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정의 (3)
김강진 의원은 자세를 바로잡고 물었다.
“그 말은, 최 검사가 대한당에 복귀하고 싶다는 말이라고 해석해도 되나?”
“복귀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함께 미래를 그려 보자는 말씀 정도로 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지금 당장은 정기국회부터 시작해서 워낙 바쁘니까요.”
벌써부터 대한당으로 완전히 몸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
현재 국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건 유일하게 나뿐.
이걸 최대한 이용해 중간에서 이득을 취해야 하니까.
다만, 오로지 간을 보며 움직이는 게 아니라, 대부분 대한당과 함께 이득을 보는 방향으로 가자는 뜻이다.
여기서 대한당이 하는 게 마음에 들면, 내가 데리고 있는 국회의원들과 함께 다 같이 1번 라인으로 갈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내비친 것.
그는 내 말의 의미를 단박에 알아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겠네.”
김강진 의원은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대한당 내에서 최 검사 이미지는 내가 최대한 개선해 놓겠네. 아주 멋지게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정기국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예. 좋지요.”
“지금까지 대한당을 많이 도와주고 있는 건 알고 있네.”
통화할 때와 똑같은 논제이지만, 전혀 다른 태도다.
그래. 자고로 정치인이란 태세 변환을 잘해야 어지러운 시국에서 살아남는 법이니까.
“알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혹시 자네가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하게. 내가 돕지.”
“감사합니다. 당 대표답게 대한당 의원들을 한 손에 꽉 휘어잡고 있으셔서 그런지 듣기만 해도 든든하네요.”
“하하하핫.”
김강진 의원은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입으로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본인의 헤벌쭉 올라가는 입꼬리는 부여잡지 못했다.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다시금 말했다.
“자잘 자잘한 이익은 의원님과 대한당 그리고 제가 데리고 있는 의원들이 나눠 가지는 걸로도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저는 아주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시금 그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 호기심이 이는데?”
“멀리 봐야 합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얻을 게 많긴 하지만, 자잘한 이득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거든요.”
“자네가 원하는 걸 말해 보게.”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다음에 한 번 도와주십시오.”
“다음이라…….”
그는 옅게 입꼬리를 휘었다.
“정치에서 제일 무서운 게 다음을 기약하는 거라고 하던데.”
난 능글맞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김강진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함께하겠네.”
그의 눈이 음흉하게 가늘어졌다.
“그래야 자네가 대한당에 마음을 쏟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겠네.”
김강진 의원은 내게 손을 뻗었다.
“대한당에서 다시 재회할 그날을 말이지.”
“멀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
충청북도의 진천선수촌.
체육복이 생활화된 곳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정장의 사내가 찾아왔다.
똑똑.
“혹시 임정환 선수 안에 있습니까?”
조심스레 공상욱 검사가 안에 들어갔다.
“저인데…… 누구십니까?”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남자를 보고 공상욱 검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제대로 찾아왔네요.”
그는 자신의 검찰공무원증을 보여 주며 말했다.
“대검찰청 소속 공상욱 검사라고 합니다.”
“……검사님요?”
“잠깐 시간 좀 내주시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흡연하십니까?”
“아니요. 운동에는 쥐약이라 대부분의 선수들은…….”
“아, 죄송합니다.”
공상욱 검사는 담배를 꺼내 들다가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검사님께서 무슨 일로…….”
“국가대표 상비군이시죠?”
“예, 맞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임정환 선수는 이를 깨물었다.
그러나 이내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듯이 날카롭게 반응했다.
“왜 그 이야기를 꺼내시는 겁니까?”
“억울하시죠?”
그 순간, 임정환 선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했다.
공상욱 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꼬리를 휘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이십니까?”
“단.”
그는 임정환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는 조건입니다.”
임정환은 침을 꿀꺽 삼켰다.
“네. 무조건 입 다물겠습니다.”
그의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니, 간절히 바랐다는 게 옳을 것이다.
공상욱 검사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임정환 선수는 주먹을 꼭 쥐었다.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전에서 오심이 있었고, 그 과정에 대해 조사를 마쳤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자잘한 과정을 생략하고 말씀드리면, 임정환 선수가 곧 상비군이 아닌, 국가대표 자격을 얻게 되실 겁니다.”
“어떻게…….”
“제가 직접 심판과 김부열 선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올바르게 일을 바로잡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순간, 임정환 선수의 입이 쩍 벌어졌다.
“……감사합니다.”
뒤이어 예고도 없이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감사합니다, 검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두 손으로 공상욱 검사의 손을 꼭 잡았다.
“4년 동안 열심히 한 게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진심으로 절망스러웠거든요. 이제 겨우 빛을 본 느낌입니다.”
“다행입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아닙니다. 정환 씨가 낸 성과이고, 저는 검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게 감사해서 그렇습니다.”
임정환 선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공상욱 검사는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번 일에 대해 외부로는 새어 나가지 않게 잘 지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쪽에서도 그러한 조건으로 수락한 것이라서요.”
