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선 (1)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15일.
3개의 미래 문자 중 하나가 가리킨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11월 29일, 남양주 스타락 골프장.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일단 해당 날짜는 계획을 비워 두었다.
아직까지 법무부장관 박창식의 그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법이니까.
그동안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평화롭게 해결되었다.
단, 나의 기준으로 말이지.
7월부터 100일간 펼쳐진 정기국회는 완벽한 승리였다.
암만, 성태현이 발악을 한다고 해도, 대한당과 내가 힘을 합치면 무조건 과반수는 우리가 확보하기에 그쪽에서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지.
다만, 성태현이 대통령의 거부권을 사용해 너무 판이 기울어지지는 않게 조절했다.
비율로 따지면 65 : 35 정도랄까?
국회에서 아무리 이긴다고 한들, 대통령을 데리고 있는 여당만의 특권이라 저 정도까지는 어쩔 수 없이 허용해야 했다.
아니, 대통령과 반대된 입장에서 저 정도의 비율이라면 오히려 훌륭하다고 봐야지.
역대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까.
무엇보다 대한당 당대표 김강진 의원을 직접 대검에 불렀던 만큼, 성태현 입장에서는 내가 대한당과 무슨 작당 모의를 하는 줄 알고 신경 쓰느라 정기국회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기도 하고.
정기국회에서 워낙 크게 이득을 본 덕분에 그 이후로는 여유롭게 지낸달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상욱 검사에게 대검 차장검사 민호선에 대한 조사를 맡겼지만, 예상과 달리 그와 청와대 사이에서 특이하다고 할 만한 연결 고리는 찾지 못했다.
그 대신, 예상외의 인맥을 하나 찾아냈다.
다름 아닌, 법무부장관 박창식.
민호선은 나와 같은 한국대학교지만, 박창식은 안암대학교 출신으로 동문도 아니고, 그 외에 둘 사이를 이어 줄 만한 정치인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둘 사이가 예상외로 훨씬 더 가까웠다.
가끔씩 만나 술을 한 잔씩 기울이는 걸 넘어서 분기에 한 번씩 캠핑까지 다니는 정도랄까.
지난 9월, 무더위가 채 가시기 전의 그 푹푹 찌는 날씨에도 같이 글램핑을 갔다고 하니, 더 설명할 것도 없지.
이걸 이용해야만 한다.
박창식 장관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금 시점에서 그를 징검다리 삼아 민호선에게 닿는 것이야 말로 가장 쉬운 방법이자, 신뢰를 얻기 쉬운 루트니까.
다만, 박창식 장관이 느끼기에 너무 티가 나서는 안 된다.
괜히 그가 의문을 품기라도 했다가는, 실제 빈집털이를 할 때 ‘이걸 위해 날 이용한 건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우연을 가장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참 동안 연구하던 도중.
지이잉.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은 박창식 장관.
“크흠.”
목울대를 가다듬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예, 최서준입니다.”
-어, 최 검사장. 지금 바쁜가?
“아닙니다. 마침 일 마무리하고 커피 한잔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래. 내가 타이밍을 잘 맞췄네.
“맞습니다. 하하핫.”
-다른 게 아니고…… 다다음주에 일정 정해져 있나?
2주 뒤.
미래 문자에 나온 날짜가 포함된 주다.
순간, 눈이 반짝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월요일부터 2박 3일로 나랑 스키나 타러 가지.
월요일은 29일.
미래 문자가 말한 날짜!
나는 곧장 달력을 보며 화요일과 수요일에 잡혀 있던 일정을 빨간 펜으로 찍찍 그었다.
“따로 중요한 약속은 없습니다. 그런데.”
조심스럽게 물었다.
“평일에 말씀이십니까?”
-어. 주말에 가려고 했더니 이미 예약이 잡혀 있다고 해서 말이야. 자네 연차 아직 남아 있지?
“예.”
-월요일은 적당히 조퇴로 끊고 화요일 수요일에 연차 내둬.
“알겠습니다.”
잠깐만.
아직 문제가 있다.
문자에 나온 장소는 스키장이 아닌, 골프장.
