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70화 (270/341)

최소한의 정의 (1)

“올림픽요?”

“예.”

“저번에 말씀하신 경기도지사의 요트 건과는 다르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이건 우리가 의도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사건이니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올림픽에 관련해서 제가 아는 건 새 발의 피입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할 테죠.”

“정말 장난 아니군요.”

윤설하는 혀를 내둘렀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이토록 비리에 비리가 판을 치는 곳이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죠. 선수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 대회기도 하고, 성적을 내면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건 일도 아니니까요. 부와 명예가 절로 따라오니까요. 심지어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도핑하다가 걸려서 줄줄이 나가떨어지는 것만 봐도 엄청날 정도죠.”

“소스도 없이 사건을 캐낸 공상욱 검사도 대단하네요.”

나는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는 친구입니다.”

“그러게요. 1주일 만에 찾아냈을 정도면…….”

그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특수부 검사들 서너 명이 달려들어도 쉽지 않을 텐데.”

“그렇죠. 두형이가 여의도로 가면서 빈자리가 컸었는데 금방 메워질 것 같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윤설하는 생긋 웃음을 지었다.

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공상욱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능력은 좋지만, 양반은 못 되나 보네요.”

윤설하의 말에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들어온 공상욱 검사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차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어, 앉게.”

공상욱은 윤설하와 가볍게 목례만 주고받은 뒤, 자리에 앉았다.

“바로 자료부터 보지.”

“예.”

그는 서류 가방에서 A4용지 뭉치를 꺼냈다.

저런 식으로 파일을 정리했다는 건, 단순 보고용이 아니라…….

“혹시 그거 증거 목록인가?”

“예.”

공상욱 검사는 득의를 감추고 힘차게 답했다.

“증거까지 모두 수집 완료했습니다.”

놀라움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흘.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 지, 겨우 사흘 지났다.

그런데 벌써 확보를 해서 목록화해서 가져올 줄이야.

보고하러 온다기에 사건 내용에 관해 설명하러 오는 줄 알았더니만.

윤설하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손가락이 움직인 걸 보면 그녀도 놀란 모양.

사건을 발견한 기간까지 합쳐도 고작 열흘밖에 되지 않는다.

기대했던 것 이상이다.

“보고해 봐.”

“예.”

그는 두 손을 모은 채 이야기를 시작해 나갔다.

“올해 3월에 있었던 유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대한당 김강진 의원의 아들, 김부열이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상대는 전 국가대표였던 임정환이었고요.”

내가 알기로 임정환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몇 번 우승했다고 뉴스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결승까지 올라가는 데 문제는 없었고?”

“경기를 지켜본 이들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 할 만한 오심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래, 계속해.”

“예. 그런데 결승에서 김부열이 먼저 유효를 따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끝나기 전에 임정환이 업어치기로 한판을 따내는 데 성공해서 승부가 갈렸죠.”

문제가 없었다면, 그대로 경기가 종료되는 게 옳다.

“하지만 판정에서 갑자기 문제가 생깁니다.”

나는 자료를 넘기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업어치기 하기 직전에 임정환이 반칙을 했다는 겁니다. 유도 룰에 따르면, 경기장 둘레에 붉은 띠로 표시된 ‘위험 지대’에 5초 이상 머무르면 ‘지도’ 판정을 주기 위해 경기를 잠시 중단해야 하는데 그걸 심판이 깜빡했다고 한판 자체를 취소해 버린 거죠.”

“허…….”

말도 안 되는 억지다.

심판의 실수로 인해 승리가 물거품이 된 거니까.

“거기서 멘탈이 나간 임정환 선수는 결국 경기 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점수를 내지 못했고, 그대로 김부열이 승리하며 국가대표로 확정되어 버렸습니다. 임정환 선수는 국가대표 상비군이 되었고요.”

“임정환은 그 결과를 보고 가만히 있었어?”

“임정환 선수도 이의신청을 했지만, 협회에서는 당시 영상이 녹화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확인을 할 수 없다며 더 따질 경우엔 상비군 자격까지 박탈시켜 버린다고 했기에, 더 말을 못 꺼낸 것 같습니다.”

심판도 모자라 협회까지 매수한 모양.

이 정도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

분명 문제가 될 만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의 기사는 뉴스에서는 물론이고 인터넷에서조차 본 적이 없다.

