 오해했던 것 같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대신 저를 많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그럼. 당연하지! 내 뭔들 못 도와주겠나? 나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없는 다른 민국당 의원들도 전부 설득하겠네.”
조병갑 원내대표는 무려 6선에 성공한 국회의원이다.
이번에 다가오는 총선에도 당선이 유력하니, 아마도 7선엔 어렵지 않게 도달할 터.
게다가 민국당에서 그의 지지 세력 또한 적지 않은 만큼 조병갑만 내 편으로 만든다면, 당 내부에서 반발이 생길 일은 없다고 봐도 되겠지.
다만, 적당한 선에서 사람 좋게 넘어갈 생각은 없다.
확실하게 처리할 게 남아 있으니까.
“의원님.”
“그래, 최 검사.”
나는 웃음기를 거두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만약 이전과 같은 일이 생긴다면…….”
그는 두 손을 뻗어 황급히 내저었다.
“걱정하지 말게. 내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 내 자식들을 걸고 맹세하지.”
나는 이내 살벌한 표정을 지워 내고 인상 좋은 얼굴로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조병갑 원내대표는 주변을 살피더니 속마음을 터놓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당에서 파워가 있는 몇 명은 몰라도, 나머지 의원들에게는 주인만 바뀌는 거지, 큰 차이가 없는 일이잖아. 박철성 의원을 포함해서 4인방만 확실하게 자네 편으로 데려온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따라올 걸세. 자네에게 충성하지 않을 의원은 없을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다른 의원들한테 이야기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당연하지.”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슬쩍 속내를 내비췄다.
“그나저나 최 검사, 혹시 지금 비어 있는 당대표 자리에 적임자가 누가 될지 생각은 해 봤나?”
탐욕스런 눈빛을 보아하니, 자신을 꽂아 달라는 것일 터.
하지만 나는 그 뜻을 모르는 척.
“글쎄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제게 우호적인 인물로 추진할 생각입니다.”
올라가고 싶으면 알아서 잘 기어 보라고.
“그렇군. 알겠네.”
조병갑 원내대표는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당대표가 되기 위해 파리에 빙의한 것처럼 손을 비비려 들 테지.
“의원님도 혹시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 주십시오.”
“그래, 당연하지. 다른 의원들도 내 꼭 눈 여겨 보겠네.”
“알겠습니다.”
서서히 정리가 되어 간다.
박철성 의원이 내게 붙었으니, 4인방 중 나머지 세 명은 자연스레 박철성을 따라 내게 올 것이다.
그로 인해 조병갑 원내대표가 아군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지만, 이 또한 시간을 끌 것도 없이 해결.
그들이 내게 붙었다면, 나머지 민국당 의원들도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서열 정리가 끝난 것이지.
남은 건 이 자리를 즐기는 것뿐.
조병갑 원내대표와의 대화를 끝내자, 인천시장 임태형이 다가와 슬쩍 내게 잔을 내밀었다.
“검사님, 건배 한번 하실까요?”
“좋지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 있던 의원들이 소리쳤다.
“최서준 검사님을 위하여!”
나는 빙긋이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위하여!”
***
어느 정도 의원들과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 익숙한 인물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걸어 들어왔다.
신동현.
서울시장인 그는 푸근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오랜만에 뵙네요.”
얼굴을 보아하니, 방금 온 게 아니라, 진즉에 와서 한잔하고 쉬었던 모양.
“언제 오셨습니까?”
“한참 전에 왔는데 제가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에 있느라…….”
보아하니, 내가 온 걸 확인하고 일부러 자리를 피해 여자 하나를 데리고 밑에 층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왔겠지.
나를 위한 자리이기에 신동현 자신에게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막기 위함.
고마운 사람이다.
“시장님도 한잔하시죠.”
“그럴까요?”
나는 그에게 잔을 채워 주며 슬쩍 신호를 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신동현도 자연스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다음 대선도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 하는데, 혹시 검사님께서는 생각해 두신 후보가 있습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떨어져 있던 의원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나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있죠.”
그런데 그때.
지잉지잉.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짧게 두 번.
-보낸 이 : 40
-동영상
미래 문자다.
그것도 올해에 있을 일.
지금 이 타이밍에 온 문자라면 분명…….
나는 일부러 심각한 척 미간을 구겼다.
“잠시만요, 급한 연락이라.”
자연스레 자리를 뜨고서 적당한 방에 들어가 동영상을 재생했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단상에 서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신동현.
세차게 바람이 부는 날씨.
입고 있는 정장을 보면 추운 것만은 확실하다.
