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86화 (286/341)

빈집털이 (1)

“정말 최 검사뿐이야. 내 오래오래 기억하지!”

박형태 국무총리는 마지막까지 고맙다는 인사를 반복하며 검사장실을 떠났다.

제 딴에는 큰 건수 하나를 따냈다고 생각하겠지.

자신이 제일 총애하는 고성탁…… 아니, 고중혁이 나를 설득하는 데 성공해서 제대로 담판을 지었을 거라고 느끼면서 말이다.

물론, 이것 또한 초석을 다지는 것뿐이다.

까놓고 말해서 이번 일만으로는 빈집털이에서 국무총리가 도와준다는 확신은 없다.

어디까지나 오늘 일은 구두 약속일 뿐이니까.

빈집털이에서 국무총리의 도움을 확정짓는 건, 미래 문자에서 나온 7월 13일에 국무총리를 만나서다.

그게 핵심이 될 터.

아직까지는 마음 급하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그때가 되면, 국무총리의 마음을 훔친 고성탁이 제대로 밀어붙일 테니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

빈집털이.

그 실현까지 이제 멀지 않았다.

***

정기국회를 하루 앞둔 2028년 6월 30일.

대한당 당 대표, 김강진 의원이 다급하게 날 찾아왔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네.”

“아닙니다. 저도 막 퇴근을 준비하던 참이었습니다.”

연락이 온 건, 내가 야근을 끝내고 집에 갈 채비를 하던 오후 8시 반을 훌쩍 넘긴 시간.

결국 10시가 다 되어 가는 늦은 시간에 한남동의 모처에서 그와 은밀하게 만나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고, 내일 정기국회가 시작되잖나?”

“예, 그렇죠.”

“그것 관련해서 부탁할 게 있어서 말이네.”

정기국회는 100일간 펼쳐진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 전 날 급박하게 찾아왔다는 건, 며칠 내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안건이라는 것.

“최 검사라면 당연히 요새 우리가 밀고 있는 4년 연임제에 대해 들어 봤겠지?”

알다마다.

모를 리가 있나.

대통령 4년 연임제.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은 단임제로 5년의 임기이며 단 한 번만 재직할 수 있는 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당이 밀고 있는 4년 연임제는, 미국과 같은 제도로써 한 번의 대통령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첫 임기 직후의 대선에 한해서 한 번 더 대통령직에 출마할 수 있는 제도다.

물론, 한 번 낙선을 하면 다시는 출마할 수 없고, 독재를 막기 위해 두 번까지만 대통령직을 맡을 수 있다.

올해 초, 대한당은 임시국회를 통해 이 의안을 발의하며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당연히 민국당은 이를 반대하는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했으나, 언론의 관심이 쏠리며 자연스레 첨예한 대립이 펼쳐졌고.

결국 이 의안이 통과하느냐 마느냐에 당의 사활이 걸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4년 연임제가 채택된다면, 대한당의 승리로 비춰질 것이며, 실패한다면 민국당이 승리한 것으로 결론 지어질 터.

국회에서 통과된 안건을 성태현이 거부할 권리는 있지만, 안건이 안건인지라 이번 건에는 거부권을 사용하지 않을 테지.

대통령의 임기에 대해 대통령이 선택하는 건 그림이 이상하다는 걸 국민들도 알고 있으니까.

다시 말해 이 4년 연임제만큼은 국회의 선택에 모든 게 달려 있다는 뜻.

“예.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혹시 여기에 제 의원들의 표가 필요하신 겁니까?”

“그렇다네. 혹시 가능하겠나?”

“가능은 합니다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국당에서 가만히 있을까요?”

김강진 의원의 눈이 빛났다.

“그래서 정기국회 둘째 날에 진행하려고 하네.”

그 말을 듣자, 김강진 의원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 바로 수긍이 갔다.

내 입가엔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빈집털이를 하시려는 거군요.”

작전으로는 나와 같은 빈집털이.

국회 은어로 말하자면 ‘날치기 법안 통과’.

“그렇다네.”

정기국회 첫째 날은 많은 취재진이 몰리는 탓에 대부분의 의원들이 출석한다.

결석만 하더라도 불성실하다며 국민들에게 욕을 먹을 수 있으니까.

그에 반해 언론의 관심이 떨어지는 둘째 날은 결석을 하는 이들이 굉장히 많은 게 현실.

그때를 대비해서 순식간에 통과시키려는 것.

다만, 이게 만능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국당에서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요즘도 날치기로 통과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주요 안건들은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날치기 처리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국회선진화법.

재적수 1/3 이상의 국회의원. 즉, 100명 이상의 의원이 동의를 할 경우 과반수 이상이라고 한들, 날치기 통과를 무효화시키며 필리버스터로 무제한 토론을 펼치는 게 가능해진다.

그리고 국회선진화법이 적용된 안건에 한해서는 2/3 이상의 찬성을 해야 법안이 통과가 된다.

이를 이용해 민국당이 사활을 걸고 막으려고 들 터.

“아무리 둘째 날이라도, 제 캐스팅보트와 대한당을 합쳐도 민국당이 다른 쪽과 손을 잡는다면 힘들 겁니다.”

김강진 의원은 눈썹을 들썩이며 대답했다.

“그럴 줄 알고 우리 측에서 이미 민국당을 제외한 만세당과 무소속 의원들과는 이야기를 끝냈네.”

이 인간도 상당히 준비를 많이 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한당과 만세당 그리고 무소속 의원들에 내가 쥔 캐스팅보트를 합치면 총 179명.

과반수를 넘는 건 당연하고, 성태현 측 의원 121명 중, 1/5만 불참하더라도 필리버스터를 열 수 없다.

