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정의 (2)
통화를 들은 공상욱 검사는 존경과 경의에 찬 눈빛을 보내며 연신 엄지를 치켜들었다.
“대단하십니다.”
눈앞에서 대놓고 칭찬하니 영 민망해서 얼른 돌려보냈다.
어차피 대한당 당대표와는 독대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윤설하가 사건의 자료들을 복사해 왔다.
원본으로 파일링을 하도록 맡겨 두고 그 뒤로는 여유롭게 이번 사건의 자료 사본을 살폈다.
조금 전에 함께 있는 자리에서 쭉 훑어보긴 했지만, 다시금 살피면 빈틈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한참을 살핀 결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자료는 탄탄했다.
직접 심판을 찾아갔다는 말에 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완벽한 기우.
한마디로 기본적인 증거를 확보한 뒤에,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심판과의 만남에 승부를 걸었다는 느낌이랄까.
이 정도면 허술한 게 아니라, 추진력과 대담함을 갖춘 거라고 봐야지.
정말 조금만 다듬으면 이두형과 비슷한…… 아니, 잘하면 그를 뛰어넘어서 든든한 오른팔이 될 수 있을지도.
문득 그동안 이런 괴물이 대체 어떻게 숨어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나는 곧장 휴대폰을 들어 박기원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검사장님!
“어, 박 검사. 잘 지냈나?”
-예. 얼마 전에 대검 입구에서 뵙고 나서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피식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공상욱 검사에 관해 물어볼 게 있어서.”
-말씀하십시오.
“원래 대검 중수부 오기 전에 어디 있었지?”
-제가 알기로 부산지검일 겁니다.
서울 쪽이 아니면, 내 눈이나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몰랐던 것 같다.
-부산지검에서도 꽤나 활약을 해서 대검으로 발탁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싹수부터 달랐다는 뜻.
-다만, 대검에서는 과장과 부장이 통제를 하니,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에 발령 직후 오래지 않아 높으신 분들의 눈에 들지 못했고, 대검까지 끌어온 인물도 정권이 바뀌며 물러난 탓에 도태된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자넬 찾아온 거고?”
-예, 맞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혼자 미쳐 날뛰기에 최적화된 녀석이라는 뜻.
처음부터 끝까지 칼잡이 그 자체다.
장하영 부장과는 정 반대되는 성격.
두 명이 가진 각자의 장점이 서로의 단점을 커버할 수 있기에 함께 내 밑에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될 터.
“알겠네. 자네도 조만간 나랑 식사 한 끼 같이하자고.”
-언제든 불러만 주십시오.
“그래. 쉬어.”
***
얼마나 지났을까.
복도에서 다급하게 쿵쿵 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머지않아 노크 소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최, 최 검사.”
등장한 주인공은 역시나 대한당 당대표 김강진 의원.
그는 헐레벌떡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잡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내가…… 늦은 건…… 아니겠지?”
나는 책상에 발을 올린 채 손목시계를 슬쩍 들여다봤다.
“4시 2분.”
“…….”
“2분 지각하셨는데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사무실 입구로 다가가 문을 잡고서.
“돌아가 주세요. 제가 조금 바빠서 말입니다.”
김강진 의원이 통화에서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그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최 검사. 내가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
“안 나가실 겁니까?”
정색하며 목소리를 깔았다.
심각성을 느낀 김강진 의원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최 검사, 차가 막혀서 그랬네, 차가. 여의도에서 강남까지 얼마나 막히는지 자네도 잘 알잖나?”
“그건 의원님 사정이죠.”
“내가 전화 끝나자마자 출발했다니까? 오 기사 불러서 물어봐도 되네.”
입을 굳게 닫은 채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10초 정도 지났을까, 그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됐습니다.”
나는 쾅 소리가 나도록 세게 문을 닫았다.
“앉으십시오.”
“고, 고맙네.”
그는 손수건으로 뻘뻘 흐른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상석에 앉아 다리를 꼬고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당대표의 체면은 이미 버린 지 오래.
내가 이렇게 강하게 나온다는 건, 그의 비리에 대한 증거를 확보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을 터.
최서준에 대해 안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까지의 나는 완벽한 증거를 얻기 전까지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한참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견디지 못한 김강진 의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최 검사,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그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물었다.
“무릎이라도 꿇으면 되나?”
고개만 끄덕이면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기세.
“아들놈이 4년 동안 준비한 대회일세. 아비로서 해 줄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어. 평생을 바쳐 준비해 온 올림픽이야. 한 번만…….”
“그런 말을 하려면 무릎을 꿇을지, 말지 저한테 물어볼 게 아니라, 꿇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어 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를 막아 세웠다.
“농담입니다.”
“그, 그런가?”
긴가민가하는 김강진 의원을 다시 앉히고서 말을 이었다.
“소중한 아들이라고 하셨죠?”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부열이만 소중한 건 아니잖습니까?”
“……어?”
“떨어진 친구 말입니다. 이름은 아시죠?”
“…….”
모를 줄 알았다.