문제는 2028년 1월의 겨울이냐, 12월의 겨울이냐가 문제다.
-정말 다사다난한 한 해였습니다.
그렇다면 2028년 12월이다.
-국민 여러분들께서 전혀 겪어 보지 못한 당황스런 일들의 연속이었고, 저 또한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성태현과 관련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일 터.
-하지만 국민 여러분들께서 중심을 다잡아 주셨고, 덕분에 대한민국이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고.
뒤이어 화면이 줌아웃 되며 그의 단상 주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신동현이 서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광화문 광장이었으니까.
예부터 대통령 당선 연설의 성지와 같은 곳.
신동현은 고개를 꾸벅이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저 신동현은 저를 응원해 주신 분들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양당을 어우르고 대한민국의 화합을 유도하며, 국민 여러분들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앞으로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위대한 발걸음을 뻗도록…….
한창 그의 연설이 진행되던 도중, 자연스레 화면이 어두워지며 영상이 종료되었다.
차기 대통령으로 신동현이 당선된다는 이야기.
안 그래도 이번 대선 주자로는 신동현을 밀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확정적인 힌트를 얻게 될 줄이야.
“크큭…….”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핫!”
결국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문자라니.
이건 행운의 여신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를 관장하는 모든 신이 내 편이라는 걸 증명하는 수준.
대한민국의 정점.
그곳까지 단 한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
내용이 내용인지라, 업된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물을 몇 잔 더 마셔서 술기운을 몰아내고 나서야 겨우 웃음기를 걷어 낼 수 있었다.
“후우.”
호흡을 가라앉힌 뒤, 나는 태연하게 룸 밖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의원들은 역시나 신동현 시장 근처에 모여 있는 상태.
그들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레 길을 열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급한 전화라서.”
“괜찮습니다. 잘 해결됐습니까?”
“예. 무사히 처리되었습니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아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신동현을 보며 자연스레 물었다.
“대선 후보로 누굴 생각하고 있냐고 물어보셨죠?”
“맞습니다.”
그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제 슬슬 민국당에서도 윤곽을 잡아야 하니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번 선거부터는 4년 연임제가 적용되니, 신중하게 골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통과된 4년 연임제.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한다면, 무려 8년이나 대통령직을 이행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래도 몇몇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조금 더 공정해야 할 것 같은데…… 유력한 두 분이 내부 경선을 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동현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그는 연기였다.
사실, 신동현과 사전에 입을 맞춰 두었다.
아무리 민국당을 집어삼켰다고 한들, 아직까지는 전원이 내게 충성하는 시기는 아니다.
그런데 총선의 공천권을 가진 것도 모자라, 대선의 공천권까지 내가 가져간다?
그러면 분명 반발하는 이가 생길지도 모르는 법.
그렇기에 대선에서는 한 발 물러나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을 휘어잡고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총선에서의 공천권이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조형갑 원내대표가 조심스레 물었다.
“두 분이라는 건…….”
“여기 계신 신동현 시장님과 바쁜 업무 때문에 청와대에 계신 대통령 권한대행 박형태 총리님입니다.”
의원들 사이에선 놀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이 상황은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
내가 실제로 지지하는 건 신동현이다.
지금까지 같이 일해 왔던 것은 물론이고, 미래 문자를 통해 그가 당선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내부 경쟁을 통해 공천이 된다면 신동현의 신뢰도 또한 상승할 테고, 국민들에게는 공신력을 줄 수도 있는 법.
그렇기에 나는 수면 밑에서 그가 당선될 수 있도록 일할 것이다.
성태현을 당선시켰던 것처럼 그림자 속에서.
이뿐만이 아니다.
빈집 털이 작전을 위해서 박형태 총리를 설득했기에 어느 정도 그를 도와주는 척은 해야 한다.
다만, 그의 당선을 바라지는 않는다.
선거위원장과 짜고 조작을 하려고 했던 인물을 대통령으로 올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박형태 권한대행님도 이를 알고 계십니까?”
“예. 벌써 언론에서 대권 후보자로 거론이 되고 계신 만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계실 겁니다.”
“그렇군요.”
의원들 사이에서는 저마다 신동현과 박형태의 이름을 입에 오르내리며 누가 내부 경선에서 승리할지에 대해 점치기 시작했다.
신동현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와 상의했던 대로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선이 되어 우리 민국당에 힘을 불어넣어 드리죠.”
“기대하겠습니다.”
나는 그와 손을 굳게 잡아 악수했다.
무너지지 않을 동맹을 암시하는, 굳건한 악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