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털이 (3)
광석곤 의원을 만나고 하루가 지난 7월 10일.
해외에서 생긴 사건으로 인해 국내가 떠들썩해졌다.
TV에서는 하루 종일 해당 사건만 보고하고 있는 상태.
-소말리아의 해적들에 의해 20명의 사람이 납치되었습니다. 이중 6명은 한국인으로, 작년 이맘때 출국했던 신흥 종교 집단 ‘아리아교’ 인원들입니다. 이들이 출국하기 전, 외교부에서 출국을 만류했으나 출국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당 인원들은 여행 자제 구역으로 지정된 리비아로 출국한 이후, 아프리카의 각 국가를 돌며 아리아교의 포교 활동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의 마지막 행적은 에티오피아 인근 국가인 지부티에서 예멘으로 배를 타고 이동하던 중 납치가 된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요. 현재 납치가 된 인원은 선박을 운행한 선원들이 2명이고 프랑스인 3명, 영국인 4명, 한국인 6명, 중국인 5명으로 최종 확인되었습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포로들을 석방시키는 조건으로 대한민국을 포함한 각국에 금전을 요구하고 있으며…….
여론의 반응은 크게 갈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종교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 포교 활동을 한 것도 모자라, 중동에까지 가서 아리아교에 대한 선교 활동을 하려고 했으니 충분히 잡혀 갈 만하다며 국가에서 이를 구제해 주면 안 된다는 의견.
그와 달리, 그래도 한국인이니 국가가 발 벗고 나서서 그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의 대립.
다만, 7 대 3 정도로 전자의 의견이 우세해서 정부에서도 쉽게 나설 순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출국하기 전, 외교부에서 포교 활동을 극구 말렸던 사실이 확인되었던 데다가 신흥 종교인 만큼 일반인들에게는 ‘사이비 종교’로 받아들여지기에 거부감이 컸으니까.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소말리아 해적들은 돈을 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는 데다가 소수 의견이라고 한들, 3할이면 적지 않은 수치이기에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
정부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구출해 준다면, 해적들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깨질뿐더러, 앞으로도 ‘어차피 정부가 구해 줄 것이다.’라는 생각이 알려지면 외교부가 암만 말려도 더 많은 종교들이 포교 활동에 나설 테고.
하지만 구해 주지 않으면, 정부가 국민을 버렸다며 소리칠 사람들 또한 많을 터.
물론,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나는 큰 상관이 없긴 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성태현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생각을 하니, 고소한 거고.
당연히 납치된 이들에 대해서는 유감이긴 하지만, 그 정도 감정이 전부였다.
오히려 내가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은.
“여전히 필리버스터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윤설하가 보고한 정기국회의 4년 연임제 안건.
의회는 골치 아픈 아리아교 납치 사건은 정부에게 맡겨 두고 저들끼리 신나게 토론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 무제한의 토론은 그저 보여 주기 식일 뿐이다.
4년 연임제의 통과 여부는 국회의원의 생각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사항으로 각 정당의 성패를 가르는 안건이니까.
“4년 연임제에 대한 여론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반반입니다. 아직은 도입하기 이르다는 의견과 이제는 채택할 때가 되었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봅시다. 아직 정기 국회가 끝나려면 한참 남았으니까요.”
***
필리버스터는 결국 일시 중단이 되었다.
아리아교 납치 사건에 대해 정부가 함께 회의하길 요청했으니까.
그러나 결과는 당연히 또 대립이었다.
병력을 파견해 구출 작전을 하자는 대한당. 외교부를 무시하고 나섰기에 절대 데려와서는 안 된다는 민국당. 돈을 줘서라도 데려오자는 만세당.
당 별로 나뉘어 또 논쟁을 하니, 당연히 결론이 나올 리 없었고.
국민들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성태현 대통령이 빨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끈다며 정부를 욕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7월 13일.
미래 문자에서 지목한 날짜가 다가왔다.
내용은 여전히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국무총리. 7월 13일, 관악구 낙성대로 77. 야심.
다만, 여기서 말하는 야심이 야심한 시각을 뜻할 때의 야심(夜深)인지, 야망과 같은 욕망을 뜻하는 야심(野心)인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
그렇기에 직접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문자가 지정한 장소는 한국대학교 근처의 공원.
근무 중에는 윤설하를 보냈지만, 국무총리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결국 퇴근 후 내가 직접 공원으로 향했다.
낙성대 공원.
익숙한 길을 걸어 들어가자, 낙성대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데이트를 한다거나, 긴 공강 시간에 간혹 이곳으로 오기도 했었지만, 졸업한 이후에는 처음이다.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 근처는 크게 변하지 않아 사람들이 있을 만한 장소가 많지 않았기에 몸을 숨기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다.
그림자 속에 숨어 있으니 무더운 열대야 때문에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를 지경.
그나마 다행인 건 가로등이나 빛을 밝힐 만한 수단이 없어서 일반인들의 인기척이 전혀 없는 것이랄까.
오후 10시를 훌쩍 넘긴 늦은 시간.