다시 말해 날치기 통과가 가능해진다는 소리.

“이번 일만 잘 진행된다면, 그 다음 법안에서는 내가 얼마든지 대한당 의원을 동원해서 자네 측에 유리한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돕겠네.”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크게 빚진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네. 당 대 당으로서가 아니라, 김강진과 최서준 개인으로 말이야.”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충분히 손을 잡을 만하다.

무엇보다 김강진 의원은 ‘의리’ 하나로는 정치인 중에서 원톱으로 꼽힐 만한 인물이니까.

게다가 제23대 총선이 펼쳐지는 건 올해 10월 말.

다음 선거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시 말해 캐스팅보트를 손에 쥐고 있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캐스팅보트를 사용할 수 있는 최적화된 기회가 바로 지금.

쓸 수 있을 때 제대로 써먹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와 손을 잡으며 입꼬리를 휘었다.

“말씀하신 대로 지시하도록 하죠.”

“고맙네.”

김강진 의원은 내 손을 쥐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만에 하나, 통과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어차피 실패하더라도 필리버스터로 100일간 달리게 될 테니 시간적 여유는 많으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잘 부탁하네.”

“저만 믿으십시오.”

***

7월 2일, 김강진 의원이 날치기 법안 통과를 하려는 날이 다가왔다.

다만, 절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정기국회 초반에는 느슨하다고 한들, 민국당 측에서 이토록 관심이 많은 안건에 대해 쉽게 여지를 주지 않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물론, 이러한 내 생각을 김강진 의원이나 대한당에 이야기를 전하진 않았다.

4년 연임제에 관심이 있는 건 대한당과 민국당의 사활이 걸렸기 때문이었지, 나와 내 라인의 사람들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이를 한창 기다리고 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윤설하가 조심스레 사무실로 들어왔다.

“검사장님, 커피 한 잔 드시겠습니까?”

그녀의 손에는 커피전문점의 테이크아웃 잔이 들려 있었다.

“웬 커피예요?”

“공상욱 부장이 잠깐 외근 나갔다가 사 왔습니다.”

“잘 마신다고 전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공상욱 검사는 내가 약속한 대로 올해 초, 새해 발령을 통해 감찰부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본인의 업무 능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감찰부에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서울 전역의 비리 검사들을 때려잡으며 ‘호랑이 감찰부장’이라고 소문이 났을 정도.

나는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그나저나 아직 국회 측에서는 연락이 없습니까?”

“네. 조금 전에 현장 기자에게 슬쩍 전화해 봤는데 아직까지 국회 측에서 나온 의원이 없답니다. 그 대신 민국당 의원들이 분주하게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건 봤다고 하네요. 수가 꽤 된다고 합니다.”

성태현 측 의원들이 빠르게 도착했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되면 좋고, 안 되어도 그만이었지만 조금은 아쉽달까.

“저도 연락 오면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예, 검사장님.”

그녀는 꾸벅 머리를 숙이고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두어 시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이두형에게 연락이 왔다.

-검사장님.

목소리를 들어 보니, 듣지 않아도 결과를 알 것 같았다.

-아쉽게 되었습니다.

“실패했어?”

-예. 속전속결로 처리하려 했지만, 발의되자마자 민국당에서 서울 근교에 있는 의원들을 전부 다 불러 모은 탓에 투표에서 결국 성태현 측 의원 102명이 도착했습니다.

결과는 179 vs 102.

국회선진화법을 이용해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것이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테니, 필리버스터는 한참 동안 끝나지 않겠지.

“고생했어.”

-아닙니다. 아쉽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하고 말 것도 없어. 두형이 네 탓도 아닌데 뭘.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어차피 끝났으니 신경 쓰지 말고 의안이나 잘 발의해 봐. 이번 정기국회 성과에 다음 총선이 걸려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예, 검사장님. 들어가십시오.

***

이두형과의 통화를 마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김강진 의원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유감입니다.”

-괜찮네.

그는 짧게 탄식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나 또한 확신까지는 없었으니까…….

“다음에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그는 잠깐 고민하나 싶더니.

-그러면 하나 더 부탁해도 되겠나?

“어떤 걸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대한당 의원이나 나보다는 민국당 의원들에게 발이 넓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만…….”

-우리 측에서 접근하면 뻔히 보여서 바로 거절할 거야. 하지만 자네가 이야기를 하면 다르지 않겠나? 신뢰성이나 걸 수 있는 제안도 그렇고 말이네.

김강진 의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마지막 1표를 자네가 구해 줄 수 있겠나?

우리가 확보한 표는 만세당과 무소속을 포함하여 총 179석.

국회선진화법에 걸리는 이유는 재적수의 2/3인 180표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태현 측 의원을 한 명만 우리 쪽으로 데려온다면, 국회선진화법에 의해서 무조건 강행 통과될 수밖에 없다는 소리.

이런 식으로 제안할 줄은 몰랐는데.

-만약 처리만 되면, 내가 무슨 일이든 돕겠네. 이 김강진의 이름을 걸고 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귀가 확 뜨였다.

대한당 당 대표 김강진.

그가 이름을 걸고 도와준다.

의리의 상징인 그라면 절대 허투루 내뱉는 말은 아닐 터.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 4년 뒤. 제25대 대선에서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이 아주 환하게 그려졌다.

그의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제가 당 대표 권한을 어느 정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물론, 상식적인 선에 한해서 말이야.

그 순간, 입꼬리가 거칠게 비틀어졌다.

그렇다면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의원님.”

-그래, 최 검사.

“제가 꼭 한 명 데려오겠습니다.”

-기다리겠네. 꼭 좀 부탁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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