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련 (2)
“어떻게, 잘 지냈어?”
“당연하지. 그것도 누구 덕분에.”
송현성은 눈썹을 들썩거리며 웃고는 실내를 쭉 둘러보았다.
“와, 그런데 사무실 진짜 좋네.”
“당연하지. 지검도 아니고 고검이라고.”
“나는 언제 검사장 소리 들어 보냐?”
“고검 차장이면 거의 검사장급이지. 웬만한 지검장보다는 파워 세잖아?”
“그건 그렇지.”
그는 능글맞게 끄덕이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근데 호칭에 따라 느낌이 다르잖아. 너도 고검장 달고 있다가 대검 가서 차장 소리 들으면 기분 묘할걸?”
“안 그래도 다들 그러더라.”
“그건 그렇고.”
송현성은 지금까지의 장난기 넘쳤던 모습과 달리, 진지하게 표정을 바꾸고 똑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래서 차장 될 계획은 세운 거고?”
“당연하지.”
“역시 최서준이야.”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도와줄 건 없나?”
“고검 일 밀리지 않게 도와줘. 내가 정치 쪽에 정신 팔리면 고검은 제대로 신경 못 쓸 것 같거든.”
“이 자식, 이거 지 귀찮은 일 나한테 떠넘기려고 차장검사로 데려온 거였어?”
“들켰냐?”
“하하하하하, 자식.”
그는 자신감 넘치게 내 팔을 툭 쳤다.
“걱정 마라. 고검 업무는 이 형님이 빠삭하게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여기 있었던 시간 다 합치면 너보다 길 거야.”
“그래, 부탁 좀 할게.”
“알았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용호도 제대로 이를 갈았더라?”
“만났어?”
“응. 엊그제 술 한잔했는데, 완전 약이 올랐더라고. 걔 이번에 40억 정도 날렸다던데?”
“그렇게나 많았나?”
10억 단위라는 건 알았는데, 그 정도일 줄이야.
“그래서 그거 복구하려고 지금 M&A 엄청나게 하고 있잖아. 아예 돈으로 박살 내 버린다고 엄청 벼르고 있던데?”
“그 정도였어?”
“응. 근데 레임덕 되려면 적어도 3, 4년은 지나야 되니까 너무 오래 걸려서 문제야.”
“보통은 그렇지.”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살기가 담겼다.
“그 전에 내가 박살 내 버릴 테니까.”
똑똑.
들려오는 노크 소리.
윤설하 또한 신도시 건설 사업 발표 공고가 난 걸 확인하고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일 터.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만간 밥이나 한 끼 먹자. 오늘은 하반기 첫날이라 정신이 없네.”
“그래, 알았어.”
송현성과는 가볍게 악수만 하고 그를 내보냈다.
윤설하는 그와 바통 터치하듯 검사장실로 들어왔다.
“검사장님, 신도시 건설 공고 확인했고 오늘 날짜로 박창식 장관 명의로 토지에 관한 등기부등본을 비롯한 각종 서류가 등록되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우리의 작전이 새어 나가지 않았다는 소리.
궂은 날씨와 달리, 일은 아주 순조롭다.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장하영 부장한테 칼잡이에게 움직이라는 신호 주라고 하세요. 1시간 뒤에 보도 들어갑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곧장 휴대폰을 들어 미꾸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2G 대포폰으로.
약속했던 대로 수신음이 세 번 울리기 전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검사님. 공고 확인했습니다.
“자료 준비 됐지?”
-물론입니다. 말씀만 하시면 바로 터뜨릴 수 있습니다.
“1시간 뒤에 터뜨려. 온갖 언론이 전부 박창식으로 몰리도록.”
-알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하기 직전, 휴대폰 너머로 빠르게 키보드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로 부임한 신입 검사들을 두어 명 정도 면담을 하고 나면, 언론은 난리가 나 있겠지.
당연한 말이지만, 칼잡이도 미리 자료를 확보해 뒀다.
자잘한 절차만 거치면 바로 칼잡이, 공상욱 검사가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되겠지.