박창식 장관과 가까워진 탓에 미래가 바뀐 건가?
“어디로 가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자네 혹시 골프장에서 스키 타 봤나?
귀가 번쩍 뜨였다.
“아니요, 아직 없습니다.”
-남양주에 스타락 골프장이라고 있어. 거기가 봄, 여름, 가을에는 골프만 치는 곳인데 겨울엔 하얗게 눈으로 덮어 버리거든. VIP들만 이용할 수 있는데 장난이 아니야.
딱 보아하니, 아무래도 VIP가 예약을 하면, 그 기간 동안은 다른 인물은 출입을 할 수 없게 통제해 놓고 골프장에서 통째로 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모양.
라인에서 가끔 이렇게 논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 봤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한번 타 보자고. 아주 죽일 거야.
“알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참고로 가족 동반이니까 제수씨랑 아들도 데려오고.
“예. 꼭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친구가 있어서 불렀는데 괜찮겠지?
“어떤 분이십니까?”
-민호선이라고 대검 차장검사로 있는 녀석이야. 자네도 들어 봤을 텐데?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입꼬리가 절로 휘어졌다.
“예. 저도 꼭 뵙고 싶었습니다.”
-그래. 잘됐네.
박창식 장관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공 검사 그 친구도 데려와.
“공 검사라면…….”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내 목에 칼을 들이민 녀석 말이야.
나는 긴장감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직 노여움이 풀리지 않으신 거라면…….”
-에헤이, 사람을 뭐로 보고.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과거의 일은 과거에 묻어 둬야지. 어차피 자네가 밑으로 데려갔으니 앞으로 몇 번 더 부딪치지 않겠나?
“맞습니다.”
솔직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실력은 괜찮은 친구입니다.”
-그래. 어차피 자네 사람이라면, 이제 내 사람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는 그 말을 하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내 사람이 지 사람이라니.
놀고 있네.
어느 정도 가까워지고 나서 비위까지 맞춰 주니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릴 때 일은 생각도 안 나는 모양.
하지만 아직까지는 녀석의 기분에 맞춰 줘야 했다.
그래야 빈집털이를 완벽하게 이행할 수 있으니까.
“예, 맞습니다.”
-그래. 어차피 함께할 거라면, 직접 만나서 과거의 묵은 감정을 털어 버리는 게 나을 테니까.
안 그래도 공상욱 검사의 복귀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만큼, 박창식 장관과 함께 만날 만한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굳이 내가 힘을 쓸 필요도 없어졌다.
“네. 어차피 그 친구도 승진이 목적이었지, 장관님께 악감정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요.”
-그러면 그 친구한테도 꼭 오라고 해. 그날 보자고.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곧장 윤설하를 불렀다.
“다다음주 스케줄 조정해 주세요. 화요일, 수요일 일정은 전부 그 뒤로 미룹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추가 일정도 잡지 마세요. 회의도 마찬가지고요. 기본적인 업무는 전부 송현성 차장이 소화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꾸벅인 윤설하가 떠난 뒤, 공상욱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검사장님.
“다다음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일정 비워 둬.”
-알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박창식 장관 만나러 갈 거야.”
-……예?
그는 당황한 듯 음이탈을 했다.
-가, 갑자기 박 장관님을요?
“저번 일 좋게 마무리하려고 준비한 거니까 긴장하지 마.”
-아, 감사합니다!
“그러면 지금 바로 고검 들어와. 작전 좀 짜야 되니까.”
-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
예상한 그대로였다.
골프장에는 우리 외에 그 어떤 손님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가족과 동행했고, 공상욱 검사도 와이프와 두 아이를 데리고 왔다.
민호선도 마찬가지.
다만, 연배가 차이가 나는 박창식 장관은 아들, 딸을 넘어서 손주까지 데리고 왔다.
그의 딸은 로스쿨을 나와 로펌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아들은 여의도의 모 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보아하니, 아들이 앞으로 정계에 나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나를 포함한 검사들과의 인맥을 만들어 주기 위해 슬쩍 자리를 마련한 모양.