김강진 의원이 언론까지 막을 수는 없었을 터.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다.

증거 영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

심판과 협회를 매수한 건 둘째 치고, 심판이 고의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없고 증인 또한 현장에 있던 다른 선수들과 감독, 코치가 전부다.

그러나 이들은 계속해서 유도를 해 나가야 할 인물들.

결국 협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 증언을 해 줄 수가 없고, 결과적으로 임정환 선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지.

그렇기에 우리도 쉽게 나설 수는 없었다.

이들이 법정에 서지 않는다면, 증거와 증인 없이 심판의 편파 판정을 증명해야만 하는 법이니까.

“영상이 없으면, 오심이라고 증명할 만한 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않으면 나서기가 어려워.”

“아닙니다.”

공상욱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제가 그 영상을 확보했습니다.”

“그래?”

“예. 협회 대신 현장에 있던 관객 중에 한 명이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놨더라고요. 그래서 영상을 확보했고, 심판의 판정이 오심이라는 것까지 확보했습니다.”

그는 득의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아까 말씀드린 ‘위험 지대’에는 원래 5초 이상 머물러야 지도를 받는다고 했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정확히 4.2초 동안 머물렀더라고요. 애초에 지도를 줄 상황이 아니었던 겁니다.”

이 정도면 심판이 정상적인 판정을 하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고생했어. 그런데.”

나는 그가 가져온 자료 목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심판 통장 내역이지?”

“예, 맞습니다.”

“근데 여기 나온 건 ATM기 입금 내역이잖아. 자료에는 김강진 의원 측에서 돈을 건넸다는 증거가 없어.”

“그게 저도 제일 문제였습니다. 사실, 김강진 의원 측에서는 이런 뒷돈을 주고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흔적을 깔끔하게 지웠더군요.”

공상욱 검사의 말엔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심판 쪽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맞는 말이다.

소위 말해서 우리 같은 전문가들은 뒷돈을 주고받더라도 서로를 위해 흔적이 남지 않게 처리하지만, 심판이나 협회 녀석들은 기껏해야 수백, 수천만 원을 받는 게 전부.

그것도 가끔이나 받는 것이니 뒷돈을 처리하는 데 능할 수가 없다.

소액을 처리하는 데 굳이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으니, 별도의 절차도 밟지 않는 게 보통이니까.

숨긴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수사선에 오르면 드러나는 게 대부분.

“일단 이 통장에 찍힌 현금 5천만 원은 CCTV를 통해 심판 본인이 입금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깐깐하게 물었다.

“아무리 정황이 그래도 김강진 의원 측이 인정할 리가 없는 거 알지?”

아직까지는 그의 실력을 검증하는 절차.

짧은 시간에 알아 온 만큼 빈틈이 없는지 더욱 확실히 해야 했으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계속 팠습니다. 그런데 김강진 의원이 어떻게 준비했는지는 아무리 파도 안 나오더군요. 결국…….”

그의 입에선 상상과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심판을 찾아가서 자백을 받았습니다.”

듣자마자 헛웃음이 터지며 단어 하나가 절로 튀어나왔다.

“미친놈.”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얼굴 보니까 딱 느낌이 오더라고요. 이 자식은 직접 찾아가서 검찰공무원증 보여 주면 알아서 술술 불겠구나.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고요.”

혹시나 오해할까 봐 싶었는지 말을 덧붙였다.

“평소에는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번엔 상대가 워낙 허술했기도 하고, 증거도 확실하게 있어서 간 겁니다.”

공상욱 검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빠르게 처리해서 검사장님 놀라게 해 드리고 싶기도 했고요.”

솔직히 말해서 다른 녀석들 같았으면 무모했다고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공상욱에게서는 터무니없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한 것 같달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만 봐도 이 녀석이 내 마음에 제대로 든 건 확실하다.

다만, 이렇게 일이 진행될 경우, 위험 요소가 하나 생겨난다.

“심판한테는 입단속 해 놨겠지?”

만약 그를 통해 김강진 의원에게 검찰에서 이 사실을 물었다는 소식이 들어갈 경우, 그는 압력을 통해 수사를 종결시키거나 증거를 더욱더 은폐할 테니까.

그러나 공상욱 검사는 자신 있게 눈을 번쩍였다.

