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털이 (8)
“진짜 어떡하지…….”
아침부터 한지유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해가 뜨기 전 새벽부터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 같던데.
“왜, 무슨 일 있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한지유는 고민 끝에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조금 전에 지수랑 통화했거든.”
“처제한테 무슨 일 생겼어?”
“엄청 울고불고 난리였어. 완전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더라고.”
“대체 어떤 일인데?”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지유의 옆에 앉았다.
“그게 실은…….”
그녀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부가 바람피우는 걸 봤대.”
“뭐?”
나는 화들짝 놀란 척을 했다.
물론, 한지유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완벽한 연기.
“솔직히 말하자면, 제부한테 어느 정도 바람기가 있다는 건 나도 지수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거든.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도 의혹은 있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기도 하고, 정치인들은 비즈니스 때문에 룸살롱 같은 곳은 어쩔 수 없이 가기도 하니까…….”
그녀는 허심탄회하게 말을 이었다.
“일부러 외면을 했었는데, 청와대 와서 어차피 외출이 거의 불가능하니까 엄청 좋아진 것 같다더라고. 근데 어제 새벽에 영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집무실에서 여자랑 같이 몸을 섞고 있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거야.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번에 지수가 같이 데려간 그 필라테스 강사랑 말이야.”
속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김나나가 신호를 받고 제대로 활약했다.
그것도 아주 최적의 타이밍에.
“미쳤네, 정말.”
겉으로는 심각하게 맞장구를 쳤다.
“나한테는 처제 만나고 다 고쳤다고 했거든. 나도 완전 뒤통수 맞은 느낌이야.”
한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밖에서 만난 것도 아니고, 그 여자는 필라테스 강사잖아. 그러면 비즈니스가 아니라, 진짜 바람이라는 거니까…….”
“그렇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청와대 뛰쳐나오고 싶은데, 원래 살던 집은 청와대 가면서 처분했고, 차마 부모님한테 이야기할 수는 없어서 친정에는 못 가겠다고 하더라고.”
잠깐만.
그렇다면…….
“우리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
“정말 그래도 돼?”
한지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히 불편한데 나 때문에 억지로 그러는 거라면…….”
“아니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싫은 건 성태현이지, 처제나 조카들이 아니잖아. 얼마든지 와서 지내라고 해.”
“진짜 괜찮겠어?”
“그렇다니까. 아니면 내가 직접 오라고 말할까?”
“아니야. 내가 말할게.”
한지유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
“아니야. 이건 가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다.
한지수가 집으로 들어온다니.
그녀는 이번 사건의 핵심이 될 인물을 내가 데리고 있을 수 있다는 건 이번 상황에서 내가 압도적인 우위를 내가 점할 수 있다는 사실.
나는 걱정스런 얼굴로 한지유를 보고 말했다.
“꼭 오라고 해. 얼마든지 있어도 좋으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하고.”
“오빠밖에 없어.”
한지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연락할게.”
***
“고생 많았어요, 처제.”
한지수는 밤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듯 초췌한 얼굴로 집을 찾아왔다.
“죄송해요, 형부. 제대로 연락도 못 하고 갑자기 찾아와서…….”
“아니에요. 힘들 때일수록 도와야죠. 가족 좋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 아니겠어요?”
나는 한지수의 손등을 토닥였다.
“……고마워요.”
그녀의 눈동자가 일렁이던 그때.
“어, 형!”
방금 막 씻고 나온 나의 아들, 최지훈이 반갑게 사촌 형들에게 다가갔다.
“지훈이 안녕!”
“오빠, 오랜만이야!”
성태현의 쌍둥이 아들과 막내딸은 최지훈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아이들은 성태현과 한지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에 오랜만의 사촌과의 만남이 반가운지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형, 내가 이번에 산 로보트 보여 줄게. 완전 멋있다.”
“진짜?”
“나도 볼래, 나도!”
“다들 방에 들어가서 얌전히 놀아.”
“네!”
세 조카와 아들을 방으로 들여보내고 난 뒤,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아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지수는 울분을 풀 듯,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옛날에도 몇 번 의심을 하긴 했는데 차마…….”
이야기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사이, 검찰청에서는 성태현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대검 및 고검, 중앙지검에 있는 나의 라인들에 대한 내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녀석들이 건수를 찾아내기 전에, 성태현이 먼저 무너질 테니까.
한참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나는 전화가 온 척 자연스레 휴대폰을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박수형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서준 씨.
“네, 수형 씨, 잘 지내셨죠?”
-물론입니다. 검사님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단히 안부 인사를 끝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전해드릴 뉴스가 하나 있어서요.”
-간만에 서준 씨의 건수네요.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영부인이 저희 집에 와 있습니다.”
성태현과 어떤 사이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터.
역시나 박수형은 바로 뜻을 알아채고 답했다.
-영부인의 일탈.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면 될까요?
“아니요. 조금 더 강한 수위로.”
-실종이나 가출이면 되겠습니까?
“가출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실종이면 단박에 반박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기사는 언제쯤 터뜨리면 될까요?
“오늘 오후 중에 부탁드립니다. 3시쯤이면 적당할 것 같네요.”
-예. 기사 올리고 링크 보내 드리겠습니다.
“조만간 뵙고 술 한잔하시죠.”
-기다리겠습니다.
미꾸라지가 아닌, 박수형 기자에게 소식을 전한 이유는 하나.