나는 알고도 모른 척, 편하게 상황에 묻어갔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신난 건, 나도 아니고 공상욱 검사도 아닌.
“와, 눈이다!”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스키와 보드 대신 썰매를 타며 눈밭을 누볐다.
아들 지훈이 녀석도 아직까지는 멋모르고 그저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고 좋아하고 있지만, 이렇게 몇 번 만나다 보면,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자연스레 저들끼리 2세, 3세들만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겠지.
금수저를 물고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바로 그들만의 커넥션이.
지훈이는 아마 나보다 더 쉽게 높은 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 터.
그 모습을 지켜볼 생각만 해도 벌써 흐뭇하다.
“최 검사장.”
고개를 돌리자, 민호선 차장검사가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차장님.”
“인사는 아까도 했는데, 무슨.”
“아닙니다. 좀 전에는 장관님이랑 다 같이 있으신 자리였고, 여긴 둘만 있는 곳이니까요. 차장님께는 단둘이서 직접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말은 잘해.”
그는 껄껄 웃으며 물었다.
“그래. 일은 잘되어 가고?”
“예. 고검 업무가 어려울 게 없잖습니까?”
“무엇보다 힘든 게 고검 업무지. 내가 지난날을 돌이켜 봐도 고검에서가 제일 빡셌던 것 같아.”
“아하핫, 워낙 차장님께서 크고 대단한 일을 도맡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분위기는 훨씬 더 부드러웠다.
스키를 타러 왔다는 들뜬 마음도 한몫을 했을 테지만, 무엇보다…….
“장관님께서 자네 칭찬을 엄청 하더구먼.”
“아, 그러셨습니까?”
“응. 인성도 좋고, 실력도 뛰어나고, 사람 관리도 잘한다던데.”
“과찬이십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박창식 장관이 워낙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둔 덕분에 민호선 차장검사와는 꽤 쉽게 좋은 연이 맺어지고 있었다.
“자네 보드는 좀 타나?”
“대학생 때 가끔 타 봤습니다.”
“그러면 나랑 시합 한번 할까?”
“예?”
민호선 차장은 고글을 쓰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늦게 오는 사람이 술 한 잔 사기야.”
그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먼저 밑으로 내려갔다.
이건 남자의 싸움인데.
“핸디캡 드린 겁니다!”
나 또한, 고글을 쓰고 빠르게 보드를 타고 내려갔다.
문득 저 밑에서 아이들이 쳐다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와,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며.
“아빠 파이팅!”
그러나 아쉽게도 1등은 민호선 차장이었다.
사실, 일부러 간발의 차로 늦게 들어왔다.
접대 보드를 탈 줄이야.
“아, 너무 아쉽습니다. 이길 수 있었는데.”
“핸디캡 덕분에 이긴 것 같은걸.”
그는 함박 미소를 터뜨리며 고글을 올렸다.
“그나저나 한 번 내려왔는데 삭신이 쑤시는구먼.”
“하하하핫.”
뒤에서 크게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주인공은 역시나 박창식 장관.
“민 차장, 그러니까 나이 들면, 맥주나 한잔하면서 애들 뛰어노는 거나 보는 게 훨씬 편하고 재미있다니까.”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그래야겠습니다.”
박창식 장관의 옆에는 공상욱 검사가 붙어 있었다.
표정이 좋은 걸 보니, 아무래도 둘이 따로 이야기를 잘 끝낸 모양.
나에게만 보이도록 슬쩍 엄지를 치켜올리는 걸 보니,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번 스키장에서의 2박 3일 캠핑이 꽤나 큰 득이 될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다만, 아직까지 긴장을 늦추진 않았다.
단순히 이런 캠핑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는 것을 위해 미래 문자가 나서서 날짜와 장소까지 알려 주진 않았을 테니까.
민호선 차장은 공상욱을 보며 물었다.
“공 검사는 아직 안 탔지?”
“예. 이제 타려고 합니다.”
“그러면 최 검사장이랑 같이 올라갔다 와. 나는 여기서 장관님이랑 기다릴 테니까.”
“이거, 이거, 늙은이 심심할까 봐 말동무해 주려는 거구먼.”