“임정환 선수입니다. 그 친구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본인도 올림픽 무대를 간절하게 꿈꿔 왔을 겁니다. 4년간 말이죠. 그건 생각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입이 무겁게 닫혔다.
“제가 이 친구에 대해 조금 알아봤거든요. 근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 찡하대?”
미리 준비해 둔 프로필을 꺼냈다.
“임정환 선수는 땅끝 마을 해남 출신입니다. 그의 부모님은 감자 농사지으시면서 정말 어렵게 뒷바라지해서 키우셨더라고요.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국가대표로 선발까지 된 녀석이 체육관에서 운동하려는데 생활비가 없어서 애들 가르치기까지 하고…… 이거 알고 계세요?”
그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알 리가 없지.
오로지 자신 그리고 본인의 가족만을 생각하지 않으면 남의 기회를 빼앗는 비리를 저지를 수 없었을 테니까.
“이거 밝혀지면 의원님 아드님께서 국가대표 박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유도 연맹에서 영원히 제명되는 거 아시죠?”
김강진 의원은 본인이 지시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테지만, 아들이 피를 보는 것까지는 절대 막을 수 없다.
내가 이를 가만히 지켜보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는 내 손을 붙잡고 물었다.
“내가 뭘 하면 되겠나?”
간절한 목소리.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한없이 약해진다.
그러니까 본인 자식만 중요한 게 아니라,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 되는데 말이야.
“아들은…… 아들만 부탁하네. 평생 유도만 배워 온 녀석이야. 내가 손을 쓴 것도 모르고 있어. 이번에 좌절하면 어떻게 될지 몰라.”
나는 딱딱한 태도를 싹 지워 내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
“물론, 저 또한 아드님께서 그렇게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인가?”
“예. 심판 매수도 잘못이긴 하지만, 작은 실수 때문에 평생 꿈꿔 온 일이 무너지는 것 또한 옳은 일이 아니니까요.”
“그, 그렇지.”
“작은 실수 때문에 평생을 바쳐 온 유도 연맹에서 제명되는 건 사형선고보다 더 심한 충격이지 않겠습니까?”
김강진 의원의 눈에 한 줄기 희망이 피어올랐다.
“맞네, 맞아.”
“다만.”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검사로서 이러한 사실을 알았는데 조용히 넘어가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겠지…….”
이쯤 되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에 대해 혼란이 오기 시작했을 터.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휘며 말했다.
“저는 그저 정의를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그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정의?”
“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정의를 말이죠.”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국가대표에서만 물러나십시오. 원래 결과대로 아드님께서 상비군이 되고 임정환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는 겁니다.”
“그 말은 비리를 밝히라는 뜻 아닌가? 그러면 내 아들은…….”
“아니죠.”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부상 등을 핑계로 상비군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이유 없이 갑자기 국가대표에서 물러나면 외부에서 이상하게 볼 테니 적절한 변명거리를 대는 거죠.”
여전히 김강진 의원의 얼굴엔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부상을 당하면 상비군이 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취소가 되는 거일 텐데…….”
“그것쯤이야 의원님 힘으로 얼마든지 커버하실 수 있으시잖습니까?”
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국가대표까지 만들었는데 말이죠.”
김강진 의원의 입이 굳게 닫혔다.
“그걸로 아드님의 자존심도 지키고 정의도 같이 지키는 겁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리 반길 만한 제안은 아니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아들이 국가대표에서 물러나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김강진 의원의 입장에서 선택권은 없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그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김강진 의원의 입장에서 100%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이걸로도 충분히 감사를 해야 했다.
만약 내가 작정하고 김 의원을 부르지 않은 채 사건을 터뜨렸다면, 아들의 유도 인생이 끝나는 건 물론이고 김강진 의원 또한 자리가 위태로워졌을 테니까.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던 그는 조심스럽게 날 바라봤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말씀하십시오.”
“이렇게 날 배려해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김강진 의원은 날카롭게 물어왔다.
“내가 자네였다면, 일련의 사실을 밝히고 언론의 지지를 받는 게 훨씬 더 큰 이득이었을 텐데.”
나이는 많지만, 아직까지 감은 녹슬지 않았다.
여기서 그저 아들을 지켜냈다는 기쁨으로 돌아갔다면, 김강진 의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이후에 몇 번 이용만 할 뿐, 대한당과 손을 잡더라도 이 인간은 배제하고 일을 진행했을 테지.
그러나 그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에 더불어 당대표로서 당에 대한 영향력. 그리고 연륜에서 오는 노련함을 생각하면 충분히 협업을 할 만할 터.
“저는 의원님, 그리고 대한당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거든요.”
김강진 의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을 테지.
“하지만 자네는…….”
나는 능글맞게 눈썹을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싫어한 건 최규현이었지, 대한당이 아니었잖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지금 무너뜨리고 싶은 건 성태현이고요.”
순간, 김강진 의원은 자식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눈빛에서 정치인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그 말은 혹시…….”
“맞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한껏 입꼬리를 비틀었다.
“비즈니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해 볼까요?”
이제부터가 진짜 본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