이 모든 게 나의 설계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 성태현의 분노가 더욱더 치솟을 테니까.
어디 한번, 소식 기다려 볼까?
***
“그게 무슨 개소리야?”
“저도 믿고 싶지 않긴 합니다만, 경호팀에서 직접 데려다줬다고 합니다. 최서준 와이프가 직접 영부인님을 마중 나온 것까지 확인했다고 하고요.”
“……이런 미친.”
성태현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한지수가 갑자기 사라진 것도 심기에 상당히 거슬리는데, 그녀가 아이들까지 데리고 최서준의 집으로 갔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다.
와이프의 가출이 며칠 동안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최서준이 암만 성태현을 싫어한다고 해도, 아무런 상황도 듣지 않고서 며칠이고 그녀와 아이들을 데리고 있지는 않을 터.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자신이 제니퍼 강이라는 필라테스 강사와 바람이 났다는 걸 알게 될 게 뻔했다.
“하아…….”
그는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쓸었다.
“지금 제니퍼는 어디 있어?”
한지수에게 직접 걸리긴 했지만, 이게 청와대 내부에서 묻히느냐와 밖에 새어 나가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일단 그녀의 입부터 막아야 했다.
“지금 당장 데려와.”
“그게…….”
공재원 비서실장은 곤란한 듯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 갑자기 사직계를 냈습니다.”
“……뭐?”
성태현은 이마를 붙잡았다.
“와이프한테 해코지 당할까 봐 나갔나 보네.”
그는 여전히 김나나를 의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본인은 제니퍼 강과 순수한 사랑을 나누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집사람 나갔으니까 여유 생겼을 거 아니야? 경호팀 인력 보내서 찾아와.”
청와대 밖으로 나갔으니 더 위험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생각했으면 오히려 경호팀을 더 붙였으면 붙였지, 빼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위험을 외면하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공재원 비서실장의 입장에서는 귀를 의심할 만한 지시.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때.
똑똑.
다급한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실의 직원 하나가 다급하게 집무실에 들어왔다.
“왜?”
“대통령님, 지금 기사가 났습니다.”
“무슨 기사?”
성태현은 비서가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신경질적으로 빼앗아 들었다.
-청와대 대통령 부부 사이엔 무슨 일이?
-제23대 대통령 성태현의 영부인 한지수가 청와대를 나왔다. 그녀가 향한 곳은 친언니인 한지유, 최서준 검사의 집. 일반적인 가족이라면, 그저 언니를 보기 위해 방문을 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는 옷을 포함한 온갖 짐을 챙겨 나왔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한마디로 가출을 했다는 것.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내외 사이에 더 이상 풀 수 없을 만큼 큰 갈등이 생겨 별거를 시작했다는 말을 전했다. 정치인 A씨는 본지에 ‘성태현의 바람기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이며, 지금 대통령의 가정은 그의 외도로 인해 파탄 수준일 것’이라는 제보를 해 왔다. 대한민국은 예로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집안도 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인물이 과연 나라는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든다.
-WK일보 박수형 기자
“최서준 이 개X끼. 비겁하게 벌써 움직여?”
그런데 기자의 이름을 보는 순간, 성태현의 머릿속에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 최서준이 이 모든 상황을 만들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저 단순히 한지수가 본인의 언니 집으로 가출했을 뿐이다.
그게 전부일 터.
그래야만 한다.
“후우.”
성태현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를 빠득 갈았다.
“대변인 통해서 발표해. 가출이 아니라, 잠깐 휴식을 위해 나간 거라고.”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나간 뒤, 성태현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성진현 이 새끼는 뭐 하느라 아직도 소식이 없어? 미리 준비를 안 해 놓은 거야?”
그는 알지 못했다.
이미 고검에서 움직이는 바람에 성진현의 손발이 꽁꽁 묶여 버렸다는 것을.
***
-영부인께서는 가출을 한 게 아니라, 오랜 청와대 생활로 인해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친언니의 집으로 요양을 간 것이며, 사전에 대통령님과의 협의가 된 사항입니다. 또한, 근거 없이 추측만으로 청와대와 정부를 비방한 언론사에 대해서는 철저한 불관용 원칙으로…….
기사가 터진 지 2시간도 되지 않아 청와대 대변인까지 나서 박수형의 기사는 오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은 이미 난리가 났으니까.
실시간 검색어까지 성태현, 성태현 이혼, 한지수, 영부인, 대통령 외도 등으로 도배가 된 상태.
인터넷에는 합리적인 의심이라며 온갖 추측 댓글이 난무하고 있었고, 익명의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이 강남 업소에서 일하던 시절 성태현을 본 적이 수도 없이 많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는 지경.
그렇기에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는 믿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느지막이 대검에 출근해 웃으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랴부랴 기자회견까지 열어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는 모습이 우습기에 짝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처럼 다급하게 움직인다는 건 성태현의 상황이 구석에 몰렸다는 증거.
나는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성태현.
벌써 당황하기엔 일러.
아직도 큰 게 남았으니까.
그것도 무려 두 건이나.
본인이 벌여 놓은 판에 스스로의 목이 졸리는 재미있는 광경을 구경할 시간이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윤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차장님.
“바로 기자회견 준비해 주세요. 성태현 응징하러 갈 시간입니다.”
-알겠습니다!
정의의 철퇴를 맞을 시간이다,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