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들었든, 들지 않았든 (1)
“일일이 설명하기는 조금 복잡한데…….”
“힘들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
한지유는 핸들을 꺾으며 싱긋이 웃었다.
“오빠가 생명을 경시하거나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고마워.”
순식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유괴된 건 예상도 못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안전이 확보되어서 그다음에 공 검사랑 같이 전략을 짜고 움직인 거야.”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
“아, 참. 그리고 말해 줄 게 있는데.”
“어떤 거야?”
“내년에 네 돈을 조금 써야 될 것 같아.”
“스읍!”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날 바라봤다.
“내 돈이 아니고, 우리 돈.”
“그래, 우리 돈.”
나는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년에 로펌을 하나 차리려고.”
“검사는 겸직 금지 아니었어?”
“맞아. 내가 운영하는 건 아니고, 민호선 차장이 운영할 거야. 우리는 지분만 쥐고 있는 거지.”
“그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나?”
한지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하긴, 문제없으니까 오빠가 한다고 했겠지.”
“하하, 맞아.”
“차장님이랑 딜 같은 걸 했구나?”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총 지분 중 민호선이 25%, 내가 10% 지유, 네가 20%를 쥘 거야.”
“응.”
“이렇게 해도 일단 55%라서 경영권은 확실히 쥐고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머지 45%는 추가 투자자한테 나눠 준다고 해 놓고, 실제로 그중 일부는 차명으로…….”
“근데 나 이런 거는 어려워서 잘 몰라.”
“아, 그래?”
“응. 오빠가 알아서 잘 해 줘.”
그녀는 사근사근히 눈웃음을 지었다.
“믿으니까.”
“알았어. 고마워.”
“오빠 피곤할 텐데 눈 좀 붙여. 도착하면 깨워 줄게.”
“아니야. 옆에서 자면…….”
“거울 봐 봐. 오빠 눈 완전 충혈됐거든?”
슬쩍 거울을 확인하고는 그녀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머리를 기대기 무섭게 다시금 지분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생각하던 건 정리하고 자야지.
45% 중 5%는 초기에 들어오는 변호사들에게 계약금과 비슷한 방식으로 지급할 생각이다.
물론, 이들도 대부분 내 사람들이기에 필요할 때는 내게 힘을 실어 주겠지.
그리고 나머지 40%는 가상의 투자자를 빙자해 차명으로 내가 보유할 계획.
초기 변호사들을 제외하더라도 한지유와 내가 보유한 지분은 총 70%가 된다.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분인 51%를 훨씬 웃도는 수치.
언제든지 민호선을 쫓아내고 다시금 내가 로펌을 쥘 수 있다는 소리지.
하지만 그렇게 할 생각은 없다.
다만, 민호선이 문제가 될 경우나 내 뒤통수를 칠 때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암만 한지유가 번 돈이라고 해도, 함부로 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종의 투자.
민호선과 특수부 출신의 검사들 및 각종 판검사 출신 인맥을 동원해 로펌에 때려 넣으면 성장하는 건 시간문제다.
지분의 70%를 쥐고 있는 만큼, 그 수익 또한 대부분 내 차지가 될 거고.
앞으로 내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자금줄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합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돈.
그러면 재벌같이 돈줄을 쥐고 흔드는 녀석들과 굳이 협상할 필요도 없어질 터.
말 그대로 권력의 힘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그에 더불어 민호선 차장의 마음까지 휘어잡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랄까.
그 생각에 자연스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덕분일까.
어느 새 머리는 몽롱해졌고, 이내 잠이 들었다.
***
“요즘 엄청 바쁘네?”
한지유는 깎아 온 과일을 식탁에 올리며 팔로 내 목을 부드럽게 감아 몸을 기댔다.
“잔업이 그렇게 많나?”
“검찰 일은 아니고, 자금 정리할 게 있어서.”
“자금이면 돈?”
“응. 내년에 쓰려고.”
“아, 그때 말한 로펌 때문이구나.”
“맞아.”
나는 펜을 놓고 한지유를 바라봤다.
“자기가 엄청 정리를 잘해 놔서 작업은 되게 수월해.”
“근데 꽤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재산이 워낙 많아야지. 누구 아내가 이렇게 많이 벌었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러게 말이야. 누구 남편인지 참 복 받았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포크로 사과를 하나 찍어 내 입에 넣어 주었다.
“엄청 달다.”
“응. 엄마가 안동에서 직접 주문한 거라더라.”
“어쩐지 맛있더라.”
“아, 그런데 나 하나 물어볼 거 있는데.”
한지유는 내 머리에 턱을 괴고서 물었다.
“요즘 시국이 정치계에서도 바쁠 땐가?”
“이제 12월이니까 그렇긴 하지. 슬슬 내년 정책 관련해서 준비를 할 때잖아?”
“그렇구나.”
“왜, 처제가 무슨 이야기했어?”
“아니, 조금 불평을 하더라고.”
그녀는 감고 있던 팔을 풀고 내 옆에 착석했다.
“지수가 말하기로는, 요즘 제부가 잘 안 들어온대.”
“처제 지금 청와대에 같이 살고 있지 않아?”
“그렇긴 한데, 업무가 워낙 바쁘다고 집무실에서 거의 생활한다고 하네. 쪽잠 자고 업무하기를 반복하다가 씻을 때만 잠깐 왔다간다나 뭐라나.”
한지유의 말을 듣는 순간, 입꼬리가 휘어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김나나 때문이다.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집에 들어갈 생각도 않고 핑계를 대는 모양.
청와대에는 수많은 방과 침실이 있다.
