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털이 (7)
김구본 총장의 동공이 크게 지진하기 시작했다.
“뭐, 뭐라고?”
“나이가 드셔서 귀가 어두우신가 본데, 말로 하는 것보다 보는 게 나으시겠죠?”
나는 속주머니에서 차장검사로의 승진 발령 공문을 꺼내 그에게 보여 주었다.
한참 동안 읽어 내려가던 끝에 공문을 쥐고 있던 김구본 총장의 두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이거 조작 아니야?”
“에이, 시대가 어느 땐데 조작입니까? 너무 서운한 소리를 하시네.”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민호선 차장검사의 공석. 법무부 박창식 장관의 제청. 그리고 영국으로 출장 간 성태현 대통령을 대신한 국무총리의 임명.”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여기서 뭐 하나라도 절차에 어긋난 게 있나요? 제가 보기엔 없는 것 같은데.”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대통령님께서 가만히 있으실 것 같아?”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요?”
나는 살벌하게 표정을 굳히고 그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이제 당신도 끝났어.”
“……이, 이 자식이!”
“쫓겨나기 전에 알아서 옷 벗어. 그게 당신한테 이로울 테니까.”
“내가 이 자리까지 와서 네 녀석한테 겁먹을 것 같아? 검찰의 수장인 검찰총장이 바로 나라고!”
“그래. 총장은 당신이지. 그런데.”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렇게 부들부들 떨면 나한테 쫄았다는 게 티 나잖아?”
“…….”
나는 그의 책상에 놓인 전화기를 가리키며 턱짓했다.
“얼른 가서 대통령한테 일러 바쳐. 최서준이 대검에 행차하셨다고.”
***
“뭐?”
성태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그는 언성을 높이려다가 자리가 자리인 걸 깨닫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 성태현의 맞은편에는 영국 수상 레이첼 메이가 앉아 있었다.
워낙 충격적인 안건이기에 회담 중임에도 공재원 비서실장이 긴급하게 들어와 알렸긴 하지만, 이곳에서 성태현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
영국 수상의 물음에 성태현은 표정 관리를 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아닙니다. 국내에서 조금 당황스러운 사건이 생겨서요.”
테이블 밑에서 그의 팔이 분노에 차서 부르르 떨렸다.
“그러면 잠깐 회의를 중단할까요?”
그러나 성태현은 이를 악물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회의 중에 다른 이가 들어온 것도 큰 실례인데, 나가는 건 협상 테이블을 엎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법이니까.
“별거 아닙니다. 다시 이야기하시죠. 이번에 철강 쪽 관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예. 저번 FTA에서 저희 측은 자동차 쪽 관세를 인하했는 데도 불구하고…….”
회담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성태현은 차마 회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엔 최서준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 있었으니까.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성태현은 혼란 속에서 겨우 FTA에 관한 수정안을 타결시키기로 합의를 보고 나서 회담 장소를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공재원 비서실장을 향해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게 가능한 일이야?”
“아무래도 국무총리가 최서준과 결탁한 것 같습니다.”
성태현은 흠칫 놀라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박형태 총리가?”
“예. 민호선 차장검사가 사표를 내고 그 자리에 법무부장관 박창식이 최서준의 임명을 제청했는데, 박형태 국무총리가 그걸 바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이미 결재 도장까지 찍혀서 공문으로 날아갔고요.”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성태현의 머릿속은 혼잡한 걸 넘어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박형태 국무총리는 물론이고, 박창식 법무부장관 또한 자신의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최서준을 대검찰청 차장검사에 임명했다는 건, 성태현을 배신했다는 것과 다름없는 소리.
“대체 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성태현, 본인이다.
그런데 자신을 배신하고 고작 검사한테 붙는다?
이건 도저히 성태현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였다.
“그 자리를 내가 줬다는 걸 모르는 병X들은 아니잖아?”
“예. 그렇긴 한데…… 저도 자세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할 말이야?”
성태현은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걸 참지 못하고 성을 냈다.
“비서실장이란 새끼가 그런 것도 파악 안 하고 뭐 한 거야!”
“죄, 죄송합니다.”
성태현의 온몸에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최서준이 이렇게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그것도 자신의 사람들까지 회유해서 행동했다는 건, 성태현 자신에 대한 무언가 건수를 찾아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지금 바로 출국해야겠어. 전용기 준비시켜.”