민호선은 능글맞게 받아쳤다.
“들켰습니까? 하하핫.”
이야기하는 걸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사이라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오늘 밤과 내일 있을 술자리에서 생각보다 큰 결실이 생길지도.
“그러면 공 검사, 같이 올라갈까?”
“예. 그런데.”
그는 저 높은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위에 계신 분, 검사장님 사모님 아니십니까?”
나는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고 위를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네.”
한지유는 홀로 화보를 찍고 있었다.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
어떻게 스키복을 입었는데도 빛이 나는지 모르겠다.
“이야, 제수씨는 배우 클래스 어디 안 가네. 대단하셔.”
“자태부터 우아하시잖아.”
“……최고십니다.”
와이프 칭찬을 들으니 쑥스럽긴 해도, 내가 다 뿌듯하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지유는 능숙하게 스키를 타고 눈길을 가르며 내려왔다.
그녀는 모여 있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다들 뭐 하세요?”
“배우의 스키 실력에 대한 감탄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상욱 검사의 넉살스런 말에 한지유는 볼을 만졌다.
“에이, 무슨 배우예요. 지금 연기 쪽은 은퇴한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아니에요.”
박창식 장관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우리 딸이랑 친구라고 해도 믿겠는데?”
그렇게 한창 한지유에 대한 칭찬을 하고 있던 그때.
“아빠.”
최지훈이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우리 아들 왜?”
“나만 동생 없어.”
“응?”
“다들 동생 있는데 나만 없다고.”
그는 울상으로 내 소맷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나도 동생 만들어 줘!”
그 말에 우리들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제일 크게 웃음을 터뜨린 박창식 장관은 날 보며 말했다.
“최 검사장, 힘 좀 써야겠어. 아직 30대면 파릇파릇할 나이잖아?”
“맞네. 최 검사장만 외동이였어. 요즘 세상에 하나면 외로워.”
공상욱 검사도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검사장님. 저도 아들 하나, 딸 하나로 총 둘입니다.”
“허허허…….”
민망하게 머리를 긁고 있는데.
한지유는 능청스레 날 보며 찡긋 윙크를 하고는.
“이번에 돌아가면 장어 한 상 준비해 둘게.”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말했다.
“난 쌍둥이도 좋아.”
아무래도 한지유는 진심 같은데……?
***
해가 지기 시작하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시간.
“이제 슬슬 돌아가지!”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높은 곳에 있던 공상욱 검사는 배를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마침 배고파지기 시작했는데 잘됐네요.”
“그래. 애들도 챙겨서 얼른 가자고.”
아래에 있던 박창식 장관과 민호선 차장은 느긋하게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고, 나머지 인원들도 그들을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마지막을 즐기기 위해 한 명씩 썰매를 타며 내려가고 있는 모습.
나와 공상욱 검사도 매끄럽게 눈밭을 쓸며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와 나는 보드를, 공상욱 검사는 스키를 벗으며 신발을 갈아 신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일은 못 타겠죠?”
“그럴 거야. 오늘 밤에 미친 듯이 달리면, 내일은 술에 절어서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 테니까.”
“하하하. 그렇겠네요.”
그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좋은 자리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대는 무슨. 장관님이 불러서 온 거야.”
“그게 다 검사장님 덕분이란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두고 가는 거 없나 잘 챙기기나 해.”
“알겠습니다!”
먼저 출발한 박창식 장관 일행은 이미 훌쩍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떠난 상태.
썰매를 타고 내려온 아이들도 순차적으로 썰매를 끌고 이동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박창식 장관의 손자 박규태.
그가 썰매를 타고 내려온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장발의 남성이 성큼성큼 박규태를 향해 다가갔다.
“저 남자 뭐야?”
“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여기 직원 아니지?”
“예. 직원들은 유니폼이 따로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화하기도 잠시, 남성은 뜀박질을 시작하더니, 박규태를 와락 안아 들고서 숲속으로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게 사건이다.
미래 문자가 이곳을 알려 준 그 이유.
“공 검사, 쫓아가!”
“알겠습니다.”
공상욱 검사가 남자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