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련 (7)
“특수부?”
성태현은 한창 써 내려가던 펜을 그대로 멈춰 세웠다.
“그 사건이 왜 특수부로 이관돼?”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게…….”
공재원 비서실장은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갑니다.”
“어떤데?”
“처음에 사건을 맡았던 검사가 갑자기 휴직계를 냈습니다.”
“뭐?”
성태현은 결국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대검의 보고에 따르면, 해당 업무를 완전히 특수부로 이관하고 휴직계를 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처리할 때 중수부 과장이나 부장은 가만히 있었어?”
“대검에서도 중수부는 검사 하나하나가 독자적으로 움직이는지라 위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절차상에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다고? 그게 말이 돼?”
“모두 퇴근한 시간에 저들끼리 속전속결로 처리해 버렸답니다. 간부급이 개입할 시간이 없었다고…….”
“중앙지검에서는?”
“거기도 부장검사 선에서 처리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앙지검장도 사후 보고를 받았다는 게 전부입니다.”
“허…….”
성태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최서준 이 새끼가 다시 날뛰기 시작하네.”
“……죄송합니다.”
순간, 성태현의 머릿속에 아찔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이 사건, 처음부터 그 자식이 설계한 거야?”
공재원 비서실장은 단박에 부정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예. 이번에 특수부로 넘어가는 걸 보고 저도 의심을 했었는데, 사건의 전개 방향이나 언론의 보도 과정을 분석해 보니 기존의 최서준과는 스타일이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그 녀석과 관련 있었던 인물들은 그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요.”
그제야 성태현은 마음을 놓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
애초에 그 녀석이 설계를 하고 이용당한 것이라면, 속에서 열불이 나서 참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면 단순히 우연이 겹친 건가?”
“아닙니다. 세력이 개입한 건 확실합니다.”
“그럼 역시 대한당인가?”
“그것까진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제3의 세력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확인되는 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근데 이번에 최서준이 움직인 건…….”
“단순하게 그 녀석이 중간에서 낚아챈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허…… 거참, 운 하나는 기가 막힌 녀석이야.”
운보다는 수완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공재원 비서실장의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 말을 했다가는 성태현이 노할 걸 알기에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래서 사건은?”
“조용히 묻히다가 적당하게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그래. 들어 보니까 신도시 노리고 땅을 산 것도 아니라며?”
“예. 투기 목적이 아니라, 정말 우연히 얻어걸린 겁니다.”
최서준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마음이 걸리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태현 본인이 직접 선택해서 장관까지 끌어올린 인물.
그를 팽하려고 했던 미안함도 있고, 주변인들의 눈치가 보이기에 법무부장관을 내칠 수는 없었다.
사실 이번 일을 계기로 쫓아낼 수도 없긴 했다. 대변인을 통해 검찰 조사를 따라 정의롭게 판단을 내린다고 발표했는데, 최서준이 무죄라고 단정해 버리면 법무부장관을 몰아내는 순간, 그림이 이상해지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예전보다는 조금 데면데면해질지도 모르지만, 곁에 두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대통령과 장관은 계속해서 접촉할 수밖에 없는 자리.
금방 회복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박창식 장관을 내치는 것보다는 다시 품는 게 더 간단한 것은 물론이고, 내각의 다른 관료들의 충성심을 끌어올리는 데 더 효과적일 터.
임기 초에는 굳이 강력한 힘을 보여 줄 필요까지 없다.
그저 신뢰만 심어 주면 대통령이라는 자리만으로도 권력이 따라오는 법이니까.
“법무부장관한테는 다행이라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전갈이라도 전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성태현은 달력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법무연수원장에 대해서는 알아봤어? 꽤 날짜가 지난 것 같은데.”
“예. 본인이 이야기했던 큰 프로젝트라는 게 존재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시간을 끌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최서준이랑 이미 손을 잡았다, 이거지?”
“그런 것 같습니다.”
“쯧, 대통령이라고 마냥 좋은 건 아니라니까.”
그는 자조적인 말 속에 자랑을 섞었다.
“최서준 그 녀석은 바닥에 있어서 재빨리 움직이지만, 나는 처리할 국가 업무가 워낙 많아서 느리다니까.”
공재원 비서실장은 눈을 반짝이며 손을 비볐다.
“느린 만큼,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웅장하고 위대하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성태현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법무연수원장 대신 유배 보낼 만한 자리를 찾아봐.”
“알겠습니다. 검사들과 접촉하고 나서 정해지면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둘은 이미 최서준을 유배라도 보낸 양,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는 대통령이니까.’
아무리 기어 봤자, 그는 한낱 검사일 뿐이다.
국가원수와는 비교도 안 되는 밑에 있는 자리.
한 단계도 아니고, 뒤꿈치를 들어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먼발치에 있는 녀석.
여유롭게 상대해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최서준은 그가 갈 만한 다른 자리에 있는 검사들과는 진즉에 만나 접촉을 끝냈다는 사실을.
또 허탕을 칠 뿐이겠지만, 알려 주는 이는 없을 테지.
성태현은 시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운동할 시간이네.”
“아, 필라테스 하러 가십니까?”
“응. 지금 가면 넉넉하게 옷 갈아입고 준비하기에 충분할 것 같아.”
공재원 비서실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요즘은 그래도 꾸준히 가시는 것 같아서 제가 보기에도 너무 뿌듯하고 좋습니다.”
괜히 성태현은 민망한지, 크흠 헛기침을 하며 변명하듯 말했다.
“운동을 하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니까 몸이 상쾌하더라고. 예전과는 달라.”
“아, 그렇습니까?”
“그래. 사람이 운동은 꼭 해야 된다니까.”
그는 대충 흘려가듯, 그러나 꼭 비서실장의 귀에 꼭 박히도록 말했다.
