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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출세하신다!-287화 (287/341)

빈집털이 (2)

“말씀하신 의원 목록입니다.”

윤설하는 민국당 소속 의원들의 정보가 나열된 보고서를 내게 건넸다.

간단한 프로필이 적혀 있다고는 해도, 무려 4장이 넘는 양.

“총 몇 명이죠?”

“21명입니다.”

“생각보다 많네요.”

내가 그녀에게 조사해 오라고 지시한 건 성태현 측에 붙어 있지만, 당내에서 입지가 가장 좁은 인물들로 초선이나 2선 의원 위주.

그중에서도 다음 총선에서 공천마저 못 받을 만한 의원들을 추리면 되겠지.

“앉으시죠.”

“네.”

나는 윤설하와 함께 사무실에서 한참 동안 의원들의 프로필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박초현이라는 의원이 있네요?”

어디선가 들어 본 익숙한 이름.

다만, 얼굴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주요 의원들은 알고 있지만, 아무리 나라고 한들, 300명 전원을 알고 있는 건 무리였으니까.

“예. 2년 전에 첫 보선에서 당선된 의원입니다. PBC 아나운서 출신인데…… 그 갈색 머리에 쌍꺼풀 없이 단아하게 생긴…….”

“아, 누군지 알 것 같습니다.”

아나운서 출신으로 꽤나 젊은 나이에 정계로 뛰어들어서 많은 이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던 기억이 있다.

“이분이 울산에서 민국당 공천을 받았다는 게 의아하긴 했는데…….”

“제 정보통에 의하면 조병갑 의원과 썸씽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예. 아마 확실할 겁니다.”

하긴, 그 정도나 되니까 민국당의 텃밭 중 하나인 울산에서 공천을 받은 거겠지.

게다가 조병갑 의원은 현재 민국당에서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인물.

그와 내연관계로 인해 공천을 받은 거라면, 다음 총선에서도 공천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그러면 패스하죠.”

“알겠습니다.”

나는 보고서에 적힌 박초현의 이름을 찍찍 그었다.

윤설하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검사장님. 마지막 장으로 한번 넘겨 보시겠습니까?”

대답하는 대신 보고서를 뒷장으로 넘겼다.

“제일 밑에 보면 광석곤 의원이라고 있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예.”

천천히 내용을 살피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강원도에서 당선됐네요?”

“맞습니다. 정기 총선에서 당선이 됐고, 초선 의원입니다.”

윤설하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광석곤 의원이 당선된 지역구가 바로 김철기 의원이 출마했던 지역구입니다.”

그 순간, 윤설하가 왜 이 프로필을 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강원도는 만세당이 득세하고 있는 지역구라고 봐야 한다.

많은 시도 중에서도 만세당이 크게 힘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곳.

그렇다고 해서 대한당이나 민국당 의원이 당선되지 못하는 곳은 아니다.

강원도에 배정된 10개의 의석 중 7개에서 8개는 늘 만세당이 가져가지만, 나머지 두세 곳은 대한당과 민국당이 가져가곤 하니까.

그러나 광석곤 의원의 지역구인 삼척시는 만세당의 텃밭 중 하나.

다시 말해 대한당이나 민국당에서 공천을 해도 당선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지역구라는 뜻이다.

다만, 작년엔 이변이 일어났다.

만세당의 공천을 받고 출마했던 김철기 의원이 선거 도중 선거법 위반으로 정식 투표가 되기도 전에 잡혀 들어가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고 만 것.

그래서 결국 대한당과 민국당이 피 터지게 싸움이 붙었고, 끝내 민국당의 후보였던 광석곤 의원이 당선이 되어 버린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대한당과 민국당 모두 실제로 삼척시에 공천을 했다는 건, 당선되라는 뜻보다는 버리는 카드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당선이 되며 상황이 기묘하게 바뀌어 버린 것이지.

가장 노난 건 광석곤 본인.

낙선하고 다른 의원의 밑에서 일해야 할 인간이 지금은 국회의원 소리를 들으며 목에 힘주고 다닐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탄탄대로가 펼쳐진 건 아니다.

당 수뇌부에서 그가 당선된 사정을 모를 리 없으니 민국당 내부에서 그가 갖는 힘은 굉장히 작으니까.

다음 총선에서는 당선될 확률 또한 굉장히 희박하고.

이러한 상황에 대해 검찰 쪽 언어로 말하자면.

동기가 있고 상황이 조성되었을 때만 범죄가 일어난다.

광석곤 의원은 내가 딜을 걸면 넘어오기엔 충분한 상황이라는 것.

“광 의원은 정기 국회에 출석하고 있습니까?”

“예. 사흘 전에도 경기도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민국당 호출에 급하게 달려갔다고 합니다.”

사흘 전이라면, 대한당에서 날치기 법안 통과를 시도하려고 했던 날이다.

초선 의원 중에서도 가장 파워가 약한 측이니 당에서 부르면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가야 했겠지.

“광석곤 의원 외에 가능성 있는 사람들은요?”

“일단 두 번째 페이지를 보시면…….”

윤설하가 지목한 몇몇 의원들의 프로필과 상황을 살펴봤지만, 지금으로서 광석곤 의원보다 더 상황이 몰려 있는 인물은 없었다.

3시간에 가까운 회의 끝에 결국 내가 택한 사람은.

“광석곤 의원으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약속 잡을까요?”

“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접촉해 주세요. 물론, 비공식적으로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은밀하게 잘 전달하겠습니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은 7월 9일.

나의 만남 제안에 광석곤 의원은 민국당에게 알리지 않는 조건하에 조심스럽게 응했다.

그건 나도 환영이었다.

