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66화 (266/341)

조련 (4)

검찰 조사에는 거침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고위 공직자들의 사건 조사는 더디게 진행된다.

수사가 진행되면 단순히 조사 대상 한 명만이 유죄냐, 무죄냐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까지 같이 걸려 들어오기 때문.

당연한 말이지만, 고위 공직자라면 그 주변 인물 또한 높은 지위를 갖고 있을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단순해 보이는 사건 하나에 그런 사람들의 잇속이 얽혀 있으니 쉽게 해결되지 않는 건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

덮을 건 덮고, 허용적 범위만 공개를 하면서 사건에 대한 은폐와 보도를 동시에 진행해야 되기 때문이다.

높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검사들 자신의 윗사람과도 연결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사건을 맡은 검사의 직속 상사에게서 압력이 가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러나 칼잡이, 공상욱 검사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이번 땅 투기의 주인공인 법무부장관 박창식 장관과 연관된 인물은 전부 청와대와 성태현 측 인물.

게다가 지금 있는 상사들과 평생 갈 게 아니라, 최서준 라인으로 옮겨 올 것이기에 대검에 있는 인물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상태.

그 탓에 일반인들을 수사할 때처럼 죄다 뒤집어엎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니, 사건이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

대검의 어르신들이나 청와대 양반들은 꽤나 심기가 불편한 듯싶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다르게 흘러갔다.

그것도 완전히 재미있는 방향으로.

-머슴과마님 : 이야, 시원하네!

-윤궤하 : 지금까지 이런 검사는 없었다! 자살특공대인가, 검찰인가?

-노태미인 : 공상욱 검사 백 있음?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움직이지?

-카페가좋다 : 와, 여태껏 장관 조사하는 데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쳐 내 가는 건 처음 보네.

-안전부장 : 대박이다. 요즘 뉴스 보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니까.

-백곰 : 근데 이게 정상임. 맨날 검사 새끼들 보면 하나 같이 장관들 앞에서 설설 기다가 덮기만 하잖아. 쪽팔린 줄도 모르고…… 이게 진짜 검사지!

-멍뭉고양이 : 최서준 초기 시절 보는 것 같네. ㅋㅋㅋㅋ

-장유지니 : 멋있긴 오지게 멋있다.

-침략자 : 솔직히 나 경기도 모시에 근무하는 9급 공무원인데 저거 공고 올라온 것도 못 봤음. 자기들끼리 해 먹으려고 탕치기한 듯. 일부러 보궐선거 기간 노려서 공고한 거 보면 각 나오지.

-찬동 : 근데 법무부장관도 너무하다. 진짜 티가 나도 너무 났음. 장관직에 오른 지 반년도 안 됐는데 땅 투기라니 ㅋㅋㅋ

-레빗토끼 : 있는 놈들만 더 버는 세상이라니까. 서민들은 월급 받으면서 꾸역꾸역 버티는데 누군 가만히 앉아서 50억을 버네 ㅋㅋㅋ 우리 창식이 감방 가즈아~!

-이동열 : 청렴한 대한민국 만들겠다던 대통령 어디 갔죠? 사건 뜨니까 바로 입 다물고 업무한다고 하죠?

-파란영 : 나 솔직히 민국당 지지자였는데, 이제 당 정체성에 조금씩 의심이 간다.

인터넷 기사 창 댓글엔 아주 난리가 났다.

법무부장관만 까이는 게 아니라, 청와대와 민국당까지 엮여서 전부 다 욕을 먹고 있는 상태.

성태현도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박창식을 보호하면 국민들에게 자신 또한 똑같은 놈으로 치부될 게 뻔하다.

그렇다고 그를 팽하려니, 자신의 라인인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을 테고.

진퇴양난이겠지.

인터넷의 검색어를 지우거나 실시간 검열을 할 수도 없는 노릇.

바로 전(前) 대통령이었던 최규현이 언론을 규제하고 SNS를 탄압하다가 쫓겨났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도 가만히 손 놓고 지켜본 건 아니었다.

관심을 다른 주제로 돌리려고 시도는 했다.

그러나 미꾸라지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는 없었다.

청와대에서 뿌린 연막은 미꾸라지가 활개 치며 다 걷어 버렸던 것.

무언가 세력이 있다는 건 눈치챘겠지만, 송재훈 PD나 박수형 기자와 같이 최서준과 연관되어 있는 언론인들은 남들처럼 후속 보도나 내며 그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는지라 나는 용의선상에도 오르지 않았을 터.

미꾸라지와 손을 잡은 게 신의 한 수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칼잡이 또한 정말 미친 듯이 사건을 파헤치고 있었다.

마치 내일을 보지도 않는 폭주 기관차같달까.

그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여론은 그에게 환호했고 당연히 국민들의 관심에 따라 언론도 칼잡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박창식 장관은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본인은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그게 먹힐 리가 있나.

사실 여부가 어쨌든 간에, 국민이 보기에 그는 땅을 살 수 있는 유동자금 70억을 가진 갑부이면서 고위 공직자임을 이용해 1년 만에 시세 차익으로 50억을 번 천하의 나쁜 놈이니까.

그의 말은 씨알도 안 먹히지.

이제 박창식 장관이 무너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

“하아…….”

박창식 장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일이 꼬인 거야?”

본인이 한 거라고는 고작해야 퇴직 후에 가족들과 오붓하게 살기 위해 집을 지을 땅을 구한 것뿐이었다.

물론, 공직에 30년 넘게 있는 동안의 생활이 먼지 한 점 묻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오물을 덮어썼고, 그 과정에서 모은 돈으로 고양시의 그 땅을 산 것이니까.