작전, 빈집털이.
드디어 그 첫 단계의 시작이다.
***
예고했던 1시간 뒤.
미꾸라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타이밍 좋게 슬슬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11시 무렵.
인터넷은 물론, SNS에 공통되는 하나의 보도 자료가 올라왔다.
-[단독!] 2027 하반기 신도시 건설 사업 최대 수혜자는 ‘법무부장관!’
-경기도의 2027 하반기 신도시 건설 지역이 확정 및 보도 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도시 건설이 확정된 지역은 남양주시 오남읍, 안양시 석수동, 고양시 중산동으로 총 세 곳에 이른다.
그런데 이 세 개의 신도시 건설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인물이 바로 법무부장관 박창식으로 밝혀진 것.
성태현 내각에서 청렴한 공직자를 약속하며 발표했던 첫 번째 내각의 구성 인물 중 하나였던 인물이 바로 법무부장관 박창식이다.
그런데 그가 한마디로 ‘땅 투기’를 한 것.
투기는 공직자라는 지위를 이용하는 특권층만의 범죄이자 비리. 지금까지의 사례 및 데이터를 분석한 전문가들의 예상에 따르면, 박창식 장관은 이번 신도시 건설로 최소 50억 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얻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불과 1년 만에 일반 서민들이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하는 돈을 벌게 된 것!
내부자의 말에 따르면, 그가 장관의 힘을 이용해 경기도청에 압력을 넣은 게 아닌지 의심이 된다고 한다.
그게 아니라면, 장관이 되기 전에도 법무부에서 일했던 만큼, 사전에 신도시에 관한 소스를 전달 받았을 가능성이 굉장히 커 보인다.
의혹이 진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인터네셔널 리포팅 권혁종 기자
권혁종 기자라.
인터네셔널 리포팅이란 회사도 들어 본 적이 없긴 하다.
내가 모른다는 건 마이너 중에 마이너라는 뜻.
그러나 미꾸라지의 힘을 받아 조만간 확 트래픽이 상승하며 메이저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중견 언론사까지는 성장할 수 있을 테지.
물론, 이런 자잘한 사항은 중요하지 않다.
기사 내용이 아주 마음에 들었으니까.
서민들과의 차이를 은연중에 언급하며 박탈감을 강조하며, 동시에 성태현의 공약을 꺼내 현재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당연히 박창식은 점심식사를 하는 많은 직장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씹히겠지.
언론에서는 특보로 다루며 정부를 까기 시작할 테고, 이는 산불이 번지듯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 터.
지금 SNS에서 퍼지는 속도와 인터넷 기사를 보면, 적당히 해명하는 수준으로는 절대 의혹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
실시간 검색어도 전부 ‘신도시’, ‘고양시’, ‘법무부장관’, ‘박창식’, ‘시세 차익’ 등 전부 이번 일과 관련된 단어로 도배가 된 상태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지도.
미꾸라지의 실력이 상당하다.
첫 단추가 잘 꿰어진 채 마무리된다면 미꾸라지를 소개해준 고성탁에게 고맙다는 연락이라도 해야겠는걸.
***
외부 상황이 어떻든 간에 난 내부 일정을 계속해서 소화해 나갔다.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더욱더 태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자, 그러면 회의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나는 빔 프로젝터를 끄고서 단상에 손을 얹었다.
“안 그래도 오늘 낮에 땅 투기와 관련된 공직자 비리가 하나 터진 거 아시죠?”
다들 헛기침을 하거나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지금 말하는 대상이 다름 아닌, 법무부장관이라는 건 여기 있는 인물 모두가 알 테니까.
모든 검사의 머리 위에 있는 법무부장관.
그렇기에 쉽게 동조할 수도 없고, 내 눈치가 보여서 반대할 수도 없을 테지.
“누구를 욕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지방검찰청이 아니라, 고등검찰청에서 일하는 검사들입니다. 일반 검사들보다 한 단계 더 위라는 거죠. 그러니까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업무에 집중하자는 뜻입니다.”