“예. 제가 해 놓은 말이 있으니, 김강진 의원 귀에 들어갔을 리는 절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확신을 할 정도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고생했어.”

능력 검증만 하려고 했더니, 큰 건을 가져왔다.

무려 대한당 당대표의 아킬레스건.

그것도 한 입에 먹어 해치울 수 있도록 아주 맛있게 조리를 끝낸 상태.

이 정도면 이제 더 이상 공상욱 검사의 능력에 대해 확인해 볼 필요는 없다.

단순히 ‘칼잡이’를 넘어서 ‘공상욱’으로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지.

다만, 이번 일을 보면 그 만큼 어울리는 별명이 없다.

최서준 라인을 탔지만, 당분간 내 머릿속엔 칼잡이로 남아있을 것 같다.

“안 그래도 대한당이랑 거리 좁히려고 했는데 딱 좋은 건수야. 잘했네, 공 검사.”

“감사합니다!”

나는 윤설하에게 자료를 넘겨주고는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설하 씨는 내용 검토한 뒤에 관련자들 목록 뽑아서 파일링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공 검사도 가서 쉬어.”

“예.”

윤설하가 먼저 검사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공상욱 검사는 입구에서 나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혹시 말입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강진 의원이랑 통화하실 거라면 옆에서 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왜?”

“배우고 싶습니다.”

공상욱 검사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 모습에서 열정과 의지가 느껴졌다.

나와 같이 ‘정상에 오르고 싶은’ 간절함.

내가 이 사건을 단순히 뇌물수수 정도로 끝내지 않을 거라는 걸 녀석도 모를 리가 없다.

그렇기에 어깨 너머가 아니라, 직접 눈앞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보고 배우고 싶다는 열의.

지금까지 이런 검사는 없었다.

다들 그저 나에 대한 경외심을 품고 있을 뿐, 실제로 내 곁에 다가올 생각은 감히 품지 못했으니까.

만약 다른 라인을 탔다면, 내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다.

그렇기에 이런 녀석은.

키울 맛이 나지.

나는 빙긋이 입꼬리를 비틀고는 두 손을 깍지 끼며 지그시 그를 바라봤다.

“꽤나 발칙한 부탁을 하는데?”

“……아!”

그의 눈동자가 확대되었다.

“죄송합니다!”

이내 그는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닫고 바로 허리를 접었다.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그래서 마음에 들어.”

공상욱 검사는 허리를 접은 채 고개만 슬쩍 들었다.

“……예?”

“거기 앉아.”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총장되고 싶다며. 거기까지 올라가려면 정치하는 것도 듣고 배워야지. 단순히 실력만 좋아서 검찰총장이 된 사람은 대한민국 역사에 단 한 명도 없거든.”

그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감사합니다!”

공상욱 검사는 곁에 두고 키우면.

내가 더욱더 높이 올라가 대한민국의 정점에 도달했을 때, 절대 권력을 쥘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만한 인물이다.

그는 두 눈을 빛내며 날 지켜봤고.

나는 곧장 대한당 김강진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강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최서준입니다.”

-오, 최 검사! 오랜만이야. 한 2년 만인가?

“3년입니다. 자주 연락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뭐.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잠깐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언제쯤 괜찮으십니까?”

-흐음, 글쎄.

그는 길게 말을 늘이기 시작했다.

-내가 요즘 워낙 바빠서 말이야. 한창 의안이 쏟아질 시기잖아?

바로 느낌이 왔다.

이 자식, 지금이 정기국회 시즌이라 내가 자신과 힘을 합치고 싶어서 연락한 거라고 생각한 모양.

일부러 성태현을 엿 먹이기 위해 캐스팅보트를 대한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쓰고 있었더니 자신들 도움이 필요하다고 착각한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김강진 의원은 바로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자네가 여의도로 오면 시간은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감히 나한테?

싸가지 없는 놈.

이런 녀석은 좋게 대해 줄 필요가 없다.

“1시간 내로 강남으로 오십시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안 오면 당신 아들 국가대표 잘리는 건 물론이고 부자가 나란히 쇠고랑 차는 모습까지 보여 줄 테니까.”

-…….

직감했겠지.

국가대표란 단어만 들어도 찔리는 건 본인일 테니까.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1시간이다, 이 새끼야.”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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