그의 목소리엔 까칠함이 도드라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한국에 날아가서 국무총리와 법무부장관을 대면하고 뺨이라도 후려칠 기세.
그러나 만사가 성태현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거는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왜!”
성태현은 창밖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 정도 날씨에 전용기가 못 뜨는 것도 아니잖아!”
공재원 비서실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영국 수상 측에서 숙소까지 다 마련해 준 터라, 이를 거부하고 날아가면 외교적으로 큰 결례가 되는 지라…….”
“이런 젠장!”
성태현도 알고 있었다.
여기서 갑자기 출국하는 건, 불가능하다.
외부적으로 큰 사건이 터졌다면 모를까, 내부적으로 생긴 정치 다툼 때문에 간다?
국제적 망신인 건 물론이고 자신에 대한 신뢰도를 깎아 먹는 일이기에 겨우 타결시킨 FTA 수정안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영국에서 하루를 더 보내자니, 답답하고 열이 받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을 노릇.
분명 울화가 치밀어 올라 제대로 잠도 들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게 뻔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지.
“최서준 이 X같은 새끼.”
성태현은 이를 빠드득 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번에 돌아가서 결판을 내야겠어.”
그의 눈엔 살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성진현한테 연락해. 지금 당장 움직이라고.”
“알겠습니다.”
***
“야, 이 나쁜놈아.”
대검으로 찾아온 송현성은 나를 보고 한숨을 턱 내쉬었다.
“너 진짜 개X끼다.”
나는 낄낄거리며 물었다.
“내가 왜?”
“그렇게 갑자기 대검으로 가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되냐?”
송현성은 헛웃음을 쳤다.
“저번에 나보고 일 시키려고 고검에 데려왔다는 말이 진짜였구나.”
“응?”
“서부지검에 내가 차장검사로 있을 때 생각 안 나?”
“……아!”
그 말에 웃음이 뻥 터져 버렸다.
“그때도 박재필 날려 버려서 내가 서부지검장 공석된 거 대신해서 일하느라 X빠지게 일했던 거 기억나지? 근데 이번에는 고검장 자리를 갑자기 비워서 나한테 일을 전부 몰아주는 거 아니야?”
내가 대검으로 넘어오며 공석이 된 서울고검장의 업무는 차장검사인 송현성에게 전부 몰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업무 폭탄이 떨어진 것이지.
“하하하하하핫. 일복 많은 게 좋은 거랬어.”
“이건 네가 나한테 떠넘긴 거잖아.”
송현성은 어이가 없는지 조소를 지었다.
“넌 진짜 양아치야.”
“칭찬으로 들으면 되지?”
그는 기가 막힌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한숨을 폭 내쉬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성태현 칠 준비가 된 거야?”
“뭐, 그런 셈이지.”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그를 바라봤다.
“너도 나한테 감사해야 돼.”
“왜?”
“너 조만간 고검장으로 올라갈 테니까.”
“……진짜냐?”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응. 내가 조만간 총장 찍으면, 고검장 자리는 네 거야.”
“너 약속했다?”
“당연하지, 인마. 내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거 봤어?”
그제야 송현성은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니까 마음이 좀 편안해지네.”
“내가 괜히 일 시키는 게 아니야. 미리 고검장 업무에 적응하라고…….”
“진짜 빡세다니까. 오늘 아침에 갑자기 서류 결재해 달라고 감찰부랑 공판부에서 물밀 듯이 서류를 가져오는데……. 와, 진짜 멘탈 나가는 줄 알았다니까.”
“조금만 더 고생해라.”
그는 못 이기겠다는 듯 헛웃음을 짓다가 물었다.
“그래서 내가 도와줄 일은 없고?”
“어, 하나 있긴 하다.”
“뭔데?”
“성진현 검사 알지?”
“모를 리가 있나. 성태현 사촌 동생 아니야? 지금 북부지검에 있는 걸로 아는데.”
“맞아. 내가 그 녀석 통해서 하나 작업을 치고 있거든.”
“그래?”
“응. 걔가 민간사찰을 하고 있어.”
“민간사찰?”
송현성은 흥미가 당기는 듯 내게로 몸을 기울였다.
