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털이 (9)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대검찰청 차장검사 최서준입니다.”
나의 기자회견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몰려들었다.
워낙 대통령의 외도 및 그 상대에 대한 궁금증이 파다하게 퍼져 있는 이 상황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무려 대통령의 동서.
고위급의 정치 관련자들을 빼면, 내가 그와 실제로 어떤 사이인지는 대부분이 모르기에 무언가 소스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유감이지만, 그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발언할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성태현의 가정사를 이용해 물어뜯는 건, 내 손발들이 할 일이지, 내가 할 만한 일은 아니니까.
“저는 대통령과 관련한 양심 고백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수없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
“제가 성태현 대통령과 동서 관계라는 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나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차마 이야기를 할지 말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검사가 아닌,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도저히 옳은 일이 아니기에 사실을 밝히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기까지는 대통령의 외도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할 터.
그러나 내가 터뜨릴 건 바로.
“대통령님께서 저에게 민간 사찰을 지시하셨습니다.”
민간 사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단어가 튀어나오자, 기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카메라 셔터는 멈추지 않았다.
안 그래도 대통령이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는데 불법 중에서도 최악의 죄질에 속하며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민간 사찰이다.
기자들에게 이보다 더 탐나는 먹잇감은 없어 보일 터.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단상 옆으로 나와 허리를 90도로 접었다.
그렇게 10초가 넘는 시간 동안 멈춰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처음엔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이크 앞에서 목이 메는 듯이 한 박자를 쉬었다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동서 지간을 넘어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제 승진 인사에 대해 불이익을 준다는 협박이 담긴 말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었다.
“그러나 차마 직접 시행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진실을 밝히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는 단상에 올려져 있던 문서 하나를 앞으로 꺼내 펼쳤다.
“이게 대통령님께서 민간 사찰을 지시하신 공문입니다.”
실제 청와대가 아닌, 윤설하가 직접 조작한 서류.
당연히 청와대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국민들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모든 판단의 1순위가 되는 법이니까.
“물론, 기밀 사항입니다. 그러나 올해 초 임시국회에서 제작된 특별법에 의해, 법적으로 국가의 안보를 해치거나 헌법의 수호성을 파괴하는 일에 방지하기 위함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건에 한해서는 공익적 제보를 인정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문서를 언론에 실으셔도 좋습니다.”
이 또한, 내가 캐스팅보트를 이용해 대한당과 함께 만들어놓은 법.
내가 오늘을 위해 오래 전부터 하나하나 설계를 해 놓았다.
이 빈집 털이의 순간을 위해서 말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대통령의 말을 거역하는 것이지만, 차마 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국민들과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누군가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나에 대한 응원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러나 대통령이 지시한 건, 오직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현(現) 서울북부지검의 성진현 부장검사에게도 똑같은 지시를 했습니다. 이름을 들어서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성태현 대통령의 사촌 동생입니다.”
성태현은 분명 성진현을 통해 내게 민간 사찰의 죄를 씌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난 그런 기회조차 줄 생각이 없었다.
실제로 이미 송현성을 통해 손발까지 묶어 두었으니 걱정할 것도 없다.
“그리고 성진현 부장은 이를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즉, 민간 사찰을 누구보다 앞 선에서 시행했다는 거죠.”
기자들 사이에서 놀란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나는 단상 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저는 이를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고. 서울고검의 감찰부를 통해 은밀하게 조사를 행해 왔습니다.”
뒤쪽을 돌아보며 문을 가리켰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서울고등검찰청의 송현성 차장검사님께서 해 주시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송현성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와 단상에 섰다.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을 살 수 있는 자리.
다시 말하면, 그의 출셋길을 열어 주는 자리다.
“안녕하십니까, 서울고검 차장검사이자 비어 있는 고검장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송현성입니다.”
그는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 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사건 브리핑하겠습니다.”
***
오후 7시.
평소라면 모두가 퇴근할 만한 늦은 시간이지만, 청와대에는 불이 훤하게 켜져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소는 청와대의 기자회견실.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청와대에서는 민간 사찰을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진실 공방.
그것도 무려 대통령과 검찰의 넘버 투인 최서준이다.
게다가 둘은 동서 지간.
누가 승리할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당분간 기사들의 트래픽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것이며, 끊임없이 자극적인 기사가 이어질 게 분명했으니까.
만약 여기서 특종 하나라도 건지면, 보너스는 물론이고 특별 승진까지 노려볼 수 있다.
기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대변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한 글자 한 글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성태현 대통령님은 임기 1년 8개월 동안, 단 한 번도 해당 사항을 지시하신 적이 없으며, 최서준 검사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청와대의 지시 문건이라는 건 저희 측에서 작성한 바가 전혀 없습니다. 청와대는 공문서 조작 혐의에 대해 조사에 착수할 것이며 이러한 일체의 행위는 현 정부에 대한 신뢰성을 깎아내리기 위한 의도적인 움직임으로…….”
대변인은 분노를 토하듯 딱딱하게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에 대한 사실 여부를 낱낱이 밝혀 청와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가에 혼란을 초래한 이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인터넷의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이 방송을 중계하며 온갖 추측을 토해 내고 있었다.