그제야 저 멀리 실루엣 하나가 주변을 살피며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운 곳에 다다르고 나서야 달빛에 비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무총리 박형태.
그라는 걸 확인하자, 입꼬리가 거칠게 휘어졌다.
역시 미래 문자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죽이고 기다린 지 15분쯤 지났을까.
저 멀리서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박형태를 향해 다가갔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익숙한 모습.
그러나 너무나도 어두운 탓에 얼굴이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자세를 틀면 보일 것 같은데.
남자는 박형태에게 다가가 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총리님.”
“간만에 뵙네요, 판사님.”
판사라고?
“아니, 이제는 대법관님이라고 불러야 되겠네요. 하하핫.”
대법관…….
아!
그와 동시에 구름에 가려졌던 달빛이 새어 나와 대법관이라 불린 남자의 얼굴을 비췄다.
양철중.
현재 대법원에 등록된 대법관 중 한 명으로 법조계에서는 힘깨나 쓰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서울지방법원장으로 있었던 만큼 나와도 당연히 친분이 있는 사이.
그러나 박형태와 가까운 사이라는 건 전혀 몰랐는데.
“어떻게 잘 이야기는 해 보셨습니까?”
양철중 대법관의 물음에 박형태 국무총리는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차기 선관위원장으로 내정했습니다. 현재 선거위원장 임기가 끝나면 바로 임명될 겁니다.”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공식 선거를 주관하는 곳으로 대선, 총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에 대한 관리는 물론 정치자금에 대한 사무까지도 맡고 있는 기관.
박형태 국무총리가 차기 선관위원장을 만났다라…….
평범하게 내정된 걸 가지고 이런 식으로 은밀하게 접촉할 이유는 없다.
다시 말해 지금의 만남은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모략을 짜기 위함이라는 것.
성태현까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이렇게 된다면, 문자에서 말한 야심은 야망과 같은 욕망을 뜻하는 야심(野心)이라는 확신이 생기는데.
“감사합니다, 총리님.”
“아닙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제가 감사해해야죠.”
그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지금 선관위원장님 임기가 아마…….”
“이달 말까지입니다.”
“그러면 이번 총선에서는 대법관님이 위원장 자리를 맡게 되겠군요.”
“맞습니다.”
박형태 총리의 눈이 번뜩였다.
“민국당에 힘 좀 실을 수 있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이죠.”
양철중 대법관은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다만 티 날 정도로 하진 않겠습니다. 제가 제대로 활약하는 건 다음 대선일 테니까요.”
“하하하핫!”
박형태 국무총리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이제 대충 그림이 나온다.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도 힘을 써 달라는 건 성태현의 부탁일 터.
지금처럼 내 캐스팅보트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다만, 박형태 국무총리는 여기서 한술 더 떠서 그 이후를 노리는 속내까지 드러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해서 선관위원장의 힘을 빌려 조작을 가미해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야심.
아니, 이건 야심이 아니라 언감생심이라고 봐야 한다.
감히 대권을 넘보다니.
그러나 선거관리위원장이 발 벗고 나서서 조작에 힘을 싣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그런 구조니까.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하는 대법관으로서 박형태를 대선에서 당선시키려고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정해져 있다.
대법원장.
대한민국 판사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그 위치에 오르려는 것.
겉으로는 인자하게 보이는…… 아니, 언론에서도 청렴한 것으로 유명한 이 인간이 이런 엉큼한 생각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역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니까.
그 뒤로도 그들은 야심찬 계획을 한참 동안 털어놓았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러면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 혹시 모르니 저는 5분 더 지난 뒤에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또 연락드리죠.”
“알겠습니다.”
둘은 사이좋게 또다시 악수를 하고 나서야 작별했다.
계속해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느라 힘든 수준이었다.
국무총리와 협상할 카드가 필요했는데 이런 식으로 건수가 생길 줄이야.
박형태는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양철중과 약속했던 5분이 지났고.
마침내 박형태도 자동차를 주차해 놓은 공원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슬슬 나설 타이밍이다.
그가 주변도 살피지 않고 한참을 걸어가던 그때, 나는 숨겼던 몸을 일으켜 박형태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그를 불러 세웠다.
“총리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박형태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았다.
“……누구십니까?”
“접니다, 최서준.”
그의 동공이 튀어나올 듯이 커다래졌다.
내가 있었던 건 예상도 못했을 테지.
그는 당황한 듯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어,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어찌나 놀랐는지 목소리에 삑사리까지 나온다.
“글쎄요.”
나는 씨익 입꼬리를 휘며 그에게 다가갔다.
“총리님 오시기 전부터?”
순간, 그는 아연실색하며 얼굴이 잿빛으로 바뀌었다.
“…….”
“산책하러 왔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이더라고요. 마주치면 곤란할 것 같아서 잠깐 저쪽에서 숨어 있었는데 의외의 인물이 오더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시더라고.”
박형태 총리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나는 능청스레 그에게 물었다.
“그냥 가실래요? 아니면 저랑 이야기 좀 나눠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