나와 접촉하는 게 민국당의 귀에 들어가는 건 오히려 나한테 손해니까.

방배동의 한 술집.

광석곤 의원은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지 마스크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 채 룸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처음 뵙네요.”

나는 그와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편하게 있으셔도 됩니다. 여긴 정치인들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라서요.”

“아, 그렇습니까?”

“예. 오히려 연예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보안은 더 잘 유지됩니다.”

“어쩐지 분위기가 조금 남다르다고 느꼈습니다.”

한지유가 알려 준 장소.

정치인들을 마주칠 일이 없는 곳이기에 이곳에서 만나기로 정했다.

“일단 한 잔 받으시죠.”

“네.”

그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잔을 받았다.

30대 후반의 초선 의원이라면, 나름대로 자존감이 높아서 검사를 만날 때에는 거들먹거릴 법도 한데 워낙 아랫물에서 놀아서 그런지 주제 파악은 잘하는 모양.

나는 첫 잔을 깔끔하게 비우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기 국회는 어떻게 잘 진행되고 계십니까?”

“저야 윗분들이 하는 말에 따라서 움직이는 게 전부죠.”

광석곤 의원은 겸손을 떨었다.

“아직까지는 초선이라서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만 있습니다.”

오래 끌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말이 나온 김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총선이 얼마 안 남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정기국회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선거니까요.”

“준비는 하고 계십니까?”

“예, 뭐. 나름대로는…….”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당선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광석곤 의원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그도 확신이 없겠지.

공천을 받는다고 당선이 되는 지역구도 아니다.

게다가 까놓고 말해서 공천을 받는다는 확신도 없을 테고.

그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당선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제 할 일 아니겠습니까?”

누가 국회의원 아니랄까 봐 미끈하게 잘 빠져나간다.

“그렇죠. 맞습니다.”

나는 푸근하게 웃으며 다시금 광석곤 의원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와 동시에 다시금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나오셨다는 건, 저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순간, 그가 멈칫하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고민이 되겠지.

향후에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일단 지금은 성태현 라인을 잡고 있는 상태니까.

다만, 내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랬다면, 애초에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오히려 당 수뇌부나 성태현 측에게 알렸겠지.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겠죠.”

광석곤 의원은 술잔을 바라보며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검사님 라인으로 갈아타고자 나온 건 아닙니다.”

단번에 넘어오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여지가 있다는 것만 해도 충분하지.

“그러면 제가 여기서 어떤 제안을 던지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거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입을 굳게 닫았다.

무언의 긍정일 터.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의원님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일순, 광석곤 의원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걸 확인한 나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쳤다.

“그 가슴에 달고 있는 국회의원 금배지, 내려놓고 싶지 않으시잖아요.”

자고로 권력이란 맛보면 맛볼수록 남에게 넘기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일.

설령 그게 가족이라도 말이지.

역사 속 수많은 왕들 중에서 자식에게 권력을 빼앗기는 게 싫어서 물려주지 않고 죽을 때까지 쥐고 있던 인물들이 흔하디흔하니까.

“평생이라고는 약속할 수 없지만, 그 배지. 다음 4년만큼은 제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그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그러나 눈을 감고 깊이 무언가를 생각한 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저한테 바라시는 게 뭡니까?”

그래.

쉽게 넘어오면 재미없지.

그랬으면 애초에 대한당 당 대표 김강진 의원이 내게 이런 부탁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한 표.”

나는 육전 하나를 가져다가 그의 앞 접시에 내려놓았다.

“그저 의원님의 한 표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자 광석곤 의원은 바로 눈치를 챘다.

“……4년 연임제군요.”

나는 대답 대신 미소로 답했다.

그는 짧은 고민 끝에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한 표를 행사하는 순간, 저는 민국당에서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여의도에 당이 민국당만 있습니까?”

순간, 광석곤 의원이 팔을 흠칫 떨렸다.

“대한당으로 넘어가시죠.”

나는 유순하게 말을 이었다.

“자고로 옮길 타이밍을 잘 아는 것도 정치 실력입니다.”

“하지만 삼척에서 공천을 받는다고 해도 제가 당선될 확률은 극히 낮은 터라…… 그렇다고 이미 다른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는 전라도의 당을 받을 순 없을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어느 지역구를 가든 마찬가지죠. 하지만 저는 그 배지를 보장해 드린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잠깐만요.”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말씀은…….”

“예, 맞습니다.”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비례대표 자리를 드리죠.”

김강진 의원이 허락한 당 대표의 권한.

4년 연임제를 통과시키기 위해서 비례대표의 뒤 번호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을 테니 그도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음 총선까지 제가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만큼은 보장해 드린다는 거죠. 1선과 2선 국회의원의 차이는 의원님이 더 잘 아시잖습니까?”

광석곤 의원은 머리를 싸매고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거절할 수 없는 아주 매력적인 제안.

물론,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의 입장에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런 제안을 받는다고 홀라당 넘어가는 것도 쉽지 않을 터.

그의 고민은 길어졌다.

침묵의 긴 시간 끝에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봐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나는 푸근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만…….”

이내 미소를 싹 지우고 딱딱하게 말했다.

“시간을 많이 드릴 순 없습니다.”

“언제까지 결정하면 되겠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요.”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정 고민이 되신다면, 성태현이 무너지는 걸 본 뒤에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예?”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광석곤 의원이 생각하기에 아무리 늦어도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뜻을 밝혀야 할 터.

그런데 내가 한 말은 앞으로 고작 세 달 안에 이제 임기 2년 차인 성태현이 무너진다는 뜻이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지만 나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든지 고민하라지.

어차피 광석곤 의원이 내린 결론은.

내게 붙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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