그제야 검사들은 낮은 목소리로 ‘예.’ 대답을 했다.
“네. 그러면 이걸로 첫 회의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 소리와 함께 회의를 빙자한 간담회가 마무리되었다.
다시금 검사들과 한 번씩 악수를 하며 모두를 배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의실에 남은 인물은 다름 아닌, 윤설하.
그녀는 새침하게 날 보며 물었다.
“저는 악수 안 해 주세요?”
나는 헛웃음을 치며 그녀와 악수를 했다.
동시에 들려오는 그녀의 낮은 목소리.
“공상욱 검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뒤쪽으로 그녀를 당겨 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윤설하의 입꼬리가 빙긋 올라갔다.
“사건 맡았답니다. 완전 독점으로요.”
“성공했군요.”
“예.”
그녀는 장하영 부장에게 전달받은 내용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지금 위에서 호출하고 욕하고 난리인데 전부 무시하고 나왔답니다.”
“그러겠죠. 과장이고 부장이고 지랄할 게 분명하니, 죄다 씹고 잠수 타야 할 겁니다.”
“안 그래도 내일까지 연락 끊길 거라고 장하영 부장한테 이야기했답니다.”
“혹시 연락 오면 오늘 휴대폰도 꺼 놓고 푹 자라고 전해 주십시오. 내일 상사들한테 된통 깨질 테니까요.”
“검사장님 때문에 말이죠?”
“덕분이라고 해야죠.”
윤설하는 빙긋 웃으며 날 안내했다.
“가시죠. 장하영 부장이 검사장실에서 대기 중입니다.”
***
“장마는 장마네.”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빗방울은 풀잎을 두드리며 바닥에 떨어져 찰박찰박 쌓여 갔다.
주차장으로 향하기 전, 나는 검찰청 앞에 멈춰 서서 말했다.
“설하 씨, 오늘은 바로 퇴근해요.”
“예?”
“이런 날에 어떻게 한남동까지 왔다가 갈 거예요? 제가 직접 운전해서 가면 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윤설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오늘 하루 종일 안색도 안 좋으시고…… 면담에 회의까지 꽤나 피곤하셨잖습니까?”
“나만 피곤했나, 설하 씨도 마찬가지지.”
나는 그녀의 팔을 툭툭 두드리고.
“들어가요. 내일 봅시다.”
홀로 우산을 쓰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윤설하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지 돌아가지 않고 내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매번 운전해 주는 건 고맙지만, 오늘 같은 날엔 차도 안 가져온 그녀가 홀로 버스를 타고 돌아갈 생각을 하면 영 마음이 불편해서 혼자 가는 게 편했다.
택시를 타라고 돈을 쥐여 줘도 거절하니까.
나는 비에 젖기 전에 서둘러 운전석에 올라탔다.
“후우.”
그런데도 왜 이렇게 뭔가 찝찝한 마음이 드는 걸까.
작전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미꾸라지는 성공적으로 언론을 끌어모았고, 칼잡이는 사건을 본인이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 새롭게 배정된 검사들과의 면담도 흡족했고.
모든 게 성공적이다.
그런데 왜 이럴까.
진짜 날씨 때문인가?
원래 비가 와도 이렇진 않았는데…… 아홉수라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빨리 집에 가서 푹 쉬어야 할 것 같다.
와이프와 아들을 떠올리며 시동을 걸던 그 순간.
부르릉 엔진음에 소리에 맞춰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려고 하자, 몸을 숨기고 있던 남자가 내 어깨에 덥석 손을 얹었다.
이런 젠장.
나는 어깨를 잡혀서 고개를 돌리지 못했고, 백미러를 통해 뒤에 있는 괴한을 바라보았다.
후드티를 깊게 눌러 쓴 남자는 히죽 입꼬리가 휘어졌다.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낯선 목소리.
“……누구야?”
“저 기억 안 나십니까?”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설마 성태현이 보낸 건가?
아니면, 최규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던 그때.
백미러 속 남자가 모자를 벗었다.