그러나 이번 땅 투기 건은 정말 아니었다.

시세 차익을 노리지 않았다는 건 당연하고, 애초에 신도시 정보조차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조차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운 좋게 땅값이 오른 것뿐.

사전에 지라시를 접하기라도 했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텐데.

장관을 마지막으로 아름답게 은퇴하려고 했는데 이토록 추하게 무너지게 될 줄이야.

“자, 장관님!”

그때, 그의 비서가 다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왔다.

“왜?”

박창식 장관은 신경질적으로 답하며 그를 째려봤다.

비서는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있던 리모컨을 집어 들며 말했다.

“지, 지금 TV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공상욱 그 새끼가 또 뭐 한대?”

“아니요. 이번에는 기자회견입니다.”

“기자회견?”

“예. 그리고 공 검사가 아니라…….”

비서는 탄식을 내뱉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경기도지사입니다.”

“뭐?”

박창식 장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서의 손에서 리모컨을 빼앗아 직접 TV를 틀었다.

화면을 보자마자 그의 입에서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서의 말대로 방송에서는 정말 경기도지사가 기자들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현재 확인된 바로서는 아무래도 내부 정보가 새어 나간 것 같습니다.

그는 통한에 가득 찬 듯이 말을 이었다.

-지금 벌어진 모 공직자의 땅 투기 의혹과 관련되어 그 주체인 경기도지사로서 이 모든 사실에 대해 정확히 신경을 쓰지 못한 제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허.”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기가 차서 헛바람만 들이켤 뿐.

비서도 얼굴이 붉어져서 TV에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저, 저 대한당 앞잡이 같은 녀석이!”

그러나 화면 속 경기도지사 민형택은 아주 완벽하게 연기를 해내고 있었다.

-앞으로는 경기도 공무원들에 대하여 더욱더 철저한 교육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실을 다지겠습니다. 또한,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이번 일의 정보를 흘린 내부자를 반드시 찾아내어 처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기도지사의 기자회견이 더 이어졌지만, 박창식 장관의 귀에는 더 이상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결정타.

이건 말 그대로 결정타였다.

내부 정보가 빠져나갔다는 건, 다시 말해 법무부장관이 그 정보를 가지고 땅 투기를 목적으로 토지를 구매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자, 장관님?”

비서도 이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곧장 TV를 껐으나, 박창식 장관의 멘탈은 회복이 되지 않았다.

참담함.

그리고 원통함.

그 두 가지 감정이 박창식 장관의 얼굴에 완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조금 더 깨끗하게 살았어야 했나…… 그때 AQ그룹에서 받아먹지만 않았어도 애초에 저 땅을 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그러나 이제 와서 과거의 부패를 반성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

그는 허탈한 듯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간 저질렀던 부정부패가 또렷하고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운이 나쁜 게 아니다.

본인의 과오다.

지금까지 쌓여 왔던 잘못이 한 번에 터진 것뿐이다.

박창식 장관은 결국 체념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물러나야 될 것 같지?”

“…….”

비서는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었지만, 본인 입으로 직접 모시는 장관에게 물러나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으니까.

“고생 많았어, 백 비서.”

“…….”

비서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나마 국민들의 관심이 덜해지면 좀 나을 겁니다. 부동산 관련 법안은 처벌 문제가 확실치 않으니…….”

“그래. 그러겠지.”

박창식 장관은 비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가 봐. 혼자 있고 싶네.”

비서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눈물을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되면 말씀해 주십시오.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비서가 나간 뒤, 박창식 장관은 서랍을 열었다.

그는 결국 10년 넘게 끊었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쿨럭!”

기침이 튀어나왔지만, 이내 마음이 평온해졌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니코틴과 타르에 머리가 핑 돌았지만, 그것 또한 오래지 않아 적응되었다.

“후우.”

그는 허망하게 담배 연기를 깊게 내뿜었다.

그러고는 열쇠로 잠겨 있는 서랍의 제일 위 칸을 열었다.

사표.

사실, 이번 일이 터진 직후에 위기를 직감하고 사표는 미리 써 두었다.

차마 내지 못하고 서랍에 넣어 뒀을 뿐.

‘이제 정말 끝이군.’

그는 담배를 꼬나물고 사표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서랍 속 구석에 있는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제일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하나의 명함.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최서준

그 순간, 박창식 장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혹시…….’

헛된 기대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다.

아니, 놓을 수가 없었다.

최서준이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하며 존경한다고 했던 게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던 탓.

추하게 무너지더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걸어 봐야만 했다.

이렇게 물러나나, 한 번 더 부탁하고 쓰러지나 다를 것은 없었으니까.

나중에 가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사표를 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는 게 낫다.

박창식 장관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뚜. 뚜우. 뚜우우.

아주 천천히 울리는 신호음.

그 신호음 한 번 한 번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발이 달달 떨리고.

불안감에 손가락을 가만히 두지 못할 정도.

그렇게 기나긴 1분여가 지나고.

마침내 휴대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최서준입니다.

“어, 최 검사장. 날세, 박창식.”

-아, 오랜만입니다, 장관님.

최서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하고 호의적이었다.

박창식 장관은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자네, 날 좋아한다는 말…… 아직도 유효한가?”

-장관님.

최서준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왜 이제야 전화를 거셨습니까?

“……어?”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의 말에 한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났다.

“……정말인가?”

-예. 괜히 방해될까 봐 참고 있었습니다.

최서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듬직하고 여유 있게 말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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