일부러 이 기사를 덮기 위한 눈속임 기사는 단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최서준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청와대 측도 대통령의 외도에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서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향으로 관심이 쏠리도록 만들어야만 했으니까.
한편, 같은 시간.
TV를 통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던 최서준은 거칠게 입꼬리를 비틀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검사님.
수신인은 다름 아닌, 미꾸라지.
“내가 메일로 영상 하나 보냈거든. 확인해 봐.”
-잠시만요.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대답이 이어졌다.
-네. 확인했습니다. 20분짜리 동영상 맞습니까?
“어. 지금 그거 터뜨려.”
미꾸라지는 히쭉 웃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속보! 성태현 대통령 외도 동영상 공개?
-인터넷의 모 사이트에 성태현 대통령이라고 추정되는 성관계 동영상이 올라왔다. 남자의 얼굴은 성태현과 똑같으며 우측 새끼손가락의 사마귀와 좌측 중지 손가락에 찍힌 점은 동영상 속 남자가 성태현 대통령이라는 의혹에 확신을 심어 주고 있다. 동영상 속 여성은 모자이크가 되어 있지만,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는 촬영 장소가 청와대 내부의 한 체력 단련실이라는 제보를 해 왔다. 본 기자가 전문가와 인터뷰를 한 결과, 해당 동영상에는 여성의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가 된 걸 제외하면 그 어떠한 편집이나 조작의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동영상 속 주인공은 성태현이며, 변명할 여지가 없음을 증명이 된 셈. 결국 대통령의 외도를 참지 못한 영부인 한지수가 아이를 데리고 언니이자 형부인 한지유, 최서준 부부의 집으로 도피를 한 것이 확실시 된다. 경찰은 해당 동영상이 퍼지는 걸 막고 있지만, 이미 인터넷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영상을 퍼 나르고 있는 중이다. 또한, 미국과 영국 등 각종 국가에서는 해외 토픽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기사로 삼고 있으며…….
댓글도 난리가 났다.
-엌ㅋㅋㅋ 빼도 박도 못하고 걸려쓰요~~!
-이게 나라냐? 대한민국 아주 잘 돌아간다!
-나도 대통령 할란다!
-와이프는 마음의 요양을 위해? 개뿔!
-요양은 요양이네. 대통령 때문에 열불 난 건 맞으니까. ㅋㅋㅋㅋㅋ
-와, 동영상 봤는데 성태현 뭐냐? 토끼냐? ㅋㅋㅋㅋㅋㅋ
-속보)대통령, 국민들에게 성기 공개!
-온 국민이 대통령 알몸 본 건 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다. 리얼루다가!
-벌거벗은 임금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와대 직원들 출근해서 대통령 얼굴 보면 동영상밖에 안 떠오를 듯.
-암, 대통령 되면 저 정도 유흥은 즐겨 주셔야지!
-아, 근데 진짜 뻔뻔하다. 영부인 가출한 거 맞는데 쉬러 갔다고 구라를 치네?
-헐. 그러면 민간 사찰 안 했다는 것도 거짓말인 거 아님?
-당연하지. 백퍼 구라임 ㅋㅋㅋ
-맞네. 한 번 거짓말 해 놓고 두 번은 못 하겠냐?
-그럴 줄 알았다. 우리 최서준 검사님이 거짓말할 리가 없지.
-진짜 최서준 검사는 우리나라의 정의 수호를 원했던 거임 ㅠㅠ
-믿을 사람은 정말 최서준밖에 없다.
이미 여론은 나에게 쏠린 상황.
성태현은.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었다.
***
“이런 X발!”
성태현은 집무실 책상에 있던 물건들을 한 번에 쓸어 내던졌다.
“제니퍼 강, 이년 어디 갔어! 빨리 안 찾아?”
그의 꼭지는 이미 돌아 버렸다.
동영상을 갖고 있었던 건 자신과 제니퍼 강, 둘뿐.
이게 퍼졌다는 건 그녀가 터뜨렸다는 소리다.
믿고 있었던 여자까지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달아났다.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것도 모자라, 내연녀까지 배신했다.
“이 요망한 년…… 죽여 버릴 거야. 어디 있어? 경호팀은 아직도 못 찾았어?”
성태현은 눈이 시뻘개진 채 소리쳤지만.
“그게…….”
공재원 비서실장은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행방이 묘연합니다.”
“그게 말이 돼? 청와대 경호팀이라는 녀석들이……!”
그의 분노에 공재원 비서실장은 결국 사실대로 말했다.
“아무래도 최서준이 숨긴 것 같습니다.”
“……뭐?”
“마지막에 특수부 검사와 접촉한 흔적이 드러나서……. 그게 아니라면 저희가 못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젠장할!”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처음에 한지수에 대한 기사를 최서준의 인맥인 박수형 기자가 터뜨릴 때부터 기분이 싸하다 싶더라니만…….’
성태현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몰려오는 분노와 자괴감.
결국 성태현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혈압이 올랐고.
뒷목을 잡으며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