“성태현이 지시한 거야?”
“아니, 내가.”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대체 왜?”
“근데 성태현이 지시한 걸로 조작해 뒀어.”
송현성은 혀를 내둘렀다.
“……진짜 너는 대단한 새끼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 중으로 바로 감찰부 보내서 족쳐 버려. 성태현 아직 귀국하려면 몇 시간 남았으니까.”
“알았다. 근데 이거 보니까 일 많아져서 미안하다고 부른 게 아니라, 일 시키려고 부른 거였네?”
“몇 달 내로 고검장으로 올려 준다니까, 인마.”
“내가 진짜 그것 때문에 참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말했다.
“성진현 목 따서 가져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기대하고 있을게.”
그는 눈을 번뜩이며 테이블에 있는 커피 잔을 가리키고서, 마치 삼국지의 관우에 빙의한 듯 근엄하고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그 커피 식기 전에 돌아온다.”
그러고는 위풍당당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거 냉커피야, 멍청아.”
***
성태현이 한국에 돌아온 건 자정을 훌쩍 넘긴 늦은 시간이었다.
청와대에 도착하고 나니, 새벽 2시가 넘어가는 깊은 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최서준을 족치고 싶지만, 모두가 잠들어 있는 것도 모자라, 주말이 껴 있는 탓에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다.
무엇보다 짧은 해외 일정을 소화하느라고 시차 적응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데다가, 어젯밤에 최서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자신 또한 굉장히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
일단은 조금이라도 쉬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영국에서 체결한 서류만 정리해 두고 서둘러 침실로 향하려는 생각으로 집무실에 들른 그때.
문을 열자, 검은 실루엣이 성태현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누구야?”
“저에요, 대통령님.”
익숙한 목소리.
불이 켜지며, 김나나의 자태가 선명하게 성태현의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집무실에 들어와 있어?”
“공재원 비서실장님한테 부탁해서 미리 허락 받았어요. 열받는 일 있었다면서요? 그거 풀어 주려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니퍼는 야시시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성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굉장히 기분이 안 좋으니까 오늘은 넘어가자고.”
“아니에요, 대통령님.”
김나나는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성태현에게 다가가 그의 허벅지를 쓸었다.
“이런 날일수록 오히려 육체에 힘을 쏟아서 상념을 한번 날려 줘야 정신이 맑아진다고 들었어요.”
그녀는 겉에 걸치고 있던 시스루를 벗어 던지며 성태현에게 달라붙었다.
평소에 청와대에 볼 수 없는 옷차림.
신체적으로 반응이 온 건 당연하고.
그녀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어 보였다.
지금 머릿속에서 최서준에 대한 분노가 쉴 새 없이 치밀어 오르고 있는 탓에, 이를 잊고 나서 다시 생각하는 게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김나나는 자연스레 성태현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었고.
성태현은 눈을 번뜩이며.
“오늘 죽을 준비해.”
김나나의 허리를 휘어잡았다.
***
한편, 그 시간.
잠을 자던 한지수는 의문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어났다.
발신인이 표시되지 않은 통화.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상대방은 아무 말도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잠에 들려는 찰나.
다시금 익명의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
-보낸 이 : X
-지금 당장 집무실에 가 보세요. 대통령이 부인께 숨기고 있는 비밀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들었다.
이건 꼭 확인을 해 봐야 될 것 같은 느낌.
결국 한지수는 잠옷에 가디건만을 걸친 채 대통령 집무실로 향했다.
대통령 집무실은 워낙 방음이 철저한 탓에 내부의 소리는 전혀 새어 나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집무실의 문을 잡았다.
그리고 문을 밀어서 여는 그 순간.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환하게 밝혀진 집무실에서 자신의 남편이 필라테스 강사와 몸을 뒤섞고 있는 모습.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아주 격렬하게 말이다.
한지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뜨렸고, 이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여보!”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성태현과 김나나의 시선이 한지수에게로 향했고, 세 명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김나나는 화들짝 놀란 듯 그대로 얼어붙었지만, 사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의문의 전화와 문자를 보낸 인물은 바로 김나나, 그녀였기에 한지수가 올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김나나는 속으로 흠뻑 미소를 지었다.
‘미션 클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