“강사한테 보너스라도 줘. 건강해진 느낌이 많이 드니까.”
“알겠습니다.”
공재원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말을 머릿속에 기억하며 말을 이었다.
“운동을 하고 오시면 대통령님 얼굴에 화색이 돌아서 정말 제가 다 개운하다니까요?”
“하하하, 그래?”
“예, 그렇습니다.”
공재원 비서실장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다음엔 영부인님과 함께 운동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잡아 볼까요? 부부가 같이하면 더 힘도 나고…….”
성태현은 그의 말을 끊었다.
“에헤이, 우리 공 실장이 잘 모르네.”
“……네?”
“운동은 일대일로 배워야 확실히 느는 법이야. 와이프도 그걸 원하고. 괜히 같이해 봤자 비교되고 안 좋아.”
“아, 그렇군요. 제가 운동 쪽은 젬병이라 몰랐습니다. 하핫.”
그는 멋쩍게 웃고는 직접 집무실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면 오늘도 즐거운 필라테스 시간 되십시오!”
***
-한 종교 단체에서 여행 자제 국가로 지정된 국가 중 하나인 리비아로 출국을 강행했습니다. 이들은 일명 ‘아리아교’라고 불리는 신흥 종교 집단으로 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에서 약 2년에 걸쳐 포교 활동을 한 뒤 돌아올 일정이라고 밝혔으며…….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뉴스거리였지만,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새로운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과거에 받았던 미래 문자 중 하나가 문제였다.
보낸 이가 39이며 내용은 ‘박창식. 11월 29일, 남양주 스타락 골프장.’으로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한 번에 도착한 3개의 미래 문자 중에서 유일하게 올해를 가리키고 있었다.
문자가 온 상황 그리고 나의 목적을 생각하면, 빈집털이에 필요한 세 명을 섭외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일 터.
그런데 이미 박창식에 대한 나의 계획은 충분히 성공적으로 이행되었다.
처음엔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미래 문자일 줄 알고 이번 작전이 수포로 돌아갈까 봐 꽤나 긴장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사건이 문제가 될 리는 없었다.
다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 자체가 제로에 가까워진 상태.
그렇다면 문자가 대체 왜 왔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혹시 아직 박창식 장관이 내게 마음을 100% 열지 않은 걸까 싶었지만, 지금 상황을 봐서는 절대 아니었다.
매일같이 통화나 문자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이고, 법무부에서도 그가 나의 인품을 칭찬한다는 소문이 쉬지 않고 들려올 정도니까.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일이 발생한다는 건가?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그저 단순하게 기우일 수도 있는 법.
미래 문자에서는 11월 29일에 발생할 사건에서 그를 돕는 방법을 알려 준 것이지만, 오로지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니까.
미래 문자가 아니더라도 내가 직접 정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
굳이 문자만을 따라서 움직일 필요는 없다는 거지.
문자들은 말 그대로 보너스일 뿐, 중요한 건 늘 내 선택이었으니까.
그렇더라도 굳이 문자 내용을 머릿속에서 지울 필요는 없었다.
지금으로도 충분하지만, 11월 29일이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법.
그저 잊지 않고 머릿속에 기억만 해 두면 된다.
일이 잘 마무리되어 가는데 괜히 사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지잉지잉.
때마침 도착한 하나의 문자.
-보낸 이 : 박창식.
-오늘 끝나고 차돌박이에 소주 한잔 어떻겠나? 내가 사지.
이렇게 먼저 연락이 올 정도.
박창식의 마음은 이미 내 손 안에 들어와 있다.
저녁에 보자는 답장을 한 지 몇 초나 지났을까.
다시금 진동이 울렸다.
또 박창식일 줄 알았으나, 보낸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보낸 이 : 공상욱 검사.
-검사장님, 잠깐 통화 괜찮으십니까?
칼잡이?
내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일거리를 준 지, 1주일 만에 연락이 오다니.
나는 곧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공상욱 검사는 힘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 녀석 설마…….
“어, 공 검사. 무슨 일이야?”
-저번에 맡기신 사건, 실마리를 잡았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진짜 찾아낸 모양.
“……벌써?”
오히려 조금 불안해졌다.
내가 그렇게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한 요트 대여 사업을 이렇게 빨리 찾아낸다는 건 내가 행한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었으니까.
-예. 정치인 그리고 올림픽과 관련된 비리입니다.
“누군지 말해 봐.”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건 내 걱정을 떨쳐 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한당 의원입니다.
음?
“의원이라고?”
-예. 국회의원입니다.
경기도지사 민형택이 대한당 소속이긴 하지만 의원은 아니다.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다행히 내가 작업한 일에 흠은 없었던 모양.
그래,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실수할 리가 없지.
“대한당의 누구야?”
-김강진 의원입니다.
“김강진이면 대한당 당대표 아니야?”
-예, 맞습니다.
칼잡이 공상욱 검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강진 의원 아들이 유도 종목에서 심판 비리를 통해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올라가야 할 녀석은 상비군이 되었고요.
“확실해?”
-이미 증거는 반쯤 찾아냈습니다. 나머지도 제 이름을 걸고 찾아내겠다고 장담합니다.
이 정도로 말한다면, 확실히 꼬리를 잡았다는 것일 터.
양식 광어나 잡아오라고 갯지렁이가 걸린 낚싯대를 줬더니.
고래를 잡아왔다.
그것도 아주 큰 고래를.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 비리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자네는 어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잘못된 일입니다. 저희는 정의를 수호해야만 합니다. 검사란 그런 존재니까요.
나의 입꼬리가 아주 환하게. 그리고 거칠게 비틀어졌다.
“공 검사.”
-예, 검사장님.
“가져와, 증거.”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