테러를 방지하기 위함이지만, 그거야 문제가 생겼을 때의 이야기.
다른 이들이 없는 시간이면, 청와대의 방들은 전부 성태현의 차지.
성태현은 집무실이 아니라, 그 많은 방 중 한 곳에서 김나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겠지.
김나나가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벌써부터 성태현을 함락시킨 것 같다.
빈집털이의 후속타도 슬슬 완성되고 있달까.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웃음을 참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해. 대통령이면 업무가 바쁠 만하니까.”
“그래야겠다. 오빠 말 들으니까 나도 마음이 놓이네. 지수한테 이야기해 줘야겠어.”
그녀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정리는 얼마나 남았어?”
“오늘은 1시간 정도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지훈이는 잠들었으니까…….”
순식간에 그녀는 관능적인 목소리로 변했다.
“시간 맞춰서 기다리고 있을게.”
한지유는 뇌쇄적으로 윙크를 하고는.
“스키장에서 말한 거 지켜야 되잖아.”
“……어?”
“둘째 만들어야지.”
“…….”
“농담이야. 일하고 와.”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내 볼에 입술을 맞추고는 서재를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농담이 아닌 것 같은데.
흠흠.
그건 그렇고.
김나나는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
이제 계획에서 남은 건 국무총리뿐이다.
공상욱 검사가 여름 동안 박창식 장관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소란을 피운 덕분에, 그 난리통을 계기로 신의 손, 고성탁은 고중혁이 되어 국무총리실에 자연스레 잠입했다.
그것도 그의 왼팔 격의 보좌관으로.
완전한 신분세탁을 한 것에 더불어 청와대로 들어간 탓에 그와의 연락은 쉽지 않았다.
업무 특성상, 언제라도 국무총리와 같이 있을 수 있고 몸수색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대포폰 따위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위험성을 지우기 위해서 이쪽에서 먼저 연락하는 방법은 전무한 상태.
가끔씩 녀석이 공중전화를 통해 나의 대포폰으로 걸어오는 전화를 받는 게 유일한 연락 수단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현재까지 과정은 청신호라는 것.
머지않아 지금의 오른팔 녀석을 몰아내고 국무총리의 참모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신의 손이 국무총리를 집어삼키는 건 시간문제가 되겠지.
빈집털이 작전이 펼쳐질 날짜는 대략 가을.
늦어도 여름까지는 완벽하게 구워삶을 수 있다고 장담했으니, 시기상으로는 완벽하달까.
물론, 혹시나 하는 상황을 위해 미래 문자에서 알려준 대로 내년 7월에 국무총리와 접촉하긴 해야겠지.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이대로만 가면, 빈집털이를 성공하는 건 물론이고 성태현에게 치명적인 타격까지 입힐 수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그러게. 잠자코 내 말을 듣지, 왜 뒤통수를 때렸니.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
내가 아니었으면 대한당이 날린 일격에 외통수가 되어 낙선할 뻔한 녀석을 특수부 인력을 갈아 넣어 구해 줬는데…….
“후우.”
머리를 휘휘 저어 과거의 생각을 털어 냈다.
추억이 되지 못하는 좋지 않은 기억들은 내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정도로만 쓰여야지, 기분이 나빠질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녀석은 이제 내게 자극제로써 밟고 올라설 대상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그래, 자금 정리부터 하자.
얼른 끝내야 지유가 덜 기다릴 테니까.
그러나 펜을 잡은 순간부터 자꾸만 머릿속에 한지유의 모습이 떠올랐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나 매력적일 수가 있는 건지, 원.
아무래도 오늘 일은 글렀다.
내일 마무리해야겠어.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침실로 가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인 : 성진현 검사
성진현?
내가 잘못 봤나 싶었다.
전화를 건 인물이 다름 아닌, 성태현의 사촌 동생인 성진현이었으니까.
이 인간이 내게 전화를?
꺼림칙했다.
성태현이 보냈을 확률이 굉장히 높았으니까.
이쪽 집안 인간들은 꼴도 보기 싫었다.
무엇보다 만남 자체가 위험 부담을 갖게 할 수도 있고.
오래 고민하지 않고 전화를 거절했다.
그러나 잠시 후.
지잉지잉.
그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보낸 이 : 성진현 검사
-갑자기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사죄하고 싶습니다. 부디 전화를 받아 주시면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사죄?
뭔가 느낌이 오묘하다.
아니, 싸하다고 해야 할까.
만약 성진현을 내 사람으로 데려올 수만 있다면, 분명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성태현을 치는 인물이 내가 아닌, 그의 사촌 동생이라면 국민들의 신뢰도는 믿기 힘들 정도로 올라갈 테니까.
머지않아 다시금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발신인은 성진현 검사.
눈앞에 사과가 하나 놓인 기분.
독이 들었는지, 아니면 굉장히 당도가 높은 사과일지는 전혀 알 수가 없는 사과.
사과를 먹어야 할지, 먹지 말아야 할지는 아직까지 감이 오지 않았다.
다만.
짧은 고뇌 속에 판단했다.
나는 최서준다운 결정을 하기로.
눈앞에 있는 과일이 독이 든 사과인지, 단맛이 나는 사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내 손에 넣고 봐야 한다.
그 후에 사과의 실체를 파악해서 내가 먹을지. 아니면, 상대의 식탁에 올릴지. 그게 아니라면, 성태현의 목구멍에 쑤셔 넣을지를 직접 결정하는 것.
그게 검사 최서준의 방식이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휴대폰을 들어 올리고서 전화를 받았다.
“네, 최서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