그는 씁쓸한 척 미소를 지었다.
“사실을 밝히고자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겠지만, 정환 씨도 다칠 겁니다.”
“아…….”
임정환 선수는 낮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금방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김부열 선수의 집안이 굉장한 것은 물론이고, 아버지가 고위급 정치인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으니까.
“꼭 비밀로 해 주셔야 합니다.”
“예,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부열 그 자식 가정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익히 들어와서…….”
그는 이미 체념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정정당당하게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
완벽한 정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마무리 짓는 게 서로에게 윈윈이었다.
김부열을 처벌하고자 나선다면, 분명 김강진 의원이 가만있지 않고 나설 테니까.
그러면 임정환 선수도 온갖 언론과 음해에 시달리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며, 본인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복잡한 정치가 아닌, 순수하게 운동을 하고 자신의 성과로 말을 하고 싶은 임정환에게는 오히려 반길 만한 결과.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이만…….”
임정환 선수는 돌아서려는 공상욱 검사를 붙잡았다.
“아, 검사님 성함이 어떻게 되셨죠? 제가 아까 제대로 못 들어서…….”
“저는 공상욱 검사라고 합니다.”
그는 슬쩍 말을 이었다.
“다만, 저는 위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인 것뿐입니다. 실질적으로 정환 씨에게 도움을 준 건 다른 분이죠.”
“그게 누구죠?”
공상욱 검사는 주변을 스윽 살핀 뒤, 목소리를 낮췄다.
“최서준 검사장님이십니다.”
그 말에 임정환 선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서준이라면…… 그 배우 한지유 남편인 검사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임정환 선수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역시 그분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여기저기 뉴스에서 많이 봤는데…….”
“좋은 분이십니다.”
공상욱 검사는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의 성과는 그분으로 기억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예.”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꾸벅이고서 선수촌을 나섰다.
서울로 돌아가는 운전대를 잡은 공상욱 검사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가 최서준에게 공을 돌린 이유는 하나.
자신이 그랬다는 사실은 분명 언젠가는 최서준의 귀에 들어갈 테고, 그게 상사에게 예쁨을 받는 최적화된 루트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임정환 선수와 같은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감사 인사를 받고 생색을 내는 건, 그 당시의 뿌듯함 정도가 전부일 뿐, 승진에서는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지금 공상욱 검사에게 필요한 건, 최서준의 눈에 드는 것이니까.
휴직계가 끝난 뒤에 부장검사로 승진이 확정되었다는 것만 봐도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다른 부서도 아니고 무려 서울고검의 핵심인 감찰부.
공상욱 검사는 자신이 어느 정도 최서준의 눈에 들었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이럴 때야 말로, 머리를 숙이고 더 충성해야 그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는 사실.
최서준 라인을 타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꿈인 검찰총장에 이를 수 있는 최적의 루트.
‘검찰총장.’
벌써부터 그의 눈앞에 화려한 꿈의 명패가 아른거리는 듯 했다.
‘장하영 부장만 꺾으면 된다.’
가장 위협적인 인물이었던 이두형이 국회의원으로 전향했으니 그는 같은 라인의 조력자지, 경쟁자는 아니게 되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해서 장하영 부장을 직접 무너뜨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부 출혈은 최서준이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장하영처럼 같은 라인에 있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 자체가 본인이 속한 라인의 힘을 약화시키는 거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탄탄한 라인을 구축하되, 거기서 자신이 두각을 드러내는 게 중요했다.
‘장하영 부장보다 내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보여 주면 자연스레 최서준의 후임 자리는 내 차지가 될 테니까.’
공상욱 검사의 두 눈이 야심으로 차올라 빛나기 시작했다.
***
김강진 의원이 떠난 뒤, 윤설하가 찾아와 조심스레 물었다.
“밖에서 만나시는 게 더 낫지 않으셨습니까? 대한당 당대표가 고검에 방문했다는 소식이 성태현에게 전해질 텐데요.”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내가 검사장이라고 한들, 고검에도 성태현 라인은 적지 않게 심어져 있을 테니까.
“일부러 그런 겁니다.”
“예?”
“청와대 녀석들, 긴장하라고요.”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저는 어차피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아.”
“청와대는 계속 긴장하며 경계하다가 제 풀에 지칠 테죠.”
나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며 말을 이었다.
“녀석들이 대한당에 신경 쓰는 사이, 저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테고요.”
윤설하는 낮게 감탄을 뱉어 냈다.
“뭐, 굳이 예를 들자면…….”
지이잉.
그때, 휴대폰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네, 천천히 받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들었다.
“어, 공 검사.”
-검사장님. 임정환 선수와 접촉 끝냈습니다. 이야기도 잘 마무리됐고요.
“그래, 고생했어. 그리고.”
윤설하를 보며 공상욱 검사에게 말을 이었다.
“대검 차장검사 민호선의 주변 인물에 대해 알아와 봐. 특히 청와대 인맥을 중심으로.”
-예,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윤설하를 보며 찡긋 웃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